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통신원 후난성보도) 1999년에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후, 후난성(湖南省) 웨양시(岳陽市) 1중학교 고급 영어교사 천리잉(陳立英)은 ‘쩐,싼,런(眞善忍)’에 대한 신앙 때문에 거듭된 납치, 불법감금, 감시, 교란을 당하다가 2005년 9월 말 향년 60세로 세상을 떴다.
파룬궁수련생 천리잉은 한족이고 창사(長沙) 사람으로 능력 있는 고급 영어 교사로서 제자가 매우 많았다. 천리잉은 1998년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이전에 그녀는 기공 애호가였다. 스스로 주역, 팔괘를 배웠다. 천목은 열려 있었고 숙명통(宿命通) 공능이 있었다. 풍수를 볼 줄 알았고 일부 일들도 예측할 수 있었다. 많은 상인, 현과 시급 책임자들은 그녀를 찾기 좋아했다. 현지에서 유명한 편이었다.
1998년 광둥(廣東) 주하이(珠海) 모학교에 초빙되어 학생을 가르쳤다. 공원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단체를 만났는데 상화한 에너지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추고 관람했다. 이때 보도원이 그녀에게 파룬궁을 소개했다. 그녀는 자기에게 일부 공능이 있어서 거들떠보기 싫은 마음이 있었지만 억제하면서 “파룬궁이 나의 주천을 열어줄 수 있다면 배우겠다”라고 말했다(그녀는 비록 기공을 연마했지만 주천을 관통할 방법이 없었음). 보도원은 그녀에게『전법륜』을 보도록 권했다. 그녀는 의혹을 품고『전법륜』을 보기 시작했는데 책을 보자마자 매 한 줄이 각양각색의 색상이고 매 글자는 빛을 뿜고 있었다. 동시에 머리 위에서 한줄기의 열기가 쏟아져 내려와 그녀의 주천이 통했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 알았고 이때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천리잉(陳立英)
천리잉은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수련은 전일해야 함을 알았다. 그녀는 여러 해 동안의 소능소술을 포기하고 전심전력으로 파룬궁을 수련했다. 그녀를 찾는 친구, 상인, 책임자는 모두 그녀가 파룬따파를 소개하는 것을 들었다. 때문에 1999년 박해가 시작되자마자 그녀는 중점으로 박해받는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파룬궁을 포기하지 않았다. ‘쩐, 싼, 런’의 표준에 따르는 것은 잘못이 없고, 좋은 사람이 됨은 더욱 잘못이 없다고 여겼다. 사람들이 파룬궁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전향’시키러 온 사람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했다. 학교 책임자와 현지 파출소는 현지 ‘610’의 지시 아래 그녀를 현지 구치소로 납치해 1개월 넘게 불법 감금했다. 그녀를 해직시키고 그녀의 원적인 학교에 통지해 그녀를 웨양(岳陽)으로 데려가게 했다.
웨양에 돌아온 후, 그녀는 시1중학교 학교측 ‘610’(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기구인데 각급 정부에 파급되었으며 법률위에 군림하고 있음) 인원 쑤사오라이(蘇少來)와 시 ‘610’에서 파견한 사람에게 감시당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자유도 없었다. 강제로 세뇌를 하고 신앙을 포기시켰는데 약 반 년 동안 그녀는 협조하지 않았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는 기회를 이용해 벽을 뛰어넘어 달아나다가 감시하던 사람에게 발각되었다. 그는 그녀의 발을 아래로 잡아당겼는데 그녀는 힘껏 차고 벽 위에서 뛰어넘다가 미끌어져서 떨어져 기절했다. 감시하던 사람은 그녀를 병원에 보냈다.
깨어난 후 그녀는 한쪽 다리가 부러진 것을 알았다. 그녀는 집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집에 돌아와 연공을 통해 20여 일 후에 막대기를짚고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또 한 번 파룬따파의 신기함을 경험했다.
그러나 중공은 사람들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억지로 포기하도록 했다. 2001년 1월, 학교 ‘610’과 파출소는 시 ‘610’의 지시 아래 그녀를 웨양시 구치소로 납치해 3개월 동안 불법감금 했다.
2001년 1월 23일, 중공은 파룬궁을 모함한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거짓으로 꾸며 온국민이 파룬궁을 적대시하도록 선동하고,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가중시켰다. 웨양구치소에 불법감금을 당한 파룬궁 수련생들은 진상 알리기, 단식 등의 방법을 사용해 반박해에 나섰다. 어떤 이는 생명위험이 나타났지만 결국 당국에서 타협해 파룬궁 수련생들은 연이어 집으로 돌아갔다.
천리잉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는 위장병, 류머티즘, 자궁근종에 걸렸지만 연공을 한 뒤 모두 완쾌되었다. 1999년 ‘7.20’ 후, 장기간의 박해는 그녀의 정신과 몸에 심각한 상해를 조성해 구치소에서 하혈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감옥 의사에게 알리고 무조건적으로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610’은 그녀의 신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주저우(株洲) 바이마룽(白馬垅) 노동수용소에 2년간의 불법 강제노동을 보냈다.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너무 높고 자궁에서 피를 흘려(자궁암) 수감이 거절되었다. 당국에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제서야 그녀를 집에돌려보내고 그녀의 아들에게는 보석금(保釋金) 4천 위안을 강탈했다.
집에 돌아온 뒤 천리잉의 몸은 좋다가도 나빴다. 늘 교란과 감시를 받았고, 또 생명 위험이 나타났다. 어느 한번 그녀는 길가에 쓰러졌다가 정신을 차린 후 기어서 집에 돌아왔다. 그후 전신부종이 생겼고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결국 2005년 9월 말 세상을 떠났다.
문장발표: 2010년 08월 24일
문장분류:박해진상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24/228733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