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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작] 누가 사람들의 본성과 선념을 빼앗았는가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공(중국공산당) 정권 수립 이래 중국 천지는 여러 차례 큰 재난을 겪었다. ‘문혁(문화대혁명)’은 중화 전통문화를 뿌리째 뽑았고, 잔혹한 투쟁은 사람과 사람의 신뢰를 무참히 사라지게 했다. 1989년 6.4 항쟁에서 중공은 정권 안정을 위해 학생 대학살을 감행해 한 세대의 지식인들 마음을 위축시켰다. 1999년 중공은 또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을 미친 듯이 탄압함으로써 사람들 마음속에 남아 있던 조그마한 양심마저 제거해 버렸다.

6·4사태는 중국 지식인들에게 믿음을 잃게 했다

6·4사태가 발생한 1989년은 중국 경제에 점차 활력이 나타나고 있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중공 체제는 오히려 더욱 뚜렷하게 경제에 장애를 가하고 있었다. 결국 동유럽 공산주의 진영은 무너지고 있었지만, 중국은 따라가지 못했다.

학생들은 국가 경제체제의 개혁이 이미 초기성과를 본 토대에서 정치체제 개혁도 함께 추진되고 실현되기를 바랐을 뿐이다. 당시 사회 현황에 대해 학생들은 공직자의 투기와 부패를 반대하는 ‘반관도(反官倒), 반부패’ 구호를 제기했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은 인민대회당 앞에서 무릎 꿇고 혈서를 건네며 중공 당국에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요구했다. 당시 학생들은 스스로 사회적 민족적 사명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중공의 허황한 이상주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중공의 본질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하였고, 학생들은 자신이 이미 중공의 눈에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반동분자가 되어 있음을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대화와 협상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만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학생들은 몰랐고, 중공이 독재정권이라는 것을 몰랐다. 중국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중공의 목숨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중공 정부 자체가 뒤에서 운동을 일으켜 집권한 비정상적인 정권이다. 중공은 당시 학생, 노동자, 농민을 선동해 비밀조직을 결성해 내부 분란을 일으켜 당시 국민정부를 전복시켜 정권을 탈취한 것이다. 중공은 집권 후 늘 합법성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학생들이 또 다른 반발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중공은 학생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군대를 동원해 어떤 무기도 갖지 않은 학생들을 탱크로 대적한 것이다.

6·4사태가 지난 후 많은 중국의 지식인들은 중공의 무자비한 대처 방법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인데 왜 학살로 대처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식인들은 이상이 완전히 파괴된 것을 보고 크게 상심했다. 그간 공산주의에 가졌던 믿음을 버리게 되었고, 사회적 책임론에 대해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기게 되었다. 많은 지식인이 잇달아 출국하거나 이민을 하게 되고, 해외로 나가 돈벌이하는 데 신경을 쓰게 되었다.

중공은 그동안 세뇌와 선전으로 학생들에게 국가의 앞날과 운명에 관심을 두게 했으며 그 결과 6·4사태와 같은 사건을 초래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자칫 중공까지 태워버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어 단번에 교육방침을 180도로 바꾸었다. 정치와 국가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도록 하고, 오직 ‘전 인류해방’이라는 미명의 위대한 이상만 심어주고, 졸업 후 좋은 직장을 찾도록 신경을 쓰게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무분별한 대학 졸업자들이 생겨났고, 국가의 분배가 아닌 상업용 주택이 등장함에 따라 졸업하기 전에 일자리를 찾게 되었으며, 직장에서 퇴근 후에도 돈을 벌기 위해 동분서주하게 만든 것이다. 사회가 이 지경에 이르자 오직 개인의 이익만 생각하는 풍조가 생겼고, 곧바로 사회는 돈을 숭상하며 각자 자신에게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 사회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세대가 태어난 것이다. 교사들은 그런 학생들을 지켜봐야 했고, 학생들은 오직 공부, 연구, 출국, 좋은 일자리 찾는 데만 몰두하게 되었다.

‘진선인(真·善·忍)’ 박해는 사람의 남은 양심을 전부 파괴

1989년 6·4 항쟁 이후 중공은 의도적인 선도로 전 인민이 방향을 바꿔 돈을 신봉하고, 감각적 자극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인간의 욕망을 방종하게 하여 도박, 마약 등 퇴폐적인 것들이 만연하게 되었으며, 점차 사회의 도덕심이 떨어져 나갔다.

1992년 5월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전해지기 시작했다. 도덕심을 향상시키고 병을 없애며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이 공법은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었다. 입소문으로 사람들은 친지 친구들에게 전해, 한때 중국 전국 곳곳에서 파룬궁 수련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안부 통계에 의하면 1999년 7월까지 7년 동안 중국에는 7천만 명에서 1억여 명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1998년 차오스(喬石)를 비롯한 일부 전국인민대표대회 퇴직 간부들이 상세한 조사연구를 거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제출한 조사보고서의 결론은 “파룬궁은 국가와 인민에게 백 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라고 했다.

중국국가체육총국의 1998년 5월 진행한 조사 결과도 파룬궁 수련의 질병 회복률이 98%로 나타났다. 국가체육총국이 창춘과 하얼빈에 파견한 조사 연구팀 팀장은 연설에서 “우리는 파룬궁 공법과 효과가 모두 괜찮다고 생각하며 사회의 안정과 정신문명 건설에 효과가 매우 현저하게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다. 이는 긍정적인 결과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장쩌민은 질투심으로 파룬궁이 사회에 가져오는 각종 이로운 점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1999년 7월 20일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언론, 공안, 무장경찰 등 국가 자산을 총동원해 파룬궁을 탄압하며 각종 유언비어를 날조해 모독했고, 파룬궁 수련자들을 감시, 납치, 감금했다.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위한 중앙비밀회의에서 “나는 공산당이 파룬궁을 이길 수 없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망령된 선언을 했다.

장쩌민은 파룬궁 탄압을 위해 한 운동을 만들었지만, 이미 파룬궁 수련이 좋다는 사실이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었으므로 파룬궁 탄압 운동에 적극성이 높지 못했다. 그러자 장쩌민 일당은 2000년 섣달그믐인 1월 23일 밤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천안문 분신자살 사기극을 조작하여 거짓, 가짜, 원한, 선동 등 각종 수단으로 사람들이 파룬궁을 오해, 의문, 반감 심지어 원한을 품게 했다.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위해 관직, 금전, 부패, 매수 등의 수법으로 목적을 달성하면서 공무원 또는 인민들에게 승진 및 보상 수법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도록 획책했다. 장쩌민은 뤄간(羅幹), 저우융캉(周永康) 등을 가장 잔인한 수법으로 파룬궁을 탄압한 공로자로 인정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발탁했다. 이때부터 중공은 무슨 이념도 최저 바닥도 없는 마피아 시대로 들어갔다. 결국 국가 공권력은 진선인 수련자를 박해하는 장쩌민의 충견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장쩌민은 파룬궁 박해를 위해 모든 사람을 납치한 것이다. 정부의 각종 심사, 기업 수익, 개인 수입, 심지어 학생들의 성적까지 파룬궁 박해와 연계시켰는데, 목적은 모든 사람이 파룬궁을 증오하게 하는 데 있었다.

장쩌민이 ‘부패’를 묵인함에 따라 관리들의 양심이 사라져 모두 직권을 이용하여 부정한 돈을 챙기고, 축첩 등 여러 명의 정부(情人)를 두는 풍조가 만연했으므로 사회는 모두 윗사람이 하는 대로 아랫사람도 따라 했다. 모든 사람이 오직 자신을 위해 한 몫씩 챙기며 이익을 위해 아귀다툼을 벌였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오직 자신만은 위했으므로 모든 사람은 서로 적이 된 것이다. 속임수, 가짜, 심지어 유괴까지 자행하는 온갖 악행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위조 변조, 거짓말, 사기행위는 이미 생활 일부분으로 되고 말아, 사회도덕은 나날이 떨어져 사람들에게 남았던 조금의 양심마저 전부 사라졌다.

일찍이 교사, 의사, 법관은 사람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직업으로 사회의 교화, 생명 존중,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중공의 반도덕적 조작으로 존경받던 그 직업도 변이가 생기고 말았다.

교육도 한 분야의 산업으로 변하고 말았으므로 ‘선생은 지식을 전수하며, 학업으로 의혹을 깨우치게 한다.’라는 고래의 학업 윤리는 사라졌다. 교실은 돈을 버는 지식을 가르치는 장소일 뿐, 선악의 시비와 이치를 가르치는 곳은 아니다.

병 치료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숭고한 직업이었던 의사는 환자를 돈으로 보고 과잉 검사, 과잉 처방 등으로 환자의 돈을 빼앗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중공이 파룬궁 수련자와 양심범의 장기를 ‘생체 적출’하는 악행에 의사가 가담함으로써 생명의 존엄성이나 자애심 같은 건 이미 사라졌다. 의사들은 협잡꾼과 망나니로 변했고, 양심과 도의를 전부 잊어버린 천인공노할 악인으로 변한 것이다.

마땅히 공평하고 공정하며 오직 법률대로 선을 발양하고 악을 징벌해야 하는 법관들은 파룬궁을 박해하는 장쩌민의 하수인이 되어 법을 무시한 채 월권적으로 진선인을 인간의 표준으로 삼는 착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판결한다.

‘선을 버리고, 악을 선양하는’ 독직 행위도 사회에 더 많은 악의 결과를 가져왔다. 선량함을 파괴하는 그런 행위는 역시 사회 전체의 도덕심을 급속하게 떨어뜨려 모든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6년 난징(南京) 펑위(彭宇) 사건 담당 판사의 말이다. “당신이 부딪힌 것이 아니면 왜 병원비를 대신 내려고 했는가?” 근본적으로 사람의 선념과 양심을 부정한 말이다. 법률은 마땅히 악을 징벌하고 선을 키워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오히려 법률이 도덕심을 타격하는 작용을 한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넘어진 노인을 부축해줄 사람이 없었고, 의를 보고 용감하게 행동하는 것은 더욱 희귀한 것이 되어버렸다.

2011년 광둥(廣東)성 샤오웨웨(小悅悅)사건에서 운전기사가 두 번째는 고의로 깔아뭉갠 후 도주했는데, 그 사건 현장에서 행인 18명 이 목격했지만 모두 본체만체 한 채 누구도 피해자인 아이의 생명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 목격자는 현 중국인의 비도덕적 냉담함을 나타낸 것이고, 전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보여준 사례다.

사회적 안전 불감증

사회적으로 냉담함의 원인은 “사회 안전 불감증”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왜 사회적인 안전 불감증이 나타난 것일까? 바로 도덕심이 손상된 후 사법적 불공정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작용으로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할 사법부가 사사로이 권력과 이익의 노예로 전락한 것이 그 원인이다.

중국 사람들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사태를 맞아 침묵과 순종을 선택한 것이다. 중공이 공안, 검찰, 법원을 조종하고, 대중을 기만하여 파룬궁 수련자를 마음대로 박해할 수 있었다. 중공은 이렇게 대가를 내지 않고도 수월하게 악행을 저지를 수 있어서, 결국 모든 대중이 피해자가 되는데, 특히 일반 서민들은 어떤 안전보장도 받을 수 없다.

중공은 ‘안정’을 첫 번째로 꼽는다. 그러므로 중공은 ‘불안정 요소’가 될 수 있는 모든 사람을 감시 대상으로 삼는다. 인권변호사, 청원자, 재향군인, 백신 피해자, 온라인 개인 대 개인(P2P) 대출 사기, 부동산 전산 피해자, 언론인, 심지어 우한(武漢)봉쇄와 시안(西安) 봉쇄 때 치료와 식량 부족을 겪은 네티즌도 대상으로 한다.

중공의 중국인 감시는 없는 곳이 없다. 카메라, 안면인식, 휴대전화, 인터넷 등 각종 데이터로 감시하기 때문에 전 중국인들은 모두 중공의 눈에는 투명 인간으로 된 것이다. 중공은 이미 모든 중국인을 잠재적인 ‘안정’ 대상으로 간주한다. 이런 환경에서 누가 감히 아직도 고요한 세월 속에서 살아간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맺는말

만약 ‘6·4사태’ 이후 중국 지식인들이 믿음을 잃고 부득불 사회적 책임을 포기한 채 해외로 나가 돈을 버는 데만 전념한다면 이는 정신적 파멸이고,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작이 아니겠는가. 아울러 중공의 ‘진선인’ 수련자 박해는 결국 중국인에게 가해지는 박해며, 종국에는 사람의 양심과 선념을 파괴하는 것이다.

중공은 파룬궁 박해로 사람들의 정의감과 선량한 심성을 파괴하고 있다. 사회가 안정될 수 있는 도덕적 향상의 통로가 막히고, 도덕심이 고속으로 낙하하는 통로가 열린 것이다. 이 역시 중공 정권을 초읽기의 빠른 길로 이끌어 내린 것이 아닌가. 중공은 이처럼 도덕성이 상실하여 선량함을 박해하는 악행이 더욱 가속화되어 중공의 멸망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원문발표: 2022년 6월 1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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