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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 싱타이 세뇌반의 죄악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베이보도) 허베이(河北) 싱타이(邢台) ‘610’세뇌반은 싱타이 둥환로(東環路) 뎬셴(癲癇)병원에서 동쪽으로 300미터를 가서 징옌촌(靜庵村) 마을 어귀에 위치했는데, 전 제2구치소 서쪽이다. 그곳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불법 감옥으로, 높은 벽에 철조망을 늘였고 큰 철문은 일 년 내내 꽉 닫혀 있다. 다년간 그곳에서는 많은 파룬궁수련생을 학대했는데, 어떤 사람은 박해로 사망하고 어떤 사람은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었다.

이른바 ‘610사무실’은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江澤民) 무리가 1999년 6월 10일에 파룬궁을 전문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설립한 불법(不法)조직으로, 나치스의 게슈타포와 흡사하다. 각지 ‘610’ 불법(不法) 인원은 ‘법제교육’의 허울을 쓰고 불법적으로 세뇌반을 사사로이 설치해, 현지 파룬궁수련생과 노동교양소, 감옥에 불법 감금됐다 만기 출소하는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했고,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어기고 믿음을 포기한다는 태도를 표시하도록 강요하려고 시도했는데, 이를테면 이른바 ‘전향’이다.

파룬궁수련생은 모두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으나, ‘610’세뇌반에서는 오히려 그들을 납치해 세뇌박해를 진행하고 강제로 그들을 ‘전향’하도록 했는데, 중공이야말로 진정한 사교임을 보아낼 수 있다.

다음은 일부 박해당한 사례인데, 이는 ‘610’세뇌반이 저지른 죄악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다.

没名没牌的邢台洗脑班常年紧闭的大铁门
이름도 팻말도 없는 싱타이세뇌반의 일 년 내내 꽉 닫혀 있는 큰 철문
邢台洗脑班的监控装置
싱타이 세뇌반의 감시 장치

1. 싱타이 세뇌반에서 박해당한 일부 파룬궁수련생의 사례

◇장광차이(張廣才), 장싱팡(張興芳) 부부는 허베이성 사허시(沙河市)에서 치과 진료소를 차렸다. 그들은 대법을 수련해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기에,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파룬궁이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히 하는 신기한 효능이 있음을 소개했다. 1997년, 사허시 공안국 정보과 자치팡(賈起芳)을 우두머리로 해서 한 무리가 장광차이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적으로 텔레비전, 영상 재생 장치 등 차량 한 대 분량의 개인 물품을 강탈했다.

중공(중국공산당)이 공개적으로 대법을 박해한 뒤, 장광차이, 장싱팡 부부는 여러 차례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2004년 6월 6일, 사허시 공안국 류퉁린(劉同林), 위수핑(禹書平) 등 경찰은 장광차이의 진료소에 들이닥쳐 불법 수색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의 집방범문을 비틀어 열고 5백 위안의 현금을 강탈했고, 아울러 장광차이를 공안국으로 납치해 무차별 폭력을 가했으며 쇠의자에 밤낮 채워놓고 돌아가며 괴롭혔다. 8일 후, 그들은 장광차이를 싱타이 시 세뇌반으로 납치해 3개월 동안 박해했다. 세뇌반 경찰은 그에게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화장실 가는 것을 제한했는데, 몸이 건장하던 장광차이는 학대로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었다.

中共酷刑示意图:背铐

중공 고문 설명도: 뒷짐결박(背銬)

2004년 12월 24일, 사허 시 공안국 경찰은 또 장광차이의 진료소에 들이닥쳐 두 부부를 싱타이 세뇌반으로 거듭 납치했다. 세뇌반 경찰 쑹장시(宋家錫)는 장광차이에게 뒷짐결박을 채운 채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리고 또 ‘구타했는데 죽으면 자살로 친다.’고 소리 질렀다. 장광차이는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가, 또 세뇌반 부교장 추유린(邱有林)에게 폭력적인 음식물주입을 당했다. 짧은 며칠 사이에, 장광차이는 학대로 호흡이 어려워지고 기침이 끊이질 않았으며, 전신에 아픈 증상이 나타나 밤중에 늘 답답해 깨어났다. 병원으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 부위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광차이의 몸이 점점 나빠지자, 세뇌반 경찰은 책임을 감당하게 될까 두려워 그를 사허로 되돌려 보냈다. 사허시 공안국 경찰은 또 그를 한단시(邯鄲市) 노교소로 납치했으나, 노교소에서도 수감을 거부했다. 장광차이는 그제야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원차이(文彩)는 런현(任縣) 파룬궁수련생으로, 2004년 3월에 불법 감금당한 모친을 보러 싱타이 세뇌반에 갔다가, 뜻밖에도 불법 구류를 당했다. 그녀가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은 그녀에 대해 얼굴을 구타하기, 걷어차기, 공갈 협박하기 등 박해를 감행했다. 그 후 강제로 음식물주입, 독극물을 주사하기 등 지속적인 박해를 12일 동안이나 감행했다.

◇하오볜윈(郝變雲)은 허베이성 사허시 파룬궁수련생으로, 중공 싱타이 세뇌반 인원에 의해 독극물 주사를 당했는데, 이로 인해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생활능력을 상실했다. 결국 2010년 3월 25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겨우 43세였다.

郝变云

하오볜윈(郝變雲)

2004년 10월 27일 오후 2시쯤, 스리팅진(十里亭鎮) 정부의 10여 명은 하오볜윈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진행했다. 본래 곤궁하던 하오 씨 집은, 석탄을 사서 겨울을 나려고 저축해 둔 230위안을 악도에게 빼앗겼다. 몇 명의 체격이 큰 남자 경찰은 하오볜윈을 끌면서 입을 막고 또 무차별폭력을 가해 그녀를 차 안으로 끌어넣었다. 5세인 딸이 뒤에서 울며 어머니를 부르자, 이 무리 악도들은 아이도 붙잡아 차 안으로 던져 넣고 끌어갔다. 하오볜윈은 싱타이 세뇌반에서 2개월 동안 학대를 당했다. 그 기간에 몇 차례나 강제로 독극물주사를 당했다. 그 후 심장병과 정신이 흐리멍덩한 등 환각상태가 나타났는데, 차츰 생활능력을 상실했다. 2010년 3월 25일 아침 5시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왕스쥔(王世軍)은 사허시 파룬궁수련생이다. 2009년 4월, 사허시 국가보안대대 경찰 왕젠쥔(王建軍), 허우서우훙(侯守紅) 등은 왕스쥔의 집으로 가서 교란했다. 왕스쥔이 문을 열어 주지 않자, 경찰은 전문적으로 자물쇠를 여는 사람을 협박해 강제로 문을 열고 컴퓨터, 프린터, 파룬궁 자료 등 개인 물품을 강탈했는데 가치가 2만 위안에 달했다. 게다가 왕스쥔을 싱타이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세뇌반 악도는 연속 여러 날 동안 그에게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유다(배신자)는 밤낮 파룬궁을 공격하는 말을 주입했다. 1개월 후 국가보안,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조직임) 악도들은 또 그녀를 스자좡(石家莊) 여자노동교양소로 납치해 1년 6개월의 불법 노동교양을 시켰다.

◇왕리화(王麗華)는 한단 국면2공장(國棉二廠) 직원이다. 2000년 정월 15일에 왕리화는 언니와 함께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2공장 보위과에 의해 한단 유치장으로 납치돼 2개월 동안 감금됐다. 그 기간, 왕리화는 단식으로 불법 감금을 항의했다가, 또 야만적인 음식물주입 박해를 당한 적이 있다. 풀려난 뒤, 직장 책임자는 그녀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그리고 월급으로 협박한 까닭에, 왕리화는 직업을 잃었다. 2009년 3월, 당시 왕리화는 이미 임신한지 3~4개월이었으나, 역시 국가보안대대 경찰 왕젠쥔, 허우서우훙 등에 의해 싱타이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세뇌반 악도는 오히려 연속 여러 날 동안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유다는 밤낮 파룬궁을 공격하는 말을 주입하면서, 그녀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평소에는 황색 빛깔의 물을 마셨고, 방안에서도 고약한 냄새가 났다. 왕리화는 당시 개의치 않았으나, 사건이 발생한 뒤 그들이 음식물에 독극물을 투입했다고 의심했다. 1개월 동안 갇혔는데, 왕리화는 감기 증상이 나타났다. 세뇌반 악도는 두려워서 사허 국가보안 왕젠쥔에게 통지해 왕리화를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게 한 뒤에 풀어주었다. 왕리화의 아이는 출생한 뒤, 온몸에 물집이 생겨났다. 여러 방면의 치료를 받아도 효과를 보지 못한 채 사망했다. 의사는 “무슨 병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데, 체내에 독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왕리화 본인은 출산하는 기간에 하마터면 사망할 뻔했다. 집안의 모든 저축을 다 써서야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후 늘 감기에 걸려 열이 올랐다. 퇴원한 뒤 연공을 가강해서야 몸은 건강을 회복했다. 대법을 수련했기에 왕리화는 또 목숨을 건졌다.

◇원바오즈(文保芝)는 런현 파룬궁수련생으로, 1997년부터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에 대법을 실증했다는 이유로 파출소의 4명 경찰(장구(章固)사법국의 장하이산(張海山), 민잉(民英) 등)에 의해 납치, 불법적인 가택 수색, 강제로 수갑을 채우기, 공갈 협박 등의 박해를 당했고 50일 동안 감금됐는데, 경찰은 가족에게 1500위안을 갈취하고서야 석방했다. 2001년에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위해 평화적인 청원을 하며 공정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또 경찰에게 납치됐고, 각종 수단으로 4개월 동안 박해를 당했는데 경찰은 가족에게서 6천 위안을 갈취하고서야 풀어주었다. 2004년에 또 납치됐고동시에 대법서적을 강탈당했다. 대략 10명의 남자 경찰이 그녀를 납치해 싱타이 시 세뇌반에 감금해 박해를 진행했는데, 수단이 매우 잔혹했다. 그 중에는 공갈 협박, 구타, 걷어차기,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하기, 음식물주입, 독극물을 주입하기, 수련생이 몇 차례 기절한 뒤 사경에 이르렀을 때 강제로 수련을 포기시키기 등의 수단이 있었는데, 근 2개월을 박해하고 또 가족에게 4천 위안을 갈취하고야 석방해주었다.

◇장수룽(張素榮)은 린청현(臨城縣) 베이판스촌(北磐石村) 사람으로, 허베이 의과대학을 졸업한 하오좡(郝莊)병원의 의사이다. 1994년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진ㆍ선ㆍ인(眞ㆍ善ㆍ忍)’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2003년 봄, 그녀는 사람들에게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상을 알리기 위해, 산간 지역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납치됐다. 린청현 610사무실 두목 리칭산(李慶山)은 그의 가족에게 2천 위안을 갈취했고, 아울러 그녀를 싱타이 세뇌반에 불법적으로 감금했다. 싱타이 세뇌반에서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아오잉(熬夜)고문, 공갈 협박과 회유를 당했다. 하루에 한 가지 수법을 사용해 세뇌박해를 감행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수룽은 차츰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마음을 어기고 그들과 타협했다. 이러했을지라도 그들은 가만두지 않고, 이른바 ‘담화’를 진행해 위협하고 세뇌를 시켜, 한 걸음 한 걸음씩 그녀의 사상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핍박했다. 더욱 악독한 것은 그녀의 밥 속에 약을 투입(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한 것이다. 세뇌반에서 나올 때, 장수룽은 정신이상이 되어 머리를 풀어헤치며 온종일 광적으로 걸어 다녔다. 아주 추운 겨울에 맨발로 옷을 입지도 않고 밖으로 달렸고 생활도 스스로 처리할 수 없었다. 전도가 있던 사람은 이렇게 리칭산과 중공 당국의 박해로 폐인이 되었다.

◇왕리쥐안(王麗娟), 린청현 왕좡촌(王莊村) 사람으로, 음식점을 경영한 적이 있다. 1999년 7월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여러 차례 박해를 당했다. 2004년 봄, 집에서 아무 이유 없이 리칭산 및 한패에게 납치돼 싱타이 세뇌반에 갇혀 심각한 고문을 당했다. 왕리쥐안은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 단식 기간에 강제로 음식물주입(음식물주입은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일종 고문이다. 5~6명의 사람이 누르고, 코에서부터 위속까지 호스를 꽂고는 뺐다 넣었다 하면서 움직였는데, 사람은 극히 고통스러움), 아오잉 고문을 당해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악도는 이로부터 파룬궁수련생의 정신적 의지를 무너뜨리고 친정으로 공갈 협박하고 회유하는 등 방법으로 믿음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심지어 밥 속에 약을 투입했는데, 모두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이었다. 이렇게 왕리쥐안은 세뇌반의 박해로 정신이상이 되어 울다가 웃기도 하고 또 큰 소리로 외치기도 했는데, 정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생활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게 된 뒤, 세뇌반에서는 그녀를 그녀 가족에게 밀어주었다. 가족은 몹시 비분했으나 신고할 길이 없었다. 그 후 몇 차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원래 선량하고 유능하던 좋은 사람은 박해로 폐인이 되었다.

◇자오환핑(趙換平)은 허베이성 바오샹현(柏鄉縣) 파룬궁수련생으로, 2003년 음력 2월 초 이튿날에 공안 정보과 경찰에게 싱타이 세뇌반으로 속임을 당해 가서 박해를 당했다. 그곳에서 온종일 사오한 것을 주입당하고 들었으며, 대법을 비난한 녹화 프로그램을 보도록 핍박당했다. 4~5명 사람은 있는 방법을 다 해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예컨대 눈꺼풀을 후비기, 귀뺨을 치기, 몸을 흔들기 등이다. 2005년 10월 31일 오후, 자오환핑은 자래 시장에서 대법진상자료를 배포할 때, 다른 사람에게 신고를 당해 또 두 번째로 싱타이 세뇌반에 갇혀 박해를 당했다.

2. 세뇌반의 일부 악도의 악행

▼류리샹(劉麗香, 여)은 허베이성 싱타이시 법제교육센터 세뇌반 교장이다.

2001년 9월 25일 저녁, 뤄좡향(駱莊鄉) 파룬궁수련생 장구이거(張貴格)는 런현(任縣) 세뇌반으로 납치됐는데 류리샹, 추유린(丘有林) 등은 매일 강제로 대법과 사부님을 모독한 녹화 프로그램을 보도록 핍박했다. 류리샹은 또 “당신들이 전향하지 않겠으면 당신들은 이곳에서 있으세요. 어쨌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고 말했다.

2002년, 류리샹은 탕산(唐山) 파룬궁수련생 왕위촨(王玉船)에 대해 “보증을 쓰지 않으면 감옥으로 보내 판결합니다.”고 공갈 협박했다.

2004년 12월 4일, 파룬궁수련생 원바오즈(文保芝)는 싱타이 세뇌반에 불법 감금됐다. 원바오즈는 안에서 단식으로 그녀에 대한 박해에 항의했다. 세뇌반 악인은 원바오즈에 대해 난폭하게 음식물주입을 진행했다. 그녀의 얼굴 윗부분은 시퍼렇게 멍들었는데, 악인에게 폭력을 당해 조성된 것 같았다. 난폭한 음식물주입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

2005년 새해가 지난 뒤, 싱타이 ‘610’두목 리바오장(李保江), 세뇌반 교장 류리샹은 사허로 내려가 주둔하며 박해를 독촉했다. 사허의 경찰력을 전부 출동시켰는데, 모든 파룬궁수련생의 집에 찾아가서 교란했다. 어떤 수련생은 반복적으로 교란을 당했다. 음력설 전에 10여 명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돼 싱타이 세뇌반으로 보내졌다. 음력설이 지난 뒤에도 30여 명이 납치됐는데세뇌 박해와 거액을 갈취당했고 또 유랑생활을 하던 수련생도 납치됐다. 현재까지도 많은 수련생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돼 외지에서 유랑하고 있다. 그들의 가족과 친구도 일부 납치됐다.

2009년, 류리샹은 파룬궁수련생 펑차오(馮朝)의 딸의 거주지로 가서 교란을 진행했다.

2007년 9월 11일, 류리샹은 닝푸현(寧晉縣) 샤오짜오촌(小棗村) 파룬궁수련생 리즈친(李志勤)에 대한 박해에 참여해 사망케 했다.

▼추유린(邱有林, 남, 40세)은 허베이성 싱타이시 법제교육센터세뇌반ㅋ의 부교장이다.

邱有林
 추유린(邱有林)

2004년 12월, 추유린은 파룬궁수련생 장광차이에게 음식물 박해를 가했다. 그들 몇 사람이 장광차이를 눌렀는데, 한 사람은 칼로 입을 비틀어 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큰 주사기로 음식물을 입안에 주입하는 동시에, 수건으로 입을 막고는 머리를 뒤로 눌러 젖혀 음식물(가루 우유, 슝늉)이 입안에 막히게 했는데, 숨을 들이쉴 때면 음식물이 기관에 들어가 정상적으로 호흡할 수 없게 되어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또 장광차이를 쇠의자에 채워 박해하며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했다.

악인 추유린은 늘 파룬궁수련생 왕리쥐안에게 사부님과 대법을 욕하도록 핍박했고,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다들(배신자)은 밤낮을 번갈아가며 왕리쥐안이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하게 했고왕리쥐안은 정신이 흐리멍덩하게 됐다. 그러나 왕리쥐안은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했는데 단식 기간에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당하고 밥 속에 독약을 투입당해, 정신이상 증상이 나타나 여러 차례 입원했다.

파룬궁수련생 하오볜윈에 대한 박해 중, 추유린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하오볜윈은 여러 차례 악도에게 강제로 독극물을 주사 당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녀는 정신이 흐리멍덩한 증상이 나타나 생활능력과 노동능력을 상실했다. 게다가 증상이 나날이 심각해져 결국 2010년 3월 25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겨우 43세였다.

2007년 9월 11일, 추유린은 닝푸현 샤오짜오촌 파룬궁수련생 리즈친의 박해함에 참여해, 리즈친이 사망케 했다. 2013년 7월 10일, 리즈친의 아들 리광(李光)은 싱타이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추유린은 리광에 대해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강제로 담화하고 압력을 가했는데, 리광에게 다시 신고를 하지 않겠다는 보증을 하게 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동시에 또 리광에게 샤오짜오촌 촌민이 리즈친을 위해 억울함을 신고한 서명과 지장을 바치도록 했다. 리광이 내놓지 않자 1개월 넘게 불법 감금을 한 뒤 석방하였다.

문장발표: 2014년 9월 1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9/11/2976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