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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파출소 소장이 변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한 이후 우리 지역 파출소 경찰이 자주 마을에 와서 파룬궁 수련생을 괴롭혔다. 나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굳게 믿고 동시에 실증하고 있었기에 파출소는 나를 주요 인물로 봤다.

2006년 어느 봄날 촌민위원회 간부가 사람을 보내 나를 촌민위원회 관청으로 불렀는데 알고 보니 또 파출소 경찰이 나를 찾은 것이었다.

모두 경찰 네 명이 왔다. 그중 한 젊은 경찰이 “어젯밤 읍내에 가셨지요?”하고 점잖게 물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다. “가지 않았습니다. 컴컴한데 읍내는 뭣 하러 갑니까?”라고 대답하자 “당신 자신이 무엇을 하러 간지도 모릅니까?”라고 했다. “나는 가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며 반문하기를 “당신은 내가 무얼 하러 간지 압니까? 당신이 말해보세요”라고 했다. 나는 읍내에서 무슨 일이 생겼으며 경찰이 나를 의심하는 거로 짐작했다. 나는 엄숙하게 젊은 경찰에게 말했다. “어젯밤 나를 봤으면 왜 그때 나를 체포하지 않고 오늘에야 사람을 동원해 차를 몰고 와서 나를 찾습니까?” 나는 황당해서 다시 말하기를 “당신이 어젯밤 나를 보고도 체포하지 않았다면 직무에 태만한 것이네요”라고 했다.

젊은 경찰이 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더니, 소장이 몹시 화를 내며 내게 소리쳤다. “오늘 당신을 체포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왜 나를 체포합니까? 까닭 없이 사람을 체포하면 당신은 법을 집행하면서 법을 위반하는 것이고 죄를 한층 크게 하는 겁니다.”고 경고했다. 소장은 이유가 불충분함을 알았는지, 머리를 긁적거리며 난처함에서 벗어날 기회를 찾으면서 “잘못을 범할지라도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차에 타세요”라고 했다. 나는 “타라면 타지요.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이런 찬밥신세도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차로 집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하며 소장의 태도가 갑자기 또 누그러졌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며 혼자 가겠다고 했다.

내가 집에 막 들어서자 시삼촌이 급히 와서는 “나 방금 장에서 돌아왔네. 읍내 시장 담장에 파룬궁이 쓴 5∼6장의 대자보가 붙었는데 많은 사람이 봤고 나도 봤다네. 듣자니 파출소가 파룬궁을 붙잡으려 한다고 하네.”라며 나를 걱정했다. 나는 시삼촌에게 “파출소에서 찾아왔었지요. 저도 이제 방금 마을로 돌아왔어요”라고 말했다.

며칠 후 읍내의 한 남자 수련생이 체포됐고 오래지 않아 불법 재판이 있었는데 3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1년 우리 진의 다른 남자 수련생 한 명도 대법과 사부님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려고 베이징에 갔다는 이유로 역시 불법 재판을 받았고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우리 진은 현 공안국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재해 지역으로 변했다. 파출소와 진(鎭) 그리고 촌민위원회에서는 각 마을로 사람을 자주 보내 파룬궁 수련생을 괴롭혔다. 사악한 형세와 험악한 시련에 부딪히자 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사부님의 신경문 학습을 통해 대법제자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하고, 사당의 거짓말을 폭로해야 하며 사람들이 파룬따파는 불법(佛法)이며 사람을 구하는 우주의 고덕대법(高德大法)임을 알게 해야 함을 깨닫게 됐다. 그래서 나는 친척과 친구들에게 진상 편지를 쓰려고 펜을 들었다.

2002년 진상을 모르는 한 친척이 내가 보낸 진상 편지를 공안국 경찰에게 갖다 바쳤다. 박해로 인해 나는 타향으로 떠돌아야 했다. 그러나 진상 편지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한 통 한 통 사람 구하는 편지를 사방팔방으로 보냈다. 친척과 친구에게 보내고, 향우, 동창, 정법위원회, 공안국과 파출소로 보냈다.

타향으로 떠돌아도 마음은 고향에 가 있었다. 나는 우리 마을을 담당하는 파출소장에게 자주 편지를 보내 파룬궁은 불가의 고덕대법이며 파룬궁 수련생은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임을 알려줬다. 절대로 좋은 사람을 박해해서는 안 되며 덕을 쌓고 선을 행해 자신과 가족을 이롭게 하고 자신에게도 퇴로를 남겨 둬야 하며 속죄양이 되지 말라고 했다. 선악유보(善惡有報)는 하늘의 이치로 좋은 사람이 돼야 하며, 수련인을 선하게 대하면 공덕이 무량하여 반드시 좋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그에게 쓴 많은 편지가 선을 권하는 내용이었는데 얼마나 많이 썼는지는 나도 정확히 기억할 수가 없다.

2003년 우리 지역의 협조인인 수련생 한 사람이 그 파출소장의 전갈을 특별히 내게 알려줬다. 시와 현 공안국이 나를 체포하려고 더욱 집중하고 있으니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련생이 말하기를 그 소장은 전갈이 확실하게 내게 전해질 수 있게 하려고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전갈을 보냈다고 했다. 한 사람은 속인이었고, 한 사람은 그곳 수련생인데 내가 재빨리 피할 수 있게 했다.

협조인은 이 소식을 듣고 그 소장은 경찰인데 이런 선심이 있기는 불가능할 거라고 반신반의했다.

과연 며칠 지나자 주민위원회가 집집이 조사하며 도시 전체를 조사했지만, 나는 사부님의 보호로 안전할 수 있었다.

2005년 나는 국보대대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날 이른 아침, 진 파출소장이 공안국 국보대대에 가서 나를 보겠다며 석방을 요구했다. 그는 말하기를 (사실은 소리쳤음) “그녀(나를 지칭)는 몸도 좋지 않은데 당신들이 그녀를 체포해 뭘 하겠다는 거요? 빨리 그녀를 석방하시오! 빨리 석방해요!”라고 했다.

그 뒤 나는 불법적인 처분으로 1년을 노동수용소에서 지냈고 2006년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이 내게 알려주기를 현지 경찰은 나를 노동수용소에 보내려고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맨 처음 집에 온 경찰은 2만 위안(약 343만 원)을 가져오면 나를 석방하겠다고 했고 두 번째로 온 사람은 1만 5천 위안(약 258만 원)이면 나를 석방하겠다고 했다. 당시 집에는 돈이 없었고 나는 노동수용소에 갇히게 됐다.

사정을 아는 한 관계자가 내게 말하기를 “우리 진에는 파룬궁 수련생이 많아 파출소장이 애쓰며 노력해도 좋은 소리를 못 듣고 항상 비평만 듣습니다. 소장은 여러 번 전출 신청을 했으나 그의 자리를 인계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파룬궁 일로 골치 아파합니다. 소장도 어찌할 수 없어 반년 병가를 신청했지요”라고 했다.

소장이 돌아와 출근한 이후로는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일이 더는 없었다. 어느 마을의 치안 보위위원회 주임이 마을 파룬궁 수련생을 여러 번 고발했으나 큰일도 작은 일로 됐고 작은 일로 변했다. 소장은 그 촌관(주임)을 질책하며 “당신은 배불리 먹으며 지내지요? 늙어가면서 일을 잘 처리하세요. 이후 당신은 멀리 가버리세요. 멀리 갈수록 더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그 뒤 이 소장이 재직하는 동안 우리 진의 수련생은 납치되거나 노동수용소에 가거나 형을 당한 사람이 없었다.

소장은 퇴직 후 구치소에서 일했다. 나의 이웃이 오토바이 면허가 없어 구류됐다. 소장은 그가 나의 이웃인지 알고 이웃에게 전화해 정황을 설명했다. 이웃은 소장의 도움으로 앞당겨 풀려났다.

소장이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는 것이 나는 매우 기쁘고 위안이 돼 이 글을 쓰게 됐다.

대역병에 직면하여 나는 중국의 모든 경찰이 이 소장처럼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고 자신의 좋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17/4214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