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받지 못할 사과

글/ 종정(鍾鼎)

[명혜망] 단체 의지와 도덕적 양심이 충돌할 때 개인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누군가는 “사람은 성현이 아니니 누군들 허물이 없겠는가, 어리고 혈기 왕성할 때 누군들 잘못이 없겠는가”라고 말한다. 특히 정치적으로 요동치고 사회가 혼란스러웠던 10년의 문화대혁명(문혁) 시대에 분위기에 편승해 비판에 참여하고 무장 투쟁에 가담하며 사람을 때리는 일에 동참하는 것은 모두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 놀랄 일이 아니었다. 학살이 정말 사과로 끝날 수 있는 일인가?

1. 역사의 핏자국

1966년 6월, 문화혁명이 발발해 각 대학교 캠퍼스가 혼란에 빠졌다.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이 홍위병 운동을 지지하면서 학생이 교사에 대해 벌인 ‘비투(批鬥, 비판과 투쟁)’는 구두 모욕에서 신체적 폭력으로 빠르게 변질됐다. 베이징 사범대학 부속 여자중학교(현 실험중학교)는 당시 고위 간부 자녀가 모여 있던 학교로 투쟁 양상이 특히 치열했다.

2014년, 문혁 당시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렸던 홍위병 쑹빈빈(宋彬彬)은 문혁 기간 교사를 비투한 행위에 대해 교사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그해 비투를 당해 숨진 교장 볜중윈(卞仲耘)의 남편 왕징야오(王晶垚)는 성명을 내고 그녀의 사과가 위선적이라고 강력히 비난하며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2014년 1월 27일, 왕징야오는 인터넷에 ‘쑹빈빈, 류진(劉進)의 위선적인 사과에 관한 성명’을 발표해 “…‘8·5 사건’의 진상이 천하에 명백히 밝혀지기 전까지 나는 사대부속 여중 홍위병의 위선적인 사과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것이 잘못입니까? 이것은 죄입니다! 범죄자에게 관용을 베풀 수 있습니까!”라고 말한 바 있다.

‘8·5 사건’은 1966년 8월 5일, 사대부속 여중에서 발생한 극단적인 폭력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이 학교 당 총지부 서기이자 부교장인 볜중윈이 홍위병 학생에게 심하게 구타당해 숨진 일로 국내외를 놀라게 했다. 이는 문혁 초기 ‘붉은 8월’ 폭력 풍조의 중요한 상징이자 문혁 중 첫 번째로 공개적으로 맞아 죽은 교육 종사자의 사례다. ‘8·5 사건’은 한 교육자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 질서와 법률이 철저히 붕괴됐음을 보여준다.

图:师大女附中校长卞仲耘遗照

사대부속 여중 교장 볜중윈의 영정 사진

그러나 사건 발생 2주 후인 8월 18일, 마오쩌둥이 천안문 성루에서 홍위병을 접견했고 쑹빈빈은 마오에게 완장을 채워주었다. 마오쩌둥은 그녀의 이름을 듣고 “무력이 필요하지”라고 말했다. 이 세부적인 상황은 캠퍼스 폭력에 대한 묵인, 나아가 격려로 여겨졌고 전국적인 ‘사람 때리기 풍조’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

이와 유사하게 한 홍위병 무장 투쟁에서 16세의 ‘다위안(大院, 정부 기관 단지)’ 자녀인 왕지위(王冀豫)가 큰 몽둥이를 휘둘러 19세 청년을 때려죽였다.

2011년 1월, 62세의 왕지위는 나서서 죄를 인정하기로 선택했다. “참회는 너무 공허합니다. 저는 용서를 구하지 않습니다. 제 죄를 인정하며 괴롭힘을 당하고 응보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털어놓는 것은 역사를 위해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왕지위는 사망자 가족이 보낸 변호사를 만났고 더 이상 사망자의 이름을 공개하지 말 것을 요구받았다. 변호사는 가족의 말을 전했다. “우리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가족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쑹빈빈, 왕지위 등의 사과가 용서받지 못하고 도리어 사람들에게 호된 비난을 받는 것은 그들 자신의 죄악 때문이다. 잘못은 용서할 수 있지만 죄악은 반드시 법으로 처벌해야 하며 이는 용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사람을 죽인 후 사과 한마디로 흐지부지 끝날 수 있다면 그것은 사회가 살인 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며 세상은 폭력배가 흉악한 짓을 마음껏 저지르는 낙원이 될 것이고, 피해자와 희생자가 끊임없이 속출할 것이다. 과실 치사도 법적 책임을 져야 하거늘 하물며 폭력적인 학살임에랴.

2. 현재의 죄악

격동의 시대에 많은 사람이 ‘당의 말을 듣는다’거나 ‘명령을 집행한다’는 이유로 폭력에 가담했다. 하지만 피해 교장의 남편인 왕징야오 노인의 말처럼 “이것이 잘못입니까? 이것은 죄입니다!”라고 해야 맞다. 문혁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지나갔지만 중국공산당(중공)이 만들어낸 혼란은 끝나지 않았다. 한충(韓瓊), 차오웨이(喬威) 등이 신앙 단체를 대할 때 보여준 잔인함은 문혁의 무장 투쟁과 판박이처럼 똑같다.

2001년 3월 19일 오후, 랴오닝성 다롄 노동수용소는 그곳에 감금된 파룬궁수련자에게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다롄 주민 취후이(曲輝)는 이 노동수용소 경찰에게 심하게 구타당해 경추가 부러졌다.

취후이는 생전에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나는 밤 9시에 그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 방으로 끌려갔고 경찰이 나를 괴롭히는 것은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계속됐습니다. 전기몽둥이를 몇 개나 바꿨는지 모릅니다. 고무몽둥이로 내 몸 여러 곳을 때려 상처를 입혔고 엉덩이 근육은 짓무르고 무릎은 부어올랐으며 경추가 부러지고 피를 토하며 여러 차례 혼절했습니다…” “한번은 깨어난 후 노동수용소의 한충이라는 의사가 검사하고는 ‘괜찮다, 더 때려도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기억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차오웨이라는 악질 경찰인데 극히 악독했습니다. 그는 나를 때리며 옆 사람에게 흉악하게 웃으며 ‘몇 년 만에 이렇게 짜릿하게 해보는지 모르겠네!’라고 말했습니다.” 장시간의 끔찍한 구타로 취후이는 전신이 마비되고 전신에 심한 부종 등이 생겼다. 2014년, 취후이는 45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했다.[1]

图:大连法轮功学员曲辉生前与妻女的合照

다롄 파룬궁수련자 취후이가 생전에 아내, 딸과 함께 찍은 사진

왕지위가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했을 수도 있다면 의사 한충, 경찰 차오웨이는 고의로 사람을 해친 것이다. 불과 10시간 만에 취후이는 건장한 청년에서 전신 마비 환자로 변했으니 의사 한충과 경찰 차오웨이의 흉악함은 악마와 다를 바 없다.

죄악이 쌓인 다롄 노동수용소는 2013년 9월 16일 해체됐는데 이는 어떤 높은 담장도 영원하지 않다는 현실의 예고편이다. 한충, 차오웨이 등은 어떤가? 진선인(眞·善·忍) 보편적 가치를 겨냥한 이 박해가 끝나는 날이 바로 그들이 청산받는 날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들 역시 참회와 사과를 표할지 모르지만 이미 늦었고 죄업은 완성됐다. 취후이의 딸이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천리와 국법이 그들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의사는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하는 천사이고 경찰의 직책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인데, 의사가 구타를 격려하고 경찰이 폭행범이 됐다면 이러한 죄악은 신과 인간이 모두 분노할 일로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

3. 하늘은 눈이 있다

살인 후 40여 년의 세월 동안 응보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당시 가담했던 세 명의 공범 중 한 명은 간암으로 일찍 죽었고 한 명은 10년간 감옥에 갇혔으며 왕지위 본인도 사고로 왼쪽 눈이 멀었다.

그는 종종 한밤중에 깨어나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사람을 때려죽인 이 일은 어떻게 처리될까?” “내가 머리가 빠질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쥐기만 하면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습니다.” “어느 날 밤 갑자기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꿈을 꿨는데 드레스 위에 핏자국이 있었습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매우 키가 컸습니다. 저는 나무 널빤지 위에 누워 있었는데 베개도 이불도 없이 그냥 그렇게 누워 있어서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당신은 이 널빤지 위에 만 년 동안 누워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왕지위 본인이 말하기를 그는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누구든 불행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예를 들어 제6 중학교에서 사람을 때려죽인 사람은 나중에 간암에 걸려 죽었고 칼로 ‘샤오훈단(小混蛋, 문혁 당시 홍위병과 대립했던 전설적인 불량배 두목 저우린하이의 별명)’을 벤 사람은 1972년에 백혈병에 걸려 죽었으며, 다른 사람들 중에는 간암으로 죽은 사람도 있고 가스 중독으로 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야 하늘에 눈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평생 저를 괴롭혔습니다”라고 말했다.

맺음말: 충고

20여 년간 파룬궁 신앙에 대한 박해 중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이름이 확인된 사람만 해도 수십만 명이 괴롭힘과 협박을 당했고, 수만 명이 강제노동이나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수천 명이 박해로 사망했다. 장기적출이라는 죄악 속에서 실제 피해를 본 사망자 수는 수십만 명을 훌쩍 넘는다. 그리고 여기에 가담한 모든 경찰, 판사, 의사는 모두 박해 속에서 악을 도왔고 그들의 몸에는 수련자의 피와 눈물이 가득 묻어 있다.

당신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는 범죄의 손을 멈추기 바란다. 당신들이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은 시류에 편승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왕지위처럼 밤중에 깜짝 놀라 깨어나 후회하지 말기를 바란다. 쑹빈빈처럼 사과한 후에 사람들에게 호된 비난을 받지 말기를 바란다. 천리를 거스르는 짓을 하면 반드시 응보를 받게 되며 이는 천지와 양심, 법률이 용납하지 않는다. 양심에 관한 청구서는 언젠가 하늘이 각 사람과 하나하나 정산할 것이다. 오늘의 ‘어쩔 수 없음’은 내일의 ‘파기할 수 없는’ 증거가 될 것이다. 조직의 방패는 유통기한이 있지만 개인의 죄책에는 그것이 없다. 예를 들어 장쩌민(江澤民)은 비록 죽었지만 청산을 피할 수 없고 자손의 응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곤경에 처한 사람을 선하게 대하고 피해자를 돕고 무고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만이 자신과 가족에 대한 책임이자 깊은 사랑이다.

지금 선하게 대하고 돕고 보호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과거 ‘법은 다수를 처벌하지 않는다’라며 자신과 남을 속였던 범죄자가 속죄하고 스스로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1] 자료출처: 명혜망 ‘명혜 20주년 보고서(2)’

 

원문발표: 2026년 4월 10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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