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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증명한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진리이다

글/ 대륙대법제자

[명혜망 2006년 9월 28일] 나는 중국 대륙의 고등학교 교사이며, 동시에 파룬따파 수련생이다. 직접적인 수련을 통하여 파룬따파는 확실히 좋다는 것을 실증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응당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진상을 설명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파룬따파를 요해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파룬따파의 혜택을 받게 해야 한다고 느낀다.

나는 1995년부터 파룬따파의 ‘진선인’을 수련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미 11년이 되었다. 나는 이홍지 선생님이 쓰신 모든 서적과 문장을 참답게 열독하였고, 이홍지 선생님의 설법 녹음을 경청하였다. 나는 줄곧 이 선생님이 제출한 요구에 좇아 심성수련을 하였을 뿐더러 친히 5장 공법을 연마하였다.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탄압한 7년 동안, 나는 파룬대법에 대한 신앙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나는 기타 수천수만의 파룬따파 수련자들과 마찬가지로 풍우 속을 지나 왔지만 시종 수련을 견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종 파룬따파 속에서 부단히 혜택을 입었다. 그렇게 여러 해 되는 엄숙하고도 참다운 연구, 사고와 실천을 거친 후, 특히는 이 몇 년간의 엄혹한 시련을 겪은 후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책임 질 수 있는 말을 하려 한다. 파룬따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파룬따파는 진리입니다. 나는 파룬따파를 위해 증명을 설 수 있습니다.

나는 나의 수련 경력과 대법에 대한 나의 사고, 인식을 곧이곧대로 말하려 한다. 이것 또한 몇 년 동안의 나의 최대의 염원이며, 또한 내가 사람들에게 제일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중공 악당이 여전히 파룬따파를 탄압하고 있기 때문에 나 또한 여전히 박해 받고 있는 까닭에 내가 나의 진실한 신분을 잠시 공개 할 수 없음을 여러분께서 양해해 주길 바란다. 일단 조건이 허락되면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신분을 공개할 것이다. 나의 말이 여러분에게 얼마간의 도움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진리를 찾기 위해 꾸준히 헤매다

‘진리’에 대한 말을 하면 많은 사람들은 지금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 진리를 쓴 책도 아주 많다고 느낄 것이다. 당신도 진리를 말하고 그도 진리를 말하며, 누구나 모두 진리를 말하고 있거니와 많은 책 속에서도 모두 진리를 말하고 있다. 철학도 좋고, 사회 과학도 좋고, 자연 과학도 좋고, 각종 이론도 좋고, 모두 진리를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예 진리가 어디 있느냐, 진리는 없다고 말한다. 말하고 말하다가 ‘진리’는 일전 가치도 못 되는 것으로 되었다. 지금에 와서 당신이 또 진리를 꺼내어 말하는데 어디 무슨 진리가 있는가? 진리가 어디 있는가? 확실히 각종각양의 ‘진리’에 대한 학설이 많기도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 이 명사에 대해 이미 마비되게 하였다. ‘진리’ 이 명사는 이미 기왕의 숭고한 내포를 잃어 버렸으며 사람들이 ‘진리’를 들을 때 이젠 더는 숙연하게 존경하는 그런 감각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의 일생은 꾸준히 진리를 찾아 헤맸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많고 많은 고생과 즐거움, 성공과 실패, 영예와 굴욕을 당했으며 그런 경력 가운데서 인상이 제일 깊은 것이 바로 진리에 대한 나의 찾음이다. 많은 일들을 나는 쉽게 잊을 수 있지만 유독 진리를 찾던 과정만은 언제나 인상이 매우 깊다. 내가 조그마한 진리를 보았을 때의 쾌락은 기타 일체의 쾌락을 훨씬 초과하였고, 진리를 찾지 못했을 때의 고민은 기타 일체의 고통을 훨씬 능가하였다. 무엇을 얻었던 간에, 어떠한 순조로운 환경에 있던지 간에, 자신이 진리를 볼 수 없다는 짐작이 가게 되면 나는 아무리 어찌해도 기뻐지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잃었던지 간에, 어떠한 역경에 처했던 간에 나는 자신이 진리를 알게 되었다고 느끼게 되면 나는 슬퍼하지 않았다. 많고 많은 일들을 나는 이미 잊어 버렸다. 하지만 진리를 찾아 다녔던 그 길만은 언제나 그리도 또렷하다. 나의 일생은 마치도 진리를 찾으려고 온 것 같다.

파룬따파를 만나기 전, 나의 일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순리로운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찾았으나 도리어 찾을 수 없는 진리로 하여 받은 고통은 거대한 것이었다. 파룬따파를 수련 한 후, 특히는 1999년 중공 악당의 파룬따파에 대한 탄압 후 나의 인생의 길은 표면적으로는 곡절이 있었으나, 진리를 얻은 것으로 하여 내 마음속의 희열은 과거의 그 어느 때 와도 비길 수 없었다.

나는 중국 대륙의 시골 마을에서 출생하였다. 아주 어릴 때가 바로 ‘문화대혁명’ 후기였다. 나는 사람들이 아주 고생스럽게 살고 있는 것을 보았고, 사람들은 입을 것 먹을 것이 없었으나 땡볕과 비속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하였다. 이러 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끊임없이 다투고 싸우면서 서로를 괴롭혀 고통이 막심하였다. 나의 부모는 늘 남과 다투었고 부모사이에도 끝없이 다투어 평온한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사람은 어째서 이렇게 고생스러운가? 사람을 이렇게 고생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사람들이 고생에서 해탈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나에게 사색이 있게 된 시작이며, 진리를 찾은 시작이며 또한 나에게 또렷한 기억이 있게 된 시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때의 사상은 아주 단순하고도 아주 혼돈스러웠다.

학교에 다닌 후 독서를 즐겼다. 공부를 잘 하지 않으면 나에게 벌을 주겠다고 압력을 가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고, 또 나에게 공부를 잘하면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힘을 보태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의 부모님들은 문화가 없는 농사꾼이다. 그들은 문화의 가치를 알지 못하며, 더구나 나더러 공부를 잘하여 그 무슨 조상을 빛내야 한다는 생각을 종래로 해 본적이 없다. 그들은 나의 학습 성적에 대해 물어 볼 때가 극히 희소하다. 그때의 선생님도 이런 문제는 그다지 말하지 않았고, 말했다 해도 인상도 남지 않아 나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였다. 나는 책속에서 흥취와 충실을 얻었고, 책은 나의 많은 의문점들을 풀어 줄 수 있다고 느꼈으며, 책을 읽는 기쁨은 다른 그 어떠한 일을 훨씬 능가하였다. 때문에 나는 무릇 나의 눈에 띄이는 책은 빼놓지 않고 죄다 읽었다. 하지만 가석하게도 내가 찾아 볼 수 있는 책은 너무도 적었다.

책을 약간이라도 읽었기에 나는 내가 탐색하고 있던,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탈시키는 문제의 첫 번째 답안을 찾았다. 나는 소년 시절에 기술과 기계는 사람들을 힘든 일에서 해탈시킬 수 있다고 여겼다. 나는 산간지대 농사일에 적합한 농업 기계를 발명하여 농민들이 더는 고생하지 말기를 바랐다. 후에 나는 또 발견하였다. 탐관오리들은 극단적인 불평등 현상을 만들었는데 이 역시 사람들의 생활이 고통스런 원인으로 되었다. 때문에 나는 이러한 탐관오리들을 아주 미워하게 되었고 그들을 없애 버리리라 결심하였다. 이것이 바로 나의 소년 시절의 주요 사상이었다.

내가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즐겼기 때문에 비록 조건이 제한되었긴 해도 책을 읽는 기간의 성적은 줄곧 아주 우수하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당지의 유명한 중점 중학교에 붙었다. 중학교에 다닌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철학’에 관한 문장 한 편을 읽게 되었는데 철학은 지혜의 학문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문장중의 한 구절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문장에서 륙구연구세(陆九渊九岁)라고 말했을 때 “천지 어디가 궁한 곳인가?”하는 의문이 나왔다. 나는 단번에 지기를 찾은 듯한 감이 들었다. 이는 나의 가슴에 진리를 추구하려는 그런 갈망이 더욱 솟구치게 하였고, 이후부터 철학을 탐구하여 지혜를 얻어 우주, 천, 지, 시공을 인식하리라 결심하였다. 이것은 나의 사상의 신 기점이었다. 나의 ‘진리’에 대한 탐구는 이때로부터 더는 멈춰지지 않았을 뿐더러 점점 더 강해졌다.

나는 우선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에 미혹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먼저 물질과 정신을 갈라놓은 후 다시 문제를 논증하는 이런 작법에 대해 마음속으로 파악이 가지 않았다. 나는 그때 그가 이 문제에서 무단적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그는 논증을 거치지 않고 결론을 내려 물질과 정신을 분리하고는 이것을 전제로 다시 기타 문제를 논증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꼈을 뿐더러 물질과 정신은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를 똑똑히 연구해 보려고 결심하였다. 내가 독서를 즐기고, 사고하길 즐기며, 논쟁하기 즐긴 연고로 나는 아주 일찍부터 학우들한테서 ‘이론가’로 불렸다.

나는 중학교 공부를 할 때부터 신경쇠약 증상이 나타나 불면증이 엄중하였다. 그 때 신경쇠약과 불면증을 치료하려고 나는 많은 의사에게 보였고, 많은 약을 먹었고 심지어 많은 민간 처방도 써 뫘지만 모두 효과가 없었다. 나와 한 책상에 앉는 학우는 기공 애호자이다. 그는 무술기공을 특별히 좋아하였는데 그는 무협 소설에 쓴 그런 공부들은 모두 존재한다고 여겼다. 그에게는 아주 많은 기공 책들이 있었는데 어떤 땐 나도 가져다 보았다.

그때 한 공법이 불면을 치료하는데 유익하다고 하기에 나는 한 시기 그대로 연마하였다. 나의 단전 부근이 뜨거워지면서 마치 불덩이 하나가 그 곳에서 불이 붙고 있는 듯 하였다. 그때는 겨울이었는데 우리는 냉수욕을 하여도 단전의 그 불은 도리어 시종 꺼지질 않다가 우리가 한동안 그 공법을 연마하지 않게 되어서야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때 나는 기공은 참으로 기묘하다고 느꼈으나 기공 문제에 대한 탐색을 진일보 하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자신의 점수로 전국에서 유명한 고등 학부에 입학하였다. 대학에서는 입학시험의 압력이 경감되고 교학 관제가 느슨하여 나의 독서는 시험에 관련된 책 혹은 전업에 관련된 책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책들은 거의 전부 읽어 볼 수 있었다. 그 기간에 나는 각종 학과의 매우 많은 책을 읽었다. 나는 한 이론 체계로부터 다른 한 이론 체계로, 일종의 사고로부터 다른 일종의 사고에 이르러도 시종 자신에게 만족되는 답안은 얻을 수 없었다. 독서하는 외에도 나는 또 사람들과 광범하게 접촉 하였는데 ‘정통’의 사람, 민주인사, 기공 애호자, 주역, 신학 등 ‘미신’인사들을 포함하였다. 나는 많은 나의 동년배들과 대량적인 탐구를 하였고, 많은 교수, 학자들도 모셨으나 나의 사상은 여전히 아리송하였다. 나의 선생님으로 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으며, 우주 비결을 꿰뚫을 수 있는 완미한 이론을 찾을 수가 없었다.

나도 사회 실천을 통하고 학술 활동을 조직하는 것을 통해 진리를 얻으려 생각 하였으나 나는 이미 중공 악당이 사람들의 사상을 엄중히 압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대담하게 공개적으로 이론, 학술 탐구를 진행하였고 사상이 개방된 일부 학술 활동을 조직하였다. 실지로는 아직 중공 악당과 마르크스를 반대하지 않았고 단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사고와 분석을 할 것을 주장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작법은 즉각적으로 공안 부문과 국가 안전부문의 박해를 불러 왔다. 그들은 나를 자칫하면 직장에서 해고하거나 감옥에 넣을 번 하였다.

사실 나는 권력에 흥취가 없다. 나는 그때 민주 운동이 큰일을 하지 못한다고 여겼고 그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나는 그저 진리를 찾을 뿐이었고 철학, 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을 통일할 수 있으며 세계상의 일체 사물, 일체 현상을 완미하게 해석 할 수 있는 과학적인 이론을 추구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서 나는 줄곧 우주의 진리를 찾았다. 내가 느끼건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이 되든지, 장사를 해도 좋고, 벼슬을 하여 나라를 다스려도 좋고를 막론하고 모두 반드시 진리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아야만 잘 할 수 있다. 만약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모두 필연적으로 맹목적이 될 것이며 아마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나의 진리에 대한 이런 탐구는 비 실리적인 것으로서 이것은 완전히 내심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내가 느끼건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가슴 가장 깊은 곳의 갈망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는 ‘진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대하지만 그러나 그가 조용해 졌을 때에 세상의 많은 일들에 대해 막연함을 느낄 것이며, 옳고 그름을 가늠 할 수 있는 표준이 있기를 갈망할 것이며, 진리로 그의 행동을 지도하여 그의 내심이 평정을 얻을 수 있기를 갈망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말할 때 누구나 내심 가장 깊은 곳에서는 모두 진리를 애타게 찾고 있다. 다만 부동한 사람에 따라 세간의 명리에 빠진 깊고 얕음이 부동할 뿐이다.

내가 진리를 찾음에 그토록 집착하였기에 일생에서 당한 고생이야말로 부지기수였고, 향락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포기하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이러한 특점을 개변하고 싶지 않으며, 개변하려 생각해도 개변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나더러 진리를 사고하지 말라고 한다면 나에게 얼마나 많은 재부를 주던지 간에 나는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이것 역시 일종의 ‘숙명’이 아닐까?

2. 나는 끝내 파룬따파에서 진리를 찾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93년 나의 한 친구가 이홍지 대사님이 꾸린 파룬궁 학습반에 참가하였고 나에게 파룬궁 소개를 간단히 하였다. 나는 그때에 일정한 흥취가 생겼으나 그때에는 배우지 않았고 1995년에 이 친구가 나에게 >과 > 이 두 책을 보내준 후에야 진정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을 읽은 후 이는 아주 좋은 공법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특히 연공함에 심성 수련을 강조한 이 점이 더욱 나를 탄복시켰다. 그리하여 나는 책속의 공법 요구대로 5장 공법의 동작을 연마하였다. 나는 동작을 할 때에 아주 기묘한 감을 느꼈다. 두 손이 동작을 할 때면 마치 한 갈래의 힘이 나를 끄집어 당기는 듯 하였는데 나는 그때 이건 아마도 책에서 말한 ‘기지’일거라고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책에서 쓰기를 파룬궁을 자습하는 사람이 동작을 배울 때면 ‘기지’가 도와서 인도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또 일종의 무형적이면서도 그러나 진실한 물건이 있다는 감각을 느꼈고, 뜨겁기도 하고 저리기도 한 감을 느꼈는데 이것도 책에서 말한 기공 ‘에너지’가 아닐까라고 생각하였다.

이 두 책을 다 읽고 나자 나는 내가 끝내 여러 해를 애타게 찾아다니던 진리를 찾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은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진귀한 보물이란 것을 알게 되었으며, 이홍지 대사님은 제일 위대한 사람으로서 나 그리고 모든 사람이 영원히 따를 만한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을 다 읽었다. 그 희열과 그 감동을 형용할 방법이 없다. 그때 나는 벌써 알았다. 어떠한 일이 발생하던지를 막론하고 파룬따파 ‘진선인’ 신앙을 동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 후의 수련 가운데서 나의 몸과 마음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나는 주변의 동수들에게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보았다. 이 일체는 모두 대법 중에서 말한 도리를 일일이 실증하였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아주 신기한 현상을 느꼈고, 이전에 나 자신마저 믿지 않았던 현상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당시, 나의 최대의 염원은 바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될 수록 빨리 이렇게 훌륭한 진리, 이렇게 훌륭한 대법을 얻기를 바랐다.

파룬따파 ‘진선인’은 참으로 너무도 훌륭하다. 나는 대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법을 비웃고, 비방하며 심지어 대법을 박해하는 사람들에 대해 더구나 이해 할 수 없다. 그래서 99년 7월에 장쩌민과 중공이 파룬따파 탄압을 발동했을 때 나는 한 동안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나는 이 일체가 확실히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대법을 박해하는 이런 사람들을 위하여 심심한 비애를 느꼈다. 대법이 널리 전해지고 있는 이 만고에도 만나기 어려운 기연에 직면하여, 대법을 얻은 사람은 얼마나 행운스러우며 얻지 못한 사람은 이미 아주 가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법을 박해한 이런 사람들은 도리어 대법의 대립면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어떠한 끝장이겠는가?! 동시에 나는 그들의 작법에 대하여 아주 우습게 여긴다.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막론하고 늘 마치 한 층의 물건과 격리 된 듯 하여 조금도 우리 마음에 와 닿지 못한다는 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별의 별 궁리를 다 하고 온갖 방법을 다해 파룬따파를 박해하는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렇듯 저능적이고 그렇듯 우매하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을 통하여 사리를 챙기나 최종에는 남을 해치지 못했을 뿐더러 도리어 자신을 해치게 된다. 이러한 생명에 대하여 나는 참으로 슬프게 생각한다.

3. 7년의 박해는 파룬따파는 견고하여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더욱 실증하였다

박해가 시작되면서 부터 나는 박해자를 기다리는 것은 수치스러운 끝장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약 파룬궁이 정말로 정치 단체이고 당파였다면 정말로 중공의 이처럼 엄밀하고 이처럼 포악하며 이처럼 악독한 무차별 폭격을 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파룬궁은 정치 단체가 아니며, 당파도 아닌, 수련인들로 구성된 무형적이고도 견실한 군체이다. 이 군체 가운데서 사람마다 모두 내심으로부터 진리를 얻은 개체이며 공산 악당이 인정하는 그런 ‘우두머리’가 없으며 이 군체의 일체 모두가 공산 악당이 여기는 것처럼 그런 것이 아니며 또한 공산 사당이 영원히 요해 할 수 없으며 이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박해가 시작되자 공산 사당은 필연적으로 실패로 끝장을 볼 것으로 결정지은 것이다. 그들은 노력할수록 멸망에로 가는 진행을 다그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를 막론하고 그 실제 결과는 모두 필연적으로 그들의 자사적인 출발점과는 상반 될 것이다.

7년 동안의 박해 가운데서 나는 많고 많은 풍우의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이 일체는 대법에 대한 나의 신앙을 감소시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증강시켰고 수천수만의 동수들도 이러하다. 확실히 진리는 누구도 탄압 할 수 없다. 진리를 확고히 믿는 사람은 영원한 행복을 얻는 것이지 재난이 아니다. 선에는 선한 보답이 있고 악에는 악한 보답이 있다는 이 간단하고도 영원한 진리는 점차적으로 인간 세상에 펼쳐지고 있다.

7년래, 나는 악당 그리고 악당에 조종된 무지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공격과 박해를 받았고 집 식구들도 도리가 없게 변했으며, 어제의 동료들도 냉담하고 무정해졌다. 직장에선 처음에는 나의 사업을 정지시키고 이른바 ‘방교조’를 조직하여 나에게 윤번으로 세뇌 폭격을 퍼 부었으며, 나의 인신 자유를 제한하여 변상적인 연금을 하였고, 연이어 나의 봉급을 끊어 버려 ‘경제상에서 단절’시키고 200원 ‘생활비’만 주었다. 마지막엔 음흉한 정체를 드러내어 직장에다 ‘감옥’을 만들고 나를 불법으로 몇 달이나 수감하였다. 이와 동시에 공안국인원들은 집을 불법수색하고 불법구류, 불법 고문을 하면서 위협 공갈을 하였다. 선후 5, 6번의 불법 가택 수색과 구류도 그들의 목적을 이룩하지 못하게 되자 그들은 최후에는 흉악무도하게 나를 감옥에 가두었다. 이렇게 하면 나의 의지를 갈아 없앨 수 있으며 대법에 대한 나의 ‘진선인’신앙을 포기하게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 여겼다. 그들은 영원히 대법의 위대함을 상상조차 못할 것이며 영원히 대법제자의 강인함을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몇 년 동안의 악독한 감금 중에서 사악한 세력은 내가 대법책과 접촉하는 것을 금절하였고 대법 동수들과 접촉하는 것을 금절하였으며, 하루 종일 온갖 방법을 다 하여 나를 ‘세뇌’하여 나에게 사악한 ‘당문화’를 주입하려 시도하였다. 동시에 나를 강박하여 노역 노동을 하게 하여 내가 문제를 사고할 시간이 없게 하려 시도하였다. 또 죄수들을 조직하여 밤낮 없이 나의 행동을 감시하게 하였다. 하지만 이 일체는 모두가 아무런 작용도 일으킬 수 없었다. 왜냐하면 대법은 이미 나의 마음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사악은 모종 정도에서 나의 몸을 강제 할 수는 있어도 나의 사상만은 강제할 수 없다. 나의 마음은 시시로 대법에로 쏠렸고, 가급적으로 대법을 외우곤 하였다. 몇 년 동안에 >을 몇 번이나 외웠는지 모른다. 나에게는 견강한 일념이 있는데 바로 어떠한 일이 발생 하더라도 절대로 대법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대법에 대한 중생들의 태도는 그들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깊이 알고 있다.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방법을 대여 대법의 진상을 많이 들려주어 그들이 구도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대법은 무한한 지혜와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어떠한 정황에서든지 언제나 방법이 생겨 참으로 ‘대법은 끝이 없네’ 였다.

몇 년 동안 사악은 표면상에서 나의 인생 행복을 앗아 가고 우세를 점한 것 같아 보이며 승리한 것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악인들이 한 일체가 도리어 나를 도와주었고, 나를 성취 시켜 나로 하여금 대법을 더욱 알게 하였고 진리에 대한 신심을 더욱 확고하게 하였다. 신체상에서의 박해는 대법의 신기한 효력이 나의 몸에서 나타남을 막을 수 없었다. 개별적인 곳이 일정한 손상이 있은 외에 사람은 아주 젊고 아주 건강하여 사람마다 말한다. “당신은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휴가를 보내는 것 같구만. 이것은 당신의 연공 효과가 아니요? ” 그러면 나는 곧바로 그에게 대법의 좋은 점을 이야기 해 준다.

7년래 이러한 사람과 일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마치 억만송이 눈서리 속의 오연한 매화와도 같다! 나는 모든 사람들, 대법을 박해하는 그런 사람들을 포함하여 냉정하게 생각해 보기를 몹시도 바라고 있다. 파룬궁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파룬궁은 이렇게 견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가? 파룬궁을 응당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7년이 되었다. 파룬궁 수련생의 몸에서 발생한 일들은 이미 너무너무 많다. 내가 생각 하건대 모든 사람들은 응당 참답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4. 정사를 선택하는 것은 매 생명마다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다

생명은 진리를 떠날 수 없으며 생명은 반드시 정사를 가릴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어떤 사람이 인식하는 것처럼 진리는 나하고 관계가 없다.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삐뚤었는지 나하고 상관없다. 나는 다만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런 것이 아니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사람마다 잘 살아 보려 한다. 하지만 잘 살아 보려 해도 진리는 알아야 하며, 옳고 그름을 분간할줄 알아야 한다. 선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정과 사도 분별 할줄 모르는 사람이 어찌 잘 살 자격이 있는가?

오늘, 파룬궁 ‘진선인’은 제일 바른 진리이고, 파룬궁을 박해한 중공 악당은 가장 사악한 세력이라는 것이 이미 충분한 사실로 알려졌다. 모든 사람들, 모든 생명은 죄다 정과 사 이 문제에서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며, 태도를 표시해야 한다. 자신은 정의의 편에 섰는가 아니면 사의 편에 섰는가? 이 선택은 그 어떠한 선택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선택은 한 사람, 한 생명의 미래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명지한 사람은 이미 천상의 변화와 인간 세상에서 용솟음 치고 있는 저류를 통찰하였다. 사는 정을 이길 수 없으며, 하나의 바름이 백가지 사를 억누를 수 있고, 이것은 절대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기세이다. 파룬따파의 바름, 파룬따파의 선, 파룬따파의 고상, 순결. 무사는 점점 더 세간에 뚜렷하게 알려지고 있다. 중공 악당의 사, 중공 악당의 악, 중공 악당의 비루함, 더러움, 이익만 탐내고, 살인을 일삼으며, 인명에 대한 함부로의 경시, 그것의 사악한 본성과 그것의 깡패 역사는 세간에 날마다 폭로되고 있다. 특히 중공 악당의 파룬궁 박해 이 일에서 정과 사의 대비와 겨룸이 충분히 체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또한 사는 정을 이길 수 없으며,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영원한 진리를 충분히 증명하였다.

7년 동안의 전례없는 대 박해를 경과한 후 내가 제일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나는 마음속에 아무런 원한도 유감도 없다. 단지 진리를 얻은 희열이 있을 뿐이고, 대법을 얻은 후의 행복감만 있을 뿐이다. 나의 일체는 모두 파룬따파가 부여한 것이기에 나는 파룬따파를 위해 견증하려 한다. 나의 몸에서, 나의 경력 가운데서 파룬따파의 순정과 신기함이 충분히 체현 되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며 진리이며 일체 생명의 근본이다. 오직 대법에 쏠려야만 비로소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수 있다.

문장발표 : 2006년 9월 28일
문장분류 : 시사 평론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6/9/28/138831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