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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칭의 이야기

글 / 양화(楊華)

【명혜망】 내가 처음으로 샤오칭(小靑; 가명)을 알게 된 것은 한 경찰관으로부터 이었다. 파룬궁 진상전단지를 배포하다가 그는 2001년에 불법적으로 체포됐으며 5개월 후에는 불법적으로 3년 판결을 받았다.

샤오칭에 대해 많은 뜬소문이 있는데 파출소, 간수소, 감옥에, 전에 그를 감금했던 곳의 사람들은 모두 샤오칭이라고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공안내부에서는 어떤 명령이 내려졌는데: 무릇 누구든 샤오칭을 “전향”시킨다면 행정승진 1급, 노임 3급을 올려준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시도해 보았으나 마지막 한 경찰이 하는 말이 그를 죽이지 않는 외엔 나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몇 년이 지난 후 형기가 차서 출옥한 샤오칭이 나하고 마주 앉았는데 그는 평온하게 그의 경력을 이야기 했다:

나는 병마에 시달리다 대법을 만났다. 30살 전에 나는 무엇이 건강인지를 모르고 살았으며, 그저 어느 곳에서 병을 뗄 수 있다는 말만 들으면 나는 찾아갔으며 무슨 기공이든지 모두 배웠으나 병이 낫지 않았다. 후에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매우 빠르게 신체가 좋아졌으며 원래 가지고 있던 병들이 다시는 발작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으로 병이 없게 되어 신체가 가벼운 감을 느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심령이 정화되었고 인생의 허다한 진리를 깨달았으며 사람이 왜 사는가, 장래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파룬궁의 신기한 효과는 신속히 전해졌다. 그때 우리는 광장에서 연공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분분히 찾아와서 배웠는데 처음에는 불과 십 여명 밖에 안됐지만 1년이 채 안되어 3천명이나 늘어났다. 후에 우리가 농촌에 가서 홍법할 때 어느 한 촌에 3명의 할머니가 있었는데 전부 허리가 휘었으며 글을 몰라 근본적으로 책을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사부님의 녹화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연세가 드신 남방 사람들은 표준말을 알아듣기 힘들어 했지만 매일 꼭 참가해서 한 강의씩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이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하고 물어보면 그들은 좋은 사람이 되고 연공을 하라 했다고 대답했다.

그 중의 한 할머니는 단지 3일 동안 강의를 듣고 휘었던 허리를 폈는데 9일 후에 우리는 연공을 가르쳐 주었다. 이 할머니들은 매일 10시간도 더 되는 농사일을 하면서도 저녁 7시가 되면 저녁을 먹고 와서 강의를 들었다. 비록 글을 못보고 말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연공을 하고 저녁에 법을 배웠다. 1개월이 지난 후 다른 할머니의 허리도 펴졌으며 3개월이 지나자 3번째 할머니의 허리도 펴졌다.

우리는 이 3명의 할머니를 모시고 도처에서 홍법을 했으며 가는 곳 마다 할머니들은 자기들이 친히 겪은 사실로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신기함을 이야기 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배웠으며 어떤 촌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와서 배웠다.

그때는 얼마나 흐뭇하였는가! 노약자, 병자, 신장자들이 대법에 들어와서 얼마 안되어 얼굴색이 환해지고 병 통증이 소실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매일매일 신 수련생이 들어왔으며 우리들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법 공부, 연공, 교류들을 했으며 사람마다 엄격하게 자신을 요구하고 자기심성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는 진정한 정토(淨土)이고 수련생 간에 서로 관심을 갖고 도와주며 마치 하나의 대가족과도 같았는데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공동의 사부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냥 이렇게 법공부, 연공을 하면서 좋은사람이 되며 조용하게 세상과 다투지 않으면서 살아갈수 있기를 바랬다. 1999년 7월20일 하늘을 뒤덮을듯한 사악의 탄압이 시작됐다. 그것은 정말로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만 같았다. 갑자기 모든 총구가 우리를 겨냥했으며 모든 여론이 우리를 향해 압박해 왔다. 어찌 이럴수가 있는가? 우리는 손에 아무것도 쥔 것이 없으며 어떠한 추구도 없고 속인들의 권력도 요구하지 않으며 명리에 대한 추구도 없고 여러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법공부하고 하나의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탄압을 하는가?

우리들은 시정부에 청원했으며 우리들의 마음속의 말이 실권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우리는 자신들이 직접 겪은 사실로서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좋으며 사회에 대해 백가지 좋은점은 있어도 한가지 나쁜 점이 없다는것을 알려주려 했다. 그러나 망망한 대지에 우리가 말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청원만 하면 붙잡히고 공개적으로 연공하면 감금되었다.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정부를 찾아 갔으며 계속 견지해 나갔다. 만약 정부에서 근근히 수련생들의 언행을 제한하는데 그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데 아마도 우리가 어떤 면에서 잘하지 못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신문,텔레비젼, 등에서 똑같이 철두철미한 거짓말을 하면서 더우기는 그들이 우리 사부님에 대한 악독한 공격을 용서할 수 없었다. 사부님을 비할 바 없이 존경하는 우리 제자들의 마음에는 사부님의 은혜를 평생 다 갚지 못한다고 여기는데 어찌 이러한 사람들이 비방, 중상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때는 사회가 혼란한 때였는데 대량의 가짜경문이 유전되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뒷걸음질쳤으나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견지해 왔다. 자료를 교환하는 중에서 우리들은 각 지역의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점차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대법의 입자이고 이 한 특수한 시기에 사람마다 책임이 있으며 모두가 자신의 방식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것은 좋은 것이다.

2000년 우리들의 컴퓨터가 마침내 명혜망에 오르게 되었다. 어찌나 기뻤던지 형용할 수 없었으며 꼭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환히 비춰주는 등불과도 같았고, 우리들은 도움이 없어도 아득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명혜망에서 문장들을 복사하기 시작했으며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려주었으며 대량으로 진상 전단지를 인쇄했다.

우리는 인쇄한 대량의 진상자료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배포했으며 도시의 구석구석 마다 모두 우리가 배포한 자료들이 있었다. 그때 우리들은 하는 일들이 모두 매우 순조로웠으며, 늘 경찰들과 숨바꼭질을 하였다. 전시적으로 여러 차례 대대적인 수색 체포를 하였으나 불법요원 들은 헛물만 켜고 돌아갔다. 우리들이 자료점으로 쓰고있는 한 소매상점이 있었는데 공안들도 알고있었으며 사람을 시켜서 24시간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인쇄를 하고 전단지를 배포하였으며 그들은 아무런 증거도 잡지 못했다. 이 자료점은 몇 년간 계속 견고히 유지되었다.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하는 것이 우리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되었다. 2001년 나는 부모님들을 뵈려고 고향에 가게 되었다. 갈 때 많은 진상자료 들을 가지고 갔었다. 고향을 떠난 지 십 여년이 되고 정황도 익숙하지 못했지만 그리고 현지의 제자들과도 연계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계속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저녁때 나는 부근에 있는 주민구역의 몇 개 아파트에 한 집도 빠짐이 없이 전단지를 나누어 주었으나 한 사람도 부딪히지 않았는데 속으로 너무도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나는 또 어느 한 시장에 가서 나눠주었는데 손에는 십 여장 정도 자료가 남았다. 생각해 보니 조금 전에 한 구역 아파트 단지에 한 동을 빼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되돌아 거기로 갔는데, 그 결과 거기서 지키고 있던 경찰에게 잡혔다.

파출소에서 나는 자신을 반성해 보았다. 어찌된 일인가? 여태껏 잘해 왔는데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잡히다니? 꼭 어딘가 누락된 곳이 있으며 정념이 부족해서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준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다른 한 도시에서 나는 추호의 두려움도 없었으며 아무런 고려도 없이 붙잡힌다거나 때린다거나 심지어 죽음도 두렵지 않았으며 아무런 일도 없었다. 고향에 돌아와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보면서 나에 대해 한시도 시름을 놓지 못하고 걱정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 정을 내려놓지 못하고 나는 근심하기를 절대 여기서 잡혀서는 안되며 부모님들을 연루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에서 온다’고 하셨다. 결과 이 한 생각으로 하여 나는 잡혔다. 이지경이 되자 나는 되려 침착해졌으며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교훈을 받아들이고 견지해 나가면서 사악에게 어떠한 틈탈 기회도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간수소에서 그들은 나에게 연이어 3가지 질문을 해댔다. 누구이며 자료는 어디서 났으며 또 누가 있는가? 나는: “이런 것에 대해 묻지 않는 것이 좋을 듯 싶은데 나도 대답을 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당신이 파룬궁이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를 묻고 왜 전단지를 배포하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곧이 곧대로 알려줄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법원에서 나의 안건을 심사할 때 나보고 변호사를 청해서 변호하라고 했다. 나는 거절했다. 나는: “이 변호사가 만약 양심대로 진실한 말로서 나를 변호한다면 당신들의 보복을 당할 것이며 그렇다면 내가 그 사람을 해친 것으로 되지 않는가? 만약 그가 진실한 말을 감히 하지 못하고 심지어 당신들과 같은 태도라면 이런 변호가 나에 대해 무슨 의의가 있는가?” 라고 말했다.

나는 스스로 나 자신을 변호하려고 결정했다. 법정에서 나는 나의 지나간 경력을 서술했으며 직접 겪은 체험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파룬궁은 좋다는 것과 우리는 무고한 박해를 받고있으며 매스컴의 선전은 모두가 거짓말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오늘 마침내 이런 기회가 있기에 여기에 나서서 정부관리들과 백성들 앞에서 파룬궁을 위해 한 마디 진실한 말을 하게 되었다. 비록 이렇다 할지라도 나는 가능하게 감옥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러나 나는 아무런 후회가 없다.” 라고 말했다.

3개월이 지난 후 한 법관이 간수소에 찾아와서 나보고 말했다. “안건을 내일 판결하는데 관건은 당신의 태도에 있다”고 하면서 “만약 당신을 풀어 준다면 당신은 계속 파룬궁을 수련하겠는가?” 라고 물었다. 나는 “수련할 것이며 계속 수련해 갈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만약 판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 전단지를 배포하겠는가” 라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 오직 파룬궁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 전단지를 나눠줄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이튿날 법정에서는 내가 “공공질서를 파괴했다”고 하면서 3년 판결을 내렸다.

나는 여자 감옥에 감금되었다. 감옥에서 내가 경찰에게 한 첫마디 말은: “당신들은 영원히 나를 전향 시키려고 하는 꿈도 꾸지 마라” 라고 했다. 그들은 2명의 범인을 시켜 나를 감시했는데 내가 연공을 하면 묶어서 이틀 동안이나 그대로 두었다. 그들은 나에 대해 방법이 없자 관계하지 않았다.

강하게 해서 안되니 이번에는 나를 구슬리기 시작했다. 경찰은 부단히 나에게 아양을 떨면서 나를 대신해 밥도 가져다 주고 사발을 씻고, 생활상에서 곳곳에서 돌봐주었다. 나는 대법제자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으며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으며 그 어떤 특수한 보살핌도 받지않았다. 그러나 내가 연공만 하면 그들은 내 앞에 꿇어앉아 애걸하는데 그 가련한 모양을 보고서 내 마음은 괴로웠다. 경찰은 여러번 나를 찾아 말했는데 그들도 대법이 좋은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제발 자기들의 사정을 좀 봐달라고 하면서 연공만 하지 않으면 다른 일은 모두가 괜찮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매주마다 형사범들은 중간결산(小結)과 사상종합보고(思想匯報)를 해야 한다. 나는 늘: “이번 주에 나는 연공을 견지했으며 내가 죄를 범하지 않았으며 나는 여기에 무고하게 감금돼 있다”고 말했다.

매번 내가 발언할 차례가 되면 그들은 모두 내가 무슨 말을 할려고 하는지를 알고 있었으며 여기서 오직 나만이 경찰과 떳떳이 도리를 따졌다.

한번은 감옥에서 형사범들을 조직하여 녹화테이프를 보게 했다. 내용은 대법을 모욕하고 공격한 것들이었는데 나는 녹화테이프를 잡아서 땅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그러고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믿지 말라 모두가 거짓이다. 파룬궁은 전혀 이런 것이 아니다. 이 내용은 모두가 양심이 없는 사람들이 꾸며낸 것이다. 라고 했다.

그러자 대번에 난리가 났다. 한 무리 경찰들이 뛰어 들어왔는데 책임자들도 왔다. 몇 사람이 나를 땅에 넘어뜨리고 팔을 뒤로 가져가 수갑을 채웠다. 한 경찰은 종래로 어느 형사범이 이렇게 항거한 일이 없었으며 그야말로 이것은 반란이다 라고 했다.

몇 시간 후에 경찰이 오더니 수갑을 풀었다. 그러나 너무 힘있게 조였기에 수갑을 열 수가 없었다. 경찰은 “하필이면 이럴게 뭐야, 고생을 사서 하면서” 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두 손을 앞쪽으로 뒤집어 오자 수갑이 열렸다. 경찰은 “어찌 된 일인가? 당신이 공능을 쓴 거 아니야?” 라고 했다.

이튿날 그들은 나보고 잘못을 승인하라고 했다. 나는 승인하지 않았다. 그들은 또 나를 창문가로 데려가 수갑을 채웠다. 식사시간과 잠잘 때 만 놓아주었다. 그 이튿날도 나는 승인하지 않았다. 경찰은 말하기를 “계속 잘못을 승인하지 않으면 점수를 깎는다”고 했다. 나는”내가 병마에 시달리다가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만나서 병이 낫고 신체도 건강해졌으며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데 나에겐 잘못이 없다. 점수를 깎든지 말든지 당신 마음대로 하라” 고 했다. 경찰은 또 “당신은 겁나지 않는다? 내가 당장 자료를 써서 법원에 보내 형기를 추가하게 하겠다” 라고 했다. 나는: “나는 어떠한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으며 그저 파룬궁을 수련하여 병이 낫고 신체가 건강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려 하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것도 우리들이 박해를 받으면서도 말할 곳이 없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 진상을 알게 하려고 한 것 뿐이며 나는 공공질서를 파괴하지 않았다. 당신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기에 법률을 준수하기 바란다” 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감옥의 경찰들은 나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으며 형사범들은 매일 아침체조를 했으나 나는 하지 않아도 되었으며 몸이 불편하면 방에서 휴식하고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늘 집 생각이 안나는가 부모님들을 한번 오시라고 하지 않겠는가 라고 했다.

형기가 끝나는 날 감옥장이 나에게 총결산을 쓰라고 하면서 석방되는 매 사람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할 수속이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그는 “파룬궁을 언급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저 이 몇 년간 여기서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쓰라고 했다. 나는 말했다. “나는 쓸 생각이 없다. 비록 당신들이 나를 학대하지 않았지만 그러나 나는 무고하게 여기에 감금되어 있으면서 3년 동안 자유를 잃었다. 이에 대해 나는 당신들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것이다.”

감옥장은 나간 후에 무엇을 할 생각인가 하고 물었다. 나는 “어차피 이제 일자리도 없기에 아무것이나 할 것이며 파룬궁도 하고 진상도 알릴 것이다“ 라고 말했다.

출옥하는 날 시정법위에서 차를 보내 나를 데려갔으며 나에게 일자리를 배치해 준다고 했다. 나는 “일자리를 배치해 줄 수 있으나 나에게 그 무슨 보증서를 쓰라고 해서는 안되며 다음에 또 나의 인신자유를 제한해서는 안되며 사람을 파견해 내 뒤를 따르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시정법위에서는 모든 것을 승낙했다. 나를 어느 호텔주방에 배치했는데 나는 연공인이 살생을 못하기에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후에 또 한 술공장에 배치했는데 나는 연공인이 술을 마시지 않기에 술 냄새를 맡으면 안되므로 이것도 안된다고 했다. 마지막에 그들은 나를 어느 공원의 매표원으로 배치했다.

출옥한 후에 나는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 법공부를 했으며 사부님의 새 경문들을 연이어 3박3일 보았다. 3년간 외부와 소식이 단절된 상황에서 나는 어떤 경문도 보지 못했으며 오늘 사부님의 한편 한편의 설법들을 보노라니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자비하시고 위대한 사부님이신가. 사부님께서는 마음속에 줄곧 모든 제자들을 품고 있는데 나는 꼭 백배의 노력으로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

샤오칭은 이야기를 끝냈다. 나보고 아직도 더 물어볼 것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근근히 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3년 감옥살이를 했는데 후회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없습니다. 일분간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샤오칭은 대답하고 나서 표정이 엄숙하고 견정했다.

“7.20 이전에 나는 늘 자신이 수련하는 것이 정진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오성도 좋지않아 속으로 매우 조급했다. 7.20 시작될 때도 다른 사람은 어찌하는가를 보았으며 그들이 하면 나도 했다. 후에 점차 수련의 길에 참고가 없으며 모범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시종 한가지 믿고 있었는데 오직 대법을 견정하게 믿고 사부님을 따르기만 하면 이 한 갈래 길은 꼭 광명하고 찬란할 것이다. 나는 사부님에게 미안하지 말아야 하며 행동으로 내가 정진하는 제자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나는 또 샤오칭에게: “당신을 판결한 사람들을 원망하는가?” 라고 물었다.

“없습니다. 나는 어떠한 사람도 증오하지 않습니다.” 샤오칭은 대답했다. “내가 보건대 그들은 정말로 가련합니다. 나는 그들에 비해 더욱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진리를 알고 있으며 사부가 돌봐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비록 괜찮은 사업이 있고 자유가 있고, 특권이 있지만 그러나 사는 게 얼마나 힘드는지! 명(名), 리(利) ,정(情)을 위해 심지어는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을 가지고서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매일마다 서로 속고 속이면서 겉으로는 복종하나 속으로는 따르지 않으면서 세월을 보내는데 미래는 오히려 까마득한데 누구도 자신의 운명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저녁에 잠자리에 누우면서 이튿날 못 깨어날지도 모르는데 얼마나 가련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늘 나에게 파룬궁이 무슨 좋은 점이 있느냐고 묻는데 그때면 나는: 파룬궁은 나에게 하나의 건강한 신체를 주었으며 가뿐하고 유쾌한 생활을 하게 한다.” 고 대답했다.

“지금 나는 매일 사람들을 만나면 진상을 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파룬궁을 이해하려 하지 않으며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그들에게: 나는 방금 감옥에서 풀려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파룬궁을 수련했기에 3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 한마디 말은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을 자아내는데 그 다음에 나는 진상을 이야기 한다.

이때 내 앞에 앉아 있는 샤오칭은 먼곳을 바라보고 있는데 눈빛이 조용하고 침착한데 방금 감옥에서 나온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문장완성: 2004년 8월 12일
문장발표: 2004년 8월 13일
문장갱신: 2004년 8월 13일 1:21:06 P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8/13/816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