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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전의 올림픽을 이야기 한다(사진)

글/룽쵄머커(龍泉墨客)

【명혜망 2004년 8월 24일】올 여름 평화와 친선을 상징하는 올림픽 성화는 다시 발원지인 아테네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 시각 나의 뇌리에는 36년 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일어난 세계를 놀라게한 한 장면이 맴돌고 있다.

미국의 올림픽 주전 멤버였던 흑인선수 토미 스미스(Tommy Smith)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경기에서 가장 빠른 200미터 단거리 선수였다. 그는 19.83초의 성적으로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미국 팀에 금메달을 안겼다. 동료 흑인선수 존 카를로스(John Carlos)는 동메달을 따냈다.

수상 대에 오른 그들의 가슴에 걸린 메달은 번쩍 번쩍 빛났다. 와 함께 미국 국가(國歌)가 연주되는 동안, 전 세계의 주목 하에, 사람들은 토미가 천천히 올라가는 성조기에 대해 주목의 예(注目禮)를 올리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토미는 고개를 숙인 채 발아래 땅을 내려다보았다. 이와 동시에 그는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오른 쪽 팔을 높이 쳐들었다. 그는 오른 쪽 손에 검은 색 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선 존도 주저하지 않고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작가 딩린(丁林)은 그의 산문 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 그들 두 사람은 마치 두 개의 흑색 조각상 같았다. 그들은 침묵하였는데 마치 그들 선조의 고향인 아프리카의 대지와 같았으며 미국 흑인들의 4백년의 굴욕과 고난을 대변하는듯 하였다. 그들은 침묵한 채 미국 흑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전 세계에 호소하였으며 전 세계를 향해 인간의 존엄과 자유, 그리고 인권을 요구하는 그들의 강렬한 염원을 전달하였다. 그들은 전 세계에 알리려 했다. 흑인은 여전히 자유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흑인의 운명은 여전히 격리된 채 족쇄와 멸시의 쇠사슬에 비참하게 묶여 있다고, 하나의 거대하고 가없는 번영한 대양에서 흑인은 여전히 가난하고 외로운 섬에서 살고 있다고, 흑인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한 구석에서 농락당하고 있으며, 그들의 땅 위에서 쫒기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마틴 루터 킹의 말) 」

이 장면은 비록 2분 동안 지속되었지만 전 세계 거의 모든 큰 신문들의 톱기사가 되었다. 하지만 토미와 존은 이 짧은 2분간을 위해, 다만 하나의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크나큰 대가를 치렀다. 국제 올림픽위원에서는 토미와 존의 행동은 정치적인 행위로서 올림픽정신을 무시한 일종의 파괴행위라고 인정했다. 그리고 미국 올림픽위원회의 관리는 이러한 행위는 공개적으로 미국을 망신시킨 것이며 일종의 비애국적인 행위라고 인정했다. 그날 토미와 존에게는 즉각 미국으로 돌아갈 것과 아울러 평생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단거리 육상 선수였던 그들의 체육 인생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후의 나날들은 모든 보통 흑인들과 같이 생활의 고초를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족들도 그들과 같이 가난과 실업, 심지어는 굶주림을 견디며 어려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 토미는 한때 세차장에서 남의 차를 닦으며 생계를 유지했다. 어느 한번 그가 차를 닦고 있을 때 차 유리에 그의 사진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원래 이 사람은 그의 숭배자였다……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은 그 이후 어느 덧 몇 십 년이 흘렀다. 미국의 흑인들은 더 이상 지난날처럼 공개적인 멸시를 받지 않는다. 마틴 루터 킹이 “나의 하나의 꿈”에서 묘사했던 그 날이 온 것이다. 이날을 위해 토미 스미스와 그의 동료는 그들의 육상인생의 정상에서 순간의 표현을 선택하였다. 오늘날 더 이상 누구도 그들의 애국과 충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해 그들은 거의 일체를 지불하였다.

딩린은 문장의 말미에서 또 하나의 작은 에피소드를 이야기 한다.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경기 개막 전야에 미국올림픽위원회에서는 51세인 토미 스미스를 특별히 초청하여 올림픽 성화 주자로 뛰게 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토미 스미스는 올림픽성화를 높이 치켜들고 뛰면서 로스앤젤레스 번화가를 지났고 당인거리를 지났다. 사람들은 국기를 흔들었으며 미국국기와 중국국기를 흔들며 길가에서 환호하고 외쳤다. 토미, 파이팅!」

어떤 사람이 토미 스미스에게 물었다. 만약 기회가 있어 당신더러 다시 한 번 선택하라면 당신은 또 똑같은 행동을 할 건가요? 토미 스미스는 그렇습니다, 저는 줄곧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만 천 백 만의 사람들이 계속해오고 있는 한 가지 일을 하였으며 인권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으로서 우리는 황색 인종 역시 미국에서 흑색 인종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인 멸시와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음을 모두 알고 있다. 오늘날 미국에 있는 중국인이 이 땅 위에서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토미와 그의 흑인 친구들이 지불한 대가에 감사해야 하고 마틴 루터 킹과 그가 이끌었던 백만 민중의 끊임없는 노력에 감사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역사의 안광을 더욱 멀리 놓고 본다면, 미래의 어느 하루, 우리들을 낳아 기른 오랜(古老) 문명의 땅에서 매 국민들 역시 모두 확실히 헌법이 규정한 일체 자유와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그때 가서 천안문 광장에서 사람들은 가히 가볍고 자유스럽게 각기 다른 자신의 견해를 표현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하이더공원, 타임광장, 백악관의 잔디밭 같은 곳에서 사람들은 공안과 사복경찰에게 체포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며,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글을 발표하면서 더는 뚜도빈(杜導斌)처럼 공안에게 잡혀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며, 신문계의 어른들도 더는 사스 역병상황을 폭로하는 일로 보복당할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으며, 농민들도 더는 청원하러 갔다가 경찰에게 얻어맞는 일이 없을 것이며,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도 공원에 가서 자유롭게 연공 할 수 있어 여 교사 쪼우신(趙昕)처럼 체포되어 얻어맞아 분쇄 성 경추골절로 사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날이 되면, 사람들은 아마 오늘 하나의 이념을 표현하기 위해 거대한 대가를 지불한 사람들을 마치 올림픽위원회에서 끝내 토미를 이해하였던 것보다 더욱 잘 이해할 것이다.

사람들은 산 넘고 바다 건너 북경 천안문광장에 와서 “쩐, 싼, 런(眞,善,忍)” 현수막을 펼쳐들거나 혹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이 한 마디를 외치는 사람들을 이해할 것이다. 그들은 천리 밖의 농촌, 향진, 심지어 수 천리 떨어진 이국(異國)에서 왔을 수도 있으며, 그들은 아마 황인종, 백인종, 혹은 기타 피부색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 이 짧은 한 순간을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구속되고, 혹독하게 얻어맞고, 어떤 이는 노동교양을 받았고 혹형을 당했으며 심지어 생명까지 바쳤다.

사람들은 큰 거리와 골목을 다니며 표어를 붙이고, 전단지를 배포하고, 동영상 CD를 나눠주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이해할 것이다. 아마 당신에게 전단지 한 장, 혹은 동영상 CD를 한 장을 나눠주기 위해 그들이 지불한 대가는 아마 직장을 잃고, 감금되고, 나아가 살 곳을 잃고 집 식구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일 것으로, 다만 전단지, 동영상 CD에서 표현되는 것은 권력자들이 인정하지 못하는 이념일 따름이다.

사람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추위와 무더위를 무릅쓰고 몇 년을 하루와 같이 중국 각 영사관 앞에서 연공하고 가부좌해 온 파룬궁 수련생들을 이해할 것이다. 마음속의 소리를 표현하고 자신의 조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혹형과 학살을 중지시킬 것을 호소하기 위해,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조소를 받았다. 그들의 여권이 무리(無理)하게 취소당했는바 아마 다시는 먼 바다를 사이에 둔 가족들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칭화(淸華)대학 마이크로 전자 연구소 강사인 추퉁(褚彤)과 그의 남편, 정밀기계 학과를 졸업한 네트워크 기사 위초(虞超)를 이해할 것이다. 단지 인터넷에서 파룬궁에 관한 글을 발표하고 전파하였다고 하여 그들에게 각기 11년과 9년형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이런 글들의 내용은 당신이 한창 읽고 있거나 경청하고 있는 글들과 유사할 뿐이다.

사람들은 45세인 파룬궁 수련생, 헤이룽쟝성 쐉청시 한땐진 무장부 부장인 저우쯔창(周志昌)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공화국 헌법이 규정한 매개 공민(公民)의 마땅히 있어야할 청원(上訪)의 권리를 이행하러 갔다가 그는 쐉청 간수소에 감금되어 2000년 5월 6일 괴롭힘을 당해 사망하였다.

사람들은 32세인 파룬궁 수련생, 길림성 눙안(農安)현 류청쥔(劉成軍)과 그의 친구들을 이해할 것이다. 그들은 장춘시 8개 유선 텔레비전 채널을 통해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을 폭로한 진상 프로그램을 방송했었다. 그들이 한 것은 텔레비전 방송 본연의 기능인 진실을 보도하고 민중들에게 진실을 알 권리와 기회를 제공한 것뿐이다. 40분간의 진상 프로그램을 방송한 죄로 류청쥔은 19년형을 선고받고 9개월간 시달림을 받다가 2003년 12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이 한 무리의 아주 평범한 민중들은 비록 그들이 한때는 조소를 당하고 욕을 먹고 토미처럼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느니”, “파괴를 한다느니” 하는 질책을 받았었지만 사람들은 점차적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마치 우리 황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토미와 그의 동료들이 헌신한 민권운동의 혜택을 받은 것처럼, 한 때 사람들에게 조소를 당했던 평범한 백성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거대한 희생 또한 필연코 하나의 자유, 공정(公正)과 평등한 사회를 가져와 모든 이들에게 그 혜택을 누리게 할 것이다.

문장완성: 2004년 8월 23일
문장발표: 2004년 8월 24일
문장갱신: 2004년 8월 24일
문장분류: [인심과 인과]
원문위치: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8/24/825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