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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러산시 중쥔팡, 17년 6개월 억울한 옥살이 학대당해,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쓰촨 보도) 쓰촨(四川) 러산(樂山)시 첸웨이(犍為)현 68세인 중쥔팡(鐘俊芳)은 감옥 안에서 온갖 모욕∙학대∙고문을 당해 몸무게는 31kg으로 되고 백발이 성성했다. 2020년 2월 마침내 형기가 만기 돼 출소했는데, 감옥에서 직접 납치되어 도시에서 10여 리 떨어진 다년간 폐기됐던 양로원에 불법으로 연금당했다.

가족이 파출소로 마중하러 갔으나, 경찰은 모른다고 말했다. 가족이 계속 가서 석방을 요구한 후, 경찰은 비로소 그 외딴 양로원에 갇혔다고 말했다. 중쥔팡은 가족의 석방 요구로 돌아와 동생 집에 거주했다. ‘610’, 국가보안대장은 그녀가 첸웨이현을 떠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다만 첸웨이현에서 셋집에 거주하게 했다.

중공(중국 공산당) 인원은 여전히 그녀의 합법적인 권리를 박탈해, 본래 가져야 할 약 3천 위안(약 52만 원)의 퇴직연금이 아닌 6백 위안(약 10만4천 원)만 주었다. 중쥔팡은 관련 부서로 가서 퇴직연금의 공제 중지를 요구했다가, 첸웨이현 국가보안대대장 류융(劉勇)에게 한 차례 또 한 차례 수갑에 채워졌다. 어떤 때는 4~5시간, 7~8시간 채워졌다. 가장 길게는 연속 33시간 동안 채워졌다.

‘610’의 탕롄제(唐連傑), 국가보안대대장 류융(劉勇)이 여러 차례 경찰 한 무리를 데리고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진행한 상황에서, 중쥔팡은 심신에 극심한 상해를 입어, 결국 2021년 4월 13일 억울하게 사망했다.

중쥔팡은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견지해, 중공 및 그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22년 동안에 여러 차례 현지 ‘610’ 및 경찰 등 중공 인원의 납치를 당했고, 불법적으로 구치소, 마약 중독자 재활원에 감금당했으며, 비밀리에 구(區)와 향(鄉)의 파출소 등에 감금당했다. 그녀는 예전에 불법적으로 노동 교양처분 1년 6개월을 받았고, 불법 징역형을 3차례 선고받아 형기는 합해서 17년 6개월에 달했다. 감옥 수감 중에서 온갖 잔인무도한 학대를 당했다. 박해 중에서 10여 차례 혼미상태에 처했다.

2000년, 중쥔팡은 불법적 체포를 당해 2년간 노동 교양처분을 받았다. 난무쓰(楠木寺) 여자노동교양소에서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교도관과 죄수에게 체벌을 당했고 장기간 수면 박탈, 군대 자세로 세워두기 고문을 당했다. 교도관은 강제로 파룬궁 수련생에게 무엇을 하든지를 막론하고 “죄수 아무개, 무엇을 요구합니다.”라고 보고하는 말을 해야 했다. 만약 보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곧 징벌을 받아야 했다.

2003년 2월, 중쥔팡은 또 납치당했다. 그 후 법원에서 무고한 징역형 3년 6개월을 선고받아 청두(成都)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감금 박해당했다. 어느 한 번, 중쥔팡은 화장실로 가려고 경찰에게 “파룬궁 수련생 중쥔팡이 화장실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곧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갔는데, 교도관 다이(戴)○○와 멍야링(蒙婭玲)은 그녀가 도망간다고 무고해 말했다. 그리고 곧 그녀를 제방으로 끌고 가서 그녀에게 강제로 달리도록 핍박했다. 중쥔팡이 달리지 않자, 교도관은 곧 죄수를 핍박해 그녀를 달리게 했다. 두 사람은 한 사람이 잡아당기고 한 사람이 밀면서 달렸는데, 이로 인해 중쥔팡은 소변을 가리지 못해 바지 안에 눠 바지가 축축했다. 그 바오자들은 그녀가 바지에 소변본 것을 보고 그녀를 비웃었다. 그런 다음 그녀를 감방으로 끌고 돌아와 가둬 외츨을 허락하지 않고, 반찬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단지 밥 한두 끼만 주었을 뿐이다. 이렇게 10여 일 동안 중쥔팡을 박해했다.

2006년 8월, 중쥔팡은 집으로 돌아왔다. 3개월 후, 즉 2006년 11월 거듭 납치당했고 또 3년 6개월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뒤이어 그녀는 청두 여자감옥 제2감구에 불법 감금당해 늘 악인에게 욕설과 생활적으로 난처함을 당했다. 2009년 말, 중쥔팡은 침대 위에서 가부좌하고 연공하여 당직 경찰에게 모니터에 발견돼 사무실로 끌려갔다. 두 손은 창문 위에 채워져 하룻밤 동안 추위에 떨었다. 이튿날, 또 중쥔팡을 2층 울타리 위에 채웠다.

酷刑图:吊铐
고문 사진: 매달기 고문

2020년 6월, 중쥔팡은 억울한 형기가 만기 돼 집으로 돌아온 후, 퇴직연금을 공제 당한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 장사를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2010년 10월 3일 비로소 영업을 시작했다. 2011년 8월 10일 오후 10시경, 경찰 한 무리가 중쥔팡이 차린 복장 가게를 포위하고, ‘610’ 두목 뤄유강(羅尤剛), 정법위 서기 저우원화(周文華), 국가보안대대 교도원 왕융푸(王永富) 등은 한창 파룬궁 책을 읽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 여섯 명을 납치했다.

2012년 4월 22일, 중쥔팡은 불법적으로 8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아 청두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감금 박해당했다. 중쥔팡이 ‘전향’을 거부한 이유로, 감구에서는 여성 죄수 두 명을 지명 파견해 전임하여 감시했고, 늘 졸개 민한메이(閔含梅), 천룽(陳蓉), 주첸(祝倩), 쉬화(徐樺) 등 죄수에게 구타당했다. 어떤 때는 구타당해 입원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撞头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머리를 부딪치기

2017년 12월의 어느 하루, 감옥 측은 주동적으로 중쥔팡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면회하러 오도록 했다. 이전에 가족이 감옥으로 가서 그녀를 면회하려 했으나 감옥에서 일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번에는 오빠, 남동생이 서둘러 룽취안 감옥으로 갔는데, 단지 중쥔팡이 두 사람에게 부축돼 나오는 것을 보았다. 과거에 몸무게가 60kg이고 희고 풍만하던 중쥔팡은 박해당해 심각하게 변형되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어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 해도 30kg이 되었다. 가족은 석방해 집으로 돌아가 병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감옥 측은 “사람이 지금 아직 숨이 붙어 있으니 석방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2020년 2월 9일, 중쥔팡은 억울한 옥살이가 만기 됐다. 2월 14일 되어서야 첸웨이현 ‘610’의 요원은 그녀를 첸웨이현(중공 사당은, 반드시 현지 사법 직원이 마중해야 출소할 수 있다고 규정했음)으로 마중해 돌아왔다. 첸웨이현 ‘610’은 감옥에서 중쥔팡을 마중해 첸웨이로 돌아온 후 중쥔팡의 월급, 주택이나 대우를 해결하려 한다고 승낙했다. 그러나 오히려 직접 중쥔팡을 도시에서 10여 리 떨어진 산 아래 농촌 양로원으로 보내 불법적으로 연금했다. 게다가 중쥔팡이 본래 마땅히 받아야 할 3천 위안(한화 약 52만 원) 퇴직연금은 중공에 약탈당해 단지 6백 위안(한화 약 10만 원)만 주었다.

중쥔팡은 계속 첸웨이현 ‘610’, 국가보안 감시 등 박해당했고, 가족도 연좌 당했다. 2020년 12월 25일, 한 무리 남녀 국가보안이 그녀의 셋집에 불법적으로 들이닥쳐 강제로 그녀의 모든 대법 서적과 개인의 일부 재물을 강탈했으며, 중쥔팡을 납치해 8~9시간 감금했다. 동시에 그녀 조카딸 황팡칭(黃方青)을 납치해, 또 불법적으로 몇 시간 감금했다.

중쥔팡이 당한 많은 박해에 관해, 밍후이왕 문장 ‘합계 17년 6개월 억울한 징역형을 당한, 쓰촨 중쥔팡이 여전히 합법적인 권리를 박탈당해’, ‘쓰촨 중쥔팡이 3차 17년 6개월 억울한 징역형 선고받아’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3/4240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