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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란, 억울한 징역형 만기 5일 전, 랴오닝 여자감옥서 살해돼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랴오닝 보도) 푸순(撫順)시 리스(李石)개발구 류얼(劉爾) 주택단지의 69세 파룬궁수련생 주위란(朱玉蘭)은 2015년 4월 5일 선양(瀋陽) 여자감옥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朱玉兰

주위란(朱玉蘭)

주위란 노인은 4년 동안 억울한 징역형을 당했는데 원래 2015년 4월 10일 만기돼 집으로 돌아가야 마땅했다. 집의 남편과 자녀는 희망을 품고 그녀와 단란히 한자리에 모이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출소 5일 전에 그녀가 사망했다는 부보를 받았다. 주위란의 딸은 랴오닝 여자감옥으로 와서 모친이 세상을 뜨기 전 24시간 전 과정 동영상을 보여 달라고 했다. 하지만 감옥 측은 주위란이 화장실에서 나와 배를 만지는 장면만 보여주었을 뿐 가족에게는 심장병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현재 그의 가족의 거주지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고 모든 전화는 전부 감시를 당해 이미 외부와 완전히 차단됐다. 소식에 따르면 감옥에서는 그의 자녀와 협상해 몇만 위안의 돈으로 사적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주위란은 랴오닝(遼寧)성 신빈현(新賓縣) 사람으로, 이후에 푸순시 리스 개발구 류얼 주택단지로 이사했다. 1999년,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기 위해 베이징을 갔는데 푸순까지 가서 경찰에게 납치돼 왕화(望花)공안 분국에서 하룻밤 불법 감금됐다. 이튿날에 신빈현 공안국으로 납치돼 돌아와 500위안을 갈취당하고 풀려났다.

1999년 8월, 주위란과 저우구이룽(鄒桂榮, 박해로 사망함) 등 파룬궁수련생은 광장 순찰 경찰에게 천안문(天安門) 파출소로 납치됐다. 그 후 신빈현 다쓰핑진(大四平鎭) 파출소에 의해 신빈(新賓) 구치소로 납치돼 돌아왔다. 당시 파출소 소장 왕중파(王忠發)는 몹시 분노해 큰 소리로 “돈을 전부 내놔라. 다쓰핑진 파출소에 주어 여비로 하게 하겠어. 이번에 당신들의 돈을 모두 탕진시킬 거야”라고 고함쳤다. 그 후 그녀들은 43일 동안 불법 구류 당했는데 파출소 소장은 사람마다 강제로 500위안의 벌금을 부과했다.

신빈현 구치소 안에서 재판을 진행했는데 공안국 경찰 위잔장(于佔江)은 주위란에게 누가 베이징으로 가라고 시켰는지를 물었다. 주위란이 말하지 않자 위잔장은 한발로 주위란을 걷어찬 동시에 3~4명 경찰이 다가가서 연속 구타하고 걷어찼다. 구치소에서 12일 동안 감금당한 후 푸순시 장당(章黨) 발전소에서 임시 조직한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그곳으로 가서 건강 검사를 했는데 간 질환이 있어 불합격되자 가족에게 2천 위안을 내도록 핍박해 석방해 돌려보냈으나 영수증은 없었다.

2000년, 주위란은 융링진(永陵鎭) 자허촌(嘉禾村)으로 가서 다른 수련생에게 대법 경서를 전달하다가 신빈진 파출소에 의해 납치돼 신빈현 구치소로 보내졌다. 구치소에서 주위란은 또 부소장 우롄제(吳連傑)에 의해 자오양촌(照陽村)으로 납치돼 강제노동하게 됐다. 매일 버섯을 줍고 삼을 씻고 옥수수를 쪼개는 일을 18일 동안 했고, 강제로 보증서를 썼으며 또 3천 위안을 갈취당했는데 영수증이 없었다[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파출소 2개 부서에서 벌금을 부과시켰음]

2001년 주위란은 다시 베이징으로 갔다가 베이징 주재 신빈현 사무실 경찰에게 납치돼 현지로 돌아와 신빈현 구치소로 보내졌다. 7일 후 5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내려져 우자바오쯔(吳家堡子) 노동교양원으로 보내졌다. 교양원에 들어가서 주위란에게 ‘전향’(강제로 파룬궁수련을 포기함)하도록 했으나 주위란은 전향하지 않았다. 교도관 궈웨이(郭偉)는 전기봉으로 주위란의 입에 전기 충격을 가했는데, 사흘 동안 밥을 먹지 못하고 말을 할 수 없었으며, 발로 걷어차 늑골이 부러져 움직일 수 없었고 숨도 잘 쉴 수 없었다. 그리고 배신자 장펑롄(張鳳蓮)은 ‘전향’을 강요했는데 ‘날기’ 체벌을 가했고 또 한 주먹으로 주위란을 구타해 넘어뜨려 혼절하게 했다. 노동교양소에서 불법 감금당한 6개월 만에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후 향 정부에서는 두 사람을 파견해 그녀를 감시했다. 매일 4시가 넘어서 주위란의 집으로 가서 보았는데 이런 박해는 1년 넘게 지속했다. 그 후 정법위, 파출소에서도 끊임없이 괴롭혔다.

中共酷刑示意图:“飞”

중국공산당 고문 설명도: ‘날기’ 고문

2002년 1월 9일 저녁, 주위란과 수련생은 리스(李石) 가오리가(高麗街)에서 파룬따파 진상 표어를 쓰다가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조선족에게 신고당했다. 마침 두 명의 순찰 경찰과 마주쳐 리스 파출소로 납치당했다. 당시 소장은 가오웨이보(高維波), 지역 경찰은 뤄청장(羅成章)인데 주위란 등을 푸순 장쥔(順將) 구치소로 납치했다. 보름 동안 불법 감금한 후 노동교양소로 보내 3년 노동교양을 시켰다. 건강 검사할 때 두 사람은 심장병이 있다는 진단이 내려져 노동교양소에서는 수감하지 않았다. 리스자이(李石寨) 파출소 황언융(黃恩永)은 억지로 인맥을 통해 뒷거래해서 주위란을 푸순 우자바오 노동교양소로 보내 박해를 가했다. 주위란은 예전에 독방에 갇혔는데 그 후 마싼자(馬三家) 교양원으로 옮겨졌다. (이 파출소 소장은 사흘이 되지 않아 중풍에 걸리는 응보를 입었음)

2010년 8월 22일, 현지 파룬궁수련생은 진상을 알리고 CD를 배포하다가 리스 파출소에 의해 불법 체포를 당한 동시에 가택 수색당했다. 악독한 경찰은 동시에 주위란의 집을 수색해 컴퓨터, 프린터, CD 라이터, 종이 자르는 칼 등 물건을 강탈했다. 주위란은 당시 집에 없었다.

2011년 설에 주위란은 집으로 돌아갔다. 2011년 4월 11일 오후 3시가 넘어서 리스 파출소에 의해 집에 끌려가 직접 푸순 난거우(南溝) 구치소로 보내졌다. 그 후 4년의 불법 판결을 선고받았고 2015년 4월 10일 만기 예정이었지만 4월 5일, 감옥에서 사망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문장발표: 2015년 4월 1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4/16/30759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