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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 산현 리칭량 불법 징역형 선고받고, 총 9년의 옥살이 당하다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산둥 보도) 산둥(山東)성 허쩌(菏澤)시 산(單)현의 리칭(李青)은 올해 51세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은 그녀에게 정직한 좋은 사람으로 되게 했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동안 리칭은 거듭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를 받았는데, 총 9년 동안 불법적으로 두 차례의 형을 선고받았으며 각각 항저우(杭州) 여자 감옥과 산둥 여자 감옥에서 고문당했다.

1970년에 태어난 여성 리칭은 1998년 여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 후, 리칭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진선인(真·善·忍)’의 기준으로 자신의 언행을 가늠하는 법을 배웠고, 이전의 나쁜 성질을 없애고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되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은 1억 명이 넘는 대법 수련생들에 대해 잔인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리칭과 현지 파룬궁 수련생은 연명해 지방 정부에 청원서를 작성하여 대법 사부님이 결백하심과 파룬따파(法輪大法)가 결백함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어느 날, 현지 국가보안대대의 두 사람이 리칭의 집에 침입해 소환장을 발부했고, 청원서에 리칭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말하며, 벌금 100위안(한화 약 일만 칠천 원)을 갈취하려 했다. 리칭은 그들과 협력하기를 거부하고 돈을 지급함을 거부했다가, 산현 공안국으로 납치되었다. 나중에 리칭의 가족이 100위안을 내서야 리칭은 집으로 보내졌다.

2000년 12월 리칭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복사하러 갔다가 국가보안대대 인원에 의해 산현 공안국으로 납치되었다. 밤에 그녀는 또 산현 구치소로 납치되었다. 불법적으로 20일 이상 구금되었다. 게다가 영수증도 없는 상황에 리칭의 가족에게 4천 위안(한화 약 70만 5천 원)을 갈취한 후에야 리칭을 석방해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3년의 불법 징역형 선고받다

2001년 상반기 리칭은 두 차례의 박해를 받았다. 맨 처음에 리칭은 원래 직장인 싼타이(三台) 상점의 직원에 의해 현재 공안국에서 조직한 ‘전향’반으로 납치되었고, 직장의 직원들이 동행했다. 두 번째는, 국가보안대대의 쉬빙(徐兵), 치쥔저우(齊俊洲)는 리칭의 집에 가서 리칭이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지 못하도록 협박했다. 리칭이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부하자, 그들은 리칭의 집을 불법적으로 조사하여 몰수했다.

2001년 7월, 리칭은 파룬궁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갔다. 국가보안 요원은 리칭의 집으로 가서 교란하며 그녀의 행방을 캐물었다. 납치와 박해를 피하려고 리칭은 핍박에 못 이겨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 러칭(樂清)시의 옌당산(雁盪山) 지역으로 가서 유랑생활을 했다.

2001년 9월 12일, 리칭은 옌당산 산 위에서 대법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옌당산 파출소 인원에게 미행당해 파출소로 납치되었다. 나중에 또 러칭시 공안국의 사람이 리칭을 끌고 갔다. 리칭은 공안 인원에게 구타와 강제 자백을 강요받았다. 그 후 또 그들에게 모함당해 불법적으로 3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2년 봄, 리칭은 항저우 여성 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감옥의 입감대에서 리칭은 ‘수련 포기 보증서’를 쓰는 것을 거부했다. 자오(趙)라는 경찰이 그녀에 대해 체벌을 진행하고, 자정까지 일하고 새벽 1시쯤에야 잠자도록 강요했다. 리칭은 매일 과부하의 노동을 했다. 약 1개월 동안 리칭은 현기증과 끊임없이 구토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리칭은 줄곧 ‘전향’을 거부했다.

2004년 리칭은 집으로 돌아왔다. 리칭의 남편은 정직하고 본분을 지키는 사람으로, 여러 차례의 두려움 끝에 결국 각 방면의 압력을 견딜 수 없어 리칭이 불법 구금 중에 그녀와 이혼했다. 리칭의 원래 행복한 가정은 그녀가 자신의 신념을 견지한 이유로 중공 사당이 발기한 이번 탄압 박해를 당해 가정이 깨졌다.

불법적으로 6년 형을 선고받다

2009년 8월 20일, 당시 39세였던 리칭은 파룬궁 수련생의 집을 방문했는데, 당시 수련생의 집은 이미 비밀리에 감시되고 있었다. 그날, 청관(城關) 파출소의 한 여성 경찰은 쓰레기 비용을 거둬들이는 사람인 척 속임수를 써서 문을 열었다. 이어서 파출소와 국가보안의 한 무리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중 국가보안대대의 바오리후(包立虎), 치쥔저우 등은 리칭 그들 세 사람을 납치했다.

뒤이어 경찰은 또 불법으로 모든 사람의 집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리칭의 개인 물품—노트북 컴퓨터, 레이저 프린터, 컬러 잉크젯 프린터 3대, 절단기 2대, 호치키스 한 대, 레이저 팩스 프린터 한 대, 복사 용지 몇 봉지, 대법 서적 몇십 권, 대법 호신부, 약간의 진실 자료를 강탈했는데, 여태껏 돌려주지 않았다.

리칭은 현지 공안부서에 의해 모함을 받았고, 현지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2010 년 3월 10일, 리칭은 산둥 여자 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박해당했다. 막 여자 감옥에 도착하자 사오한 인원 왕샤오란(王曉然)은 리칭에게 “감옥 안에 물 감옥이 있는데, 당신을 물 감옥에 가두겠다. 그리고 당신을 때려죽인 후, 벽 위로 내던지겠다.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고 위협했다.

리칭이 ‘전향’을 거부한 이유로, 2010년 3월에는 솜바지와 솜옷을 입은 채로 사오한 인원과 기타 형사 죄수들은 교도관의 지시를 받고 강제로 리칭에게 바닥에 있는 널판지에서 잠자도록 했다. 감옥에서는 또 리칭의 수면권리를 박탈해, 매일 아주 늦게 잠자게 하고 아주 일찍 일어나게 했다. 그가 잠들었을 때, 수감자는 가끔 이불을 들어 올려 리칭이 연공했는지를 확인했다.

교도관 쉬위메이(許玉美)는 리칭을‘전향’시키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 이유로, 리칭에 대해 인격 모욕, 욕설을 퍼부었다. 리칭은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고 ‘전향’하지 않은 것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가족에게 전화할 권리도 박탈당했다.

리칭의 연로하신 어머니는 더는 중공의 반복적인 타격과 정신적 상해를 견딜 수 없게 되어 결국 2013년 3월에 사망했다. 이번 박해로 인해 리칭의 재결합한 혼인은 거듭 파탄되었다.

중공 장쩌민 집단은 파룬궁을 박해하고 모든 옳고 그름을 전도했다. 중국 각급 사법 기관은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노골적으로 법률을 적용하지 않았고, 경찰은 함부로 납치와 집안에 침입해 강탈을 진행했다. 심지어 공개적으로 재물을 갈취했다. 검찰관은 함부로 모함해 죄증과 죄명을 날조했고, 많은 판사도 정당한 법정에서 법을 왜곡해 범죄를 저질러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위반했다. 많은 파룬궁 수련생과 그 가족에게 큰 상해를 입히고 국가와 국민에게도 큰 재난을 초래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말하면, 모든 중국인은 모두 이번 무리한 박해의 피해자이다.

 

원문발표: 2021년 7월 10일
문장분류: 대륙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10/4279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