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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지 3년 넘어도 가오룽룽 가족들 여전히 감시 당해 (사진)

[명혜망 2008년 9월 20일] 2008년 8월 중순, 중공의 박해로 치사한 파룬궁 수련생 가오룽룽의 어머니가 이웃의 요청으로 북경에서 심양으로 가서 집을 보수했다. 보수를 마친 뒤 북경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76세 노인의 몸으로 심양 기차역, 장거리 버스에서 “올림픽”검사에 통과하지 않아 심양에서 가로 막혀, 장기간 살던 북경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가오 룽룽

올림픽 기간동안 요녕의 파룬궁 수련자 및 “개미 양식자”의 신분증 번호는 모두 사당인원들에 의해 컴퓨터에 저장됐다. 그래서 심양의 각 교통 운수소에서 신분증을 보인 뒤 북경발 차표를 끊으려고 하니 매표담당자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력신(蚁力神)과 파룬궁에는 표를 팔지 않는다”. 비록 표를 손에 쥐었다 해도 차에 오르기 전에 신분증을 보여 “ 안전검사”를 통과해야 했다. 검사 할 때는 매 사람의 신분증을 마치 은행카드를 씻듯 컴퓨터 위에 올려 놓는데 만약 검사 당한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하거나 개미 양식자이면 컴퓨터에 나타나 검사원이 못가도록 가로막는다. 가오 어머니도 이렇게 되어 북경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가오 룽룽이 2005년 6월 16일 중공 사당의 잔혹한 학살로 세상 뜬 후 일년만에 가오 룽룽의 부모, 언니는 여러 부문에 상방을 다녔으나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으며, 각 부처마다 서로 밀어 버렸다. 80고령에 이른 가오 부친은 비참한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중병에 걸렸으나 가오 어머니는 남편을 돌볼 힘이 없어 두 내외간은 북경에 있는 딸집에 갈 수 밖에 없어서, 심양에는 거의 돌아가지 못하다시피 했다. 심양 가오씨가 살고있는 지방의 파출소, 610도 이와 같은 사실을 완전히 알고 있으면서도 도리어 가오 룽룽 가족 및 관련 정보를 컴퓨터에 저장해 감시했던 것이다.

가오 룽룽이 “진,선,인” 파룬따파를 확고히 수련한다는 이유로 2004년 5월 7일 노교소 경찰에게 전기고문을 당해 얼굴이 완전히 훼손되어 국제 사회로부터 광범위하게 주목을 끌었다. 2004년 10월 5일, 선량한 인사의 도움으로 불법 감금에서 벗어나 병원에서 탈출했으나 2005년 3월 또 다시 중공 당국에 납치 당했다. 가오 룽룽은 사망 전까지 심양시 장스 노교소, 마싼쟈 노교소로부터 료녕성 사법청, 성 노동 개조국 등 부문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가족들에게 말하였다. “시름 놓으시오, 법률은 흉수를 엄격히 처벌할 것이므로 더는 찾아 다니지 말고 집에서 기다리십시오, 위에서 아직 사건을 결속 짓지 못하였을 뿐이므로 이번엔 가오 룽룽에게 별 일 없을 겁니다” 하지만 가오 룽룽은 2005년 6월 16일 사당에게 살해됐는데 그 해 겨우 37살이었다.

중공 사당 요원들은 가오 룽룽 가족에게도 박해의 검은 손을 뻗쳤고, 친척까지 연루해 아이들 마저 놓치려하지 않았다. 가오 룽룽 언니의 딸은 이미 캐네다 영사관의 유학 입국 사증을 받았지만 중공 국안의 “검은 명단”에 올라 출국할 수 없게 됐다.

상황을 알고 있는 분들은 가오 룽룽 가족들이 받고 있는 자세한 박해 상황을 제공하기를 바라며, 국제 사회에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파룬궁 수련생 및 그들 가족들이 받고 있는 박해에 관심을 모으길 호소한다.

문장발표 : 2008년 9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문장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8/9/20/18623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