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구진(求眞)
[명혜망]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약 200개 국가와 지역 중 파룬궁[파룬따파(法輪大法)라고도 부르는 심신 수련법]은 이미 세계 100여 개 국가에 전파됐고 각지에서 합법적인 등록과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수많은 국가 중 유독 중국공산당(중공)만이 이에 대해 27년에 달하는 전면적인 탄압을 가했다.
이런 강렬한 대비 이면에는 어떤 역사적 전환과 정치적 논리가 존재할까?
1. 핵심 가치관의 본질적 충돌
이 탄압을 이해하려면 먼저 양측의 핵심 가치관 차이를 살펴봐야 한다.
• ‘진선인(眞·善·忍)’의 민간 실천: 파룬궁은 ‘진선인’을 원칙으로 삼아 일상 수련을 지도하고 5장 공법을 병행해 개인의 도덕과 심신 건강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을 둔다. 중화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이러한 가치관은 객관적인 선악 시비의 기준, 개인의 심성 수양과 독립적인 사고를 강조한다.
• 중공의 통제 논리: 중공은 역사적으로 ‘투쟁 철학’과 고도의 사상 및 신체 통제를 신봉해 왔다. 중공 체제하에서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 관할에 속하지 않으면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진 민간 사상, 개인 및 단체는 모두 중공에 의해 잠재적인 ‘불안정 요소’이자 당의 권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절대적인 복종, ‘당의 이익이 모든 것보다 우선한다’, 오직 자신만을 ‘위대한 구원자’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중공은 독립적인 도덕 기준을 강조하며 급속히 확대되는 모든 신앙 단체와 그것이 유가, 불가, 도가 중 어디에 속하든 본질적인 충돌을 빚는다.
당은 모든 것을 이끌어야 한다. 어떤 신앙 체계 내에서도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당 지부를 설립하고 당 지부 서기를 임명해야 하며, 개인은 당이 부르면 즉시 오고 보내면 바로 가야 한다. 하지만 파룬궁은 ‘진선인’을 우주의 진리로 여기며 신앙이 세속에 이용되지 않아야 하고 더더욱 정치에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여기에 장쩌민(江澤民)의 질투, 나서기 좋아함, 부패한 개인적 특성이 더해졌다. 당시 중공의 7명 상무위원 중 단 한 명도 탄압 결정을 지지하지 않았고 ‘공산당은 반드시 파룬궁을 이겨야 한다’(당이 인민 대중을 이겨야 한다)는 논리를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장쩌민은 재임 기간에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을 발동했다.
2. 1990년대의 갑작스러운 전환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미 잊었을지도 모르지만 1999년 전면적인 탄압이 시작되기 전 중국 공식 기관, 언론 및 의학계는 파룬궁에 대해 매우 긍정적이고 장려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역사적 사실은 파룬궁이 개인의 건강 증진과 사회 도덕 유지에 유익하다는 점이 공인됐음을 보여준다.
• 공식 인정과 포상(1992~1993년): 1992년 파룬궁은 ‘중국기공과학연구회’ 직속 공파로 지정됐다.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대사(大師)는 제자들을 이끌고 베이징 동방건강박람회에 참가해 ‘변연과학진보상’과 ‘대중에게 환영받는 기공사’ 등의 영예를 얻었다.
• 정부 부처의 감사(1993년): 중국 공안부 소속인 ‘중화견의용위기금회(의로운 행동을 기리는 재단)’는 파룬궁이 기금회 대표들에게 재활 치료를 제공해 준 것에 특별히 감사의 편지를 보내고 명예 증서를 수여했다.
• 국가급 언론과 도서 출판(1994~1996년): 국무원 산하 출판사는 정식으로 《전법륜(轉法輪)》을 출판했다. 이 책은 ‘베이징청년보’, ‘베이징만보’ 등 관영 언론의 베이징시 10대 베스트셀러 순위에 여러 차례 올랐다.
• 공식 및 의학 조사 보고서(1998년): 중국 국가체육총국, 중국중앙방송(CCTV) 등 관영 언론은 대중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성황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같은 해 의학계는 여러 지역에서 약 3만 5천 명을 대상으로 의학 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 파룬궁의 질병 치료 및 건강 증진 총 유효율이 98%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차오스(喬石) 등 원로 간부들은 상세한 조사 후 ‘파룬궁은 국가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1999년에 이르러 파룬궁수련자 수가 이미 7000만~1억 명에 달해 당시 중공 당원 총수를 넘어서자 장쩌민은 극도의 질투와 분노를 드러냈다. 1999년 6월 장쩌민의 지시에 따라 파룬궁에 대응하는 전담 기구인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이 설립됐고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 내며, 육체를 소멸하라’는 정책을 확립했다. 이어 같은 해 7월 20일 ‘민정부’라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로를 통해 전 중국에 통고했다.
3. 소멸 정책하의 전면적인 탄압
1999년 7월부터 당시 중공 지도자 장쩌민은 뤄간(羅干), 저우융캉(周永康), 류징(劉京)과 함께 새로운 ‘4인방’을 형성해 언론, 사법, 공안 및 외교를 포함한 모든 국가 기계를 동원해 체계적인 소멸 행동을 실시했다.
1) 여론 규정과 오명화: 당의 언론을 통해 ‘천안문 분신자살’ 등 사건을 조작해 사회적으로 수련 집단에 대한 집단적 적의와 공포를 부추겼다.
2) 체계적인 연좌제 정책: 탄압 지표를 하급 공무원의 인사 고과, 근무 기관의 이익과 직접 결부시켜 학교, 기업 및 가정이 공동으로 감시와 강제 전향에 참여하도록 강요했다. 이로써 수련자의 생활, 일, 진학 및 취업 등 기본 인권을 박탈하고 언론의 자유, 신앙의 자유, 사상의 자유 나아가 인신 자유까지 박탈했다.
3) 공안·검찰·법원·의료계가 연합한 유혈 폭력: 명혜망을 비롯한 여러 인권 단체와 국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수많은 파룬궁수련자가 납치, 고문, 감금을 당했고 심지어 ‘생체 공여자’로 취급돼 ‘장기적출’ 등 극단적이고 비인도적인 대우를 받았다.
4. 초국가적 탄압과 국제사회의 법적 대응
국제사회의 박해 반대 노력의 효과가 날로 뚜렷해지면서 수많은 파룬궁수련자가 해외로 이주했다. 이에 중공은 통제 수단을 국제사회로 더욱 확장했다. 박해 초기 장쩌민이 직접 클린턴을 설득한 것에서부터 중국 대사관과 영사관이 610의 지시를 받아 해외 지방정부에 파룬궁을 반대하고 파룬궁에 대한 포상을 취소하도록 로비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나아가 해외(특히 미국)의 정재계, 의료, 교육, 언론을 포함한 각계 주류 인사를 전면 매수하고 션윈(神韻)예술단 공연을 방해하며 해외 수련자들의 진상 홍보 지점을 파괴하는 등 폭력적인 수단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이러한 ‘초국가적 탄압’은 점차 자유 세계 법치국가의 경계와 반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 미국 하원 법안(2025년 5월 5일): 미국 연방 하원은 박해에 참여한 중공 인원을 제재하기 위한 《파룬궁 보호법》(Falun Gong Protection Act)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 미국 상원 법안 진행(2026년 6월 17일): 미국 연방 상원 외교위원회는 《파룬궁 및 강제 장기적출 피해자 보호법》을 통과시켰다. 이는 국제사회가 입법 절차를 통해 파룬궁 집단에 대한 인권 보호를 연방 법률의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맺음말
역사적 경험은 폭력과 공포에 의존해 유지되는 모든 이데올로기 통제가 결국 기본 도덕, 선념과 양심에 대한 사람들의 추구를 지워버리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 세계에서 유독 중공만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이유는 공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공 체제 특유의 노예근성과 민간 사회의 자발적인 힘에 대한 당의 본능적인 두려움에 있다.
27년 동안 정치를 하고 정치적 박해를 가한 것은 중공이며 수많은 대법제자들은 단지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박해를 반대했을 뿐이고 시종일관 견지한 것은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외 화교들에게 이 역사적 사실과 논리를 분명히 알려주는 것은 자유롭고 법치적인 환경에서 인권, 신앙의 자유 그리고 ‘진선인’이라는 보편적 가치의 존엄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공동으로 수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16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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