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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어려운 99년 ‘7.20’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6년 반박해 중 또 하나의 ‘7.20’이 돌아왔다. 요즘 자꾸 99년 7.20 기간의 장면이 머리에 떠올라 펜을 들고 잊기 어려운 이 기억을 문장으로 남기기로 했다.

여전히 99년 ‘7.20’ 전 2개월, 즉 99년 5~6월부터 말해야겠다. 당시 아침 연공할 때 늘 경찰 몇이 경찰차를 타고 우리 연공장에 와서 우리와 함께 연공했다. 그들은 상급에서 파룬궁을 알아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수련생들은 경계심이 없었고 그들이 와서 연공하고 파룬궁의 상황을 알아보는 것을 매우 환영했고 열정적으로 그들에게 파룬궁 법리를 소개해줬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일을 할 때 먼저 타인을 생각하면 가정, 사회, 국가에 대해 백가지 이익이 있고 해로운 점은 하나도 없다는 이치 등을 알려줬다. 어떤 수련생은 대법 책도 주기도 했다.

어느 날 4,50대 경찰이 내게 “이 파룬궁은 정말로 대단해요!”라고 말하며 손으로 그의 뒷목을 툭툭 치면서 “이 경추 질환이 며칠 동안에 다 나았어요”라고 말했다. 나도 연공 전에 21년 동안 원인 불명의 열이 있어 국가급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파룬궁을 한 달 연마한 후 체온이 정상이 됐다는 체험을 그에게 알려줬고 동시에 이 신기한 효과들을 그들의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99년 7월 20일 아침, 나는 변함없이 연공장에 갔는데 멀리서부터 연공장이 텅 비어있고 연세가 비교적 많은 수련생 큰 언니 둘만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들은 나를 보자 말했다. “오늘 아침 전국에서 통일적으로 모든 파룬궁 연공장 보도원을 납치하고 체포했어요. 최근에 연공장에 와서 연공했던 경찰들은 보도원을 미행하고 어디에 사는지 알아보려고 했던 거예요.” 나는 놀라서 멍해졌다.

나는 생각했다. ‘파룬궁을 연마하기 전에 20여년 동안 ‘원인불명 열’의 고통 속에서 시달렸고 국가급 병원에 입원하고 치료했는데도 소용없었으며, 체력이 약하고 힘이 없는데다가 열이 날 때 추웠다 더웠다 해서 잠을 이룰 수 없어 늘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매일 고통 속에서 발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파룬궁 연마 후 질병과 작별했고 진정으로 온몸이 가벼운 것을 느꼈다. 수련생들이 나를 관심해주고 도와주고 위로해줬다 …… 보도원은 매일 힘들게 무료로 수련생들을 위해 노력하면서 돈 한 푼도 받지 않았다 …… 어찌 이렇게 좋은 사람을 납치할 수가 있는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마음과 답답한 심정을 갖고 집으로 돌아왔다. 두터운 병력기록부를 찾아내고 무거운 마음과 국가 영도에 대한 신임을 갖고 성 위원회 문앞에 와서 성 위원회 지도자를 만나 한 보통 시민이 직접 겪은 일과 마음속 말을 할 수 있길 기대했다. 각 시, 진, 현, 구 등 지방 수련생이 수시로 왔는데 그들도 지도자가 오길 바랐다.

그러나 온 것은 성 위원회 지도자가 아니었고 경찰차와 경찰 및 우리 모든 청원하는 파룬궁수련생을 둘러 싼 버스였다. 경찰이 우리를 지휘해 버스에 타라고 해서 우리는 지도자를 만나러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차는 의외로 교외 먼 곳으로 달렸고 황무지 같기도 하고 폐기된 축구장 같기도 한, 주위를 나무 막대기와 그물로 에워싼 곳으로 갔다. 이미 다 준비되고 배치해 놓았던 것이다. 여름철 가장 더운 날이었는데 우리는 하루 종일 땡볕에 서 있었다.

하루 동안 우리는 경찰에게 파룬궁의 신기한 효과를 말해줬고 파룬궁을 연마하려면 반드시 좋은 사람부터 돼야 한다는 이치를 알려줬다. 그들은 모두 찬성한다고 했고 상부에서 이렇게 명령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경찰은 또 그의 이모도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간염까지 전부 나았다고 말했다. 이후에 이 경찰은 나와 한 주택단지에 산다는 것을 알자 저녁에 그의 차에 타서 시내에 도착하면 내려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아직 중국공산당의 살인 본성을 똑똑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지도자를 만나 파룬궁 진상을 똑똑히 알려주려 했다. 저녁 8시쯤 버스가 왔는데 각 시, 진, 현, 구의 지명을 부르자 수련생들은 각자 버스에 올랐다. 나는 우리 지역으로 가는 버스에 탔는데 버스에 이미 일부 수련생이 있었다. 차에서 우리 연공장 수련생 셋을 만났는데 그(그녀)들은 더 먼 한 학교에 실려 갔었다고 말했다. 한 수련생 큰 언니가 무의식 중에 내 팔을 건드려 나는 본능적으로 떨면서 피하자 그녀는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하루 종일 땡볕에 쐬여 팔에 물집이 생겼다고 알려줬다(소매 없는 원피스를 입었음).

당시 우리는 아무런 지도자도 만나지 못했다. 버스는 우리를 구 체육관으로 보냈다가 또 각 주민센터로 보냈고 각 직장에서 데려가 감시하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16년 후인 오늘날, 장쩌민을 고소하는 열풍은 이미 막을 수 없고 정법(正法)의 역사는 이미 새로운 한 페이지를 펼쳤다. 우리는 은사님의 고생과 자비로운 구도를 더욱 체득했다.

문장발표: 2015년 7월 24일
문장분류: 온고명금(溫故明今)>7.20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7/24/3129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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