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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우한(武汉) 학습반에 참가한 회억

글 / 중국대륙 대법수련생, 후이밍

[명혜망] 사부님을 직접 뵌 동수들의 회억을 읽을 때마다, 나는 항상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는 한다.

나는 1993년 대법을 수련하기 전까지는 불교의 한 거사였다. 1983년 이후 내 생애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종종 꿈에서 관음보살의 점화를 받았는데 결국엔 불자가 되었다. 그 이후부터 나의 주된 욕망은 자식들을 키우고 뒷바라지하는 책임 이외에, 부처님께 인간세상에서의 고해에서 나를 구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삶이 얼마나 힘겹더라도 항상 나 자신의 수련을 견지했고 경문을 암송하며 좌선했다. 한 번은 미륵부처가 경문 한 자루를 우리 집 거실에 갖다놓는 꿈을 꾸었다. 그는 얼굴에 미소를 지은채 경문은 내게 주는 것이니 수련을 잘 해야한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나중에 종종 깊은 명상을 하면서 나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비록 불교 중에서 수련하고는 있었지만, 이 모두가 사부님께서 세밀하게 배치해 놓으신 것이라 생각한다.

그 당시 나는 종종 여행을 다녔는데 가는 곳마다 항상 좋은 스승을 찾았고 같이 수련할 도반들을 찾았다. 한 번은 산 정상에 위치한 큰 사원을 지나가게 되었는바, 산 밑에는 작은 사원이 있어 그곳에 한 도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이미 두 명의 좋은 스승을 모셨지만 가장 뛰어난 분을 곧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꿈을 꾸었는데, 관음보살 왼편에 자비로워 보이면서 정중한 얼굴의, 키가 훤칠하게 큰 청년이 서 있었다. 관음보살은 나를 가리키며 그 청년에게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제자 한 명을 보내겠습니다.” 그 분은 미소를 지은 채 나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좋습니다.” 그 분의 만면의 미소는 선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공손하게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1993년 가을에 나는 사부님을 직접 뵙게 되었다. 아주 유명한 기공사가 우한에서 설법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이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즉시 그곳으로 가서 마침내 나의 사부님을 찾게 되었다. 다음 날 우한에 도착하여 많은 거리를 누비면서 설법 장소가 어디인지 물었더니 구이위안 절의 한 불교 거사가 강의는 우강에서 열리고 있다고 알려 주었다. 막 어두워질 무렵 나는 그곳에 도착했고, 사람들이 강의실로 들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사무실을 찾아 등록하고 오후 6시 30분에 시작하는 강의 티켓을 살 수 있었다. 나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거처도 찾지 못한 채 많은 사람들을 따라 강당으로 들어갔다.

학습반에 이틀이나 늦게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내가 강당으로 들어갔을 때 강당은 이미 만원이었다. 2, 3천명 되는 사람들이 조용히 자리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사람이 단상위에 나타나자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강당을 메웠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 분은 키가 컸고 위엄이 있었으며 자비로 충만되어 있었다. 그 분이 한 손을 올려 인사를 하셨는데 나는 즉시 꿈에 나타났던 그 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나는 마침내 그 분을 만나게 된 것이었는데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에너지 흐름이 전신을 통과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너무나 격동되어 여행의 피곤과 배고픔도 잊었다. 법을 얻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마침내 내가 찾던 사부님을 찾은 것이다. 이것은 사부님의 자비를 통한 인연이었다. 부처의 자비가 나를 진정한 수련의 길로 이끈 것이었다.

강의 후에도 모든 사람들이 머뭇거리며 떠나려하지 않았다. 강당 밖 광장에 학생들이 서 있었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이 늦은 시간에 왜 다들 떠나려 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첫 날이라 나는 아직 숙소도 찾지 못한 상태라 떠나려 해도, 그런 장면은 전에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사부님이 나오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아 무심히 주차장이 있는 광장 왼쪽을 향해 걸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이미 검은 색 차 옆에 서 있었다. 차와 꽤 떨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겹겹이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 볼 수 없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를 향해 왔는데 갑자기 사부님께서 내 앞에 서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차에 타실 수 있도록 급히 길을 비켰다. 운전사와 다른 사람들 모두 차에 탔지만, 사부님께서는 아직도 내 앞에 서 계셨고 내게 미소를 보내주셨다. 마치 오래 떨어져 있다 돌아온 자식을 바라보는 사랑이 가득 찬 아버지와도 같았다.

나는 사부님과는 몇 발자국 떨어져 있었다. 그 분을 올려다보자 매우 따스한 느낌이 들었는데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몰랐다. 눈에 눈물이 가득 한 채로 마침내 나는 말씀드렸다. “사부님, 인사드립니다.” 사부님께서는 “좋아! 좋아! 좋아!” 라고 대답하셨다. 그 분은 셔츠와 바지주머니를 뒤지며 무엇인가를 찾고 계셨다. 아무도 사부님께서 무엇을 찾고 계신지 몰랐다. 그러고 계신 사부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키가 컸으며 머리는 새까맸으며 눈에는 빛을 발했다. 그 분은 친절하시고 부드러우셔서 접근하기 쉬운 분이었다.

곧 차에 있던 스태프 한 명이 사부님께 차에 오르시라고 청했다. 사부님께서는 그들을 돌아보시면서, “내 명함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물으셨다.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명함을 찾기 시작했는데, 차에는 운전석 옆자리만 남았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차에서 누군가가 “하나 있습니다.”라고 하자 사부님께서는 “빨리 내게 달라. 그것을 하나 주겠다.” 그런 뒤 사부님께서는 그것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나의 감사한 마음과 존경심을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채 다만 눈물을 글썽거리며 두 손으로 명함을 받았다. 그제서야 사부님께서는 돌아서서 차에 타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차가 멀리 가는 것을 바라보는 나는 들떠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아주 부러워하면서 명함을 돌려가며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행복했다.

사부님께서는 강의시간 동안 학생들과 거리를 두지 않으셨다. 한 번은 사부님께서 제2장 공법을 가르치고 계셨고 나는 포륜(抱轮) 동작을 하고 있었는데, “좀 더 크게 만들라”는 사부님의 말씀이 들렸다. 그 분의 목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렸기 때문에 눈을 떠보니, 정말 사부님께서 내 곁에 서 계셨고 내게 직접 가르쳐주셨다.

강의 중의 경험은 잊지 못할 것이다. 바로 사부님께서 >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내가 말 한다면 정말로……장래에 당신은 알 수 있겠지만, 당신은 이 한 단락 시간이 몹시 보람됨을 느끼게 될 것이다.”

8일간의 학습반이 끝났을 때 나는 합장하며 사부님께 나의 가장 깊은 존경심을 보냈다. 이 일들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울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와 구도에 대한 보답으로 사부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세 가지 일을 할 것이고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것이다.

발표일자: 2006년 12월 28일
원문일자: 2006년 1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마당]

중문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12/17/144868.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6/12/28/812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