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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중에서 승화

글/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11월 7일] ……아울러 <<명혜주간>>을 보게 되면서 우리 많은 동수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박해사례>>를 보면서 생긴 두려운 마음이 <<수련마당>> 의 정념정행에 의해 재빨리 제거 된다는 것이었다. 볼수록 사람 마음이 적어지고 볼수록 정념이 많아져, 동수들은 이젠 더는 <<명혜주간>>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주간>>을 보는 것 역시 수련임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본문작자

1, 기쁘게 대법을 얻어 반본귀진의 길에 오르다

나는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고생을 많이 겪고 재난도 많이 당해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곤 했다. 매 번 죽었다 살아날 때마다 위험에 직면했으며, 의심스럽고 해석하기 어려운 기이한 일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듣고 나서 혀를 차며 말했다. “어머, 당신이 대난에 죽지 않은 걸 보니 후에 큰 복이 있겠네.” 점쟁이도 “당신은 시시각각 귀인의 도움을 받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기쁨은 커녕 도리어 끝없는 괴로움과 절망만 늘어났다. 세상은 변화무쌍하고, 인심은 험악했으며, 병마가 몸을 칭칭 감고 있어서 사는 것이 고생스럽고 힘들었다. 언제면 끝을 보겠는가 ! 자살과 출가하고 싶다는 열망이 솟구쳐 매일 같이 인생의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 쳤다.

1996년 나는 기쁘게 대법을 얻은 지 얼마 안 되어 모든 병이 깨끗이 사라졌다. 나는 말로 형용 할 수 없는 행복에 잠겼고, “진, 선, 인” 은 나를 정화시키며 개변 시켰다. 일할 때 고생과 힘든 것,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하는 일마다 상사를 위해, 동료를 위해 배려했다. 다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온 몸과 마음으로 잘 했다. 사회에서 주동적으로 의무를 다했는데, 몇 년을 하루같이 내가 사는 주민구역 복도를 쓸었고 이웃과 화목하게 지냈다. 가정 친지간에는 연장자라고 자처하지 않았고 항렬이 높다고 거만하지 않고 “진,선,인”으로 엄격히 자신을 요구했다.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도와주고, 관심을 가졌고, 선하게 대해 주었다. “명, 리, 정” 등 많은 방면에서 속인 때 같으면 전혀 넘을 수 없었던 큰 관도 넘었다 ! 이익, 재물상의 득실을 더는 중하게 보지 않게 되었고, 감정상의 상해는 나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려웠다. 일체 분노, 원망이 가져다 준 고통은 나한테서 없어졌다. 나는 사부님의 “일마다 대조하고 하는 것이 수련이라”(<<홍음 >><실수>)는 가르침을 명심하고 일에 부딪치면 안을 향해 찾아보고 가정, 직장, 사회를 자신의 수련환경으로 보고, 그를 소중히 여기고 그를 원용 했으며, “진선인”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언행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펼쳐 보였다. 이것이 바로 대법을 널리 발양하고, 자신을 실수하는 것이다.

그 때는 매번 <<전법륜>>을 펼치면 한편으로는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눈물을 흘렸고, <<보도>>를 듣거나 혹은 사부님께서 대수인 하시는 것을 보면 온 얼굴이 눈물투성이가 되곤 해 아무리 억제하려고 노력해도 무명의 눈물은 그칠 줄 모르고 흘러 내렸다. 나는 알게 되었다. 대법을 얻은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내 생명 본성의 그 일면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여러 차례 대난을 당해도 죽지 않았던 것은 대법을 기다렸기 때문이었다! 사부님께서 줄곧 나를 보살펴 주셨던 것이었고, 내가 “후에 복이 있겠다.”는 것은 대법 속에 있었던 것이다! 사부님 은혜 보답하기 어렵구나!

그 기간에 나는 직장에서 필요한 잔업 외, 이틀 연휴는 거의 다 홍법하는데 썼다. 연공장을 세우고, “설법”을 듣고, 비디오를 보면서 동작을 배워주고, 자료를 보내주고, 이곳에서 저 곳으로 수없이 다녔다. “대법소개”책을 들고 나의 상사에게 전하고, 동료에게, 친지들에게 전했으며, 오가는 행인에게 알려 주었는데,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려 주지 못하는 게 한스러웠다. 엄동설한과 무더운 여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고생임을 몰랐고 힘든 줄 몰랐으며 행복과 함께 동반했다!

나의 거대한 변화와 내 몸에서 발생한 수많은 기적들을 보고 당시 우리계통의 허다한 동료, 친구들이 대법으로 들어 왔으며. 어떤 지도자는 단체 법공부, 연공할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그 한 동안의 수련은 나의 주변 사람들이 대법을 정면으로 인식하는데 아주 훌륭한 기초를 다져 주었다. 후에 사악의 납치를 당했을 때 나는 경찰에게 대법이 널리 전해진 것을 말해주었고, 대법제자가 어떻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가를 말해 주었으나 그들은 믿지 않으면서 자기가 직접 조사하겠다고 하였다. 그는 정말로 조사하러 두 번이나 갔다가 돌아와서 말하였다. “당신 직장의 상사, 동료들이 모두 당신들이 좋다고 말했고,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은 놀랍게도 한 사람도 없었다! ” 그가 한 말처럼 확실히 한 사람도 없었다! 비단 직장에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법의 아름다움을 들은 사람들 중에도 “돌은 던지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이는 후에 요해한 것이다) 사람 본성의 일면은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쁜 일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경찰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 사람들은 후에 했던 3퇴 중에서 다시 진상을 들은 후 적어도 7사람이 <<전법륜>>을 읽기 시작했다.

대법은 나를 이끌어 반본귀진의 길로 안내했고, 또한 복음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대법과 인연을 맺어 주었다.

2, 조사 세간 행

1999년 “7. 20” 후, 대법은 재난을 당했다. 사부님께서 비방을 당하고, 대법 책이 불타는 것을 볼 때 나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나는 집의 동수에게 말하였다. “나는 대법을 끝까지 수련하고,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할 것이다. 대법 책을 바치라는 말을 하지 말라, 종이 한 장도 바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단지 집에서만 법공부와 연공을 했을 뿐 사람의 관념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2000년에 사부님의 <<도항>><미국 서부법회 설법>을 보고서야 비로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시각 나는 하루가 이틀이 아닌 게 한스러웠다. 현수막을 만들고, 플랜카드를 걸고 기계를 사서 자료를 찍고……하지만 결과적으로 법공부가 깊지 못했던 탓과, 본보기를 숭배하는 등등의 원인으로 2001년 납치당했고 불법 노교 3년형을 받았다. 집에 온 후 나는 <<전법륜>>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부님의 모든 설법과 경문을 참답게 통독했다. 설법에서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나 자신의 “후 복”이 얼마나 큰지를 상상하기도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짊어진 책임도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명백한 그 순간 전신이 모두 마치 요동치는 듯했고, 일종 종래로 있어 본 적이 없는 장엄한 사명감이 나 자신도 모르게 생겨 나 몰래 결심을 내렸다. “나는 확고하게 조사정법 하고, 조사세간 하리라1 .”

(1), 낙오된 사람을 도와 정체를 이루다

당시는 이미 2004년 초였고, 대법제자가 박해 받은 지 5년째 접어들었을 때였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첫 번째 문제는 수많은 동수들이 아직도 <<엄정성명>>을 써내 자신이 구두로나 서면으로 사악에게 <연공하지 않겠다>고 <보증>(어떤 사람은 모르고 있고, 어떤 사람은 감히 하지 못하고 있다)한 것을 부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사람을 보면 한 사람에게 말해 주었고, 법에서 교류했다. 어떤 동수는 사부님 후기 설법을 전혀 보지 못했으므로, 나는 자신의 체득을 말해 주었다. 여러 사람은 서서히 성명을 써야 하는, 자신수련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오직 <보증>을 썼다면 자신이 직접 부정하는 이것은 수련 가운데서 반드시 걸어가야 할 일보이며, 자신이 수련하지 않고 회피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중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성명을 써서 명혜망에 보냈다. 성명을 통해 우리는 초보적으로 법공부와 교류할 수 있는 수련 정체를 이루었고 서로 연계가 끊어졌던 국면을 종결짓게 되었다.

두 번째 발견한 문제는, 많은 동수들이 장시기 동안 사부님 설법과 경문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누가 어쩌다 한 부 얻으면 여러 사람이 돌려가면서 보았고, <<명혜주간>>은 거의 없다시피 했으며 간혹 한 부 있기는 해도 누구도 감히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있는 박해 사례를 보기 무섭다는 것이었고, 속인에게 보여 줄 진상 자료는 더구나 출처가 없었다.

나는 이 문제 모두 해결해야 하지만 먼저 <<명혜주간>>출처부터 해결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왜냐면 그는 동수들의 교류 무대이며, 사부님께서 우리가 정법진행을 따라가도록 보증하기 위해 제공해 주신 것이므로 반드시 주간이 있어야 하고 또한 누구나 다 주간을 보게 해야 한다. 당시, 아직도 자료점을 건립할만한 조건이 갖추어 지지 않아 나는 먼저 외지에 가서 수많은 <<명혜주간>>을 가져다 잠시 여럿이 돌려가며 읽게 했다. 하지만 어떤 동수는 집에까지 가져다주어도 받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 읽어 주었다” 그녀가 받지 않는다고만 보지 말라, 아주 명심해서 듣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받기는 했어도 다음번에 다시 갔을 때 전혀 보지 않았음을 발견 하였다. 그랬지만 나는 원망 없이 원래 방밥대로 “ 그에게 읽어 주었다” 떠날 때 <<명혜주간>>을 책상위에 놓으면서 한마디 해주었다. “어서 보세요. 얼마나 훌륭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수 모두 변해갔다. 명혜주간을 받지 않던 이들이 받게 되었고, 보지 않던 이들이 보게 되면서 만나면 간단하게 체득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더 후에 우리는 주동적으로 주간을 읽은 뒤 받은 계발을 교류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모여 앉아 진지하게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렇게 <<명혜주간>>은 우리의 마음을 넓혀 주었고, 법을 실증하는 우리의 경험을 풍부히 해 주었고, 우리의 정체를 진일보 응집되게 하였다.

아울러 <<명혜주간>>을 보게 되면서 우리 많은 동수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박해사례>>를 보면서 생긴 두려운 마음이 <<수련마당>> 의 정념정행에 의해 재빨리 제거 된다는 것이다. 볼수록 사람 마음이 적어지고 볼수록 정념이 많아져, 동수들은 이젠 더는 <<명혜주간>>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주간>>을 보는 것 역시 수련임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고정적으로 명혜주간을 받아볼 수 있는 곳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타의 대법 진상자료도 고정된 출처가 없었다. 나는 방법을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최대의 갖은 노력을 다해 될수록 빨리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랬다. 오래지 않아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어 우리의 소원이 실현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인력, 물력, 재력방면에서 서로 협조하였고, 그 때부터 드디어 우리가 수요하는 일체 대법자료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몇 십 명 동수들이 동시에 사부님 설법, 경문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각종 진상자료도 제 때에 동수들 손에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 <<9평>>, <<명혜주간>>, 각종 소책자, 각종 시디를 충족하게 배포할 수 있었다. <<명혜주간>>은 누구에게나 한 부씩 가져다 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5년 동안 자료점은 비록 두 차례의 부동한 정도의 교란 파괴를 당했지만 환경이 어떻게 열악하던, 자료점을 어떻게 조절하던, 자료점 운행은 줄곧 정지되지 않았고, 자료 공급은 줄곧 그치지 않았으며, 오늘까지 줄곧 걸어 왔다. 당연히 정법진행을 따라 우리의 자료점은 갈수록 가정화 추세로 되고, 갈수록 평온해 졌다. 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확고히 안을 향해 찾았고, 너그러움을 배웠으며, 자신을 정체 속에 용해시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체득했다.
우리 지역의 세 번째 문제는, 예전의 동수들 중 표면적으로 수련을 포기한 어떤 이는 사는 게 아주 고통스러웠다. 마음은 대법을 놓을 수 없으나 박해가 두려워 또 감히 계속 수련하지 못하고, 병마에 시달렸으나 치료해도 낫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대로 이런 지난날의 동수를 되찾아 오리라 결심했다. 나는 먼저 그들에게 대법책 전부를 찾아 주었다. 더구나 대법이 박해당한 후 사부님 각지 설법, 그리고 모든 대법자료를 제때에 그들에게 보내 주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여러 방면의 교란을 받았다. 사회 환경으로부터, 동수 가정으로부터, 동수 자체로부터 오는 것도 있었고, 또한 나 자신한테서 오는 것도 있었다. 특히 동수들의 끊어버리기 어려운 명,리,정 속에서 전진하기 어려워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직면 할 때면, 나의 각종 사람마음이 저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었다. 괴롭고, 소침하고, 위축되고…… 하지만 “끝까지 수련 할 테다”고 한 견정한 결심을 생각하면 마음의 경계가 즉시 호전되곤 하였다. 후에 또 법공부팀을 세워 우리는 함께 법공부하고 공동으로 교류 하면서 드디어 하나의 완전한 수련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우리 법공부 팀은 한 팀에서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세 팀으로 발전했다. 비록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이젠 안을 향해 찾고 교류할 수 있는 수련 환경을 이루어 놓았다. 새롭게 다시 걸어 나온 지난날의 동수들은 법공부 팀의 단체 환경 속에서 점차적으로 사람으로부터 걸어 나오게 되었고, 최종적으로는 법을 실증하는 대열로 들어오게 되었다. 이 일체는 사부님께서 하신 것으로, 우리는 여러 번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우리를 자비롭게 보살피시고, 자비롭게 우리를 고무격려, 자비로운 점오를 몸소 체득 하였다.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안배해 주신 단체 법공부, 이 환경을 몹시 소중하게 여긴다.

(2), 사부님의 정법진행을 바짝 따라 세 가지 일을 잘 하다

노동 교양소에서 막 돌아오자 내가 직접 겪은 박해를 근거로 사악을 폭로했다. 그 때 나는 어디로 가면 어디에서 진상을 알려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중공의 사악을 알게 하였고, 노동 교양소의 암흑을 모두 알게 하였고, ”4.25 중남해 포위 공격”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모두 알게 하였으며, “천안문 분신자살”은 거짓 모함이라는 것을 모두 알게 하였다. 현지에서 다 말하면 외지에 가서 말했고, 모든 친지와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모두에게 진상을 알리려 하였다. 따라서 어디로 가면 어디로 진상자료를 갖고 갔다. 또 사악의 박해를 폭로한 문장을 써서 명혜망에 발표 하였다.

<<9평>>이 전해지고, 3퇴 권고가 시작된 후, 나는 즉시 제2차 진상 알리기, 제2차 진상 자료 배포로 전환하여 세인들이 가급적<<9평>>을 요해하게 하고, “3퇴” 성명을 빨리 쓰도록 하였다. 정념으로 그들 사상 중의 당문화, 무신론 및 일체 거짓말을 제거하고, 그들의 양지를 깨우쳐 주고 그들의 선념을 격발시켜, 그들이 자신을 위해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몇 년에 걸쳐 거의 모든 친척이 3퇴 성명을 쓰게 되었고,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지금은 이미 친척의 친척이 탈퇴하는 데로 이르렀다.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려주는 가운데 나의 수많은 옛 학우, 옛 친구, 옛 고향사람, 옛 이웃들도 적지 않게 탈퇴 하였다. 그들 중에는 퇴직 노 간부, 재직 국장급 , 처장급의 지도자, 직장의 제1 지도자. 유명교수와 청년학생이 있고, 글 모르는 노인도 있다. 이런 사람들 중, 어떤 이는 두 세 마디에 곧 탈퇴 하였고, 어떤 이는 열 번 넘어 뛰어 다녔고, 심지어 1년, 2년씩 걸렸으며, 아직까지 탈퇴하지 않은 이도 있다. 내가 인식한 바로는 “일체는 자연스러움에 따른다”는 것이다. “자연스러움에 따른다”는 것은 태만과는 다르다. 억지로 하지 않으며, 결과에 이끌리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당신이 거부하든, 냉담하던, 비난이나 위협하던 나는 예나 다름없이 마찬가지로 당신을 나의 옛 학우로, 옛 친구로 대할 것이다. 나는 다만 선념을 품고 당신을 구할 것이므로 억울해 하지 않고 동요 없이, 어느 누구에게도 함부로 단언을 내리지 않을 것이며, 자신에 대해, 남에 대해 책임질 것이다. 5년 동안 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장시기 동안의 접촉 가운데서 대법제자의 솔직함을 보아왔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으며, 중공의 사악함을 요해하게 되어 최종에는 3퇴 성명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천상의 변화에 따라, 쑤자툰 생체 장기 적출, “신운”전 세계 공연, 플러싱사건의 사당 모함 ,” 신당인”의 장애로부터 속인 사회에서의 원촨 지진의 인화, 올림픽이 나라와 인민에게 준 재앙 및 “싼루 독 분유”의 검은 내막……에 이르기까지 나와 동수들은 사부님의 정법진행을 바짝 따라,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매 한 발자국을 바짝 따라가면서 각종 상응된 내용의 소책자, 시디, 주보 등 진상 자료를 한 번 또 한 번씩 제때에 세인들 손에 보내 주었으며, 말하는 한 편 배포 하였다. 무슨 소란이요, 무슨 방문, 무슨 수사요 하는 따위에 이끌리지 않았고 배합하지 않았다 ! 우리 자료점은 종래로 재료 한 부도 적게 만들지 않았고, 나와 동수들은 그 때문에 진상을 적게 말한 적이 없다.

나는 줄곧 매일 네 번, 전 세계 통일 발정념과 현지의 세 개 정각 통일 발정념을 견지하고 있다.

3, 교훈을 접수하고 법 중에서 승화

속인이 길을 걸을 때 그만 넘어질 때가 있고 넘어지면 얼른 일어나려 하지 않고 거기에 엎드려, 먼저 길이 고르지 않다고 원망하고 또 행인에게 장애를 설치했다고 욕을 한다 (길에다 함부로 벽돌 조각을 버렸거나 구정물을 버렸다.) 나중에는 두리번두리번 살피면서 누가 와서 자신을 부축해 집까지 데려다 주길 고대하고, 가는 길에 불평이 그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은 아무 일 없이 걸어갈 수 있는데 자신은 왜 넘어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수련인이 모순과 번거로움에 직면해 넘어가지 못할 때, 넘어진 것과 다른 점이라면, 아무리 번뇌스럽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스스로 얼른 “일어나”야 하며, 첫째로 하늘과 사람을 원하지 말고, 둘째로 남을 바라보지 말아야 하며, 더욱 중요한 것은 얼른 자신을 찾아보아야만 씬씽이 비로소 제고될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이야기 한 도리는 아래의 두 가지 교훈 속에서 막 깨우쳐 낸 것으로서 말로는 정확하다고 하나 사부님께서 나에게 점화해 주신 것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써 내어 동수와 교류하고자 하니 부당한 곳은 지적해 주길 삼가 바라는 바이다.

첫 째,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세 가지 일을 열심히 했던 것에는 잘못이 없으나, 잘못이란 내가 가족 동수에게 시시로 나와 동일하게 할 것을 요구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은 줄곧 말다툼을 하였는데, 12년간 수련을 하면서 12년을 다투었다. 더구나 최근 몇 년 간은 다툼이 더 심해졌다.

남편에게 발정념할 때 손이 기울어 졌다고 지적하면 그는 전혀 승인하지 않았다. 또 남편에게 정공을 연마할 때 흐리멍덩하니 수면 상태라고 말하면 그는 내가 너무 과장한다고 말했다. 법공부할 때 다리를 펴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 남편은 “당신은 나를 간섭할 필요 없다” 고 말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억울해 하면서 생각했다. “이건 모두 당신이 좋으라고, 공동히 정진하기 위해서인데 양심이 없어!” 다르게도 생각해 봤다. 늘 이러면 자신의 발정념과 연공할 때 입정에 영향이 있을 거야, 아마 관할하지 말아야 하는가 보다. 하지만 시간이 가도 이 마음을 여전히 내려놓을 수 없어서 암암리에 생각했다. “그는 진작 텔레비를 보지 않고, 진작부터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으니 아마 여전히 간섭해야 할까 보다.” 나는 이렇게 모순되고 번뇌하였다.

최근에 한 차례 발정념을 할 때 나는 끝내 참지 못하고 또 다시 그의 손이 “기울어”졌다고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당신 왜 도리가 없어요” 라는 말을 내 뱉고는, 왜그런지 갑자기 멍해졌다. 마음 속으론 아이구, 나에게는 도리가 있는가? 왜 남편을 그렇게 성나게 했는가? 내가 한 말이 속인의 이치인가 아니면 법리인가? 내가 사부님 말씀으로 자신의 집착을 덮어 감춘게 아닌가? 마음이 좀 긴장해 졌지만 즉시 이지적으로 진지하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자문자답 하였다.

1, 자신이 늘 그를 간섭하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를 잘 개변시키기 위해서인가?
2, 남만 개변시키려 하고 자신은 개변하려 하지 않는데 수련인으로서 옳은 일인가? 긍정적으로 틀린 것이다.
3, 상대방이 개변된 게 내가 간섭했기 때문인가? 그게 나의 공적인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 “남의 공적을 자신의 공적으로 삼았다” 나는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
4, 내가 남을 개변시킬 수 있는가?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 “사람의 신체에 만약 그의 元神(왠선)이 없고 그의 성격∙천성∙특성이 없으며, 이런 것들이 없다면 곧 하나의 고깃덩어리로서 그는 하나의 완전[完整]하고도, 독립적인 자아개성을 가진 사람이라 할 수 없다.”(<<전법륜>>) 다시 말해서 사람마다 개성은 모두 독립적이고, 남과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마다 주원신이 다르기 때문에, 성격, 천성, 특성도 다르므로 다른 사람은 전혀 개변시킬 수 없으며, 그 자신도 건드리기 아주 어렵다. “강산은 변하기 쉬워도, 천성은 변하기 어렵다” 수련 후 사부님께서만 능히 움직일 수 있을 뿐이다.
5, 상대방이 자신과 동일하게 할 것을 요구했던 게 법에 있었는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명명백백하게 말씀 하셨다. “한 사람, 한 생명을 만드는 데에는 극미시하에서 이미 그의 특정한 생명성분, 그의 본질이 구성된다.” (<<전법륜>>매 사람의 생명성분, 본질은 특정된 것이며 신이 만든 것이다! 이는 곧 매 사람의 사물에 대한 인식, 문제에 대한 이해, 일하는 표준, 행위방식 등이 서로 다르게끔 결정하는데 어찌 “인식 통일, 행동 동일”을 강제로 요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당문화가 아닌가?! 속인의 여기에서도 도리가 맞지 않는데 하물며 수련인 임에랴!
6, 자신의 심태가 연공인의 표준에 부합 됐는가? 완전히 부합되지 않은 것이었다. 시시로 사용한 것은 원망, 비난, 심지어 비웃고 풍자했으며, 핀찬으로 괴롭혔으니 수련인의 너그러움과 자비란 전혀 없었던 것이다.
7, 왜 이럴 수 있었는가? 상대방이 나의 집 사람이므로, 나는 그가 좋게 하기 위해서 경하게 말하든 중하게 말하던 상관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정으로 수련을 대신했고 스스로 장애를 설치한 것이었다. 자신에게 깊이 숨어있는 “스스로 수련을 잘했다”고 여기는 그 과시심이 줄곧 우리 중간에 가로 놓여 있어, 함부로 상대방을 비난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던 것이다. 더욱 엄중한 것은 놀랍게도 자신이 사부님의 말씀을 자신을 보호하고 상대방을 상해하는 방패로 삼았으니 이는 사부님에 대한 최대의 불경인 것이었다!
8, 오랫동안 상대방을 비난해 왔는데 참으로 그에게 좋도록 하기 위해서였는가? 그 자신은 그렇듯 불안하고 고통스런 상태에 처해 있었는데 내가 남편을 대신해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나는 정념으로 그를 가지 해 주었는가? 그가 비난당했을 때의 감수를 내가 생각해 보았는가? 두 사람간의 이런 “수련” 상태를 누가 기뻐하겠는가?

여기까지 나자신에게 묻고 나니 심령은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 그제야 발견했던 바, 몇 년 동안 나는 가족 동수에게 너그러움이 조금도 없었으며, 있었던 것은 단지 정의 이끌림과, 과시심의 부추김에 의해 마성을 부렸던 것이다.

집에서 두 사람이 함께 수련한다는 것은 절대로 우연한 일이 아니며, 이는 사부님께서 안배해 주신 수련 환경인 것이다. 상대방이 표현한 일체 부족, 나타난 일체 좋지 못한 상태는 모두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으로서 나의 씬씽 제고에 사용하시는 것이다 ! 그런데 나는 사부님 자비를 저버리고 동수를 상해하였고 자신의 귀중한 수련 시간을 헛되이 소모 하였으며, “집착하지 않는다.”는 미혹에 빠져 사악에게 틈탈 기회를 주었고,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걸으면서도 모른 채 그래도 우쭐거리면서 여전히 수련을 잘 했다”고 과시 했던 것이었다. 이것이 어찌 동수를 좋게 하기 위해서인가. 그야말로 마에게 이용당했던 것이다 ! 사존님께 부끄러운 일이다! 동수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

당시 나는 또 많고 많은 것을 생각했는데, 이런 인식들이 거의 동시에 머리에 뛰어들어 단숨에 나를 놀라게 했고, 깨어나게 하였다. 나는 늘 상대방을 개변시키려 하면서도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가짜 수련이다!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동수가 가족인, 이 특수한 환경에서 자신은 공이 자라지 못했다. 그것은 내가 안을 향해 찾지 않았고 씬씽을 수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인은 내가 정에 얽매인 채 각종 집착에 교란 당했기 때문이었다.

명백해 진 후 자신이 걸어온 이 굽은 길을 돌이켜 보니 마치도 자신은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그 사람 같았다! 다행한 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자비로운 점오 중에서 내가 끝내 일어서게 된 것이다. 나는 이 한 교훈을 명기하고 사부님의 “안을 향해 찾지 않고 씬씽을 수련하지 않으면 공이 자리지 못한다”(<<전법륜>>)는 가르침을 깊이 새겨 수련기연을 소중히 여기고 이후의 길을 잘 걸어가려 한다.

두 번째, 넘어진 가운데 진상을 알린 교훈

나는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여러 번 넘어진 적이 있다. 어떻게 넘어지고 어떻게 심하게 넘어졌던 간에 모두 내가 하려는 일은 가로 막지 못했다.

한 번은, 이틀 동안 200부 자료를 몽땅 배포하려고 준비한 채 외지로 떠났다. 첫 날, 금방 두 번째 문에 배포하고 나서 한 발을 헛디뎌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모진 힘을 들여서야 겨우 일어난 후, 구세력의 교란을 승인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1층에서부터 6층까지, 또 문 7곳을 지나면서 130부 자료를 배포하게 되었다. 이튿날에도 제 때에 출발하여 첫 문에 들어서자 아주 심하게 “밀리어”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당시의 감각이 바로 누가 등 뒤에서 드세게 미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발을 다쳤을 뿐만 아니라 어깨 힘줄이 늘어났다. 사흘 째 되던 날 나는 원 계획대로 기차를 타고 외지로 가 한 집 한 집씩 진상을 알려 주었다. 마지막 하루 밤에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나는 정말이지 농가 집 1미터 가량의 베란다에서 굴러 떨어질 뻔하였다. 정말 위험했다. 반보차이로 1미터 높이에서 굴러 떨어졌라면 칠흑처럼 어두운 밤에, 얼어서 땅땅한 땅에 (당시는 바로 겨울)다친 두 발과 어깨는….. 내가 당지 동수의 집에 갔을 때 그녀는 부어서 벌겋고도 검푸른 나의 두 발을 보면서 말하였다. 그녀의 이웃 사람은 나보다 약하게 넘어진 것도 지금 전혀 걷지 못하고 집에서 휴식하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대법은 초상적이고 구세력은 나를 막지 못해요!”라고 말했다.

또 한 번은 나는 오토바이에 부딪쳐 갈비뼈가 부러진 친척을 보러 간 김에 3퇴를 권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도 오토바이에 부딪쳐 자전거가 망가졌고, 안경다리가 부러지고, 얼굴이 거친 자갈길에 스쳐 찌르르 했다. 기어서 일어나 만져보니 상한 데가 없었다. 두 번의 우연한 일치를 생각해 보고 속으로 남몰래 짐작 하였다. 이건 사부님께서 의식적으로 이런 “대비적인 효과”를 안배 하시어 세인들 더러 대법의 초상적인 것을 보게 하신 것이 아닌가?

또 한 번은 세 식구가 살고 있는 집에 3퇴를 권하러 갔는데 모두 탈퇴하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남자 주인은 전혀 “짐승의 표기”라는 존재와 위해를 믿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이상야릇하게 평탄한 길에서 아주 심하게 넘어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큰 좋은 일을 하려 하니 얼마나 큰 교란이 따라 오는구나, 이는 우주의 상생상극의 이치야, 그들이 오늘 믿지 않는다고 보지 말라, 이 가정은 아마 연분이 굉장히 큰 사람일 것이다. 나는 교란 받을 수 없어, 다리가 아무리 아프다 해도 난 또 갈거야 ! 내가 다시 그의 집에 갔을 때 과연 세 식구 모두 탈퇴 하였다.

바로 이렇게 여러 번 이리저리 넘어졌고, 어떤 땐 생각하기도 했다. 왜 자꾸 넘어지기만 하지? 오, 어릴 땐 아무 생각없이 수많은 잠자리 , 사마귀 등 날아다니는 곤충들의 다리를 해쳤는데 아마도 업력으로 받는 보응이겠다.

갑자기 나는 나의 그런 생각이 틀렸음을 발견했다. 위의 그런 생각과 인식, 어디에 정념이란 게 있는가? 분명히 구세력의 존재를 묵인하고 구세력의 박해를 바란 것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체는 구세력이 배치한 박해 중의 반박해로서, 이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전면 부정해야 한다는 것과는 정반대 되는 것이다. 반복적으로 넘어지게 한 이런 “고험”을 구실로 나를 박해한 것이며, 긍정적으로 구세력이 배치한 것으로서, 이는 대법제자에게 업력이 있다는 구실로 노동 교양소에 보내 박해하는 것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하지만 지금은 사부님께서 정법하고 계시므로 구세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그것들은 참여할 자격이 없으며, 또한 참여하는 걸 허락하지도 않는다. 이러할진대, 구세력은 무엇 때문에 아직도 감히 나를 박해하는가? 실은 자신이 구해 왔던 것이었다.

내가 매 번 넘어진 후, 얼마나 심하게 넘어졌던 지를 막론하고 모두 한 염두가 삐죽하게 나오지 않았던가? 이런 염두는 바로 구세력의 존재와 박해를 묵인한 것이었다! 이런 염두는 어디서 왔는가? 물론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고 부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염두가 자신의 과시심, 환희심, 자신의 “견정함”을 실증하는 등등의 속인 마음에 부합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속인 마음은 지혜를 미혹시켜 자신을 장시기 동안 박해 속에 있게 하고도 양호하다고 느낀 것이다. “보라, 내가 어떻게 넘어지고 얼마나 심하게 자빠졌다 해도 내가 응당 하려는 일을 막으려고 생각지도 말아!” 자신은 이렇게 구세력이 배치한 한 번 또 한 번의 연달아 넘어지는 박해 속에서 박해를 반대하고서도 스스로는 “견정”하다고 여겼으니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짊어진 사명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만일 모두 나 같은 상태라면 세인들 누가 감히 대법에 접촉할 수 있겠는가? 누가 감히 수련에로 들어올 수 있겠는가? 만약 자신을 여전히 그 넘어진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그럼 내가 원고를 쓰기전의 상태가 바로, 넘어졌는데 아직도 얼른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쉴새 없이 입방아를 찧으며 행인들에게 과시한다. 당신들 보라,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이미 몇 번이나 넘어졌고, 얼마나 심하게 넘어졌지만 누구도 내가 집으로 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세력은 바로 이런 방법으로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끌고 있으며, 내가 중생구도 할 시간을 빼앗아 가고 그로부터 나를 훼멸하려 시도한 것이다.

이 번에 나에게 준 심각한 교훈은, 비단 행동에서 구세력의 일체 배치를 부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일사일념에서 그것의 배치를 부정해야 한다(어떤 때는 분간하기 어렵다, 어떤 때는 발견하기 어려워 놓치기 쉽다) 각종 집착심을 버리고 자신을 귀정해야 한다. 우리가 걷는 길은 확실히 너무너무 좁아서 조금만 빗나가도 모두 아주 위험한 것이다.

자신의 이상의 두 가지 교훈을 각종 마난 중에 있는 동수들, 특히 장시기 동안 병마의 교란속에 있는 동수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마지막으로 설명할 세 가지는
1, 두 가지 교훈 모두 돌연지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당시에 문득 깨달은 감이 있었다.
알게 된 시간은 내가 이 원고를 쓰기 시작한 때부터 끝낼 때까지의 한 주일 내이다.
2, 문득 깨달은 그 순간, 자신 몸의 일체 좋지 못한 물질이 죄다 없어지는 것 같았고, 마음속은 끝없는 상서로움과 평온으로 충만 되었는데 이런 감각은 종래로 있어본 적이 없었다.
3, 우리 집 동수의 상태도 갑자기 아주 좋게 변하였다.

두 손을 허스하여 다시 한 번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사부님 고무격려에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에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에 감사드립니다 ! 동시에 우리에게 이번 교류 기회를 제공해 준 명혜 동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이상 부당한 곳은 삼가 동수들의 자비한 지적을 바란다 .

(명혜망 제5회 중국 대륙 대법제자 수련 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 2008년 11월 7일
문장분류 : 대륙법회
문장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11/7/18867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