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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속 세상과 다른 공간 (2)

글/ 샤오거(蕭戈)

[밍후이왕](전편에 이어) ‘태평광기’에는 계허(契虛), 배씨자(裴氏子), 왕여(王畭), 음은객(陰隱客), 채약민(採藥民), 최위(崔煒), 이구(李球), 허서암(許棲岩) 등 사람이 기연이 맞아떨어져 동굴 속 다른 공간으로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동굴 속 신선세계는 하늘도 있고 땅도 있어 인간세상과 마찬가지이며, 동굴을 걸어 지나온 것처럼 보일 뿐 사실 그곳은 완전한 하나의 세계다. 여기에서 그들은 모두 수련해 득도한 고인(高人)을 만났고, 고인은 그들에게 인생의 참뜻을 일깨워줬다. 그들이 인간 세상의 집착을 모두 내려놓고 수련해야만 반본귀진(返本歸真)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신선세계에서 나온 후 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그 후부터 수련에 몰두해 마침내 득도했으나, 어떤 사람은 속세의 명성과 금전에 미혹돼 천년에도 만나기 어려운 인연을 놓치고 말았다.

‘동굴[洞]’은 숨겨져 있고 깊어 발견하기 어려우며, 오직 그런 인연 있는 사람이어야만 신선이 사는 곳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의미다.

‘동천문화(洞天文化)’는 오랜 역사가 있으며, 중국의 신전문화(神傳文化)에서 인간 세상과 하늘을 이어주는 통로로 연출되고 있다. ‘태평광기’ 속의 풍부한 기록은 동굴 속 신선세계가 바로 우리 곁에 있으나, 인연 없는 사람은 전혀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중국어 어휘 중 ‘동굴(洞)’과 관련 있는 동견(洞見), 동철(洞徹), 동일(洞溢), 동달(洞達), 동실(洞悉), 동찰(洞察), 동약관화(洞若觀火) 등 단어들은 모두 현상을 통해 본질을 본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마음이 성실하면 영통해져 다른 공간 볼 수 있어

동굴 속 세계는 물론, 기연이 맞아떨어지면 다른 공간이 각종 형식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 인연 있는 사람들을 천기(天機)를 ‘동견(洞見)’하게 한다. 예컨대 ‘신기루’처럼 하늘에서 창문 하나가 열려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다른 공간의 존재를 보여준다.

‘신기루’에 관한 기술은 비교적 많아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두 있는데, 대부분 움직이지 않는 산, 건축물, 선박 등이다. 그러나 북송 시기 심괄(沈括)의 ‘몽계필담(夢溪筆談)’ 제21권 이사(異事)에는, 당송팔대가 중 한 명인 구양수(歐陽修)의 다음과 같은 경험이 기재되어 있다.

“등주[登州: 지금의 산둥성 펑라이(蓬萊, 봉래)]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구름이 자주 보이는데 어떤 것은 누대 궁전 같고 사람과 물건, 수레와 말도 있으며 매우 분명하게 보인다. 사람들은 이것을 ‘해시(海市: 신기루)’라고 불렀다. …… 구양문충(歐陽文忠, 구양수)이 황하 북쪽 기슭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그는 고당현(高唐縣)을 지나 밤에 여관에 묵었는데 그곳에서 귀신이 하늘을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는데, 수레와 말, 사람과 짐승의 소리가 매우 또렷했다. 그가 매우 상세히 말해서 여기서는 많이 쓰지 않겠다. 현지의 한 노인은 ‘20년 전 이곳에서는 낮에도 이런 일이 있었으며, 사람과 사물을 모두 매우 분명히 볼 수 있었네’라고 말했다. 백성들도 그것을 ‘해시’라고 불렀다.”

이는 구양수와 현지 백성들이 목격한 ‘신기루’가 환상이 아닌 다른 공간의 진실한 존재로서, 수레와 말 등이 있는 등 완전한 세계임을 나타낸다.

다음은 명나라 학자 장대(張岱)가 백과도서 ‘야항선(夜航船)’에 기록한 일화다. 송나라 철종(哲宗) 연간, 소동파(蘇東坡)는 등주(登州)로 좌천됐다. 그는 현지에서 기이한 ‘신기루’ 현상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줄곧 볼 기회가 없었다. 나중에 전근 갈 때, 소동파는 신기루를 못 본 것이 아쉬워 해신묘(海神廟)에 가서 제사를 지내며 신께 보고 싶다는 청을 올렸다.

다음날 소동파가 등주를 떠날 때 과연 신기루가 나타났다. 장면이 매우 또렷해 행인과 수레, 그리고 말이 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소동파는 매우 기뻐하며 ‘해시(海市)’라는 칠언시를 썼다. ‘동쪽 운해가 하늘로 다시 떠오르니 뭇 신선 하늘에 나타났다 사라지네, 세상 만상 생겨나 떠오르는데 어찌 용궁이라고 감출 수 있겠는가(東方雲海空復空, 群仙出沒空明中. 盪摇浮世生萬象, 豈有貝闕藏珠宮).’

소동파가 만년에 불법(佛法)을 깊이 믿었던 것은 신에 대한 경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는 비로소 인연이 닿아 다른 공간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공간은 불법에서 어떻게 묘사되고 있을까? 석가모니 부처님은 모래 한 알 속에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모래 속의 모래, 세계 속에 겹쳐진 세계, 무궁무진한 광활한 우주는 궁극적으로 ‘크기로는 밖이 없고, 작기로는 안이 없다’라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모래 한 알이 이와 같다면 우리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도 무수한 종횡 방향으로 시공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하늘 밖에 하늘이 있고, 사람 밖에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전설이나 신화가 아닐 것이다.

중국 5천 년 문명역사 중, 역대 예술가들이 남긴 회화나 조각에서 수많은 신의 신성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장엄한 부처, 자비로운 보살, 만면에 웃음을 띤 자유자재한 나한의 모습이 담긴 회화나 조각은, 사람들에게 신께서 다른 공간에 진실하게 존재하신다는 것을 알려준다.

(계속)

 

원문발표: 2023년 4월 15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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