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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경찰에게 살해되고 남편은 행방불명 (사진)

[밍후이왕] 네이멍구(內蒙古) 파룬궁수련생 우양(武陽)과 아내 쑨민(孫敏)은 베이징에서 경찰에게 납치당했다. 쑨민은 경찰의 박해로 사망했으며 악경(惡警)은 현장 및 사체검안 보고서를 위조하여 자살로 처리했다. 2010년 4월 9일 불법적인 법정심문이 있었는데 가족은 어떠한 통지도 받지 못했으며 남편 우양은 현재 행방불명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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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민과 딸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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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양과 딸

우양(또 우즈쥔(武志軍)이라고도 부름), 네이멍구 츠펑시(赤峰市)사람, 1999년 7월 20일 이후 츠펑시 훙산구(紅山區) 사악에게 9개월 동안 불법감금을 당하고 아내 쑨민도 구류를 당했다. 우양은 석방되었으나 곧 불법적인 지명 수배를 당하게 됐으며 일정한 거처가 없이 도처로 떠돌아다니며 어려운 생활을 했었다. 중공의 사악하고 광적인 박해에 직면해서도 두 부부는 여전히 거짓 선전에 속은 민중에게 진상을 알렸다.

2009년 4월 22일 오전, 우양은 베이징 쉬안우구(宣武區)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션윈예술단의 공연 시디를 배포하다가 쉬안우구 뉴제(牛街) 파출소의 밀정 왕젠쥔(王建軍)에게 발각되었다. 왕젠쥔은 경찰에게 밀고하였고 우양은 납치당했으며 또 핸드폰 조사로 인해 쑨민도 납치당하게 되었다.

우양은 뉴제 파출소의 구타에 항의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 주소 등 어떠한 정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쑨민을 통해 알려고 했으며 쑨민은 그들의 잔혹한 박해로 사망한 것이다. 경찰은 우양에게 쑨민이 4월 22일 저녁 12시 경 자기 집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고 4월 28일 통지했다. 그러나 내막을 아는 자의 폭로에 의하면 4월 23일 오전 8시 경 뉴제 파출소 2층 동쪽 우양을 감금한 옆방에서 쑨민을 심문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 자살했다고 말하는가? 펑타이 공안(경찰)국에서 발급한 사망 통지서에는 2009년 4월 23일 1시 30분 쑨민이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음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러나 사법 감정소의 검시 보고서에는 의뢰시간이 2009년 4월 22일이라고 한다. 쑨민의 시신은 상처투성이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 시체는 5층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이 아니라고 하며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한 특징은 이렇지 않다고 했다.

쑨민의 시신

구치소 안에서 우양은 아내 쑨민의 억울한 사망에 대해 고소장을 썼는데 경찰의 박해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증거를 들어 설명했다. 변호사로 하여금 수정하게 한 다음 제출하려고 했으나 경찰은 고소장을 변호사에게 보여주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으며 변호사의 법률 서비스도 받지 못하게 하고 또 고소장을 가져가 버렸다. 말은 구치소에서 관련 부문에 넘겨준다고 했지만 사실은 증거를 감추려는 것이었다.

우양은 2009년 4월 22일에 납치당했고 2010년 4월 9일에야 베이징 펑타이구 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구류기간을 엄중하게 초과했다. 재판 전에 변호사는 면회도 허락받지 못했고 또 재판 바로 전날 저녁에야 변론이 불가함을 통지받았다. 또 다른 한 변호사의 변론 내용에서는 무죄변론 내용과 파룬궁 수련에 대한 박해가 위법이라는 내용을 전부 삭제하였다. 이유는 변론내용에 공산당을 모욕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인데 파룬궁 박해가 위법임을 지적한 것이 바로 공산당을 모욕했다는 것이다.

4월 9일 재판 시 베이징 국보대대와 사법국 사람들을 한 무리 끌어다가 방청하게 하면서도 가족은 두 사람만 방청을 허락했다. 그것도 핍박하여 구석진 자리에 앉게 하여 판사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고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도 없었다. 법정에서 우양은 ‘션윈’시디를 배포한 것은 무죄며 아내 쑨민은 박해로 사망한 것이지 스스로 건물에서 뛰어내린 것이 아님을 설명했다. 쑨민의 사망시간, 펑타이 공안국의 사망 통지서 등에 대해 설명하며 2009년 4월 23일 1시 30분 쑨민이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음을 발견했다고 하는 그 시간 이후인 당일 오전 8시 경 그는 옆방에서 아내 쑨민을 호되게 심문하는 목소리를 들었으며 그 5명(4남 1여)은 자신을 심문했던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당신 남편 이름이 무엇인가?” “빨리 말하지 못해.”라고 심문한 사람은 자신을 붙잡아온 그 경찰의 목소리이고, “당신이 나이가 많다고 당신에 대해 어쩌는 방법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 말라.”고 한 목소리는 그 뚱뚱한 경찰이다. 잠시 후 “나한테 뭘 말하라는 건가?”하고 소리치는 아내의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고 즉시 ‘짝’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에게 무엇을 물으면 대답하라.”고 한 목소리는 그 여자경찰이다. “번호가 13621365119호인 핸드폰 카드는 어디에 놨는가? 빨리 말하지 못해.”하는 목소리는 역시 자신을 붙잡은 그 경찰의 호된 심문이었으며 물어본 전화번호는 원래 자신이 갖고 있던 핸드폰 번호라고 하였다.

이 시간에 쑨민이 자기 집 건물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것은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철처히 폭로되었다. 쑨민이 박해로 사망한 이 사건에 대해 우양은 특별히 중요한 증인이다. 때문에 사악이 우양의 사건에서 이제 와서 무턱대고 박해하는 것은 세인들에게 진상이 알려질까 봐 두려워서인 것이다.

베이징 펑타이 법원에서는 2010년 4월 9일의 공판결과를 공표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족에게 누가 도와서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캐물었다. 변호사도 파출소에 끌려가 같은 심문을 당해야 했다. 누가 도와 변호사를 선임했는지 캐물었다는 것은 누가 이 일에 대한 박해의 속사정을 알고 있으면 사악은 모두 가만 놔두지 않으려는 것이 분명하다. 사악은 바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박해가 폭로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009년 4월 22일 우양이 납치돼서부터 지금까지 이미 1년 반이 지났다. 베이징 사악은 우양의 가족에게 어떠한 통지도 해 준 적이 없다. 쑨민의 사망통지서는 가족이 츠펑 현지의 공안국을 찾아 갔었고 함께 다시 베이징 공안국으로 가서 여러 곳을 조사한 후에야 츠펑 공안국에게 발급해 준 것이다. 만약 가족이 찾지 않았다면 쑨민과 우양의 상황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4월 9일 재판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미 반년이 지났지만 공판결과를 변호사에게 알려주지도 가족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현재 우양의 행방은 알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장발표: 2010년 10월 06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10/6/2306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