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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는 인류에게 어떤 계시를 주는가 – “세계 파룬따파의 날”과 사존께서 법을 전하신 15주년을 경축하며

글 / 허왠춘

[명혜망 2007년 5월 14일] 세기가 교체되는 이 시대는 다사다난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을 놓고 말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천만갈래 뒤엉킨 일 중에서도 두 가지 일이 사람들의 주목을 가장 많이 끈다. 하나는 “고속도(高速到)로 발전하는 경제”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며 모두들 갖은 방법을 다해 “재부”라는 이 열차에 비집고 들어가려 한다. 두 번째는 중국에서의 파룬궁 열풍 그리고 탄압과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장장 8년이란 기간 동안의 반박해이다. 두 가지 일을 개괄하여 본다면 곧바로 마치 물질과 정신 두 가지 서로 다른 측면인 것처럼 보인다. 중공에 대해 말한다면 바로 “물질 발전”과 “정신 박해”는 중국 인민 심지어 전 인류를 수반한 중국 사회의 시대특징으로 되었다.

가장 사람들의 감수가 많은 것이 바로 경제 발전이다. “돌아와 보니 변화가 참으로 크다. 해마다 그러하다.”는 말들이다. 확실히 고층건물, 새로 뻗은 큰 길, 고속도로, 자동차, 비행기, 핸드폰과 인터넷의 보급, 기괴하고 다양한 야간 사교 활동, 마음을 격동시키는 주식 시장,…… 대량으로 밀려드는 외국 자본, 무역 수출의 세찬 바람, 세계 공장의 명성, 외화 저축의 거대한 누적, 에너지원과 원료에 대한 기아와도 같은 수요, GDP의 지속적인 증가,…… 텔레비전, 신문, 거리에 가득찬 광고판, 식당 이름에도 모두 “대국”, “태평성세”, “우뚝 솟다” 등 사람을 항진시킬 것 같은 미사여구들이다.

바로 이런 물질과 감각 기관에 대한 자극은 사람들을 아주 쉽사리 일종의 극도의 흥분 상태로 끌고갈 수 있다. 그러나 공산당이 신앙을 압제하고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해도 못본척 외면하면서 아무 관심도 없으며, 파룬궁이 제창하는 “진, 선, 인”과 도덕의 승화에도 아무 관심이 없다. 다시 말해서 물질의 발전은 정신을 압제하는 공구로, 구실과 숨김으로 되었다.

* “경제발전”의 재난

사람들은 흥미진진하여 “돌아와 보니 변화가 참으로 크다. 해마다 변화가 크다.”라고 말할 때, 도덕의 변화도 해마다 변화가 큰 것을 보아내고 있는지? 다만 도덕이 아래로 미그럼질치는 것이 해마다 똑같이 클 뿐이다.

사람들은 모두 도덕이 타락되고 있는 무서운 정도를 감수하였다. 상실된 성실과 제한없는 성 난잡 행위는 중국사회 도덕이 타락되는 특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사회에 대한 도덕의 작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당신이 산 기름, 소금, 간장, 식초가 모두 독이 있는 물건이라고 할 때면, 순결한 여자애를 찾기조차 쉽지 않다고 할 때면, 그것은 이미 도덕의 패괴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심각하게 영향 주고 있는 것이다 .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발전은 착실한 도리”, “먼저 경제를 발전시키고 다시 보자”거나, “경제가 발전하면 도덕도 자연히 좋게 변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를 미신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덕 신앙에 대한 공산당의 탄압을 허용할 뿐더러 이른바 경제 발전에 집착하면서 어느날엔가 깨어나서 갑자기 모두가 성실하고 선량하며 법을 준수하고 서로 손님처럼 존중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도덕이 나쁜 것을 가난한 탓이라고 하는데 이는 실제로 가난한 사람에 대한 멸시와 인과( 因果)에 대한 왜곡이다. 도덕이 고상한 많은 인사들은 아마 일생을 모두 곤궁속에서 고생한 빈털터리들이었을 것이다. 많은 간사한 사람ㄷ들, 대악인들은 사람 얼굴에 짐승 마음을 가진 악도들로서 아주 부유한 고관 귀인, 대상인이 아닌가?

사람들은 중공이 집행하고 있는 “도덕이 없는 경제 발전”은 중국에 대해, 민족에 대해, 이 세계에 대해 모두 재난이라는 것을 더욱더 보아내고 있다. 전 국민이 모두 돈만 바라보고 있으며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다 한다. 함정에 빠뜨리고, 눈을 속이고, 몰래 빼앗고, 기만하고, 가짜 약, 독 있는 쌀 같은 것은 모두 이제는 하찮은 일이다. 큰 곳으로부터 말한다면, 한 국내 학자는 중공의 경제 발전 과정을 중공 및 그 이권자들이 “중국을 서양사람들의 젖소로 만든” 과정으로 비유하였다. 중공은 인권 원가를 최저로 낮추어 전 세계 상인들이 모두 다투어가서 소젖을 짜게할 뿐만 아니라 이 젖소가 죽고 사는 것은 관계하지 않는다. 자손이 끊기는 이러한 발전 형태가 얼마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겠는가? “재부는 가지고 가고, GDP는 중공에 남겨준다.”는 한 마디가 중공 경제 발전의 많고 많은 해로움을 말해준다.

국무원 국자위(国资委) 경제 연구 센터 책임자의 저술에서 제출한 바, 일본 해관 통계에 따르면 근 10년 사이 중국이 일본에 수출한 나무젓가락이 총 4486만 박스인데 매 박스에 5천개씩 총 2,243억 개이다. 중국 임업 전문가의 계산에 따르면 이 젓가락을 생산하기 위하여 소용된 산림 면적은 중국 국토 면적의 20%이상이다. 역시 너무도 헐값이기에 진작부터 석탄을 때지 않는 일본에서는 도리어 중국으로부터 해마다 2천여 만 톤의 석탄을 수입하여 바다를 메우고 있는데 에너지원을 저장하는 인조 탄광으로 되었다. 중국에 조수처럼 밀려드는 서양 선진국의 저렴한 일회용 상품으로 인하여 회멸되는 것은 중국 자원이지만 도리어 서양국가의 일부 양지가 있는 사람마저 모두 놀라게 하여 일회용 소비를 개변할 것을 호소하고, 아울러 중국에 자원을 보호할 것을 충고해 주었다. 국토 자원부 유관 책임자가 말하기를, 각종 명목의 개발지역 면적은 이미 대대손손 건설된 중국 전체 도시 부지 면적의 총합을 초과하였다. 안후이의 부성장의 전 왕화이중의 명언인 “창기를 조사하면 투자환경을 파괴하게 된다.”는 말은 중공 경제 발전의 도덕적 대가를 더욱 알 수 있게 한다.

중공의 이른바 경제 발전이 조성한 빈부격차는 인민들 머리 위에 새로운 세 가지 큰 산을 만들어 놓았다. 학비, 의약비, 집이다. 하지만 “희망 공정”, “사회 보험 기금” 등의 대처 행위는 모두 탐관오리들의 풍부한 재원이 되었다. 중공 자신도 고속 경제는 지속성 발전 전망이 없는 일종의 거대한 재해라는것을 알게 되어, 발전 속도를 정시시키려 해도 정지시킬 수 없게 되었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난 트럭이 내리막 길을 쏜살같이 내리달리는 것과도 같다. 도리는 아주 간단하다. 도덕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자손을 위해 사정을 봐줄리 만무하다. “돈”은 바로 일체이며, 오직 오늘 돈을 얻을 수만 있다면 내일 남이 죽고 사는 걸 관계할 필요 있는가? 어쨌든 아주 많은 돈 있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후대를 해외로 이민보냈다.

* 덕 있는 자에게 복이 있다

사람들은 중국문제는 정치 문제거나 제도 문제가 아닌가 하면서 토론하고 있다. 바른대로 말해서 옳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지만 결국은 도덕 문제이다. 법률은 일정한 도덕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서방의 법률 체계는 기독교 문화에 기초한 것으로서 법률 위에 또 하늘이 있으며, 국민의 성실한 품덕은 제도를 신용하는데 기초하였다. 인도에 가 본 사람들은 인도인들의 듬직한 국민 심태, 완벽한 금용 신용 체계, 양호한 도덕 소질에 대해 모두 크고도 심각한 인상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그의 종교 신앙과 관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공은 절대적인 무신론과 변증 유물론 그 한 세트의 물건을 이론 기초로 하면서 중국 역사상 침전 되었던 가장 무치한 처세학을 “발양광대”하고 있다. 그리하여 처세학에 무신론과 투쟁철학을 가하여 중국은 곳곳마다 무법 천지이다. 이런 것은 모두 현대 법률, 신용사회와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다. 누가 말하기를, 만약 미국의 고층 건물이 모두 무너진다 해도 미국은 여전히 미국이다. 왜냐하면 제도가 그대로 있고 신앙이 그대로 있으며, 정신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고층 건물이 모두 무너진다면 곧 중국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몇 년간 중국의 이른바 강대함은 바로 이런 표면적인 물건에 의해 받쳐져 있을 뿐 진정한 제도가 건립되지 못했으며 신앙과 도덕 정신은 더구나 없다. 비록 꼭 준확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중공 통치 하에서의 사회 현상을 매우 진실하게 반영한 말이다.

경제의 발전과 도덕의 승화는 원래 모순되지 않을 뿐더러 상보상성(相辅相成)한다. 파룬궁 수련생이 법공부 하면서 마음을 수련한 후 집에서는 좋은 아내, 좋은 남편으로, 직장에서는 훌륭한 직원으로 되어 무사무아, 선타후아하며, 탐오하지 않고 수뢰하지 않으며, 혼인을 엄숙히 대하는데 가정, 사회, 경제 발전에 대하여 모두 좋은것이 아닌가? 공산당은 그 무슨 “정신문명”을 말하지만 몇 사람이나 호소에 반응하여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와 “정신문명”을 지키려 하는가? 도덕은 정치학습에 의거하여 제고되는 것이 아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법리상으로부터 “사람은 어떻게 왔으며”, “사람이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를 알고난 후에야 비로소 외부의 압력에 의해서가 아닌 진정 내심으로 우러나와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것이다. 이는 공산당이 때때로 일으키는 어떠한 운동과도 비길 수 없는 것이다. 아울러 공산당의 이른바 도덕 운동들은 모두 당을 위해 복무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인심이 선을 향하는데 대하여 그 어떠한 근본적인 작용도 일으키지 못한다. 중공 자신이 숙청한 탐오 부패한 고급 관리들 중 대낮에 대회에서 “청정염결(清正廉洁)”을 부르짖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사람들은 중공의 “먼저 경제를 발전시키고 다시 보자”는 이런 논조를 믿고는 “경제 발전과 “도덕”을 대립시켰다. 공산당 강권에 대해 어느 정도 두려워 하기 때문에 공산당도 경제를 발전시키려 하는 것을 보고 곧 공산당의 도덕 신앙에 대한 박해를 허용한다. 사실 우리는 모두 보았다. 도덕이 패괴된 후 진정한 피해자는 그 누가 아니라 모든 인민들이다.

신은 자비롭다. 다만 미혹속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여 경제가 발전하였을 때 파룬궁이 중국에 전해졌다. “진, 선, 인”의 도덕적 빛발은 이 5천 년 문명 고국(古國)의 부흥에 대하여, 하늘이 가엾이 여겨 중화의 아들딸들에게 베풀어준 무상의 은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공산당 이 무신(無神)적인 서방에서 온 사령(邪靈)은 신의 이 자비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사코 파룬궁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중화민족의 미래를 끊으려 한다.

* 작은 일과 큰 도리

대륙에서 미국으로 친척 방문을 오신 한 노인은 절대적인 무신론자로서 신을 믿는 것은 너무도 가소로운 일이라고 여겼다. 한 번은 노인이 물으셨다. 파룬궁은 인류에 대해 도대체 무슨 좋은 점이 있느냐고? 바로 그날 내가 차를 판매하는 상점에 차 사러 가면서 이야기 하나를 노인에게 들려 주었다. 노인은 말씀이 없었지만 그녀가 들었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지금은 차를 사려면 한 집 한 집씩 다닐 필요가 없이 인터넷으로 문의하면 숱한 상점에서 보내온 차 가격 명세서를 얻을 수 있다. 내가 사려는 것은 본전(本田)차로서 가죽 의자에 시디롬(DVD) 영사기가 달린 것인데 차에서 아이에게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한 상가에서 보내온 가격이 다른 곳보다 훨씬 저렴했다. 내가 다른 여러 집에 전화로 가격을 물었으나 모두 그 값에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궁리한 끝에 이튿날 복사한 차 가격 명세서를 들고 차 판매 상점으로 갔다. 중개인은 명세서를 들고 경리를 찾아갔는데 반나절 지나서 경리가 나와 나에게 하는 말이 이 가격은 문제가 있다. 가죽 의자 값만 계산하고 시디롬 영사기를 가격에 넣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법률에 따라 반드시 이 가격대로 나에게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보니 시디롬 방영기를 그냥 가진다는 것이다. 이건 차에 따라오는 것으로서 누름 단추마저 모두 차에 있고 영사막은 천정에 달려 있다. 이렇게 큰 공짜가 차에 있다니, 마음은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복잡한 각종 수속을 거친 후 새 차가 나왔다. 나는 차에 오른 후 바로 시디롬을 비디오 CD플레이어 에 넣었다. 만족을 느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작동되지 않았다. 몇 번을 조작해도 여전히 안 되었고 여러 상가의 판매원들이 올라와 봐도 아무 기척도 없었다. 판매원은 이런 일을 본적이 없다고 말하였다. 시간이 너무 늦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먼저 차를 몰고 집에 돌아 갔다가 수리부와 시간을 약속한 다음 다시 와서 수리하기로 하였다.

애들은 기뻐 날뛰면서 시디롬을 갖고 와서 차 위에서 녹화를 보려 하다가 이런 결말을 만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집안 식구들은 모두 화가 났다. 그러나 필경은 수련인이라 우연한 일이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 비디오 CD 플레이어의 값을 치르는 것을 잊었는데 올라오자 곧 고장났으니 이렇게도 묘한 일이… 무엇이 내가 닦아야 할 마음인가? 나는 생각할 수록 마음에 걸렸다. 문제는 돈이 얼마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당시에 편의를 보고 난 후 그런 기뻐하는 심태는 확실히 수련인의 심태가 아닌 것이다. 사실, 많은 대법제자에 대해 말한다면 이는 아주 초급적인, 막 입문 했을 때에나 만날 수 있는 씬씽(心性) 고험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마음속에 원래 갖고 있던 차판매소에 대한 원망이 즉시 없어졌다. 후에 차 상가에서는 차를 몰고와서 수리하길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당분간은 수리할 수 없는데 부속품도 새로 주문해야하므로 몇일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새 차를 사고 돈까지 치렀는데 차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으니 집사람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아주 평온하였다. > 가운데 예 하나를 든 것이 있다. 한 부친이 아이의 간청에 못이겨 복권을 뽑았는데 생각 밖에도 어린이용 고급 자전거 한 대를 뽑았다. 이 부친은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에 걸려 마지막에 돈을 직장에 찬조하였다. 나도 생각해 보았다. 이 적게 받은 돈을 가져다가 다른 일에 찬조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일은 원래 말할 일도 아닌데 노인께서 “파룬따파는 인류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느냐?”고 물으시길래 나는 이 이틀 동안 차를 사는 가운데서의 심리 활동을 그녀에게 말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편의를 점하지 않은 것은 멍청이 짓이라고 여겼지만 나는 내가 이런 편의를 본다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해 주었다. 왜 시디롬 기계가 고장 났는가? 수련인으로서 이런 “우연한 일치”는 마음을 닦을 수 있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 마치 넘어진 것과도 같아 자신에게 잘하지 못한 곳이 있는가 없는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대법은 우리에게 “전반 사람의 수련 과정은 곧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이다.”라고 가르쳤다. 차를 사는 과정에 편의를 봤다고 너무 좋아서 모든 것을 잃을 듯한 그런 환희심이 바로 내가 닦아야 할 것이다. 금후에 이와 비슷한 일을 만나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참조가 있게 되었다. 나는 노인에게 말했다. 당신이 느끼건대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이 아주 바보 같지만 그것은 우리는 한집안 식구이기 때문에 손해보았다고 여기지만 만약 다른 사람이 이렇게 했다면 당신이 무슨 기쁘지 않을 일이 있겠는가? 만약 전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한다면, 모두 마음을 닦으면서 안을 향해 자신의 바르지 않은 곳을 찾는다면 당신에 대하여, 전 인류에 대해 아주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나에게 “파룬따파는 인류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고 물었는데 이것이 바로 커다란 좋은 일이 아닌가?

나는 내가 공산당의 교육 하에서 성장하여 공산당의 이른바 도덕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종래로 나의 심령을 건드린 적이 없다. 미혹의 시대를 경과한 사람들은 위로는 늙은이를 모시고 아래로는 자식을 부양하면서 겪은 생활 체험도 적지 않지만, 진작부터 이상주의식의 그런 충동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이 편의를 좀 본데 대해 늘 마음에 두고 남한테 미안하다고 여기었는데 나 자신도 내가 어찌하여 이럴 수 있는가에 대하여 놀라웠다. 나는 알고 있다. “파룬따파”가 나를 일상적인 작은 일에서부터 진정으로 자신은 수련인이므로 “진,선,인”에 따라 잘 하여 무사무아, 선타후아로 수련성취해야 한다는 것을 시시로 깨우치게 하였다는 것을. 리훙쯔 대사는 > 가운데의 제 1강에서 “씬씽이 얼마 높으면 공도 얼마 높다. 이는 절대적 진리이다.” 라고 제출하셨다. 이 수련과정은 바로 서로 부딪치고 넘어지고 맞으면서 자신의 도덕을 제고하는 과정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거나 다른 종교에서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공산당은 가르쳐 주지 않았고 내가 이전에 들어갔던 다른 종교도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나 개인에 대해 말한다면 파룬따파가 나를 가르쳐 주었기에 나는 당연히 대법이 나의 영혼을 구도해준 은혜에 감격한다. 나도 파룬따파가 중국사람에 대해, 전 인류에 대해 무엇을 계시하는지를 보았다.

* 덕으로 법을 보호하고 고난을 초월하다

계시는 당연히 아주 많다. 여기에서 나는 두 가지 점을 말하려 하는데, “도덕”과 “도덕 수호”이다. “도덕”은 자기 스스로 잘하는 과정이고, “도덕 수호”는 도덕이 사악의 공격과 탄압을 받을 때 도덕을 수호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말한다면 바로 “법을 얻는 것”과 “대법을 수호”하는 과정이다.

파룬궁의 8년 동안의 반박해는 실제상 어떻게 도덕을 수호하겠는가를 전시하는 과정이다. 오늘날의 인류는 스스로 사악을 직면하려 하지 않고 있으며 벗어나려 하는데는 너무도 많은 구실이 있다. 특히 당문화의 영향 하에 잘못된 사유의 영역은 더욱 많다. 우리는 여러가지 벗어나려는 그런 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기본적인 선악 시비를 표준으로 하여 파룬궁 수련생의 반박해가 인류에 대한 가지는 의의 만을 보려고 한다.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공산당의 강권에 놀라 자빠질 때 파룬궁 수련생들은 겁을 먹지 않았을 뿐더러 용감하게 일어났고, 한 갈래의 평화적이고 이성적이며 비폭력적인 반박해의 길을 걸어 왔다.

사람들이 마땅히 이렇게 숨고 저렇게 피하며 이렇게 속이고 저렇게 속이며, 혹은 차라리 집에 숨어서 연마해야 한다고 여길 때, 많고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진심이 아닌 말을 선택하여 도피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경제 이익의 유혹으로 전 세계가 모두 중공과의 교역을 위해 중공의 파룬궁 박해를 직시하려 하지 않을 때 파룬궁 수련생들은 자신의 힘에 의거하여 영원히 포기하지 않았고, 진상을 알리고 사악을 폭로하는 것을 견지하여 세계가 파룬궁을 요해하고 박해 진상을 전파할 수 있는 국면을 열어 놓았다.

아주 많은 중 서양 매체들이 중공에 매수되거나 압력을 가하여 부정적인 보도를 하고 파룬궁을 보도하기 싫어할 때 파룬궁 수련생들은 맨주먹으로 일어나 자신들의 매체를 만들었다. 오늘은 이미 인터넷, 신문, 방송국, 텔레비전 방송국 등 여러가지 매체 경로를 통해 장쩌민 집단과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행한 잔혹한 박해를 전면적으로 폭로하고 있다.

중공이 인터넷, 정보 경로를 봉쇄하여 대륙의 인터넷 사용자들이 진상을 접촉하지 못하게 할 때, 파룬궁 수련생들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화, 우편, 회로망 대화 등 여러가지 방식을 통해 진상을 전달하였다. 더구나 위험도 마다하고 텔레비전 삽입으로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하여 사악을 놀라게 하였다.

장쩌민 집단과 중공이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세뇌, 수감, 괴롭함 당하고, 실업 당하고, 살 집을 잃고, 때려 죽이고도 자살이라 하며,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등등 온갖 사악한 수단으로 대법제자를 박해할 때, 무수한 대법제자들은 겁을 먹지 않았다.

공산당이 사람들이 진상을 요해하는 진정한 장애로 되었을 때, 파룬궁 수련생들은 >을 내놓아 체계적이고도 전면적으로 공산당의 사령(邪靈) 본질을 폭로하여 탈당 조류를 일으켰다.

사람들이 무슨 “정치를 한다” 무슨 “반화세력” 등 당 문화의 장애를 받아 파룬궁 수련생들의 반박해를 이해하지 못할 때, 파룬궁 수련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반공은 반 중국이 아니며, 반박해는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자신의 원칙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외부 요인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계속 자비롭게 진상을 알렸다.

불법(佛法)은 끝이 없다. 더욱 많고 더욱 광범위하게 세인을 구도하기 위하여 파룬궁 수련생들은 문예 형식으로 진상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진선인 그림 전시회”, “신당인 텔레비젼 방송국 신년 갈라 공연”, 더우기는 순정한 중국 정통 문화를 발양한 “신운 예술단 공연”이 전세계를 순회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사(邪)가 정(正)을 누르지 못하는 것은 천리이다”라고 말한다. 왜 천리(天理)라고 하는가? 바로 천상 아래에서 감히 생사를 내려놓고 천상에 따라 행하는 정의롭고 선량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산당이 무너진 후 역사의 그 시각을 회고해 보면서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 수련생들의 정법과 바른 믿음을 수호하기 위한 거대한 지불에 대해 이해하고 감격해할 것이다. 이러한 지불은 바로 미래의 인류가 사악을 직면했을 때 참조로 될 것이다.

* 유일한 표준 유일한 기회

파룬궁 수련생들이 한 모든 것은 보기에는 자신의 수련 권리를 수호하는 것 같지만 실지로는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상 몇 차례의 대문명의 훼멸은 대부분 경제와 기술은 고도로 발전하였지만 도덕이 패괴된 시대였으며 특히는 성의 타락 시기였다. 중국의 문명이 무엇 때문에 오늘까지 남아 내려올 수 있게 되었는가? 송조의 유명한 예언 >에서는 말하기를, “가장 훌륭한 가을 경치는 장안에 있노라”라고 하였다. 바로 오늘날 중국의 표면적 번영을 가리킨 것인데 가을경치가 오래갈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어제로부터 오늘의 표면적 번영을 보았다. 하지만 오늘의 도덕의 타락으로부터 내일의 한 문명의 훼멸을 보아낼 수 있는가? 이런 훼멸을 피할 수 있는유일한 힘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진상을 알게된 많고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명확한 답안이 있다. “진,선,인” 대법은 인류를 이끌어 미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신이 한 민족을 남겨두라고 판단하는 표준은 도덕이다. 도덕의 패괴는 일사천리로 빠르지만 도덕의 복구는 너무도 어렵다. 경제의 발전과 기술인재의 도입 혹은 교체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신의 인솔 만이 진정으로 사람들에게 심령의 귀착점을 찾아줄 수 있다. 파룬따파가 중국에서 전해진 것은 바로 중국 인민이 미래에로 갈 수 있는 최대의 기회이다.

많은 일들은 눈앞에서 지나가고 흙모래 일어내면 진짜 금이 나타날 것이다. 장래에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이 점을 똑똑히 보아낼 것이며, 그로부터 5월 13일, 파룬따파가 세간에 널리 전해지기 시작한 이 날, 주불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리며 인류의 행운을 새롭게 열어주신 중대한 역사적 명절로 삼을 것이다. 1992년 ~ 2007년, 파룬따파가 인간 세상에 널리 전해진 장려하고 휘황한 15년이기에, 파룬따파가 세간에서 마난 속을 걸어온 눈물겨운 감격이기에, 인류 사책(史冊)의 15년으로 영원히 실릴 것이다.

문장발표 : 2007년 5월 13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7/5/14/15473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