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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을 제 1위에 놓아야

글 /진저우(锦州) 대법제자

【명혜망 2007년 8월 1일】 나는 명혜망에서 두 편의 문장을 본 적이 있다. 한 편은 파룬궁을 믿는 속인이 파도에 휩쓸려 가는 순간 생각한 것이 내 주머니에 파룬따파 호신부가 있는데 내가 죽어서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면 대법의 형상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념의 순간 그는 해변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다른 한 편은 한 70여 세 가량의 대법제자가 악경에게 납치당했다. 한 젊은 악경이 잔인하게 주먹으로 대법제자의 가슴을 쳐서 대법제자는 가슴이 한참 강렬하게 아프더니 피를 토하려 했다. 이때 그는 대법제자는 토할 수 없고 대법에 먹칠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삼켰는데 이때 가슴도 아프지 않았다. 악경은 노인이 괜찮아지자 또 노인의 가슴을 향해 주먹으로 악랄하게 때렸는데 이번에 노인은 조금도 아프지 않았고 오히려 악경의 팔이 부러졌다. 이것이 바로 정념의 힘이고 “제자들 정념이 족하거니,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사도은』)이다.

이 두 편의 문장은 나로 하여금 병업이 있는 우리 동수들이 병업을 한쪽에 내려놓고 법을 실증하는 것을 제 1위로 놓을 수 있는가 였다. 만약 내가 죽으면 진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구도되는 데 장애를 조성하게 됨을 생각해보았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장기적으로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이 제거되지 않았다. 원래 불치병을 얻은 사람은 사실 수명이 끝난 것이다. 불치병을 얻었잖은가. 그것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법을 배웠다. 비록 그가 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왔지만, 그더러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고 법을 인식하게 하고 그한테 많은 실례를 보게 하였지만, 그러나 여전히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없었다. 그는 책을 보지 않기에 법에서 이해할 수 없었으며 다만 따라서 연공을 할 뿐이었다. 그는 아직도 생각한다. 어이구, 나는 이미 法輪功(파룬궁) 수련생이 되었고 나는 계속 연공하고 있는데 나의 병은 왜 아직도 낫지 않는가? 그 수련은 그야말로 엄숙한 것이며 사람의 마음에 대한 고험은 결코 소홀하지 않다. 당신이 집착할수록 당신으로 하여금 더욱 괴로움을 느끼게 하는데 당신이 병원에 가서 검사하면 당신더러 더 심해진 것을 보게 한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그럼 깨닫지 못하면 더욱더 엄중해지고 최후에는 정말로 안 된다.”(『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병업이 있는 동수들이 법을 스승으로 삼고 법공부를 많이 하여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시간을 다그쳐 세인을 구도하길 희망한다.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완성하는 동시에 자신을 원만하자.

다른 또 한 가지 일을 여기에서 말하고자 한다. 바로 어떤 대법 동수들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친척도 대법 수련생인데 영정을 모시는 방에 대법 음악 『보도』와 『제세』를 틀어놓았다. 이것은 대법에 대해 극히 엄숙하지 못한 것이다. 추도에 참석한 속인들에게 착각을 줄 수 있으며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을 때도 전문적인 음악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은 기독교, 천주교, 불교, 도교와 같지 않은가, 파룬궁도 종교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대법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그러므로 나는 이 음악은 여전히 법회 또는 다른 대법활동 중에 틀어야 한다고 여긴다. 역시 우리 수련생 자신이 창작한 것이라, 그렇다면 역시 우리 대법의 음악이다.”(『미국 동부법회 설법』)라고 말씀하셨다. 영정을 모시는 방은 법회도 아니고 기타 대법활동도 아니니 『보도』와 『제세』를 트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문장발표: 2007년 8월 1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원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7/8/1/1599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