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허난보도) 허난성 싼먼샤시(三門峽市) 방직(紡織) 기자재공장(紡織器材廠) 파룬궁수련생 천웨민(陳躍民)은 ‘眞ㆍ善ㆍ忍 (쩐ㆍ싼ㆍ런)’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불법감금과 고문학대를 당했고, 5년의 불법 판결을 받았다. 정저우(鄭州) 신미(新密)감옥에서 박해로 생명이 위독해져 집으로 돌아왔으나, 중공(중국 공산당) 경찰들의 끊임없는 교란을 받았다. 결국 2011년 4월 26일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나이 겨우 48세였다.
억울한 옥살이로생명이 위독해지다1999년 7월 20일 이래, 천웨민은 여러 차례 현지 사악한 당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불법 기구임), 공안국, 파출소, 가도 거민위원회의 위법자들이 불법으로 집으로 찾아와 교란하였다. 1999년 7월에 천웨민은 출근하는 공장 사무동에서 일주일 동안 불법 구금을 당했다.
2000년 6월, 천웨민은 또 중공 사악한 당원에게 납치돼, 싼먼샤시 구치소에 9개월 동안 불법 감금당했고, 경찰의 여러 차례 고문에 의해 강제자백, 고문 학대를 당했다. 게다가 무게가 몇 십근 되는 수갑과 족쇄를 찼다. 경찰은 또 여러 차례 강제로 천웨민에게 팬티를 입은 채 우물 뚜껑(무쇠로 빚어냈음)위에 꿇어 앉혀 불볕에 쬐게 했고, 머리위에는 몇 장의 벽돌까지 올려놓았다. 7개월 동안 괴롭히고, 강제로 가족에게 5천 위안을 갈취해서야 천웨민은 보석으로 풀려났다.
2001년 6월, 천웨민은 주택 단지에서 대법 진상자료를 배포하고 세상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모함으로, 다시 한 번 싼먼샤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했다. 사악한 당 싼먼샤시 ‘610’의 지시에 경찰은 여러 차례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과 고문학대를 가했다. 그리고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법원과 내통하여 천웨민에게 5년의 억울한 불법 판결을 내려 허난성 정저우 신미감옥으로 보내 연속 박해를 가했다. 맨 마지막에 천웨민은 박해로 몸이 상해 더 이상 노역노동을 할 수 없게 되자 풀려 집으로 돌아왔다.
병신이 된 몸을 억지로 지탱해 일을 하다
천웨민은 젊은 나이에 도리어 건강을 잃고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천웨민은 가족을 부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가정을 연루시켰다. 이로부터 행복하던 가정은 철저히 기쁨을 잃었다.
천웨민의 부모는 모두 농촌에 있었다. 천웨민이 정저우 신미감옥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부친은 정신적 충격과 압력을 감당하지 못해 중병에 걸려 연로하신 모친을 남기고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천웨민의 딸은 아직 공부를 하고 있고, 일가족 세 식구는 전부 아내가 출근한 매달 6백 위안의 월급에 의거하여 생활을 유지했다. 그 후, 직장에서 이른바 개조를 하여 직원을 퇴직시켰는데 천웨민의 아내도 직업을 잃어 일가족은 생활의 기반을 잃었다. 천웨민은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병신이 된 몸을 억지로 지탱해 일을 하여 돈을 벌어 가정을 부양했고 딸을 공부시켰다.
사악한 당 인원이 끊임없이 교란하다
양심이곤 눈곱만큼도 없는 싼먼샤시의 중공 사악한 당 정법위, ‘610’불법 인원은 또 늘 공안국, 파출소, 가도 거민위원회를 거느리고 집으로 찾아와 교란을 감행했다. 중공의 끊임없는 학대와 박해는 천웨민의 몸을 더욱 악화시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2010년 하반기에 천웨민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직업을 그만두고 집에서 휴양했다.
키가 170cm 넘는 젊은이는 악당의 박해로 허리가 굽어졌고 70여 세인 늙은이만도 못하게 피골이 상접하고 기력이라곤 없었다. 젊은 나이인데도 가정을 부양할 수 없게 된 천웨민의 마음은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천웨민은 몸져누워 음식도 먹지 못하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천웨민의 정신도 철저히 악당에게 붕괴됐다……
억울하게 세상 떠, 하늘이 진노하다
2011년 4월 26일 이른 아침, 10여 년 동안 박해를 겪은 천웨민은 갑자기 급병에 걸려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 겨우 48세였다. 천웨민이 세상을 뜨는 그 시각, 갑자기 광풍이 몰아치고 줄곧 윙윙 소리가 난 동시에 소나기가 내렸는데 이것이 하늘이 진노하고 창공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천웨민의 시신은 빈이관(殯儀館)에 3일간 놓여있었는데 큰 바람도 3일간 불었다. 28일에 시신을 화장하려 하자 이른 아침에 또 먹장구름이 몰려오더니 소나기가 퍼부었다.
천웨민이 떠나자 전 가족은 비통했고 하늘은 더욱 진노했다. 한 선량한 좋은 사람은 단지 ‘眞ㆍ善ㆍ忍 (쩐ㆍ싼ㆍ런)’을 믿는 좋은 사람으로 됨을 견지한 것만으로 도리어 무고한 박해를 당해 사망했는데, 천고의 억울한 일로 창공이 비통해했다.
언젠가 선악에 인과응보가 있을 때, 하늘의 이치가 밝아 악은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곳에서 10여 년 동안 악당을 바싹 뒤따라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한 중공 악도들에게 권고한다. 악몽에서 빨리 깨여나, 다시 악당을 뒤따라 파룬궁을 박해하지 말고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말라. 응보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대법이 자비하여 여전히 당신들에게 죄를 용서받을 기회를 주는 것으로, 후회막급일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하늘에 물어도 대답이 없고 땅에 외쳐도 이미 늦다! 당신들도 역시 부모가 있고, 아들 딸이 있으며, 가정이 있는데, 손으로 당신들의 양심을 만져보라. 게다가 인간 세상의 법률도 좋은 사람을 박해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흉악한 당은 지난 매번 운동에서 어느 한번 옳은 적이 없다. 법률이 당신들을 청산 할 때, 죄책은 반드시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
문장발표: 2011년 05월 1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1/5/16/河南三门峡陈跃民遭迫害离世-24090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