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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국무원의 파룬궁수련생 최초 특별자금 제공에 대한 생각

글/ 타산(他山)

[밍후이왕 2010년 5월 21일] 밍후이왕 5월 13일 보도에 의하면 파룬궁 수련생이 성립한 회사인 ‘전세계인터넷자유연맹(Global Internet Freedom Consortium)’에게 미국 국무원이 2010년 처음으로 인터넷 봉쇄 돌파 특별자금을 제공할 것이라는 전화를 했다고 한다.

세계 유명 언론사 ‘워싱턴포스트’는 5월 12일에 이 내용을 보도했다. 미국 국무원은 중공이 최대의 적으로 간주하는 파룬궁 수련생이 경영하는 조직에 자금을 공급하려 이미 결정했으며, 그 자금은 인터넷 봉쇄돌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 국무원 관리가 이 사실을 입증했다.

전세계인터넷자유연맹은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과학자가 2001년에 창립한 회사다. 창립한 최초 목적은 효과적인 인터넷 봉쇄돌파 프로그램을 만들어 중공의 파룬궁 박해를 제지하려는데 있었다. 그러나 작년부터 기타 인터넷 소식을 검열하는 국가 네티즌들도 이 회사에서 개발한 자유문(自由門), 우제(無界) 등 봉쇄돌파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밍후이왕’ 보도로 다음과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중공은 모든 해외 대륙 관광객에게 늘 거짓말을 해왔다. 말하자면 ‘파룬궁은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 자료를 배부한다.’ 예를 들면 매일 타이베이시 ‘국부기념관’(손중산선생 기념당)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대만 파룬궁 수련생 위팅(玉婷)은 4월에 여성 가이드가 대륙 관광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저 사람들은 파룬궁 수련생입니다. 저들은 돈을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위팅은 곧 앞에 나서서 말했다. “아가씨, 당신은 오해하셨군요. 나는 파룬궁 수련생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원적으로 여기에 온 것입니다. 누가 고용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돈으로 진상자료와 보드판을 제작했습니다. 목적은 중국인들이 진상을 알게 하기 위함이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려는 것입니다.” 위팅은 나중에 단독으로 이 가이드에게 진상을 알렸다.

위팅이 말했다. “가이드가 팀을 맡게 되면 보통은 6일에서 8일이다. 그 가이드는 나중에 또 다른 팀을 맡아 이곳에 왔었는데 미소를 띠고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더이상 사악의 거짓말을 관광객에게 전하지 않았다.” 홍콩, 호주, 캐나다, 미국 등 기타 국가와 지역 파룬궁 수련생도 위팅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돈으로 하고 있으며 중공의 거짓말에 속은 대륙의 관광객을 선하게 대하고 있다.

이 보도에서 나는 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초기에 만들어낸 유언비어를 생각하게 했다. 그때 대륙 매체는 모두 이 방면의 글을 대량으로 게재하고 전재했다. 파룬궁이 서양국가정부, 특히는 미국정부로부터 금전방면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고 했다. 이번에 미국 국무원은 ‘처음으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보시다시피 미국정부는 전에 파룬궁 수련생에게 자금 원조를 한 적이 없었으며 중공이 전에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서양국가 정부는 국민이 선거한 정부다. 정부가 어느 조직이나 회사에 자금을 제공한 것은 국민이 조사할 수 있으며 중공과 같이 암암리에 납세자의 돈을 남용하거나 조작할 수 없다. 파룬궁 수련생이 창립한 회사는 인터넷봉쇄를 돌파하는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인들에게 알권리를 찾아주었다. 그러나 중공은 오히려 납세자의 돈을 남용해 인터넷을 봉쇄하여 국민을 우롱했다. 미국 정부가 파룬궁 수련생이 창립한 회사에 특별자금을 공급하는 것은 합리하고 합법적이며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 몇 년간 미국정부는 파룬궁 수련생이 진상을 알리는 각종 항목에 자금 원조를 한 일이 없었다. 모두 파룬궁 수련생이 자신의 호주머니 돈으로 사심 없이 지불하고 공헌한 것으로 진행해왔다.

그때 많은 중국인은 중공의 유언비어를 비교적 믿었다. 그들은 오늘날 사회에서 한 가지 사업을 벌이려면 크고 작든 금전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중공이 고의적으로 만들어낸 유언비어와 일상생활의 상식으로 자신도 모르게 중공의 한쪽의 말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모든 사람은 파룬궁은 무료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박해가 발생한 후 중국인들은 파룬궁 진상자료를 받아보았다. 어떤 사람은 몇 번이나 받았다. 자료에는 전단지, CD, 책도 있다. 이러한 자료제작에 사용된 자금은 전부 대륙 파룬궁 수련생들이 자원적으로 지불한 것이다.

해외에서 파룬궁 수련생은 밍후이왕, 따지왠(大紀元)과 씬탕런(新唐人)방송 등 매체를 창립했다. 창립에서 운영까지 전부 파룬궁 수련생 자신의 돈으로 진행했다. 파룬궁 진상을 모르는 사람은 정말로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수련인으로 놓고 말하면 그들은 파룬궁을 극히 아끼고 있으며 많은 파룬궁 수련생은 모두 전심전력으로 투입하고 있다. 그들이 투입하고 있는 자금과 시간은 모두 긴박하다. 왜냐하면 국내 파룬궁 수련생이 잔혹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정황에서 해외 파룬궁 수련생이 진상을 밝히고 전 세계에 호소하는 것은 상당한 정도에서 대륙 파룬궁 수련생들이 당하는 학대를 경감시킬 수 있으며 또 경감시켰기 때문이다.

파룬궁 수련생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전통이 있다. 파룬궁이 전해진 초기에 리훙쯔 선생은 파룬궁 강습반에서 10위안을 받았다. 나중에 파룬궁이 널리 전해지자 기공협회는 수강비 기준을 높일 것을 요구했다. 기타 기공 강습반에게 영향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협의를 거쳐 40위안 혹은 50위안을 받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이 몇 십 위안도 현지 기공협회와 4대 6으로 나눴다. 실제 강습반을 하면서 노수련생의 수강비는 절반만 받았다. 이렇게 계산해 장소대여비와 일반 교통비, 숙박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얼마 안됐다. 리훙쯔 선생은 서적에서 어떤 보도소든지 돈을 저축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목적은 수련생들이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박해가 시작됐다. 파룬궁 수련생은 중공 거짓말의 독해를 당한 전 세계 민중에게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상을 똑똑히 알려야 했다. 돈이 없이 어떻게 하겠는가? 파룬궁 수련생은 곧 스스로 자금을 모았다. 이 자금모음은 완전히 자발적이다. 뿐만 아니라 절대 모금을 하지 못한다고 명확히 요구했다. 많고 적음은 개인의 소원이며 이로써 자신의 생활과 사업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파룬궁 수련자는 중공의 잔혹한 박해를 당하는 정황에서 휘황찬란한 대법을 실증하는 길을 걸어왔다. 리훙쯔 선생은 2003년 4월 20일 『대(大)뉴욕지역법회 설법』에서 명확히 말씀하셨다. “비록 이렇다고 할지라도 오늘날까지 이 일체는 이미 곧 결속되는데 우리는 어떠한 한 개의 국가, 어떠한 한 개의 정부, 어떠한 한 개의 조직, 어떠한 한 개의 회사의 돈을 한 푼 가진 적이 없으며 우리의 모든 일들은 모두 대법제자가 자신의 월급수입으로 자신의 소득으로 한 것이다.”

박해가 발생된 후 중공은 서양정부가 파룬궁에 금전적인 지지를 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이것은 단지 대륙 민중에게만 퍼뜨린 유언비어이며 해외의 어느 신문지면에서도 볼 수 없었다. 오늘 미국 정부는 파룬궁이 박해 당한 11주년에 즈음해서야 파룬궁 수련생이 창립한 회사에 자금 공급을 고려하고 있다. 단지 인터넷 봉쇄돌파 프로그램에 대한 개발에 사용될 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많은 것을 연상시킨다.

미국 국무원이 ‘처음으로 고려’한다고 밝힌 것은 고의 아니게 중공이 전에 한 유언비어의 껍질을 여지없이 벗겨냈다. 물론 중공과 장쩌민 소집단은 배후에서 음모를 꾸며 미국 정부가 자금지원을 하는 것을 제지하려 할 것이다. 이는 그것의 반(反)인민, 반(反)도덕의 ‘가짜, 사악, 투쟁’의 본질에서 결정된 것이다. 다른 면에서 볼 때 만일 중공이 파룬궁과 기타 진실한 소식 봉쇄를 하지 않았으면 파룬궁 수련생이 사이트를 만들고 매체를 꾸리고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는 회사를 창립했겠는가? 또 여행지, 길가에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겠는가? 바꿔 말하면 파룬궁 수련생이 박해당한 진상을 똑똑히 알리기 위해 진상자료와 매체를 제작하고 창립한 것이며 전부 중공의 박해와 관계된다. 중공의 광적인 탄압이 없었다면 파룬궁 수련생이 11년간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일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문장발표: 2010년 5월 21일
문장분류: 평론 > 수련자평론문장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10/5/21/2239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