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볜췬롄, 탕산 지둥감옥의 박해로 사망 (사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허베이 보도) 허베이(河北)성 청더(承德)시 파룬궁(法輪功) 수련생 볜췬롄(邊群連)은 탕산(唐山) 지둥(冀東)감옥에서 박해당해 생명이 위급해 사경을 헤맸다. 결국, 2020년 8월 9일에 감옥에서 집으로 돌려 보내졌는데, 4일 만인 8월 12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边群连遗照'
볜췬롄(邊群連)이 생전에 찍은 사진

볜췬롄은 두 차례 불법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2005년에 납치돼 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2016년에 거듭 납치돼 6년의 징역형을 불법으로 선고받았다. 두 차례 모두 탕산 지둥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볜췬롄(남)은 1951년 12월에 출생했다. 1996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해 도덕이 승화되고,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웠다. 1999년 7월 20일에 중공(중국공산당)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한 후, 볜췬롄은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다가, 전향반에 불법으로 감금당해 2개월 동안 강제 세뇌를 당했다.

2005년 4월 18일, 청더(承德)시 국가보안 허스진(何世金, 정치위원), 류밍청(劉明成, 국가보안)을 우두머리로 한 부도덕한 경찰은 볜췬롄을 납치해 그를 모함했다. 볜췬롄은 8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탕산 지둥감옥에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매일 4명의 바오자(包夾, 수감 감시자)가 24시간 윤번으로 박해를 진행했는데, 어떠한 자유도 없었다.

2016년 7월 8일, 볜췬롄, 위다리(於大力), 장위환(姜玉環), 위하이룽(於海龍)은 청더(承德)현으로 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납치당했다. 위하이룽, 볜췬롄, 위다리는 청더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고, 장위환은 청더시 구치소로 옮겨져 불법 감금당했다. 볜췬롄은 구치소에서 구두창으로 따귀를 맞았고, 욕을 먹는 등 박해를 당했다.

2016년 12월 20일, 청더현 법원에서는 파룬궁수련생 볜췬롄, 위다리, 장위환, 위하이룽에 대해 불법적인 재판을 진행했는데, 왕푸(王富, 심판장)는 검찰원에게 공소장을 낭독하도록 요구하면서도 변호사의 몇 차례 발언은 중단시켰다. 이 때문에 위하이룽의 변호사 리중웨이(李中偉)는 더 이상 위하이룽을 위해 변호할 수 없다고 퇴정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법원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 변호사의 합법적 권리를 이행하지 못해, 당사자를 위해 변호할 수 없고, 변호사의 역할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휴정하고 합의한 후 재판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1월 5일에 계속 불법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판사는 여전히 왕푸였으며, 검찰원은 원래의 2명에서 2명의 검찰관을 추가했다. 법정 안팎에는 많은 특수경찰, 청더시 국가보안 및 청더현 국가보안 등 사복경찰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의 사람도 법정에 도착했다. 전체 재판과정에서 검찰관은 어떠한 합법적인 증명도 하지 못했다. 4명 변호사의 무죄 변호과정을 진행한 후, 이른바 ‘검찰관’으로 하여금 거듭 대답할 말이 없게 하여 검찰관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2월 15일, 청더현 공, 검, 법(공안, 검찰, 법원)의 관련 인원은 변호사가 파룬궁 수련생을 위해 진행한 무죄 변호 및 파룬궁 수련생이 그들에 대해 진상을 알림을 무시한 채,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불법으로 징역형을 선고했다. 볜췬롄, 위다리는 6년 형과 2만 위안의 벌금을 선고받았고, 위하이룽은 4년 형과 2만 위안의 벌금을 선고받았으며, 장위환은 3년 형과 2만 위안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볜췬롄은 거듭 탕산 지둥감옥에 불법으로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2020년 1월 초, 볜췬롄은 병원에서 직장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볜췬롄이 당한 박해는 조사해야 한다.

2020년 4월 13일 전후, 볜췬롄은 탕산시 셰허(協和) 병원에서 수술 치료를 받았는데, 감옥 측은 가족이 간호함을 허락하지 않았고, 단지 가족이 멀리에서 지켜보는 것만 허락했을 뿐이다. 퇴원한 후, 볜췬롄은 인정사정없이 감옥에 감금당했다.

2020년 8월 8일 저녁, 볜췬롄의 가족은 탕산 지둥감옥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는데, 볜췬롄을 집으로 돌려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8월 9일, 감옥의 한 대의 경찰차가 길을 인도하고 뒤에서 구급차가 따랐다. 차 안의 볜췬롄은 위 호스를 꽂고 있었는데 피골이 맞닿을 정도로 여위었다. 가도 사무소 사법 인원은 볜췬롄에 대해 사진을 찍은 후, 가도 및 사법 두 단위에서는 사람을 내보내는 절차를 밟은 후 볜췬롄을 가족에게 인도했다.

당시 볜췬롄은 고열이 있고, 자신의 친동생마저 알지 못했다. 가족은 박해를 당해 인사불성인 볜췬롄을 마중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볜췬롄은 이미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직장암이 이미 확산되었다.

집에서 가족과 짧은 나흘 동안을 보내고, 볜췬롄은 8월 12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원문발표: 2020년 8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19/4106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