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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장교 후다웨이가 장쩌민 고소 후 법원에 모함당해

[밍후이왕](밍후이왕통신원 지린보도) 창춘(長春)시 파룬궁수련생 후다웨이(胡大桅)는 2016년 12월 30일에 직장에 출근하는 기간에 지안(集安)시 공안국 국가보안과 창춘시 국가보안 및 웨이하이로(威海路) 파출소는 연합해 그를 납치했으며 그는 현재 지안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있다. 2017년 4월 14일, 가족과 변호사는 또 지안으로 와서 검찰원에서 사건 서류를 보았는데 얇은 몇 페이지나 되는 종이는 모두 장쩌민 고소에 대한 것이었다. 변호사는 법률 각도에서 질문했는데 검찰원은 답변을 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서류를 다 보자 검찰원에서는 곧바로 서류를 법원으로 보냈다.

후다웨이(胡大桅)

후다웨이는 본명이 후훙웨이(胡宏偉)이며, 랴오닝 하이청(海城)부대 장교다. 대열 안의 엘리트 모범으로 각 방면에서 비교적 우수했고 스포츠, 음악 창작과 문학 작품을 잘 써서 예전에 많은 표창을 받은 적이 있으며 부대의 명사수이기도 했다. 전역 후 모 예술단 단장을 맡았는데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했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후다웨이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것 때문에 여러 차례 사악한 장쩌민 집단에 의해 감금 박해를 당했고 두 차례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2005년 6월에는 랴오닝성 하이청시 공안국과 퉁화(通化)시 둥창(東昌) 공안국에 의해 납치돼 11년 불법 판결을 선고받아 지린성 쓰핑(四平) 감옥에 감금됐다가 2013년에 출소했다. 그 기간에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매달기 고문 및 죄수에게 구타당하는 등 시달림을 당해 심신은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박해 기간 아내는 아이와 후다웨이의 노모를 모시고 어렵게 10년 나날을 보냈다.

후다웨이는 원적이 지린성 퉁화시 지안시다. 2016년 12월 30일에 거듭 지안시 공안국 국가보안은 창춘시 국가보안 및 웨이하이로 파출소와 연합해 그가 창춘 구이린로(桂林路)의 직장에 출근하는 기간에 납치해 퉁화 지안시 구치소에 감금했다. 전 가족은 재차 충격을 받았다. 70여 세인 노모는 상심하고 비통해했으며, 수년간 아버지의 사랑이 부족한 아이와 가정을 지탱하던 아내는 모두 정신과 경제적으로 극심한 압력을 감당했다!

2017년 1월 18일 목요일, 후다웨이의 가족은 지안 국가보안대대로 가서 상황을 문의했는데, 이미 2017년 1월 17일에 후다웨이를 불법 체포했음을 알게 됐다. 체포문 위에는 구체적인 이유가 없었다. 가족이 문의해도 대답하지 못한 것은 장쩌민을 고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대략 일주일 전, 지안국가보안 후(胡) 중대장은 경찰 일행 5명을 거느리고 차를 몰고 창춘의 후다웨이의 거주지로 와서 그의 아내에게 후다웨이 일가가 장쩌민을 고소한 일을 확인했었음.] 담당자는 막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는 어린 경찰 유스웨이(尤思維)였다. 후 중대장은 이 사건의 책임자였으나 오히려 얼굴을 내밀지 않고 어린 경찰 유스웨이를 내세워 가족을 대처했다. 그리고 또 체포령 비준과 업무담당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못했다. 책임을 회피해 검찰원의 책임이라며 그들이 체포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가족은 또 검찰원으로 갔는데 검찰원 경비도 공안 경찰의 책임이라고 책임을 미루면서 책임자를 알려주지 않았다.

오후에 가족은 검찰관 천융리(陳永利)를 만났는데 경찰이 검찰원에 형법 300조 죄명을 제기해 체포령을 내리도록 요구했으며 검찰원에서 허락했음을 알게 됐다. 가족은 천융리에게 그가 법을 어겨 책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표명하자 그는 오히려 책임지겠다고 표명하며 상부에서 권력으로 진행한 강압을 거부하지 못함이 분명했다. 가족은 또 공안국으로 왔다. 유스웨이는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자 죄명은 공안에서 정한 것이고 체포령을 비준하도록 요구한 것 역시 그들이 제기한 것임을 시인했다. 가족은 일부 물품을 되찾았고 그에게 가정 상황과 파룬궁의 상황을 설명했는데 그는 매우 두려워하며 듣는 것을 거부했다. 유스웨이는 뜻밖에 무장경찰을 불러다가 가족의 신분을 검사했다. 가족이 신분증을 지니지 않았다고 강력히 설명한 후에야 마지못해 그만뒀다.

2월, 가족과 변호사는 또 후다웨이를 면회하러 갔다가 마침 국가보안이 막 후다웨이를 신문하고 아직 떠나지 않는 것을 보았다. 후 중대장과 유스웨이,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여경이 참여했다. 변호사가 면회를 끝내도 그들은 떠나지 않았다. 변호사는 그들과 인사하고 변호사 수속을 건넸는데, 그들은 감히 받지 못하며 얼굴을 한쪽으로 돌렸다. 동시에 변호사는 신문 중 그들이 후다웨이를 적극 유혹해 말을 하게 해서 더욱 많은 증거를 찾아 그를 가해하려 시도했음을 알게 됐다.

2017년 4월 14일, 가족과 변호사는 또 지안으로 왔는데 모함 사건은 이미 검찰원에 도착했다. 변호사는 사건 서류를 보았다. 몇 페이지의 얇은 종이었을 뿐 모두 장쩌민을 고소한 일을 둘러싼 것이었다. 변호사는 법률 각도에서 질문했으나 검찰원 인원은 말하지 않았다. 변호사가 서류를 전부 보자 검찰원은 곧 서류를 법원으로 보냈다. 가족은 검찰관 관칭타오(管淸濤)를 보았는데, 그는 단지 30여세 정도로 태도는 그래도 상냥했다. 그러나 파룬궁에 대해 알지 못했고 법률적으로도 파룬궁이 법을 위반하지 않았음을 몰랐다. 가족이 파룬궁은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표명하자, 그는 법에 의해 처리하려 하며 또 실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가족은 또 국가보안대대로 갔는데 유스웨이는 외출하고 없었다. 그래서 직접 위층으로 가서 후 중대장을 찾았는데 아래쪽 경찰은 가로막지 않았다. 가족은 가서 물품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그제야 현금 몇 천 위안이 사라지고 압수한 명세서 안에 없음을 알게 됐다. 어떤 여경의 표현은 매우 사악했다. 그녀는 위층까지 쫓아와 또 신분증을 확인한다는 명목으로 가해하려 했다가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역주: 책임부서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17년 4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7/4/18/3457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