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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지키며 행하니 세상이 고결해지다

글/ 리위칭(李玉靑)

[밍후이왕] 고대의 성현은 사람의 본성을 기르고 욕망을 절제해 이익을 얻고 해를 피하는 예법을 창안해냈다. 감정을 마음대로 소진하고 욕망을 방종하면 반드시 위험해지며 심지어 파멸에 처한다. 예를 지키고 욕망을 억제하며 의식주행(衣食住行) 등 물질생활의 향유를 가볍게 보아야만 잘못을 줄일 수 있고, 잘못된 길로 들어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고대인이 어떻게 욕망을 절제했는지 살펴보자.

예를 지켜 난을 막고 스스로 잘못을 꾸짖다

서주(西周)시대 주선왕(周宣王)의 강(姜)왕후는 제후의 딸로서 현명하고 덕이 있어 매사에 예가 아니면 말하지 않고 행하지 않았다.

어느 날 주선왕이 늦잠을 자면서 조례에 나가지 않자 강왕후는 관복을 벗고 머리 장식을 뽑은 채 죄인의 옷을 입고 밖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보모를 시켜 선왕에게 말을 전했다. “첩의 음심이 군왕으로 하여금 예를 잃게 했고, 왕께서 색을 밝히고 덕을 잃으시어 혼란이 시작됐습니다. 이 혼란은 제가 일으킨 것이니 대왕께서는 저를 벌하소서.” 아주 이성적이었던 주선왕이 말했다. “이는 과인의 부덕이며 잘못이지 왕후의 잘못이 아니오.” 그때부터 주선왕은 조회에 빠지지 않고 정무에 힘써 백성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흥성하게 했다. 그는 서주(西周)의 왕 중에 중흥의 왕으로 일컬어진다.

강왕후가 기품과 덕을 지키며 예를 갖추고 스스로 잘못을 꾸짖자 선왕은 스스로 잘못을 뉘우쳤다. 속담에 임금에게 현명한 왕비가 있으면 나라가 번창하고 궁궐이 안정되며, 집안에 현명한 아내가 있으면 남편이 어질고 자식이 효도하며 가정이 행복하고, 신하에게 현명한 시중이 있으면 근본을 잊지 않고 도를 잃지 않으며,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있으면 지혜를 더하며 실수를 줄인다고 했다.

수레에 같이 타길 사양하고 예로써 임금을 섬기다

반첩여(班婕妤, BC48년~AD2년)는 서한(西漢)의 여성 시인으로 누번(樓煩, 오늘의 산시 숴청구) 사람이다. 반 씨는 초나라 영윤자문(令尹子文)의 후손이며 월기교위(越騎校尉) 반황(班況)의 딸이다. 동한의 역사가 반고(班固, ‘한서’의 저자), ‘여계(女誡)’의 저자 반소(班昭), 붓을 던지고 군대를 따른 반초(班超)가 모두 반첩여의 후손이다.

반첩여는 용모가 아름답고 어진 덕행과 예의를 갖추어 성제(成帝)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한번은 성제가 특별히 호화로운 용(龍) 수레를 만들고는 함께 타고 놀자며 반첩여를 초대했다. 반첩여는 성제를 타일렀다. “역사상 현명한 군왕은 모두 훌륭한 신하를 곁에 두었사옵니다. 신첩이 폐하와 같은 수레를 타고 놀러 다닌다면 하(夏), 상(商), 주(周) 삼대 말의 걸왕, 주왕, 유왕의 행위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신첩은 이렇게 예에 어긋난 망동과 색을 밝히고 덕을 저버리는 일을 할 수 없사오며 마땅히 이로써 경계하고자 하옵니다.”

성제는 반첩여의 말에 도리가 있음을 알고 곧 물러났다. 황태후가 반첩여를 칭찬하며 “옛적에 번희(樊姬)가 있었다면 지금은 반첩여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번희는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의 왕비였다. 번희는 장왕이 사냥을 즐기고 주색에 빠지자 사냥한 짐승을 먹지 않고 달을 마주하고 머리를 빗으며 간언으로 장왕을 도와 춘추오패(春秋五霸) 중 한 명이 되게 했다. 그러나 성제는 조비연 자매에게 집착하다 결국 목숨을 잃었고 아무도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반첩여는 자신을 수양하며 청렴하게 행동했고 예로써 욕망을 억제하고 예를 지키며 행동했지만, 성제는 욕망을 방종하여 스스로 자신을 망쳤다.

‘천보유사(天寶遺事)’에는 당(唐)나라 현종이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을 만든 후, 오락거리로 궁녀를 훈련시켜 노래하고 춤추게 하면서 국정은 소홀히 해 안사(安史)의 난을 초래했다고 적혀 있다. 진후주(陳後主)와 그의 신하들은 늘 후궁에서 술을 마시고 놀면서 빈비(嬪妃)들과 손님에게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를 부르게 했다. 그들은 욕망을 방종하며 만취한 채 가무에 빠져 놀다가 이성을 잃었고, 국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다 나라를 망하게 했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욕망이 많은 것보다 큰 죄는 없고,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큰 화는 없으며, 욕망과 이득을 채우는 것보다 큰 허물은 없다. 따라서 만족할 줄 알면 항상 넉넉하다”라고 했다.

세상에서 욕망의 방종보다 큰 죄는 없고, 만족을 모르는 것보다 큰 재앙은 없으며, 끝없는 욕심보다 큰 과실은 없다. 그러므로 욕망의 한도를 알아야만 영원히 만족할 수 있다.

천금과 작위로도 미인의 눈길을 얻지 못하다

중국 역사에 ‘봉화로 제후를 희롱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유왕(周幽王)이 미인의 웃음을 보기 위해 수차례 봉화를 피우며 천하의 제후를 농락해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어떤 여인은 대왕이 천금을 상으로 주든, 아버지와 형제에게 작위를 주든 간에 대왕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잉첩(시댁으로 따라가는 시녀) 정무(鄭瞀)가 신부를 따라 초(楚)나라로 갔다. 어느 날 초나라 성왕이 높은 누대에 올라 후궁을 내려다보자 후궁의 비빈과 궁녀가 모두 그의 관심을 끌기위해 초성왕을 바라보았다. 유독 정무는 초성왕을 쳐다보지 않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초성왕은 정무의 남다른 모습이 너무도 기이해 큰소리로 외쳤다. “걸어가고 있는 미인이여, 짐을 한번 보라.” 정무가 고개를 들지 않자 성왕이 “미인이여, 짐을 한번 보면 그대를 아내로 삼겠다”라고 말했지만, 정무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성왕이 또다시 말했다. “미인이여, 만약 고개를 들어 짐을 한번 바라보면 그대에게 천금을 내리고, 그대의 아버지와 형제에게 관직과 작위를 내리겠다.” 정무는 그래도 조용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고 고개를 들어 ​​왕을 바라보지 않았다.

성왕은 그 미인이 남다르다고 느껴 누대에서 내려와 그녀에게 물었다. “부인, 후궁은 높은 지위이고 작위가 내려지면 후한 관직과 녹봉을 가질 수 있소. 단지 짐을 한번 보기만 하면 모두 얻을 수 있는데 그대는 왜 하지 않으려 하오?”

정무가 대답했다. “신첩은 부녀자가 마땅히 용모를 단정히 하고 얌전히 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대왕께서 높은 단에 서 계시온데 신첩이 가서 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옵니다. 신첩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지 않으니 대왕께서는 부인의 지위와 관작과 후한 녹봉으로 신첩을 유혹하셨사옵니다. 만약 지위와 관작을 위해 신첩이 가서 보았다면 그것은 부귀와 이익을 탐해 사람의 도리를 망각한 짓이옵니다. 신첩이 사람의 의례(義禮)를 망각한다면 후에 또 무엇으로 대왕을 섬기겠나이까?”

정무가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지 않자 초성왕은 거꾸로 그녀를 칭찬하면서 즉시 그녀를 왕비로 봉했다.

이성과 함부로 농담하지 않다

현실 생활 중에 정무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명예, 이익, 각종 욕망을 담담하게 보며, 각종 유혹 속에서 흐름을 거스르고 사람과 사물을 대함에 기준을 갖고 예에 따라 행하며, 일을 담담하게 처리하고, 자신의 정(精), 기(氣), 신(神)을 배양한다.

칠석절(七夕節)은 칠교절(七巧節), 기교절(乞巧節), 칠저탄(七姐誕)으로도 불린다. 고대 여성들은 이날 하늘을 향해 직녀와 같은 솜씨를 갖추고, 견우처럼 의리 있는 낭군을 얻고, 가정과 혼사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빌었을 것이다. 젊고 아름다운 한 여자 동료가 대법제자 A에게 “내일은 발렌타인데이인데 우리 이모(A의 아내)에게서 꽃을 받나요?”라고 물었고 A는 “우리는 모두 나이가 많아서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아!”라고 말했다. 여자 동료가 이어서 “안 그러면 제가 꽃다발을 사 드릴게요!”라고 말하자 A는 근엄하게 “이런 농담은 안 해도 돼!”라고 말했다.

또 어떤 여 제자는 A에게 “선생님, 얼굴이 빨개요. 키스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A는 정색하며 “허튼소리 하지 마!”라고 말했다.

또 한 여제자 B는 친구 모임에 갔는데 A의 옆에 앉아 테이블 밑으로 A의 손을 꼭 잡고 있다가 A가 겨우 떼어내자 일어나 연회석을 떠났다.

대법제자 C는 시동생 집을 방문했다. 서양 예절에 따르면 만났을 때 포옹하고 키스를 한다. C가 시동생 집에 도착하자 시동생이 얼른 일어나 두 손을 내밀어 C를 맞이하려 했다. C가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거기 앉아, 움직이지 마!’라고 생각하니 시동생은 얼어붙은 듯이 단번에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물욕에서 초탈해 고생을 낙으로 여기다

대법제자 D는 혼자 아이를 데리고 도처에 방을 빌리러 다니면서 업신여김을 당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으며, 홀로 완수했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고, 억울하게 돈을 쓰더라도 직장의 이성 동료나 남자 수련생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

D는 집안의 일상적인 수리와 유지처럼 남자들이 분담해야 할 일도 스스로 모색해 해결하면서 수리 방법, 건축자재 구입 방법 등등을 인터넷에서 몇 번이고 검색했다. 한번은 침실 등이 고장 났는데 시간을 몇 달이나 보내고 나서야 등을 밝게 만들었다. 가끔은 한밤중에 정전이 되어 목욕물 밸브가 작동하지 않고, 욕실 환풍기가 작동하지 않아 모두 스스로 해결 방법을 생각했다. 나중에 새집으로 이사해 내장 공사를 했는데, 작기로는 모르타르에서 크기로는 가구, 가전 등까지, 설계에서부터 인테리어업자 물색, 건축자재 구입, 시공까지 모두 혼자서 처리했다. 그밖에 아이 교육도 책임져야 했는데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는 뒤에서 몇 등을 했다. D의 보살핌을 받은 지 한 달 후 아이의 성적은 반에서 1등이 됐고, 그다음에는 전교 1등을 했는데 그때부터 줄곧 수석을 차지했다.

D가 말했다. “대법의 용련 아래 저희의 생활은 절약하며 단순해졌습니다. 물욕에서 초탈해 고생을 낙으로 여기고 책임질 줄 알며 청정한 삶은 파룬따파로부터 얻은 혜택입니다.”

 

원문발표: 2021년 12월 29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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