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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차례 고문으로 죽다 살아난 산둥의 청렴한 관리 장궈보, 안타깝게 사망해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산둥 보도) 산둥(山東)성 웨이팡(濰坊)시에 있는 부 현급 관리이자 파룬궁 수련생인 장궈보(姜國波)는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3차례 납치당했다. 두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5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그전에 전기봉 충격, 쇠 의자에 채우기, 용 침대에 눕혀 채우기, 호랑이 의자에 앉기, 강한 독극물 주입, 고춧물 주입하기 등 77가지의 고문을 당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또 구치소, 노동교양소, 감옥에서 39차례나 고문당해 죽다 살아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21년 4월 29일 사망했다.

장궈보는 생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구치소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는데, 그것은 사는 게 죽는 것만 못한 경험을 하게 했습니다. 한 달도 안 되는 기간 저는 강한 독극물 주입하기, 짙은 고춧물 주입을 당해 폐에서 녹색 고름을 뱉어냈으며, 20일 동안 ‘십자가’ 잠그기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3x3cm의 좁은 나무 막대기로 고문당해 세 개의 척추가 부러졌고, 한때 오른쪽 눈이 실명됐으며, 소변을 볼 수 없어 도뇨관을 삽입해야 했고, 또 26일 동안 배변하지 못했습니다. 몸무게는 20여 일 동안 45kg 넘게 빠졌고, 고문으로 수없이 기절했습니다.”

1963년 3월생 장궈보는 산둥성 웨이하이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원래는 웨이팡시 위원회 부현급 등급의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관원으로 정직한 공무원이었다. 파룬궁 수련 전, 그는 ‘만기 간경화’, ‘폐질환’(가족 유전, 여러 친척이 질병으로 사망)을 앓았는데, 유명한 의사를 찾아 수많은 약을 먹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때 그는 여러 가지 질병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1995년 6월, 장궈보는 파룬궁을 수련한 후 B형 간염 바이러스가 모두 사라지는 등 몸이 건강해져 새 삶을 얻었다.

장궈보는 아프지 않고 병이 없는 온몸이 가뿐해지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는 마음속으로부터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셨어요!”라고 외쳤다. 장궈보는 늘 “제가 매우 행운이라고 여기는 것은, 인생의 목표에 대해 막연하던 제가 인생의 진리—반본귀진(返本歸眞) 찾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암울하고 절망적인 그의 삶이 순식간에 확 트이면서 활기차고 투명하고 맑게 밝아졌다. 장궈보는 열심히 근무했고, 파룬궁 수련의 원칙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으며, 정법 계통에서 청렴결백하게 공무를 집행하는 훌륭한 간부로서 친절하고 정직하다는 인정을 받았다.

장궈보는 전 시 정법 계통에서 간부 현지 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몇 년 동안 욕심이 없었으며, 선물도 받지 않았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장궈보는 월급에서 수천 위안을 사용해 지난(濟南), 안추(安丘), 린취(臨朐) 등 지역의 가난한 초등학교 학생을 조용히 지원했다. 빈곤한 학생에게는 정기적으로 돈을 보내는 것 외에도 좋은 일을 하면서 공부를 잘하도록 격려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1999년 주청(諸城), 가오미(高密)에 수해가 발생했을 때, 장궈보는 돈을 기부해 재난 지역 사람들을 지원했다. 장궈보는 웨이팡에 속한 칭저우(青州)시에 임시직을 맡았을 때, 현지 촌민들을 위해 우물을 파고 도로를 수리해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촌 간부와 촌민은 마을 어귀에서 폭죽을 터뜨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장궈보는 13차례 납치, 구금됐고, 세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선고받았으며, 불법적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장궈보는 왕춘(王村) 강제 노동교양소와 산둥 감옥에서 5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중에서 수많은 고문 학대를 당했는데, 치가 떨리는 분노를 일으킬 만한 악랄하기 그지없는 고문들이었다. 수감된 일반 수감자들조차도 수년 동안 이토록 잔인하게 손대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가장 심각한 박해는 여러 차례 약물 학대를 한 것인데, 이로 인해 장궈보는 20일 이상 배변을 할 수 없게 돼 정신은 극도로 고통스러운 상태에 처했다.

2000년 10월, 장궈보는 창러 강제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3년 동안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 17일 오전, 노동교양소 경찰 주웨이러(朱偉樂)는 노동교양소의 의사를 데리고 장궈보에게 강제로 링거를 맞히게 했다. 주웨이러는 장궈보에게 강압적으로 “이 주사를 당신이 맞으려 해도 맞고, 맞으려 하지 않는다면 경찰 밧줄로 묶어서라도 맞게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악인들은 강제로 장궈보의 체내에 중추 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강제로 주입했다. 이런 약물은 독성이 매우 심했는데, 이틀 연속 강제 약물 주입 박해를 당한 장궈보는 눈이 붓고, 신장 통증, 뇌 혼란, 극도로 피곤하지만 잠을 잘 수 없는 증상 등이 나타났다. 이런 독극물의 강렬한 반응들은 장궈보를 괴롭혔는데, 사는 것이 죽기만도 못한 상황이었다.

酷刑演示:打毒针(注射不明药物)
고문 재연: 알 수 없는 독극물 주사하기

2005년 11월 2일, 장궈보는 세 번째 불법 노동교양을 선고받은 후, 창러 강제 노동수용소의 4㎡ 암실에 구금돼 강제 음식물 주입, 독극물 주입 박해를 당했다. 이로 인해 심한 두통, 대소변 장애 및 혈압과 심장 리듬이 매우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나 거의 질식사할 뻔했다.

그 후 집으로 돌아온 장궈보는 직장에서 해고당해 도처에서 삯일을 하며 유랑생활을 했다.

2009년 2월 27일 아침 9시, 장궈보는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 안뜰에서 웨이팡시의 국가보안 특무와 공안국 국가보안대대 경찰이 공모한 패거리에게 납치됐는데, 4명의 얼굴을 가린 사복 경찰이 깡패 수단을 동원해 그를 끌고 갔다. 검은 머리 씌우개로 장궈보의 머리와 목을 조이고, 차에 들어 올려 창러 구치소로 납치해 불법 감금했다.

酷刑演示:死人床(呈“大”字型绑在抻床上)
고문 재연: 사인 침대[死人床, ‘대(大)’자형으로 늘이는 침대 위에 묶음]

창러 구치소에서 경찰은 ‘사인 침대’에 묶는 고문 즉, 손과 발을 침대의 네 다리에 ‘대(大)자형’이 되게 묶어 움직일 수 없게 하는 고문을 했다. 침대 널판자에 구멍이 있고 구멍 아래에 변기를 놓아 소변이 구멍을 따라 변기로 흘러 들어가도록 했다. 불법 구금된 첫 3개월 동안, 웨이팡 공안국 국가보안지대의 악독한 경찰은 창러 구치소 경찰과 결탁해 10여 명이 장시간 동안 돌아가며 장궈보에게 불법 심문을 진행했다.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고, 잠을 자지 못하게 했는데, 이로 인해 장궈보는 고혈압 증상이 나타나 음식물을 먹을 수 없었고 생명이 위독해졌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쿠이원(奎文)구 법원은 오히려 인간성을 상실하고 2009년 12월 하순 비밀리에 진행한 재판에서 장궈보에 대해 불법적으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2013년, 장궈보는 산둥성 남자 감옥에 불법 구금된 약 3개월 동안, 몸이 정상이 아닌 것을 느꼈다. 온몸에 기운이 없고 어지럽고 메스꺼움을 느끼며 때때로 구토를 했다. 그중 10일 이상 대변에서 피가 나왔는데, 창러 노동교양소에서 겪은 중독 증상과 매우 유사했다.

장궈보는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줄곧 감옥에서 주입된 독극물 박해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렸는데, 늘 온몸에 기운이 없는 증상, 현기증, 메스꺼움, 구토, 혈변 등 증상이 나타났고, 심할 때는 기절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2021년 4월 29일에 사망했다.

장궈보가 당한 박해에 관해 밍후이왕 문장 ‘전 부현급 간부가 13차례 납치당하고, 지금 생명이 위독해’, ‘대법 수련해 새 삶을 얻고 거리낌 없이 청렴했는데, 진실한 말을 해 박해 받고 거의 생명을 잃을 뻔’, ‘부현급 청렴한 관리가 옥살이 당해, 단식으로 항의한지 2년 반째’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7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0/4284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