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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 옌볜 장베이치, 신년에 재차 납치

【밍후이왕 2010년 3월 4일】(밍후이통신원 지린보도) 2010년 2월 27일, 지린(吉林)성 옌볜(延邊) 안투(安圖)현 파룬궁수련생 장베이치(張倍齊)가 칭다오(靑島) 핑두(平度)시 고향 집에서 옌볜주 공안 악경에게 암암리에서 납치당해 지금 핑두시 간수소에 불법으로 감금당하고 있다. 소식에 따르면, 권익을 유지하는 변호사를 초빙하여 옌지(延吉)에서 불법으로 억울하게 8년 중형을 판결 받은 파룬궁수련생 리펑윈(李鳳雲)을 위해 무죄변호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난(河南) 뤄양(洛陽)의 뤄타이(羅太) 변호사 사무실 두펑(杜鵬)변호사는 파룬궁수련생 리펑윈을 위해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이 합법적임을 정의적으로 변호하였으며, 리펑윈도 파룬따파를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됨은 죄가 없다고 자신을 위해 진술하였다. 전체법정은 그 당시 변호사의 뛰어난 변호와 파룬궁수련생이 체현해낸 정직하고 강직한 기개에 휩싸였다. 불법법정심리가 끝날 때, 박해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모두 진상을 알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3퇴(퇴당, 퇴단, 퇴대)를 했다. 이전에 주요하게 박해에 참여했던 경찰은 법정을 나설 때, 파룬궁수련생을 향해 두 손으로 합장했다. 그러나 불법법정심리가 지난 후, 중공(中共) 악당 610(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설립한 불법조직. 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하고 있다)은 법원을 조종하고 통제하여 리펑윈에게 8년 중형이라는 무고한 판결을 내렸는데, “태도가 나쁘다”는 것을 핑계로 들었다.

소식에 따르면, 이번 법정심리 후에 악당중앙(中央) 610이 전문적으로 부주임 한 명을 옌볜에 파견하여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을 감독하고 불법적으로 납치하였으며 세뇌반(洗腦班)을 꾸려 박해하였다. 파룬궁수련생 진광르(金光日), 탕이빈(唐儀彬) 등 파룬궁수련생이 불법으로 노동교양 박해를 당했다. 파룬궁수련생 장싱차이(張興才)는 불법으로 납치된 후, 주타이(九台)노동수용소로 납치당했다. 그러나 신체가 불합격이라며 노동수용소가 거절하여 옌볜으로 돌아왔는데, 얼마 안 되어 또 창춘(長春)공안병원으로 납치당해 불법 감금과 박해를 당했다. 파룬궁수련생 인펑친(殷風琴)은 악경에게 폭력적으로 납치당하다가 높은 건물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가족들은 악경의 협박과 공갈에 어쩔 수 없이 신년이 되기 전에 시신을 황급히 화장해야 했다.

소식에 따르면, 악경들은 파룬궁수련생 장베이치를 불법체포하기 위해 공들여 음모를 진행했다. 그들은 장베이치가 신년 전후에 어디에 가 있을지를 자세히 분석하고 상하로 내통한 후에 각지에서 협조하여 스파이 수단을 채용해서 불법납치를 실시했다.

2010년 2월 27일, 파룬궁수련생 장베이치는 칭다오 고향 집에서 옌볜의 악경과 현지 악경의 음모 하에 납치를 당했다. 장베이치는 그 당시 몸에 핸드폰과 은행카드 한 장, 약간의 돈만 지니고 있었다. 장베이치가 불법으로 납치당한 후 현지의 간수소에 불법으로 갇혔지만 악경은 만일에 대비하여 그를 지키는 경찰까지도 현지 사람을 쓰지 않았다. 옌볜에서 전문적으로 장베이치를 납치하려고 온 몇몇 경찰 외의 그 누구도 장베이치를 만날 수가 없었다. 그들은 현지 경찰에게 전혀 손도 못 대게 하였다.

장베이치(혹은 장페이치·48)의 본적은 산둥(山東)성이다. 하얼빈(哈爾濱)공업대학을 다녔고, 전에 엔지니어였다. 1990년에 지린성 안투현으로 이사하여 건축, 장식, 자영업 등에 종사하였으며, 안투현 제2건축공사의 경리에 임직했었다. 그는 1996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하였다. 1999년 중공 장쩌민 집단이 불법으로 파룬궁을 단속한 후, 베이징에 청원을 갔다가 다롄(大連)비행장에서 납치당해 한 달 동안 형사구류를 당했고, 또 불법으로 노동교양을 2년 당했다. 옌볜 노동수용소에 갇혔다가 석 달 후 보석으로 나왔다. 안투현 간수소에 여러 차례 불법으로 감금당하였다.

2004년 3월 24일 이른 아침, 악인의 모함으로 장베이치는 안투현 폭동방지 순찰대대(110)에 불법으로 납치당했다. 또 안투현 국보대대는 비밀리에 안투 하이거우(海溝) 금광(金礦)에 후송되어 꼬박 7일간 잔인무도한 박해를 당했다. 장베이치는 계속 호랑이 의자에 묶여있었고, 악당은 몇 치 되는 굵은 플라스틱도관과 나무몽둥이로 혹독하게 그를 때렸다. 또한 담배꽁초를 콧구멍에 꽂아 넣고 연기를 쏘이게 했다……, 장베이치는 여러 번이나 기절했는데, 모두 냉수를 끼얹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장베이치의 두 다리는 박해로 걸을 수도 없게 되었고, 사람은 또 정신을 잃고 깨어나지 못하였다. 악경은 책임을 감당할까봐 두려워 사경을 헤매는 장베이치를 안투간수소로 들고 가서는 그대로 내버려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장베이치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기에 여러 차례 고소했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법원에서 불법으로 재판을 시작하여 심리할 때, 장베이치가 갑자기 졸도하여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장베이치는 불법으로 6년 판결 받고 2004년 11월에 창춘시 톄베이(鐵北)감옥으로 납치당하였으며, 후에는 불법으로 지린감옥으로 옮겨져 계속 박해를 당했다. 2006년 7월 25일, 파룬궁수련생 장베이치는 지린감옥의 독방에 갇혀 엄격한 감시를 당했다. 감옥경찰이 범인에게 지시를 내려 벌어지는 침대에 장베이치를 올려놓고 몸을 잡아당기는 잔인무도한 박해를 진행하도록 해서 몸이 불구가 되었다. 당시 그는 잡아당기는 고문으로 기절까지 했다.

형기가 차서 석방되는 날인 2009년 3월 19일에 아침 5시 반에 장베이치는 11감옥구역에 가서 고향친구를 만나보려 하다가 11감옥구역의 수감자에게 맞아서 중상을 입었다. 11감옥구역의 당직 감옥경찰은 수감자를 제지하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또한 수감자를 꼬드겨서 “그를 11감옥구역에 끌고 와 수갑을 채워 매달아 놓아라. 제기랄. 출옥하든 안 하든 상관없다.”고 했다. 그때 11감옥구역과 아래층 7감옥구역에서 징역살이를 하는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현장에 있었다. 11감옥구역의 수감자가 3층에서 2층까지 장(張)을 끌고 내려오면서 구타를 해 안경이 부셔졌다.

문장발표:2010년 03월 04일

문장분류:박해진상
문장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3/4/2192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