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통신원 지린성 보도) 연길(延吉)시 77세 노인 파룬궁수련생 쑹야친(宋雅琴)은 화룡(和龍)공안국에 납치된 아들을 석방하도록 요구하다가 여러 차례 악경에게 야만적인 박해를 당했다. 그는 박해 이후 장시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신체 상황이 갈수록 나빠져 결국 2010년 7월 18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아들과 며느리인 선촨후이(申全會), 리펑윈(李鳳雲)부부는 모두 고문박해를 당하고 8년 불법판결을 받았다.
쑹야친은 원래 지린시(吉林市)사람이다. 1998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당시 류머티스관절염과 정맥노장 등 질병으로 앓고 있었는데 걷기도 어려웠다. 대법수련을 통해 심신이 이로움을 얻었으며 아울러 엄격하게 쩐싼런(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요구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후 그녀는 매달기, 혹독하게 구타하기 등 고문을 당해 이미 손목 위에 깊은 상처가 있다.
아들을 구하려다 학대 당해
2008년 9월 8일 그녀의 아들 선촨후이는 화룡시 터우다오진(頭道鎭)에서 진상 전단지를 배포하다 화룡파출소에 의해 납치돼 아울러 비인간적인 학대를 받았다. 원래 몸이 건강하던 아들은 학대로 60~70세인 늙은이처럼 보였으며, 3개월간 땅을 딛지 못하고 음식물을 먹을 수 없었다. 이후 선촨후이는 기한을 초과해 감금당했으며 연속 5개월간 가족과의 면회를 허락받지 못했다.
2009년 쑹야친은 아들을 구하려고 늘 화룡시 공안국으로 가서 석방을 요청했다. 그러나 화룡시 공안국은 석방은커녕 노인에게 잔혹한 수단을 썼다. 몇몇 악경들이 그녀를 넘어뜨리고는 층계 위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끌고 다녔으며 또 마구 구태했다. 이러한 학대는 수 차례나 된다.
2009년 7월 10일, 쑹야친과 다른 한 노인 파룬궁수련생은 아들을 구하려고 검찰원으로 가던 도중 택시 기사에게 대법진상을 이야기하다가 기사에게 고발을 당했다. 두 노인은 화룡 경찰국 6명 악경에게 택시에서 끌려나와 뺨을 맞거나 땅에서 끌리는 등 구타를 당했다.
악경들의 학대로 그녀는 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기운이 없었으며 몸은 점점 허약해졌다. 결국 2010년 7월 18일 아침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여러 번 박해 당해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명예상에서 더럽히고, 육체상에서 소멸하며, 경제상에서 망하게 하는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파룬따파 진상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쑹야친 노인은 여러 차례 베이징에 탄원을 갔으며 평화적인 청원을 했다. 그 중, 2000년 10월 18일 노인은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파룬궁을 위해 평화적인 청원을 하다가 사복경찰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얼굴 부위는 곤봉에 맞아 전부 핏자국이 생기고 멍들었으며 몸에도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다. 쳰먼(前門)파출소 악경은 책임을 질까 두려워 그녀를 뒷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2001년 그녀는 몇몇 노인 동수들과 함께 재차 텐안먼으로 갔다. 연공하는 방식으로 평화적인 청원을 하다가 사복경찰에게 스징산(石景山) 간수소로 납치됐다. 간수소 악경은 노인에 대해 강온양책을 함께 사용했다. 먼저는 몇몇 젊은 악경들이 노인을 야만적인 폭력으로 구타했다. 사악들은 노인이 굴복하지 않자 위선적으로 속이는 수단을 써서 노인이 지린성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린성으로 불법납치를 당한 후, 또 현지 파출소에 의해 사악의 세뇌반에 가둬져 계속 박해를 당했다.
이후 현지 파출소와 가도 인원들은 늘 노인 집으로 찾아와 교란을 했다.
2002년 여름, 쑹야친은 지린시 원먀오(文廟) 시장에서 진상 전단지를 배포하다가 원먀오파출소로 납치됐다. 인성이 조금도 없는 악경은 노인에 대해 매달기, 혹독하게 구타하기 등 고문을 가했다. 수갑은 살속 깊은 곳까지 패어 들어갔는데 이후 노인의 손목 위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중공의 사악한 박해수단에 직면 했을지라도 노인은 거의 지금까지 속임수를 당한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 알리기를 멈춘 적이 없다. 매일 아침 시장에 가서 야채를 사는 기회를 이용해,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과 자신이 대법을 수련한 후 심신의 변화 및 중공당국이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유혈 박해를 이야기해 주었으며, 아울러 진상자료와 CD를 나누어 주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주동적으로 새로운 진상자료를 달라고 했다. 노인의 선량함은 거짓말과 속임수를 당한 더욱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밝은 앞날을 다시 보게 했다.
가족이 박해 당해
쑹야친의 큰 딸 선수화(申淑華)는 지린성 지린시(吉林市) 창이구(昌邑區)에서 살고 있다. 수련 전 신체에는 각종 불치병이 있었는데 대법을 얻은 후 건강을 회복했다. 그녀와 그녀 아들은 7월 20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현지 당국에 의해 ‘완고분자’로 낙인 찍혔으며, 자주 신디하오(新地號) 파출소와 가도의 교란, 감시와 공갈 협박을 당했다. 1999년 8월, 그녀와 그녀 아들은 속임수를 당해 세뇌반으로 가서 박해를 당했다. 그녀는 지린성 제3간수소에 불법 감금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선수화는 감금 기간 박해로 정신이상으로 됐다. 2000년 6월 강박으로 가도루(街道樓)의 유리를 닦았는데 닦은 다음 대야를 잊어버리고 가져오지 않았다. 6월 25일 대야를 가지러 갔다가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는데 떨어진 원인은 분명하지 않다.
쑹야친의 외손자, 선수화의 아들인 스원보(史文博)는 늘 교란과 감시를 당한 이유로 유랑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2000년 톈안먼에 가서 평화적인 청원을 했다가 사복경찰과 악경의 야만적인 구타를 당했으며 곤봉으로 머리 부위을 강하게 가격하는 등 고문을 당했다. 베이징에서 진상전단지를 배포하다가 베이징 자오양(朝陽)간수소에 두 차례 불법납치를 당했다. 그는 단식으로 불법감금을 저지했다가 ‘개 쇠사슬’에 씌워져 걸을 방법이 없게 되고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당했으며, 십자 나무판 위에 묶여 호스를 꽂고 음식물을 주입 당했다. 또 악경은 그를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게 했으며 영하 30여 도 되는 한겨울에 속옷만 입혀 눈판에서 추위에 시달리게 했다. 그 후 매우 악명이 높은 베이징 퇀허파견처(團河調遣處)와 노동수용소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2003년에 둘째 삼촌 선촨후이(申全會)와 함께 지린성 촨잉구(船營區) 창춘루(長春路)파출소 악경에 의해 납치와 불법 가택수사를 당했으며, 집안에 있던 대법자료와 서적 및 현금 몇 천 위안을 불법으로 압수당했다,
[사진]파룬궁수련생 선촨후이
파룬궁수련생 선촨후이
쑹야친의 둘째 아들 선촨후이는 여러 차례 세뇌반, 간수소에 불법감금 당했다. 이미 전에 전후로 지린시 환시링(歡喜嶺), 지린성 인마허(飮馬河)노동수용소에 의해 야만적인 박해와 체력을 초과한 노동을 당한 적이 있다. 2008년 9월 8일 선촨후이와 그의 아내 리펑윈(李鳳雲)은 화룡파출소로 납치된 후 비인간적인 학대를 겪었다. 그들의 자동차, 오토바이, 핸드폰 등 사유재산은 불법으로 압수당했다. 2009년 두 사람은 따로 따로 화룡시법원에 의해 8년 중형을 판결 받았다.
중공 사당 인원들이 아내 리펑윈을 구타한 방식은 다음과 같다
1. 비닐주머니를 머리에 씌우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아 리펑윈을 거의 질식하게 했다.
2. 등 뒤로 수갑을 채운 두 팔을 힘껏 등 위쪽에서 머리꼭대기를 지나 몸 앞으로 당겨 비틀었으며, 또 손으로 힘껏 리펑윈의 아래턱 양측 편도선 부위를 후벼팠다.
3. 리펑윈을 땅 위에 앉게 한 다음, 악경은 리펑윈 몸 위에 앉아 지면을 향해 머리를 내리 눌렀다.
4. 강제로 두 다리를 벌리게 했으며 아울러 다리를 아래에서 위로 향해 비틀었다.
5. 몸 위에 물을 뿌린 다음 전기봉으로 전기충격을 가했다.
6. 속이 빈 쇠몽둥이로 리펑윈를 구타했는데 쇠몽둥이가 구부러질 때까지 구타했다. 그들은 또 전문적으로 사람을 구타할 때 사용하는 고무 몽둥이로 리펑윈에게 폭력을 가했다.
화룡시 터우다오파출소에 있은 기간, 선촨후이는 꼬박 며칠동안 밤낮없이 연속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악경들은 전문적으로 그의 머리부위, 급소를 맹렬하게 찼는데 선촨후이는 현장에서 하마터면 맞아 죽을 뻔했다. 이후에 악경은 책임을 감당할까 두려워 선촨후이에게 일종 약물을 주입해 그를 깨어나게 했다. 이후에 선촨후이는 화룡시 시청(西城)간수소로 납치됐다.
화룡시 시청간수소에서 의식을 회복한 선촨후이는 곧 불법심문을 당했으며 악경은 ‘베이젠(背劍)’ 고문을 가했다. 몇몇 깡패 악경들은 그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운 다음, 그의 등에 앉아 힘껏 그의 사지를 뒤로 향해 비틀었다. 그런 다음 발로 그의 등을 밟았는데 그로 하여금 고통이 극에 이르게 했다. 사용한 수단은 지극히 잔인했으며 인성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문장발표: 2010년 07월 28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7/28/22761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