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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부 부부장 멍칭펑(孟慶豐)이 면직되다

글/ 밍후이왕 통신원 저장(浙江)보도

[밍후이왕] 2020년 6월 16일, 공안부 부부장 멍칭펑이 면직됐다. 멍칭펑은 2000년 6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저장(浙江)성 저우산(舟山)시 시 당위원회 상무위원, 시 공안국 당위 서기, 국장, 시 정법위원회(政法委) 부서기를 지냈다. 그 기간 멍칭펑은 상급의 명령을 집행한다는 이유로 파룽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에 적극 가담했고, 이를 정치적 승진 실적으로 쌓아 초고속 승진을 했다.

멍칭펑은 저우산시 상무위원, 시공안국 당위 서기, 국장, 시 정법위 부서기, ‘610’ 판공실의 핵심 인원이다. 그는 중공과 장쩌민(江澤民) 집단의 파룬궁을 박해하는 주요 하수인일 뿐만 아니라, 박해 범죄 행위의 최종 기획자와 지휘자로 교도소, 세뇌반, 구치소에서 발생한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와 파룬궁 수련생의 가족과 친척, 친구에 대한 미행, 교란과 상해 등 면할 수 없는 범죄 책임이 있다.

박해 사실에 대한 약술

◎자오페이저우(趙飛舟)는 저우산시 푸퉈(普陀)고등학교 교사이다. 2000년 1월, 베이징(北京)에 상방을 갔다가 현지 ‘610’에 납치돼 민정국 초대소에 갇혀 감시당했다. 후에 속여서 푸퉈구 정신병원 입원실로 끌려갔고 강제로 이름 모를 독침을 맞은 뒤 의식을 잃었다. 퇴원 후 즉시 다시 베이징에 갔다가 공항에서 납치되어 저우산 푸퉈 구치소에 불법 수감됐다.

한 달 뒤 저우산 푸퉈구 구치소에서 나온 뒤 곧바로 세뇌반으로 옮겨져 5개월간 불법 감금되었다.

자오페이저우는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2003년 3월 초, 저우산시 ‘610’에 의해 저장성 모간산(莫干山) 여자 노교소로 잡혀갔다. 박해받은 지 두 달도 안 돼 박해로 정신이상에 걸려 항저우(杭州) 안캉(安康)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안캉병원에서 자오페이저우는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투여받았고, 초강력 전기 침 박해, 야만적 관식(灌食), 결박 구타 등 혹독한 박해를 받았다.

자오페이저우는 박해로 다시 정신이 흐리멍덩해져 두 눈은 멍했으며 무표정이 되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가족을 알아보지 못했다. 한때 고향 사람들로부터 재능있는 여성으로 칭찬받던 꽃다운 젊은 훌륭한 여교사는 현지에서 사라졌다.

항저우 안캉 병원에 있는 기간 동안 6천여 위안의 의료비를 썼는데 전부 가족들이 부담했다. 퇴원 후에도 여전히 놔주지 않고 계속 저장성 모간산 여자 교도소에 감금하고는 이른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자오페이저우는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약물 주사, 벌서기, 공갈, 추위와 굶주림, 목욕 등 육체와 정신적으로 온갖 잔혹한 괴롭힘을 당했다.

자오페이저우는 2년 10개월 가까이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나온 후 집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곧바로 현지 ‘610’에 납치돼 세뇌반에 끌려갔다. 세뇌반에서 나온 후 원래 직장을 잃었고 선자먼(沈家門) 중학교로 좌천되었다. 선자먼 중학교에서도 오랫동안 교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상상할 수 없는 교통을 겪었다.

◎진화(金華)는 저장해양학원(현 저장해양대학) 교수다. 2001년 9월, 저장성 당서기, 성장(省長) 및 저우산시 당서기, 시장 등 주요 영도인에게 파룬궁 박해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썼는데 저우산시 정법위 ‘610’ 및 공안국에 납치돼 불법 수색을 당했다. 대법 사부님 법상과 모든 대법 서적 그리고 자료와 개인 소지품 등을 몽땅 약탈당했고 저우산 딩하이(定海) 구치소에 불법 수감됐다.

그는 구치소에 한 달 동안 불법 수감된 후에도 줄곧 비밀 감시를 받았다. 주거뿐만 아니라 직장 사무실의 컴퓨터와 인터넷도 감시했다. 진화가 이메일로 밍후이왕 문장을 본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저우산시 정법위 ’610’은 2002년 10월 직장 사무실에서 또 한 번 그녀를 납치했고, 또다시 불법으로 집을 수색하고 대법 서적과 개인 물품들을 빼앗아 갔다.

진화는 다시 저우산 딩하이 구치소에 불법 수감되었다. 그는 이에 불복해 24일간 단식했다. 한 달 후, 그녀는 현지 세뇌반에 납치돼 계속 박해를 받았다. 세뇌반에서 나와 직장으로 돌아왔지만 일을 배치해 주지 않았고 집에도 가지 못하게 하면서 강제로 기숙사에 투숙시키고 비밀 감시를 했다. 진화는 어쩔 수 없이 유리걸식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화가 실종된 뒤 저우산시 ’610’과 공안국, 직장은 발칵 뒤집혔다. 진화네 집은 또 한 번 수색당했고, 저우산 전역을 이 잡듯 수색했는데 심지어 그녀 집 뒤편의 강 물밑까지 수색했다. 아무런 결과도 없자 진화의 남편과 아이를 장기간 미행하며 괴롭혔고, 진화 남편의 직장과 아이의 학교에 여러 차례 찾아가 물었다. 그녀의 남편을 억류함으로써 진화의 행방을 알아내려 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많은 경찰을 동원하여 몇 년 동안이나 성을 초월해 찾아다녔다. 천 리나 떨어져 있는 진화의 부모 집, 친척 집, 동창생 집에 사람을 파견했고, 타향에 있는 진화 남편의 친구와 동창생 집에까지 사람을 파견해 조사하면서 부모와 친척 친구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베이징 상방을 막기 위해 여러 명을 베이징에 파견해 주둔하기까지 했다.

한 선량하고 무고한 사람을 박해하기 위해 저우산시 610, 공안국은 몇 년 동안 전력을 다했다. 진화를 찾으러 베이징에 간 한 동료의 말에 따르면 “백만 위안이 넘는 돈을 썼다.”고 했다. 몇 년 뒤 진화는 타지방 경찰의 가담으로 인터넷 수배를 통해 붙잡혀 2년간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저장성 모간산 여자 노교소에 감금돼있는 동안 진화는 매일 노동교양소의 가장 흉악한 바오자(包夾)의 24시간 감시를 당했다. 끊임없는 세뇌와 기만, 협박과 심리공격에 그녀는 거의 붕괴에 이르렀다. 장기간 씻지 못하게 하고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했으며 잠자지 못하게 하면서 이런 것으로 수련을 포기하라고 위협했다.

◎2001년 전후 저우산 정법위와 공안국은 서로 공모하여 파룬궁 수련생 장후이(蔣慧)에 대해 정신적 박해를 가했다. 후에 장후이는 저장성 모간산 여자 노교소로 납치돼 비인간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나온 후 티베트로 갔는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26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26/4300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