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안후이성 보도) 안후이(安徽)성 안칭(安慶)시 16명 파룬궁수련생이 최근 박해 장본인 장쩌민을 고소하는 ‘형사 고소장’을 최고 검찰원에 부쳤다. 장쩌민이 국민의 신앙을 박탈한 죄, 국민의 인신 자유를 박탈한 죄, 고의상해죄, 고문으로 강제 자백하게 한 죄 등 범죄행위를 고소했다.
피고 장쩌민은 1999년 6월 10일 개인 의지로 국가 헌법과 법률을 능가한 전문 파룬궁 박해를 위한 ‘610 사무실’을 설립했다. 그해 7월 20일, 온 나라 기구를 조종해 ‘진(眞)ㆍ선(善)ㆍ인(忍)’을 믿는 파룬궁수련생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육체를 소멸하고 경제를 파탄시켜라’, ‘때려죽여도 상관없고, 맞아 죽으면 자살로 치라’는 박해 정책을 폈다. 이 파룬궁수련생 중 14명은 여성인데 모두 각종 박해를 받았다.
우리화(여, 55)는 불법적으로 다섯 차례 가택 수색당했고 불법적으로 감금 2회, 행정 구류 1회, 형사 구류 2회, 노동교양 1회, 불법적으로 세뇌를 3회 받았으며 반복적인 괴롭힘으로 건강이 손상되고 정신적으로 극심한 타격을 받았다. 아울러 가족과 가정에 육신, 정신적인 상처와 경제적 손실을 보았으며 항상 공포 속에서 생활했다.
쓰수셴(여, 76, 배우)은 불법적으로 집을 여러 번 수색당하고 형사 구류 3회, 집행유예 3년 1회, 불법적으로 납치되어 세뇌반에 두 차례 들어갔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괴롭힘을 받았다. 특히 고소인의 남편은 주민위원회 사람이 집에 와 소란을 피워 충격으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결국 원한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박해는 고소인 가정에 미봉할 수 없는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타격을 주었으며 두려움 속에서 생활하게 했다.
먀오위팡(여 73세)은 불법 감금과 가택 수색당했다. 박해는 그녀 신체, 정신에 큰 상처를 주었다.
우후이란(여, 72세)은 불법적인 행정 구류 1회, 감금 1회, 불법 세뇌 3회를 받았고 집은 여러 차례 소란을 받았다. 박해는 그녀를 공포에 떨게 했고 인신 자유, 신앙자유를 잃게 했다.
왕나이윈(여, 81세, 주임 의사)은 납치되어 불법적으로 8회 감금되고(3차례는 탈주했음) 당국은 불법적으로 집이나 직장에 와서 모두 4차례 수색해 그녀 심신, 명예에 모두 큰 상처를 주었다.
우유파(80세, 퇴직 직원)는 불법 감금과 가택수색을 당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안위친(여, 84세, 전 안칭시 전공계기공장 간부)은 불법 감금과 가택수색을 당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거이(여, 78세)는 불법 감금과 가택수색을 당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톈구이샹(여, 67세)은 불법적으로 2차례 집을 수색당하고 23일 구류됐으며 파출소에서 9시간 정도 고문으로 강제 자백을 시켜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팡추이춘(여, 63세)은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당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받고 파괴되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위추잉(여, 53세)은 불법적으로 두 차례 수색당하고 두 차례 구류, 한 차례 세뇌받아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후춘환(여, 52세)은 불법적으로 1회 감금, 불법적으로 1회 가택 수색당했고 불법적으로 2회 세뇌받아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왕촨잉(여, 51세)은 불법적 5회 감금되고 불법적으로 2회 가택 수색당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천팡(여, 47세)은 불법적으로 4회 감금되고 3회 가택 수색당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천링리(여, 48세)는 불법적으로 감금되고 가택 수색당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다이졘샹(49세)은 불법적으로 감금되고 노동교양 박해를 받았다.
최근 몇 해 동안 이런 파룬궁수련생들을 직접 박해한 사람은 현지 파출소 경찰, 국보(國保: 610 산하의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공안 부서), 경찰, 지역사회 인원, 직장 등이지만 그들은 모두 장쩌민의 폭압에 굴복해 생계, 승진 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양심을 어기고 박해에 참여한 것으로, 수련생들은 지금은 장쩌민을 고소 대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장쩌민이 이번 박해를 일으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장쩌민을 고소하면 그의 협박, 이익에 대한 유혹 때문에 박해에 참여한 사람에게 회개할 기회를 줄 수 있다. 사실 그들도 이번 박해의 피해자이고 희생양이다.
부록: 파룬궁수련생이 장쩌민을 고소하는 사실과 이유:
우리화(吳儷華)가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1998년 10월부터 나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수련하기 전에 위궤양, 피부병, 자궁근종, 편두통, 심한 불면증, 관절염 등 여러 가지 병이 있었는데 한동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병이 잇따라 사라졌다. 그 후부터 온몸이 병 없이 가뿐했으며 아울러 사회의 좋은 사람이 되려고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시시각각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으며 매일 행복하고 유쾌하게 생활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발광적으로 대법을 박해하고 선전기구를 이용해 대법을 모독하고 대법 사부님을 모독할 때 고소인은 2000년 5월 상순(구체적인 날짜는 잘 기억나지 않음) 베이징에 탄원하러 갔다가 베이징 주재 안칭 사무처 인원에게 납치돼 지하실에 이틀 감금된 후 안칭시 화중루 파출소 경찰 및 광룽 주민센터 인원이 데리고 가서 바로 구치소에서 행정 구류시켰다. (아무 절차가 없었음) 당일 파출소는 주민 센터위원회와 함께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했다.
2000년 12월 어느 야밤(1시 30분경)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려 열고 보니 또 관할구역 파출소 지도원과 경찰이 와서 수색했다. 정말 소란스럽고 불안해 가족은 아주 당황했다.
2001년 3월 관할구역 파출소는 주민센터와 함께 불법적으로 나를 세뇌반에 납치해 가 불법적으로 일주일 감금해 매일 강제로 파룬궁을 모독하는 동영상을 보게 했다.
2001년 12월 21일 수련생이 집에 놀러 왔다가 잉장분국, 관할구역 파출소 6명이 불법적으로 집에 뛰어들어와 수련생을 납치하고 집을 수색했다.
2001년 12월 26일 고소인은 재차 천안문에 가서 현수막을 걸고 억울함을 하소연해 베이징 경찰은 불법적으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찬 후 천안문 파출소로 납치해 갔다가 밤에 다른 파출소로 가는 도중에 경찰에게 전기충격을 당하고 파출소에(파출소 이름은 기억나지 않음) 간 후 남자 경찰 6명이 번갈아 가며 각종 수단으로 3박 3일 고문해 고소인은 얼굴이 퍼렇게 되고 부었으며 한 번 까무러쳤다. 고소인이 때린 경찰에게 누가 당신들을 지시해 이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장(江) 할아버지가 하라고 했다.”면서 “때려죽이면 자살로 간주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아주 놀랐다. 3일 후 고소인은 파룬궁 전향 베이징 기지에 끌려가 세뇌받았으며 12월 30일 또 불법적으로 베이징 구치소에 이틀 감금됐다.
2002년 1월 2일 안칭시 잉장분국은 나를 데리고 와서 또 불법적으로 형사 구류했다. 집에 돌아온 후 보름도 되지 않은 1월 26일쯤 잉장분국, 관할구역 파출소 일행 7~8명 경찰은 불법적으로 담을 넘어 방에 들어와 불법적으로 납치하려 했다. 급한 김에 고소인은 건물서 뛰어나려 도망쳐 박해를 더 받는 것을 피하려고 밖에서 유랑했다. 14개월 후인 2003년 3월의 어느 날 셋집에서 또 관할구역 파출소 경찰로부터 납치됐으며 집을 수색당하고 당일 밤 화이닝현 구치소에 감금됐으며 이튿날 불법적으로 성(省) 여자 노동교양소에 보내졌다. 노동교양소에서 강제로 노동하고 세뇌받아야 했다. 노동교양소에서 집에 돌아온 후 잉장구 정치법률위원회, 광룽 주민센터는 매일 집에 와 소란을 피우고 고소인을 협박해 고소인 가족은 편한 날이 없었다.
2014년 3월 13일 밖에서 파룬궁이 박해받은 진상을 알리다 110 순찰 경찰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됐다. 그들은 나를 런민루 파출소에 넘겨 당일 밤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형사 구류했다. 14일 오후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하고 2014년 4월 14일 런민루 파출소 경찰은 고소인을 집으로 데려다준다고 속이고 불법적으로 세뇌반에 보내 14일 감금했다. 집에 돌아온 후 잉장분국 국보대대, 광룽 주민센터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공갈, 협박하고 고소인에게 소란을 피워 고소인과 가족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었다.
10여 년 동안 무고하게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당하고, 납치되고, 불법적으로 감금, 노동교양을 받아 고소인은 완전히 인신 자유를 잃었으며 심신에 큰 상처를 입었고 가정에 경제적 손실을 보아 가족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심한 충격과 상처를 입었다. 남편은 장기간 공포와 고압 속에서 생활해 체중이 원래 90kg에서 60kg으로 줄었으며 당뇨병이 생겼는데 지금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쓰수셴(斯淑嫻)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나는 95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했다. 수련하기 전에 마작하기 좋아했고 담배를 피웠으며 명리를 추구하여 결국 신체가 엉망이 되어 각종 만성 질환에 걸렸다. 수련한 후 즉시 이런 나쁜 습관을 고치고 명리를 담담하게 보았으며 직장에서나 가정생활에서 모두 파룬궁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처사해 1개월도 되지 않아 신체는 건강을 회복해 각종 질환이 사라졌으며 매일 행복하고 유쾌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발광적으로 일으킨 후부터 고소인은 잇달아 주민센터, 파출소, 공안국, 610 등 기구의 각종 소란과 박해를 받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0년 초(구체적인 시간은 똑똑히 기억나지 않음), 수련생들과 함께 법공부(파룬궁 서적)를 했는데 잉장분국은 쐉징 파출소 경찰과 함께 불법적으로 나를 납치하고 형사 구류했으며 집을 수색했다. 2000년(어느 달, 날짜는 똑똑히 기억나지 않음) 군중에게 파룬궁이 박해받은 진상을 알리다가 또 불법 납치되어 형사 구류됐으며 집을 수색당했다.
2001년 2월 무고하게 잉장분국에 불법적으로 납치됐으며 형사 구류됐다. 1개월 후 또 정치법률위원회는 강제로 세뇌반에 납치해 갔다. 세뇌반에서 매일 강제로 파룬궁을 모독하는 동영상을 봐야 했으며 불법적으로 일주일 감금된 후에야 풀려났다.
2003년 3월 14일 현지에서 유랑하던 파룬궁수련생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시 공안국은 다관 분국 화팅 파출소를 사주해 불법적으로 나를 납치하게 하고 형사 구류시켰다. 불법적으로 6개월 감금된 후 또 불법적으로 3년형을 판결받고 3년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007년 하순(구체적인 날짜는 똑똑히 기억나지 않음) 재차 관할구역 주민센터, 파출소는 이유 없이 나를 세뇌반에 납치했다.
박해가 시작된 후 파룬궁을 믿었다는 이유로 각종 박해를 받아 고소인은 줄곧 고압 속에서 생활했다.
특히 명절이 되거나 중국공산당의 특별한 날이면 정치법률위원회 610은 주민센터, 파출소에 명령해 집에 가 소란피우게 했으며 24시간 고소인을 미행하고 행방을 감시해 고소인은 완전히 인신 자유를 잃었다. 아울러 심신에 엄중한 충격과 상처를 받았다.
먀오위팡(繆玉芳)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나는 1996년 4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선인에 따라 심성을 수련하고 마음을 선량하게 닦으며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사람과 모순이 발생하면 인내할 줄 알고 양보하며 안으로 자신의 잘못을 찾게 해 가정이 더 화목해졌으며 본인과 주위 친구들은 대법이 나에게 준 복을 보았다.
파룬궁은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지만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심에서 거리낌 없이 파룬궁 박해를 발동했다. 다음은 피고소인이 고소인을 박해한 범죄 사실이다.
2000년 3월 22일 법에 따라 베이징에 탄원하러 갔다. 민원처리 사무실 문에서 기다리다 들어가지도 못하고 경찰차로 천안문 파출소로 끌려간 후 주베이징 안칭 사무처에 보내져 불법적으로 10일 구금되고 링후 파출소, 궁자오 보위과에서 안칭으로 데리러 왔으며 벌금 5천 위안을 내게 했다. 이후에 벌금 영수증을 달라고 해서 3천 위안을 돌려받았다.
2001년 4월 다관구 국보는 집에 뛰어들어와 나를 납치하고 파출소에 1박 2일 감금하고 길가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현수막 건 일을 캐물었다.
2001년 5~6월 안칭 마산 여관에 세뇌반을 조직하고 나를 불법적으로 약 20일 감금하고 매일 강제로 대법을 모독하는 동영상을 보게 했다.
2005년 10월 안칭 610 톈샤량창 여관에 세뇌반을 조직하고 나를 재차 불법 감금하고 37일 세뇌했다.
2009년 7월 다난먼 파출소 경찰이 우리 집에 와서 재차 집을 수색하고 나를 납치해 안칭 제1구치소에 1개월 감금했다.
우후이란(吳會蘭)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나는 1998년 10월 13일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 전에 식도암, 위출혈과 기타 만성질환이 있었다. 파룬궁을 일주일 수련한 후 기적이 나타났다. 각종 치료하기 어려운 병들이 모두 사라지고 몸에 질병 없이 가뿐해졌으며 가정에 무한한 즐거움을 주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이 파룬궁을 발광적으로 박해한 후 고소인은 박해 대상으로 되어 조용하게 생활하지 못했다.
2001년 3월 불법적으로 세뇌반에 잡혀갔으며 2001년 12월 26일 베이징 천안문에 가서 현수막을 걸고 억울함을 하소연해 베이징 경찰은 불법적으로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천안문 파출소에 납치해갔다. 밤에 또 다른 파출소로(이름은 기억나지 않음) 데려갔는데 몇몇 경찰은 고소인의 겉옷을 전부 벗겨 속옷만 남기고 밖으로 밀어내 얼게 했다(실외 영하 8도). 이튿날 불법적으로 베이징 구치소에 감금됐으며 2002년 1월 2일 안칭시 잉장분국 경찰이 데리러 왔으며 불법적으로 행정 구류시키고 벌금 2천 위안(약 36만 원)을 냈다.
2002년 2월(정월 6일) 수광로 파출소 경찰은 주민센터 인원과 함께 나를 납치해 세뇌반에 넣었고 그해 8월 어느 날 또 한 번 관할구역 파출소 경찰이 불법적으로 납치해 세뇌반에 넣었다. 이 몇 차례 세뇌에서 모두 파룬궁을 모독하는 동영상을 보게 하고 강제로 파룬궁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게 해 고소인에게 거대한 정신적인 상처를 주었다.
의사 왕나이윈(王乃蘊)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1996년 7월부터 나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여 진선인에 따라 심성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항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모순에 부딪히면 자신을 찾아 가정이 화목하고(우리 집은 이미 4세대가 모여 산다) 친구 이웃 사이가 우호적이고 내가 돌보는 대상(환자)은 나에게 아주 만족해했으며 끊임없이 많은 친구가 나를 찾아와 병을 보았다. 아울러 나의 심신도 정화되고 향상됐다. 원래 관상동맥경화증, 폐결핵, 관절염, 장염 등 많은 질병은 치료하지 않고 나았다. 나는 이미 아주 노인이지만 신체가 곧고 얼굴이 불그레하며 세 정거장 되는 직장을 도보로 다니며 온종일 출근해 진료한다. 이것은 모두 내가 파룬따파 수련을 견지해 나 개인, 가정, 사회에 가져다준 복이다.
하지만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심 때문에 나라와 인민에게 재앙을 끼치는 선량한 민중을 진압하는 파룬궁 박해 운동을 발동했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치며 이루다 말할 수 없다. 다음은 고소당한 사람이 나를 박해한 범죄 사실이다.
1999년 7월 22일 나는 성 소재지 허페이 민원처리 사무실에 가서 진상 상황을 반영하러 갔다가 쐉징싱제 파출소(나의 호구 소재지)에서 딸을 내 거처로 데리고 가게 해서 수색한 후 모든 대법 서적을 빼앗아 가고 자료와 사부님의 초상을 빼앗아 갔다.
2001년 1월 23일, 즉 그믐날 오전 8시쯤 안칭시 공안국 잉장분국 경찰 4~5명이 우리 집에 와 수색하고 재차 대법 서적 자료 등을 빼앗아 가고 나를 잉장분국에 불법적으로 납치해 심문했다. 새해 설날 새벽 1, 2시가 돼서야 내 아들딸이 그의 집에 데리고 가 거주 감시했다. (나는 원래 독거했음)
2001년 3~4월 잉장구 경찰은 우리 진료소에 왔다. 당시 나는 환자를 진찰하던 중이었는데 나를 속여 세뇌반에 데려갔다. 세뇌반은 전 마산 여관에 설치했으며 나를 불법적으로 4일 감금하고 집에 돌려보냈다.
2002년 5월 잉장구 610은 직장과 주민센터 인원과 함께 약 10여 명이 나를 아침 출근하기 전에 세뇌반에 보내려 했다. 나는 나를 납치해 차에 태우려고 할 때 도망쳤다.
2003년 5~6월, 잉장구 610은 우리 직장 및 주민센터 사람 약 4~5명과 함께 내가 출근하고 있는 진료소에서 기다렸다가 나를 세뇌반에 가서 보고를 들으라고 했다. 내가 퇴근하는 길에 또 7~8명이 와서 앞뒤에 막고 밀어서 억지로 나를 그들과 함께 가야 한다고 명령했다. 나는 시내 전 공회(工會) 문 앞에 갔을 때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둘러싼 군중이 비난해서야 그들은 흩어졌는데 그때는 날이 이미 저물어 마지막에 그들은 내 아들을 찾아 보증하고서야 끝을 보았다.
2004년 6월 쐉징제 파출소는 내가 출근하기 전에 호구를 검사하는 사람이라고 거짓말로 나를 속였지만 내가 문밖으로 거절했다. 하지만 내가 출근하는 길에 나에게 파출소로 가자고 명했다. 나는 엄숙한 말로 질문하고 큰소리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많은 군중이 둘러싸서야 나는 또 한 번 도망칠 수 있었다.
2004년 9월 아들(본시 공안국 경찰)에게 나를 시 세뇌반에 보내라고 명령했다. 세뇌반은 원 검찰원 로비에 있으며 나를 불법적으로 1달 가까이 감금했다. 밤낮 나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었고 세뇌로 강제 전향하려 했다.
2005년 8월 24일 시 공안국은 잉장분국과 함께 나의 사무실(외래 환자 진찰실)에 와서 수색하고 대법 서적과 호신부 몇 장을 빼앗아 가고 나를 불법적으로 로펑 파출소에 붙잡아 갔다. 환자 남편이 무고한 것이라면서 종일 심문한 후 2,000위안의 보증금을 내고 아들딸에게 나를 집으로 데려가게 했다. 동시에 내 거처를 수색했다.
그 후 아무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소재한 외래 환자 진찰실을 압류했다. 이후에 외래 환자 진찰실 책임자가 음식을 대접하고 여러모로 사정해서야 그만두었다. 그 후부터 병을 진단하고 치료할 내 권리를 박탈당했다. 2006년 3월에 이르러 많은 환자가 기다려서야 나는 일할 권리를 회복했다.
2005년 9월 시 공안국과 잉장분국 5~6명 경찰은 나를 또 한 번 여관에 납치해 완전히 봉쇄하고 밤낮 나를 지켰으며 강제로 세뇌하고 전향하려 했다. 연말이 되어서야 집에 돌려보냈다.
우유파(吳友發) 노인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이전에 나는 삼차 신경통이 있었다. 참기 어려운 격렬한 통증은 정말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못할 지경이다. 당시 전국 각 대도시에서 치료해봤지만 다 낫지 않았다. 마지막에 상하이에 가서 수술해 치료했다. 당시는 나았지만 5년도 되지 않아 재발했다. 병원에 다시 가니 대뇌는 두 번 수술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면서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온 집 식구는 다 아주 조급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참기 어려운 통증과 가족의 부담으로 나는 아예 집 떠나 자살할 생각을 했는데 아내가 알고 꿇어앉아 빌고 온 가족이 다 나에게 가지 말라고 빌었다. 나는 가지 않았지만 매일 거대한 고통 속에서 생활했다.
98년 어느 날 딸이 ‘전법륜’을 가져와 나에게 보라고 했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보고 병이 나았다고 딸이 말해 나는 당시 시험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마침 우리 아파트 아래에 연공 장소가 있었는데 매일 아주 많은 사람이 연공했다. 나는 연공 장소에 가서 연공을 했다. 약 1개월이 되지 않은 어느 날, 나는 아내와 함께 밖에 나갔는데 아들의 가구를 맞추러 가는 일로 깜박 잊고 약을 갖고 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는 삼차신경통이 2시간마다 한 번씩 아팠는데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공장에서 거의 4시간 기다렸는데도 아프지 않았다. 나는 기뻐하며 아내에게 나의 삼차신경통이 나았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는 약을 먹지 않았고 온 가족도 아주 기뻐했다. 아들은 일부러 외지에서 집에 와 사부님에게 절하며 말했다. “대사님께서 저의 아버지 병을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후부터 진정하게 온몸에 병 없이 가뿐한 상태를 느꼈다.
온 가족이 모두 내가 이렇게 좋은 공법을 얻었다고 기뻐할 때 1999년 7월 20일 피고소인 장쩌민이 소인배의 질투 때문에 파룬궁 박해를 발동했다. 당시 나와 많은 수련생은 모두 아주 놀랐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못하게 할까? 나는 7월 24일 허페이에 청원하러 갔지만, 허페이에 가보니 먼저 간 수련생들이 다 붙잡혔다. 나는 청원을 못 하게 한 것을 보고 집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 직장 사람은 공안국과 함께 우리 집에 와 집에 있던 대법 책을 다 빼앗아 갔다. 이 기간 잉장 공안은 우리 집을 두 번 수색했다. 구체적인 시간은 아마 99년 8~9월인 것 같다.
나는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베이징 민원처리 사무실에 가 우리는 세 가지 요구했다. 1. 우리 사부님을 모독하는 것을 중지하라. 2. 대법 서적을 합법적으로 출판할 수 있게 허락하라. 3. 붙잡힌 수련생을 석방하라. 결국, 아무 대답이 없었으며 그들은 우리를 억류하고 이후에 주베이징 성(省) 사무실 사람이 우리를 베이징 주재 사무실로데려가 지하실에 감금하고 박해했다. 매일 밥 한 그릇을 주고 마실 물을 주지 않았다. 지하실에 이틀 불법적으로 감금된 후 안칭시 잉장구 공안 분국에서 사람이 와서 나를 안칭으로 데리고 갔다. 잉장 공안 분국은 불법적으로 나를 15일 구류했다. 구류 기간 직장 상사가 구치소에 와서 나에게 그들과 잉장구 파출소 사람이 베이징에 가서 나를 찾은 모든 비용을 나에게 지불하라고 했다. 모두 2천 위안이라면서 나에게 차용증을 쓰고 월급에서 공제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썼다.
이후에 나는 불법적으로 세뇌반에 감금됐으며 경찰이 여러 번 집에 와 소란을 피웠다.
최근 몇 해간 나를 박해한 파출소 경찰, 국보 경찰들은 모두 장쩌민의 압력에 굴복해 생계, 승진 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양심을 어기고 선량한 사람을 박해했다. 그들이 범한 죄는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지금 나는 장쩌민만 고소 대상으로 삼겠다. 장쩌민은 이번 박해를 발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쩌민만 고소하는 것은 그중 회개할 수 있는 사람에게 희망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실 그들도 이번 박해의 피해자이고 희생양이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 역시 그들을 위해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장쩌민은 많은 사람이 죄를 짓게 한 주범이다.
안위친(安玉琴, 여, 84)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나는 1997년 7월에 대법을 수련했다. 18년 동안의 수련을 통해 심신에 아주 큰 변화가 있었다. 파룬궁은 진선인에 따라 수련하고 마음을 닦아 선량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될 것인지 알게 됐다. 신체의 모든 병, 예를 들면 위장병, 황달 등이 모두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졌다. 18년 동안 약을 먹지 않았고 주사를 맞지 않았으며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 신체가 건강한 것은 사부님께서 전하신 대법이 있으므로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고소된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심 때문에 파룬궁 박해를 발동했다. 수많은 대법 수련자가어느 정도 박해받았다. 죽고 불구가 된 대법 수련생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번 박해는 중국에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매일 아직도 많은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적으로 붙잡히고 불법적으로 판결받고 생체장기적출을 당하고 있다. 이는 모두 장쩌민이 지은 죄악이다.
다음은 고소인이 그 기간 박해받은 사실이다.
2007년 4월 15일 내가 집에 있는데 갑자기 경찰 5~6명이 우리 집에 뛰어들어 와 두말없이 집을 수색했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묻자 그들은 “당신이 모를 수 있소?”라고 말하고 강제로 수색해 대법 책 약 20여 권(종이 박스에 넣은 것)을 빼앗아 가고 나를 강제로 런민루 파출소에 데리고 가서 책이 어디에서 났느냐고 물었다. 내가 서점에서 산 것이라고 말했지만, 불법적으로 나를 파출소에 5~6시간 가두고 집에 돌려보냈다. 나의 인신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2007년 4월 26일 안칭시 공안국 잉장분국은 거주 감시라는 불법적인 결정서[잉장 형감 (2007) 007호]를 끊었다.
2008년 1월 7일 아침 내가 궈훠제의 한 가게에서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 사복 경찰 2명이 미행해 강제로 다난먼 파출소로 끌려가 불법 구금됐다. 이 기간 여경이 내 몸을 수색하려 했는데 내가 강력하게 거절해 하지 않았다. 이후에 내 아들에게 전화하고 또 우리 집에 가 불법적으로 수색해 대법 경문과 밍후이주간 등을 빼앗아 갔다. 출처를 캐물으면서 진일보 다른 수련생을 박해하려 했지만 내가 말하지 않자 나를 잉장분국에 데리고 가서 국보 대대에서 캐물었다. 밤 9시(점심은 아들이 밥을 보내왔음)가 되어서야 출처를 캐물을 수 없어 아들에게 나를 집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인적 보증하는[잉궁바오쯔(迎公保字) (008) 002호] 것이라면서 보증금 5천 위안을 내라고 했다. 1년 후 아들이 다난먼 파출소에 가 환급 절차를 밟을 때 4천 위안만 환급받고 환급해 주지 않은 1천 위안은 아무 영수증도 주지 않았다.
이 두 차례 납치와 불법적인 가택 수색으로 가족은 거대한 정신적 압력을 받았다.
거이(葛毅, 여, 78세)가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나는 1995년에 파룬궁 수련에 들어섰다. 연공하기 전에 몸에 여러 가지 병이 있었다. 고혈압, 심장병, 관절염, 메니에르병 등이 파룬궁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부 사라져 진정하게 온몸에 질병이 없이 가뿐한 상태를 체험했다. 파룬궁은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심성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심신에 수혜를 입었고 가정이 행복하고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4년 후인 1999년 7월 20일 정세가 돌변했다.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로 나라와 국민에게 재앙을 주는 선량한 민중을 진압하는 파룬궁 박해 운동을 발동했다. 나는 이 때문에 좋은 수련 환경을 잃었다. 온 천하를 뒤덮을 듯 거짓과 불법적인 진압에 공민의 신앙자유를 위해, 파룬궁에 대한 공정한 처리를 위해 나는 2000년 3월 22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베이징 싼스리허(차오양구) 민원처리 사무실 대문 입구에서 기다렸는데 경찰에게 납치돼 베이징주재 안후이성 사무처에 불법적으로 10일 구금된 후 안칭 공안 분국과 전 직장 사람이 나를 데리고 현지 석유화공파출소에 가서 나를 집에 가지 못하게 하고 청원하러 가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한 후에야 나를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집에 돌아온 후 여러 방면의 감시를 받았다. 이 때문에 가족은 거대한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 동시에 우리 전 직장은 베이징 공안에 1만 위안의 소위 사람을 데려가기 위한 비용을 냈다.
2001년 4월 우리 집에 갑자기 불법적으로 경찰이 뛰어들어와 나를 납치하고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한 후 경찰차에 압송돼 다관구 국보대대에서 심문받았다. 나에게 육교에 ‘파룬따파하오’라는 현수막을 건 일을 캐물었는데 내가 말하지 않아 야밤까지 감금한 후 집으로 가게 했다.
톈구이샹(田桂香)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나는 97년 5월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수련하기 전 내 건강 상태는 최저점에 이르러 머리부터 발끝까지 13가지 증상이 있어 시시각각 고통에서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해 여러 번 죽을 생각을 했지만, 그때마다 아이가 아직 어린 데다 남편 공장이 파산되어 직업을 잃었으니 내가 그들을 떠난다면 그들도 아주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버티자고 생각했다. 그때는 45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온 얼굴에 주름이고 눈에 정기가 없었으며 누렇고 말랐고 늙고 기운이 없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 모양이 됐느냐며 놀랐다. 49살 때 나는 대법을 얻는 행운을 가졌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도 모르게 온갖 질환이 없어졌다. 3개월 수련하니 체중이 40에서 57kg으로 늘었으며 그때부터 난 괴롭지 않았고 가족도 연루되지 않았으며 의료비도 절약했다. 정말 백 가지 이로움만 있지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나에게 돈 한 푼 달라고 하지 않으셨고 진선인 대법을 우리에게 전하셔 우리가 대법에 따라 심성을 수련하고 점점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셨다. 우리는 법을 위반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으며 우리 행위는 모두 합법적이다.
고소된 장쩌민은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는 파룬궁을 고려하지 않고 소인배의 질투심 때문에 1999년 7월, 파룬궁 박해를 거리낌 없이 발동했다. 다음은 피고소인이 고소인을 박해한 범죄 사실이다.
2006년 6월 20일 안칭시 공안국, 다관 분국 또 파출소 경찰 6명이 우리 집에 뛰어들어와 파출소에 가서 한 가지 문제를 물어보고 잠시 후면 돌아올 수 있다고 속였다. 결국, 나를 분국에 데리고 간 후 그들은 또 우리 집에 돌아가 불법적으로 수색하고 대법 책을 빼앗아 갔다. 마지막에 나는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23일 감금됐다. 그 기간 몇 번이나 다른 수련생을 말하라고 위협했다. 말하지 않으면 현 구치소에 보내거나 판결할 것이라면서 판결해도 똑똑히 말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법을 위반한 일을 하지 않았고 수련생도 법을 어긴 일을 하지 않았는데 나에게 뭘 말하라는 것인가?
한번은 남편과 아들에게 그들을 협력해 나에게 압력을 가하라고 했다. 남편은 나에게 절을 하겠다고 했고 아들은 머리를 철근 가드레일에 박고 또 창문에 박아 유리가 깨지고 머리도 베어져 우리 온 집은 조용할 수 없었고 피해를 깊게 입었다.
2009년 6월 10일 안칭시 공안국, 잉장분국, 다난먼 파출소에서 사람들이함께 와 먼저 한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서 내 아들 이름을 불렀다. 나는 아들 동료나 동창인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단번에 5~6명이 뛰어들어와 나에게 파출소로 가자고 했다. 여경이 나를 파출소로 데리고 가고 몇 명은 집을 수색하고 대법 책을 전부 빼앗아 갔다. 파출소에서 9시간 좌우 자백하라고 강요하고 마지막에 거주 감시 결정서를 주었다. 일 처리 직원이 나를 위협했다. “문을 나서지 마라. 장 보는 일은 당신 가족에게 하라고 하고 마음대로 밖에 나가서는 안 된다.” 왜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을 그들은 두려워할까? 이 모든 것은 장쩌민이 불법적으로 박해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팡추이춘(方翠春, 여, 63세)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1997년 10월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짧은 몇 달 동안 신체에 아주 큰 변화가 발생했다. 원래 신체에 아주 많은 병증이 있었는데 연공함에 따라 전부 사라져 진정하게 온몸에 병 없이 가뿐한 상태를 체험했다. 동시에 진선인 표준에 따라 시시각각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해 사회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심 때문에 나라와 국민에게 재앙을 주는 선량한 민중을 진압하는 파룬궁 박해 운동을 발동했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치고 이루다 쓸 수 없다. 다음은 피고소인이 나를 박해한 범죄 사실이다.
2001년 정월 15일 집에서 저녁에 정월 보름을 쇠려고 준비하는데 오후 3시에 갑자기 신분이 불분명한 사람 4명이 들어와 철저하게 수색했다. 2시간을 수색했는데 그들이 수색하려는 것이 없자 나를 잉장구 공안 분국에 데리고 가서 심문하면서 저녁이 되어서야 나를 집에 돌려보냈다. 이렇게 무법천지 행위는 완전히 장쩌민이 파룬궁 박해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우리 집엔 87세인 늙은 부친과 고등학교 3학년을 다니는 아이가 있다. 가정에 안정적인 환경이 필요했지만 내가 파룬궁을 수련했기 때문에 2001년 정월 15일부터 2008년 전까지 우리 집은 계속 괴롭힘을 받아 정상 생활이 파괴됐다.
2001년 정월 20 며칠 어느 날 오후, 링후 파출소의 5, 6명이 또 우리 집에 와 수색했으며 신발장까지 빠뜨리지 않았다. 가족은 이 때문에 재차 놀랐다.
나는 아침에 파룬궁을 연마해 좋은 신체가 있고 진선인의 표준으로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을 뿐인데 교란을 받고 여러 해 박해받았다. 이 모든 것은 모두 장쩌민이 발동한 이번 박해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사실에 근거해 장쩌민의 형사적 책임을 추궁하려 한다.
위추잉(餘秋英, 여, 53세)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1998년 10월부터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심장병, 천식, 부인병, 알레르기성 비염 등 질병이 있었고 일 년 내내 손발이 찼다. 특히 천식이 발작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산소 부족으로 아예 숨 쉴 수 없었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도 낫지 않았으며 달마다 10여 일 자야 했고 병원의 단골손님이었다. 병원비를 적지 않게 썼지만 내 병이 낫지 않았고 아예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없었다. 정말 그 고통을 말로 할 수 없었고 언제 나을지 몰라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못했다.
1998년 10월 나는 파룬따파를 얻을 기연을 가졌다. 파룬궁을 배워 나의 심신에는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진선인 법리로 자신을 요구했고 좋은 사람 중의 좋은 사람으로 되려 했다. 파룬궁의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는 내 몸에서도 아주 빨리 체현됐다. 나는 여러 해 동안 먹던 약 보따리를 버렸다. 가족은 나의 신체 변화를 보고 기뻐했고 나도 진정으로 병 없이 몸이 가뿐한 것이 어떤 상태인지 느꼈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파룬궁을 발광적으로 박해하고 세상을 속이는 거짓말을 꾸몄다. 민중에게 파룬궁은 ×교라고 속였다. 대법제자는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2000년 5월 10일 아침 나는 수련생 5명과 함께 밖에서 연공했는데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불법적으로 화중루 파출소에 납치돼 불법적으로 자백을 강요당한 후 구치소에 보내져 10일 구류되고 우리 집은 수색당했다.
2014년 3월 13일 오전 나와 수련생 두 명이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모함해 110 경찰이 불법적으로 런민루 파출소로 납치해 자백을 강요하고 공갈 협박했다. 저녁이 되자 강제로 우리 집을 불법 수색하고 나의 컴퓨터, 휴대폰, MP3, CD, 대법 책 자료 등을 빼앗아 가고 강제로 현지 구치소에 보내 불법적으로 30일 구류했다. 이 기간 끊임없이 취조하고 수갑을 채우며 족쇄를 채우고 욕하며 모욕하고 세뇌했다. 30일 후 석방하고 바로 세뇌반에 보내 또 불법적으로 18일 감금해 나의 마음은 큰 상처를 입었다.
후춘환(胡春環, 여, 52세)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위출혈, 다리 통증, 결장염, 신결석, 목에 혹이 자라는 등 여러 가지 질병이 있었다. 1997년 1월 나는 파룬궁을 수련할 행운을 가졌다. 짧은 보름 사이 모든 질병이 온데간데 없어졌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나를 재생시켜 주셨다. 그때부터 나는 엄격하게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했으며 시시각각 무한하게 행복하고 달콤함을 느꼈다.
파룬궁 수련은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만 있지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 하지만 장쩌민은 거리낌 없이 파룬궁 탄압과 박해를 발동했다. 다음은 피고소인이 고소인을 박해한 범죄 사실이다.
2001년 나를 마산 여관에 있는 세뇌반에 납치해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강제로 세뇌했다.
2006년 파출소 공안국 610은 제1병원 세탁소에 가서 나를 붙잡으려 했는데 붙잡지 못했다. 박해를 피하려고 나는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그날부터 유랑하다 6개월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2007년 4월 경찰에게 납치돼 제1구치소에 가서 불법적으로 27일 감금돼 박해받았다.
2007년 10월 ‘610’에 납치돼 불법적으로 스리푸 세뇌반에 감금돼 20일 박해받았다.
집에 돌아온 후 거주지를 감시받았고 파출소와 주민센터에서 끊임없이 소란하고 공갈 협박해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없었다.
이상 여러 가지 박해는 나와 가족에게 미봉할 수 없는 거대한 상처를 조성했다.
왕촨잉(汪傳英, 여, 51세)이 고소한 사실과 이유:
1996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수련하고 신체를 좋게 하려는 심태로 공원에서 사람들과 함께 연공장에서 연공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신체 상태가 특별히 좋아 걸으면 날 것 같고 자전거를 타면 누가 밀어주는 것처럼 힘이 들지 않았으며 계단을 아무리 높게 올라가도 힘든 줄 몰랐다. 법공부 연공을 통해 나는 파룬궁은 마음을 선량하게 닦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모순이 발생하면 양보할 줄 알고 안으로 자신을 찾아야 하며 어디에 문제가 생기면 우호적으로 모든 사물을 좋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파룬궁은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장쩌민은 소인배의 질투심에서 파룬궁 박해를 발동했다. 장쩌민의 명령을 들은 안칭시 공안 경찰은 그날부터 우리를 공원 연공장소에서 연공하지 못하게 하면서 우리 인신자유를 제한하고 파룬궁을 연마하지 못하게 했다. 파룬궁 탄압을 강화하기 위해 전 국민을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게 했다.
2001년 새해를 맞는 날피고소인 장쩌민은 수중의 권리를 이용해 몇 사람을 고용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분신자살’ 조작극을 꾸며 의도적으로 파룬궁에 뒤집어 씌웠다. 이 ‘천안문 분신자살’ 조작극은 이미 국제기구로부터 가짜 사건이라는 것이 실증됐다. 분신자살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칭시 잉장분국은 강제로 나를 분국에 납치해 열 손가락으로 검은색 도장을 찍게 하고 사진까지 찍은 후 죄인을 취조하듯 했으며 나를 협박하여 회개서, 보증서, 결별서를 쓰게 하면서 쓰지 않으면 집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
2002년 안칭시 공안국은 내 전화를 도청하고 파룬궁을 선전한다는 이유로 링후 파출소에서 경찰 4명이 우리 집에 와 샅샅이 뒤져 불법적으로 대법 책을 수색해 가고 나를 파출소에 압송해 감옥에 넣겠다고 위협했다. 어린아이가 혼자 집에 있었기에 나를 집에 가라고 풀어주었다.
2003년 쐉징제 파출소는 나를 직장에서 마산 여관에 설치한 세뇌반에 속여 데리고 가서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 그곳에서 파룬궁을 연마하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전향시키고 개인 신앙을 박탈하고 ‘3서(수련포기 각서 따위)’를 쓰라고 하면서 쓰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2006년 8월 31일 잉장 공안국은 내가 출장 갔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파트 아래에서 기다리다가 경찰 6명이 나를 따라 집까지 와서 파룬궁을 선전한다는 이유로 강제로 나를 공안국에 납치해 가고 이튿날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하고 우리 집에서 제멋대로 했으며 나를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감금했다. 감금 기간 낮에는 종일 강제 노역을 시키고 저녁에는 또 당직을 서게 해 내 심신에 아주 큰 상처를 주었다. 구치소에 1개월 구금된 후 직장에서 업무상 필요 때문에 나서서 담보해주었으며 나는 불법적으로 교도소 밖에서 1년 노동교양을 집행했다. 내 행동은 제한됐고 생활에 자유를 잃었다.
2007년 시 공안국 610은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제로 직장에서 나를 세뇌반에 납치해 가고 봉폐 식으로 18일 감금했다. 강제로 파룬궁을 모독한 동영상을 보게 하고 회개서를 쓰고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이상 모든 것은 모두 나 개인을 불법적으로 박해한 사실이다. 신앙은 무죄이며 진상 알리는 것은 잘못이 없다.
천팡(陳芳, 여, 47세)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나는 이전에 놀 줄만 알았다. 트럼프를 치고 술을 마시면서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사람이 왜 사는지 모르던 나는 1998년 하반기에 담결석에 걸렸다. 담결석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으며 신체도 아주 허약했다. 아프기 시작하면 출근도 할 수 없었다. 이때서야 파룬궁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파룬궁은 진선인에 따라 심성을 수련하는 것이다, 마음을 선량하게 닦고 좋은 사람이 되며 다른 사람과 모순이 있으면 양보하고 안으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수련 후 병 없이 온몸이 가뿐했으며 직장 일을 성심껏 해 직장과 가정에 복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장쩌민은 소인의 질투심에서 거리낌 없이 나라와 국민에게 재앙을 주는 선량한 민중을 진압하는 파룬궁 박해 운동을 발동했다.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치며 이루다 말할 수 없다. 다음은 피고소인이 나를 박해한 범죄 사실이다.
1999년 모월 22일 안칭시 화이닝현 웨산 파출소는 직장에 와서 파룬궁을 수련하지 못하게 하고 나를 하루 감금하고 내 부친에게 서명하게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게 했다.
2001년 9월, 내가 출근하고 있는데 안칭시 다관 분국은 우리 집에 와 아무 증명도 보여주지 않고 집을 수색하고 내가 손으로 베낀 ‘전법륜’ 책을 빼앗아 가고 나를 하루 동안 감금하고 오빠에게 서명하게 한 다음 나를 출근하게 했다.
2006년 7월 13일 저녁 11시 안칭시 공안국은 잉장구 화중루 파출소와 함께 경찰 10여 명이 아무 수색증도 보여주지 않고 강제로 우리 집에 뛰어들어와 샅샅이 수색하고 컴퓨터와 파룬궁 서적, 테이프 등 물품을 가져가고 이튿날 또 와서 재차 수색하고 나를 불법적으로 안칭 구치소에 한 달 가까이 감금했다.
2006년 9월 안칭시 공안국은 직장 인원과 함께 강제로 나를 세뇌반에 납치해 불법적으로 1개월 감금했다.
천링리(陳玲利)가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1997년 나는 파룬궁을 연마했지만, 책을 보지 않았다. 진선인이 좋다는 것만 알고 사람들을 따라 연공했다. 그때 연공은 날이 밝기 전에 일어나야 했고 또 겨울이어서 한동안 견지하다 일어나기 싫어 연마하지 않았다. 그때는 파룬궁이 소중한 줄 몰랐다. 그 후 나날은 종일 도박에 깊이 빠져 매일 밖에서 먹고 마셨다. 마작을 할 수만 있다면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다. 아이를 부모 집에 맡기곤 상관하지 않았고 성격도 거칠고 급했으며 부부가 늘 싸웠다. 한번은 마작실에서 마작을 하며 연속 며칠 집에 들어가지 않아 늙으신 어머니가 홧김에 마작실에 와서 사람들 앞에서 내 귀를 당겨 집으로 끌고 오셨지만, 며칠 후 마찬가지로 마작실에 갔다. 가족은 내가 여전히 그런 것을 보고 관계하지 않았다. 나는 더욱 심해졌으며 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셨으며 도박장에서 도박했다.
내가 실업한 후(모든 기업이 파산됐음) 아무 수입도 없었다. 남편이 기업에 출근했는데 봉급이 별로 많지 않았다. 내가 밖에서 도박할 때 갖고 간 돈은 남편이 생활비로 남긴 돈이었다. 생활비를 다 잃고내가 실업했을 때 준 연금 전부인 1만여 위안을 모두 도박으로 날렸고 남편의 월급 카드를 가져다 또 도박했다. 딸이 그때 대입시험을 볼 때였지만 집에는 먹을 것이 없어 나는 딸을 마작실에 데리고 가 밥을 얻어 먹였다. 다른 사람이 권고해도 듣지 않고 매일 이렇게 취생몽사(醉生夢死)해 신체는 점점나빠져 얼굴도 누렇고 야위어 갔다. 나는 지옥에서 기어 나온 사람 같았다. 심한 불면증에 왼쪽 손가락도 늘 마비가 됐고 심각한 위장병, 요추 질환이 있었다. 잘 때 늘 심장이 아주 빨리 뛰었고 침대에 누우면 온몸을 움직일 수 없었으며 소리를 질러도 소리가 나오지 않은 무서운 현상이 나타났다. 또 심한 관절염이 있어 비가 올 때면 관절이 너무나 아팠다.
2008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한 해였다. 6월 어느 날 국보대대는 우리 엄마 집 문 앞에서 매제를 납치했는데 마침 내가 보게 됐다. 처음 이런 일에 부딪혀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그가 파룬궁을 연마했고 올림픽 때문이라고 했다. 저녁에 또 여동생 집을 수색했다. 당시 집에 사람이 없었고 문을 강제로 비틀어 열었다. 수색증 없이 집을 샅샅이 뒤져 마치 약탈당한 것처럼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나는 아주 분노했다. 이전에 여동생과 매제가 나에게 파룬궁이 박해받은 일부 사실을 말했는데 나는 전혀 믿지 않고 그들에게 정부에서 수련하지 못하게 하면 연마하지 말라고 권고까지 했지만, 오늘 눈앞에 벌어진 일에 나는 다시 반성하게 됐다.
바로 그날 저녁에 나는 ‘전법륜’을 아주 열심히 한 번 보았다. 다 보고 아주 격동됐으며 세계관이 근본적으로 개변했다. 그때부터 나는 진정하게 파룬궁 수련을 했고, 파룬궁의 신기한 건강 효과는 내 몸에서도 아주 빨리 체현됐다. 이전에 신체에 있던 병증과 불편함이 아주 빨리 사라졌다. 나는 책에서 요구한 진선인에 따라 하기에 노력하면서 모든 나쁜 습관을 고쳤다. 성질도 온순해졌고 부드러워졌다. 지금 가정이 화목하고 동서 사이 관계도 좋아졌다. 많은 사람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 후 이런 거대한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을 다 알고 파룬궁이 정말 아주 신기하고 매우 좋다고 감탄했다.
이렇게 좋은 공법이 중국에서 장쩌민 집단이 먹칠하고 탄압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파룬궁의 아름다움과 진상을 알게 하려고, 또 더 많은 사람이 나처럼 수혜를 입게 하려고 나는 늘 주위 친구들에게 내가 파룬궁으로 수혜를 입은 과정을 말했는데 이 때문에 오히려 박해받았다.
2011년 11월, 내가 안칭 하이커우진에 가 파룬궁 진상을 알릴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장기간 파룬궁을 먹칠하는 선전 때문에 진상을 모르게 됐음)이 모함해 하아커우 파출소에 납치됐다. 당일 안칭 다관 국보대대는 나를 구치소에 보내고 불법적으로 집을 수색하며 집에 있던 노트북, 프린터, 도련 칼 등 물품을 빼앗아 갔다. 구치소에서는 강제노동도 시키면서 다 하지 않으면 휴식하지 못하게 했고, 불법적으로 1개월 감금한 후에야 나는 보석으로 나왔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다관 분국은 가족에게 노동교양을 시키겠다고 말해 수련하지 않는 가족은 도처로 다니며 사람을 찾았다. 마지막에 노동교양 1년을 밖에서 집행하기로 했다. 이 기간 가족은 이 때문에 거대한 정신 압력을 받았다. 그 후 거주지 파출소는 매달 나에게 파출소에 가서 사상보고를 하라고 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파출소는 전화로 남편을 협박해 가정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요 몇 해 나를 박해한 파출소 경찰, 국보 경찰들은 모두 장쩌민의 압력에 굴복해 생계, 승진 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양심을 어기고 선량한 사람을 박해했다. 그들이 범한 죄는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지금 나는 장쩌민만 고소 대상으로 삼겠다. 장쩌민은 이번 박해를 발동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장쩌민만 고소하는 것은 그중 회개할 수 있는 사람에게 희망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사실 그들도 이번 박해의 피해자이고 희생양이다. 장쩌민을 고소하는 것 역시 그들을 위해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다이졘샹(戴建祥, 49세)이 서술한 고소 사실과 이유:
나는 원래 안칭시 화이닝현 웨산 동광 기업의 기층 관리원이었다. 1998년 말 아내가 온밤 ‘전법륜’을 보고 아내 신체를 괴롭혔던 통증이 다시는 아프지 않았고 심정이 갑자기 호전되어 나도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파룬궁은 정말 신기했다! 얼마 되지 않아 나도 파룬궁을 수련했으며 그 후부터 진정하게 병 없이 온몸이 가뿐함을 체험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약을 먹지 않고 병원에 한 번도 입원하지 않았다. 질병이 없는데 누가 약을 먹겠는가? 파룬궁은 수련자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고 ‘진선인’ 표준에 따라 도덕 수준을 제고하기에 노력하라고 했다. 파룬궁을 수련하면 질병을 제거하고 몸이 건강해질 뿐만 아니라 사람이 성실, 선량, 관용, 온화하게 변할 수 있다. 파룬궁 수련은 사회에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
하지만 장쩌민은 거리낌 없이 파룬궁을 탄압하고 박해했다. 다음은 피고소인이 나를 박해한 범죄 사실이다.
1999년 7월 22일 안칭시 화이닝현 웨산 파출소는 직장 보위과와 함께 직장 보위과 사무실에서 나를 죄인을 취조하듯 위협했다. A4용지 문서를 보이며 국가 정책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며 함께 법공부 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며 파룬궁의 모든 물품을 바치라고 선포했다. 직장에서 담보했기 때문에 가두지는 않았다.
2001년 새해를 맞으며 장쩌민은 수중의 권력을 이용하여 민의를 무시하고 계속 탄압을 강화해 전 국민을 파룬궁 박해 운동에 참여하게 했다. 돈으로 몇몇 ‘분신자살’할 사람을 고용해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분신자살’ 조작극을 연출했다. 파룬궁에 뒤집어씌우는 이런 모함 수단은 전 세계, 전 중국의 모든 사람을 중독시켰고 파룬궁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며 수련인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직장 지도 서기와 보위과장은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와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고 베이징에 탄원하러 가지 못하게 했다.
2001년 5~6월 장쩌민의 정치 명령 정책과 연좌 수단(어느 곳에서 일이 발생하면 그곳 지도자가 면직 혹은 벌금을 내야 함)으로 우리 직장 책임자, 서기는 특별히 파룬궁 탄압에 앞장섰으며 중시했다. 내가 가슴에 파룬궁 배지를 달자 작업 현장 서기가 발견하고 그들의 금기를 건드렸다고 여기고 광산구 지도자, 분관 지도자와 장인어른(전임 지부 서기였음)과 함께 나를 그들의 일에 협조해 그들 생계가 끊기는 일을 하지 말고 체면을 봐달라고 했다. 내가 생산 현장 주임이고 또 핵심인 것을 고려해 더 깊게 추궁하지 않았다.
2005년 나는 더 많은 사람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우체국에 가서 휴대폰 카드 한 장을 산 후 파룬궁 진상을 메시지로 편집해 시내 일부분 지도자, 직장 상사, 친구, 광대한 민중에게 관련 정보를 보냈다. 장쩌민의 명령에 따른 공안, 검찰, 사법 계통은 법을 어기는 정책을 집행했다. 2006년 7월 13일 야밤 11시 시 공안국, 잉장 화중 파출소와 관할구역 파출소 경찰 열 몇 명이 우리 집을 불법적으로 샅샅이 수색해 대법 책 한 권과 사부님 설법 테이프, 연공 테이프, 데스크톱 컴퓨터를 가져가고 내 아내를 잉장 화중 파출소로 압송해 가고 사람을 파견해 24시간 감시하고 우리 집을 도청했다.
2006년 7월 14일 밤 11시 안칭시 공안국은 잉장 화중 파출소와 관할구역 파출소와 함께 재차 우리 집에 뛰어들어와 파룬궁을 믿는다는 이유로 나를 잉장구 화중 파출소로 납치해 가고 몸에 가지고 있던 휴대폰, 집에 있는 모든 열쇠를 수사해 몰수하고 그날 밤 1시에 안칭 제1구치소로 보내 불법적으로 29일 감금했다. 8월 11일 가족이 담보해 가석방되고 잠시 통지를 기다렸다. 2006년 9월 22일 법률 근거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국보와 직장은 나를 쉬안청난후 노동교양소에 보내 노동교양 1년을 시켰다. 우리 가족은 이 때문에 놀랐고 정신적으로 극심한 상처를 입었다.
2007년 6월 28일 노동교양소에서 석방되어 원래 직장으로 돌아왔는데 직장은 회사 라오쭝(老總: 직장의 총 책임자)과 보위과에서 동의해야 일할 수 있다고 핑계를 댔다. 내가 라오쭝과 보와과 각급 지도자를 찾아가 일하겠다고 했는데 일주일 후에 오라고 했다. 일주일 후에 갔더니 인사과에서 원래 직장에 배치했다. 직장에서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장 제일 책임자와 서기는 나에게 분관 기전 부주임 자리가 교체됐다면서 기계조립 업종으로 나를 보냈다.
이상 모든 것은 나 개인에 대한 불법적인 박해다. 신앙은 무죄이며 진상을 알린 것은 잘못이 없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을 뿐이고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파룬궁은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렸을 뿐이다. 이렇게 한 것이 잘못인가? 파룬궁은 사람에게 마음을 선량하게 수련하라고 가르쳤다. 마땅히 널리 보급해야 하지 않는가? 진선인의 표준으로 도덕 수준을 제고하는 것은 사회 발전에 진정하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16년 동안 박해는 계속되고 있는데 역사는 이런 박해를 지속시키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미 장쩌민을 위해 죄명을 뒤집어쓰려 하지 않고 있다. 선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 2015년 6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6/3/3103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