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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샤오치, 항저우 기차역에서 납치당해

【밍후이왕 2010년5월10일】 (밍후이 통신원 후난보도) 2010년 5월 10일, 후난 천시 현(辰溪縣) 파룬궁 수련생 위샤오치(余紹奇)는 환승하기 위해 저장(浙江) 항주 기차역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그는 몸수색을 당해 진상자료 몇 권을 나오자 그 지역 사람들에게 납치당했다. 그는 항주시 “610”에서 천시현 “610”에 통지했고, 천시 현 “610”과 국가보안대 및 위샤오치의 직장(현 기상청)동료들이 그를 납치한 것이다.

위샤오치(남,32세) 천시 기상청 원사무실 부주임이며 대졸 학력이다. 1994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허약했던 몸이 건강해 지면서 심장병 등 많은 질병들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는 “레이펑 (雷锋)학습 표병”, “우수사병”과 장려상 등의 영예를 얻었다. 선을 행하여 덕을 쌓았으며 물건을 주워도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았다. 교통사고로 다친 사람을 병원에 보내주고, 불을 끄는데 참여해 도와주는가 하면 성금과 물자를 기부하기도 했다.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위샤오치는 여러 차례 지역 악인들에게 박해를 당했다. 위샤오치는 99년에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위샤오치의 부친은 민정국 부국장이었으나 아들이 파룬궁 수련생이고 또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는 이유로 악인에게 면직 당했다. 당시 기상청 국장과 기율검 서기(纪检书记)도 처분을 당했다. 2000년 1월, 추운 겨울 위샤오치는 다시 청원하러 가기 위해 준비하다 친인들의 저지를 피하다 불행하게도 4층 건물에서 떨어져 장애인이 되었다.

2000년 6월, 위샤오치는 지팡이를 짚고 베이징 광장에 가서 연공을 하다, 랴오닝 성에서 온 파룬궁 수련생 3명과 함께 악경들에게 블법으로 붙잡혀 감금되었다. 후에 위샤오치는 주베이징 사무실에서 탈출하여, 다시 중난하이에 가서 파룬궁 박해를 멈출 것을 호소하였다. 그는 불법인원에게 붙잡혀 파출소에 감금되어 가혹한 폭행과 함께 담뱃불 고문과 모욕을 당했다. 지역 국가보안의 불법경찰, 노조인원들이 그를 데려온 후 불법구류 한 뒤 인민폐 5000위안을 강탈했다.

그 후 위샤오치는 적어도 7번 이상 불법구류 당했다. 2005년 11월 불법노동교양 당한 뒤 불법으로 정신병원에 갇혀 약, 3개월 동안 시달려야 했다. 또 불법으로 세뇌반에 감금되어 2달 동안 폭력적인 세뇌를 당했다. 거꾸로 매달기, 참혹한 폭행, 질식시키기, 음식물주입, 정신병독 주사 놓기, 성 우롱 등 여러 가지 혹형으로 귀는 잘라지고 코, 입은 맞아서 피가 흐르고 내장이 파열될 정도였다 … …

2007년 9월 20일 오전, 위샤오치는 직장(천시 현 기상청)에 출근했다가 갑자기 한 무리 사람들이 들이닥쳐(약 십여 명) 그를 납치해 끌고 갔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시 “610”과 천시 현 “610” 이 결탁하여 한 짓이었다. 그들은 위샤오치를 화이화 시 세뇌반에 보내 박해를 가했을 뿐 아니라, 직장에서 한 사람을 보내 함께 동반교육(陪教)을 받도록 요구했다.

2009년 9월 하순, 천시 현 국안대대 악독한 경찰 셰카이지(謝開基), 쿵즈런(龔志仁) 등 6~7명은 위샤오치가 인터넷에서 그들의 악행을 폭로한 문장을 발표했다고 의심해 불법으로 위샤오치 집에 뛰어들어 행패를 부리며 컴퓨터를 빼앗아 가려고 했지만, 그들이 찾고 싶은 것을 찾지 못하고 또 위샤오치 부모들이 저지해 컴퓨터는 가져가지 못하고 그 속의 물건을 훔친 뒤 화를 내면서 갔다.

악인들은 수차례 불법으로 가택수색을 하면서 협박, 강탈, 체포했다. 그리하여 위샤오치의 부모들은 심장병, 정신쇠약증에 걸렸고, 위샤오치는 강제로 이혼을 당했다. 위샤오치의 할아버지는 노간부였고 청렴하게 관료 노릇을 한 정직한 사람이다. 문화대혁명 때, 비판투쟁을 받았지만 말년에는 월급도 못 받고 원한을 품은 채 생을 마쳤다.

문장발표: 2010년 05월 10일

문장분류: 박해진상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5/10/22323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