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창춘 공안1처에서 3.05삽입방송에 참여한 대법제자에게 가한 혹형(사진)

【명혜망 2006년 6월1일】2002년 3월 5일 저녁 8시경 지린성 창춘시 유선 TV 네트워크의 8개 채널에서 > > 등의 파룬궁 진상프로가 삽입 방송되었다. 방송된 시간은 약 사오십여 분이었다. 창춘 유선 TV 회사는 30만 명의 가입자가 있으며 시청자는 약 백만 명에 달한다. 이 일은 중국 민간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으며 수많은 민중들이 이로 인해 파룬궁이 박해당한 진상을 알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파룬궁박해를 주도한 장쩌민은 극도의 두려움으로 암암리에 이에 관련된 수련생은 “무조건 죽이라”는 밀령을 내렸다. 그후 지린의 악경들은 불법으로 5천여 명의 창춘 파룬궁수련생을 체포했으며, 대대적인 수색과정에서 최소한 6명이 폭행치사되고 그 외 15명은 불법으로 4년에서 20년의 판결을 받았다.

대법제자 레이밍(雷明,남,30세) 지린성 바이산시 사람. 몽폐당한 많은 세인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기 위해 2002년 3월 5일 다른 대법제자들과 함께 창춘시에서 TV 삽입방송을 통해 파룬궁 진상을 방송했다. 후에 악경에게 불법으로 체포되어 장씨 망나니집단이 발포한 “무조건 죽이라”란 밀령 후 각종 잔인무도한 혹형의 박해를 받았다. 레이밍은 창춘시 중급위 법원에 의해 불법으로 중형 17년 형을 판결받은 후 지린감옥에 납치되어 각종 혹형의 박해를 받았다. 2년여 넘게 지나 생명이 위급해졌는데 2004년 레이밍은 밖에서 치료받고 있지만 신체는 이미 박해로 인해 불구가 되었다. 현재 레이밍의 근육은 위축되어 길을 걸을 수 없어 자립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

*창춘시공안국에서 악경으로부터 혹형을 당하다

2002년 3월 15일 레이밍은 TV 삽입방송으로 악경, 악인에 의해 창춘시 칭밍가파출소에 납치되었다. 그 당시 레이밍의 두 손은 등뒤로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바닥에 앉았다. 대략 한시간이 채되지 않아 창춘시공안국에서 여러 명의 악경들이 왔다. 두 명의 악경이 먼저 레이밍을 끌고 나갔는데 문 앞에서 파출소 밖에 많은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중 많은 사람들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레이밍이 문앞에 오자마자 이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레이밍을 취재 하려고 했지만 악경이 전부 밀쳐내어 취재하지 못하게 했다.


창춘시 칭밍가파출소


창춘시공안국

악경들은 레이밍을 차에 싣고는 창춘시공안국에 갔다. 이어서 또 레이밍을 대략 6층 높이에 있는 방에 데리고 가서 호랑이 의자에 앉혔다. 철로 만든 의자는 일반 의자보다 더 높아 사람이 받쳐주어야 비로소 앉을 수 있다. 앉은 후 두 다리는 바닥에서 떨어지고 두 발은 의자다리에 묶었다. 또 한 가닥 철토막으로(대문을 가로 지르는 철토막과 비슷함) 배를 단단히 누르면서 가로 질러서 손을 놓는 손잡이에 끼웠다. 다시 자물쇠로 잠근 후 두 손은 등 뒤로 의자에 묶었다. 한 악경이 끝이 뾰족한 전기곤봉으로 레이밍의 목 뒤를 맹렬하게 여러 번 감전시켰다. (사진은 파룬궁수련생들이 혹형을 시연한 것임)

*창춘시 공안1처에서 혹형의 시달림을 받다

이때 또 몇 몇 악경들이 들어와 레이밍을 의자에서 풀어 눈가리개를 씌웠으며 아무 것도 보지 못하게 했다. 악경은 레이밍을 층집 아래에 있는 차에 올려 보냈다.(레이밍은 납치과정에 끌신 한 짝만 신었고 한쪽 발은 맨발이었으며 허리띠는 악경이 풀어내어 바지가 거의 절반 바닥에 끌렸다). 차에 오른 후 레이밍은 경찰차들의 앵앵 거리는 소리가 동시에 울리는 것을 들었다. 마치 하나의 차대오와 같았는데 레이밍은 그들이 어디로 데려가는지 몰랐다.

차대오는 약 30여 분 되어 멈췄고 악경은 레이밍의 눈가리개를 벗겼다. 레이밍은 대략 저녁 9시에서 10시 사이로 추정했다. 날씨가 비교적 어두워 어슴프레 층집 하나가 보였지만 몇 층인지 몰랐다. 주위는 담벽이었고 또 큰 철문이 있었다.

악경들은 레이밍을 차에서 끌어내어 방안에 들여 보냈다. 방안에는 철 호랑이의자, 전기곤봉, 비닐주머니, 큰 철통, 전기스팀…… 방안을 간단하게 한 번 둘러보니 마치 술집의 룸살롱같았고, 낡고 온기가 없었는데 오랫동안 장사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악경은 레이밍을 철 호랑이의자에 앉히고는 가는 밧줄로 레이밍의 두 다리를 단단히 묶었다. 그 다음 철토막으로 손잡이 아래에 끼어넣어 배를 가로 질러 자물쇠를 잠갔다. 잇달아 또 레이밍에게 더 혹독한 고문을 가했는데 그의 두 손을 등뒤로 돌려 겨드랑이를 의자에 끼우게 했다. 그 다음 한가닥 소가죽 띠로 수갑 중간을 가로 질러 의자다리를 지나서 올라오게 했는데, 두 악경이 악독하게 힘껏 소가죽 띠를 아래로 잡아 당겨 단단히 묶었다. 수갑 철고리가 손목을 누르고 어깨근육이 늘어져 레이밍은 고통을 참기 어려웠다. 레이밍이 전신의 힘을 다해 반항했기에 악경들은 달성하지 못했다. 그중 한 악경이 화가 나서 수갑을 마구 걷어차 소가죽으로 묶인 정도가 극한에 닿았으며 레이밍은 고통으로 거의 기절할 뻔 하면서 땀으로 온 몸이 젖었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며 레이밍의 신체는 이미 움직일 수 없었다.

악경들은 레이밍을 고정시킨 후 지쳐서 헐떡거렸다. 방이 추워 악경은 전기스팀을 켜고 한편으로 쉬면서 한편으로 잡담했다. 그중 성씨가 가오라고 하는 악경 과장이 사부님을 비방할 때 비록 레이밍의 고통은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지만 그 당시 큰 소리로 악경을 제지시켰다. “당신 입을 다물라!” 그러자 악경 가오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미친듯이 레이밍을 향해 달려와 입을 마구 때렸다. 악경은 지쳐서야 비로소 손을 멈췄다. 그때 또 두 명의 악경이 손에 전기곤봉 한 대씩 들고 와서는, 레이밍의 윗옷을 벗겨 가슴과 목을 드러내게 했다. 이어 또 레이밍의 바지를 벗겨 생식기와 허벅지를 드러나게 했다. 그 다음 두 악경은 동시에 레이밍의 목, 입, 허벅지, 가슴, 생식기, 항문을 감전시켰다. 레임은 고통스러워 끊임없이 비명을 질렀다. 전기 곤봉의 건전지가 닳아지가 악경들은 또 충전하러 갔다.

이 때 또 다른 두 명의 악경이 비닐주머니를 레이밍의 머리에 씌우고 공기가 한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레이밍은 하마터면 숨이 끊어질 뻔 했다. 그러나 악경들은 비밀주머니를 풀어서 레이밍이 겨우 숨을 들이쉬자 또 비닐주머니를 뒤집어 씌웠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전기곤봉의 충전이 다 될때까지 반복적으로 지속되었다. 아까 갔던 두 명의 악경이 다시 왔다. 악경들은 사악한 정도가 모자라다고 생각했는지 나사칼을 가져다 전기스팀에 달군 후 다시 레이밍의 목을 태웠고 레이밍의 살갗이 벗겨져 나갔다.

레이밍은 이를 악물고 거대한 고통을 참았고 악경은 잇따라 전기곤봉으로 레이밍의 화상입은 곳을 감전시켰으며 또 다시 물을 목에 부었다. 이는 레이밍으로 하여금 사는 것이 죽기보다 못하게 하였으며 고통은 끊임없이 거세졌다. 그당시 방안 전체가 공포적 분위기였다. 이 기간 악경들은 또 철통을 레이밍의 머리에 씌우고 철막대기로 힘껏 때려 청각을 잃을 정도로 괴롭혔다.

악경은 또 나무 막대기를 항문에 꽂은 후 다른 한 끝은 의자등 뒤에 대고 또 다시 전기곤봉으로 항문을 감전시켜 레이밍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대략 4,5시간 지나자 레밍의 어깨와 손목뼈는 당겨지고 눌려져 수갑을 갓 채울 때처럼 고통스러웠으며 땀방울은 이젠 바닥이 난듯 더 이상 나오지도 않았으나 옷은 진즉부터 흠뻑 젖어 있었다. 레이밍의 손목은 여전히 힘껏 당겨져 있어 끝내 소가죽띠가 끊겨나갔다. 악경들이 다시 채우려고 해도 채울 수 없었다. 한 악경이 등 뒤로 돌려진 레이밍의 두 손을 힘껏 위로 당겨 레이밍의 앞가슴은 허벅지와 맞붙었고 레이밍의 배는 철토막에 더 눌리워 아주 고통스러웠다. 이 자세는 5분간 지속된 후 비로소 멈춰졌다. 이때 악경들이 또 한가닥 밧줄을 가져와 그를 고정시키려 했지만 어떻게 해도 고정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없어 수갑을 열어 손잡이의 수갑에 손을 채웠다. 두손이 힘껏 당겨져 레이밍의 오른쪽 어깨는 이미 탈골되었고 오른쪽 팔은 검은 자주빛을 띄었으며 마치 불구가 된듯 흔들거렸고 두 손은 찐빵처럼 부었다. 손가락은 정상인 손가락보다 2,3배 더 굵어졌다.

바로 이렇게 악경들이 윤번으로 레이밍을 밤새도록 끊임없이 박해한 후 악경들조차도 기진맥진해져 모두 잠을 자러 갔다. 두 명의 악경만 레이밍을 감시하였고 그들도 나중에는 잠이 들었다. 이때 레이밍은 나가야한 겠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왼쪽 손을 손잡이의 수갑에서 힘껏 당겨 빼고 오른쪽 손은 어떻게 힘을 써도 뺄 수 없었는데 오른쪽 손은 이미 탈골되었기 때문에 힘이 조금도 없었다. 이때 레이밍은 왼쪽 손으로 힘껏 오른쪽 손의 수갑을 빼 손이 빠져나왔다. 레이밍의 두 손은 활동할 수 있고 이어서 레이밍은 다리를 힘껏 들어 두 손이 다리의 밧줄을 잡게 했다. 이어서 레이밍은 먼저 굵은 밧줄을 풀었지만 가는 밧줄은 아주 단단했고 또 레이밍의 손가락이 2,3배 굵어져 풀수 없었다. 또 작은 다리 앞의 철토막이 잠겨져 있고… .. 악경은 잠에서 깨더니 레이밍의 손이 자유로운 것을 보고 또 한바탕 때렸다.

레이밍은 이 곳에서 이틀간 머물고 악경들은 또 그를 한 호텔에 납치해 갔는데 철 호랑이의자는 계속 가지고 다녔으며 호텔에서 이틀동안 머물면서 4일동안 밤낮으로 철의자에 앉아있었다. 나중에 악경들은 그에게 각종 잔혹한 박해를 가한 후 테베이구치소에 보냈다.

구치소에서 먼저 옷을 벗겨 검사하다가 구치소의 경찰은 레이밍의 온 몸이 상처투성인 것을 보고는 거절했다. 시공안국의 악경은 그들과 무엇을 말했는지 그는 레이밍을 받아들이겠다고 동의했다. 감방안에 들어가면 먼저 목욕하고 머리를 깍는다. 레이밍이 옷을 벗어 온 몸의 상처를 드러냈을 때 감방안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라 멍해졌다. 일부는 계속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일부는 심지어 감히 보지 못했다. 레이밍의 온몸에 전기곤봉에 의해 생긴 검은 딱지와 목의 화상당한 곳, 또 새까맣게 그을린 상처, 또 손목, 어깨, 발목이 박해당할 때 남긴 흔적은 정말로 눈뜨고 볼 수 없었다. 그것을 본 우두머리가 말했다. “전에 나는 파룬궁을 이렇게 심하게 박해한다고 믿지 않았는데 오늘 나는 철저히 믿게 되었다. 이 공산당은 곧 망한다.”

레이밍에 박해한 악경은 : 류후이빈, 장타오, 가오항, 장버, 가오씨성의 과장 등이다.

* 삽입방송한 사람이 심사기간에 폭행을 당하다

2002년 9월 중순, 창춘시 중급인민법원은 15명의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불법 심문하였고 경찰은 이들을 법원의 단칸방에 끌고가 미친듯이 폭행하면서 전기곤봉으로 감전시켰다. 그중 천옌메이와 경찰의 총에 다리를 맞은 류청쥔은 아주 오랫동안 매를 맞았다. 후에 류청진, 천옌메이, 량전싱 등은 들것에 실려 감방으로 돌아갔다. 경찰이 법원의 심리시간 중 폭행한 것에대해 지린시감옥의 한 일꾼은 이렇게 성명했다. “법정에서 발생한 일체에 대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것은 창춘시공안국에서 한 일이다.”


창춘시중급인민법원

* 허우밍카이: 610에서 5만위안의 현상금을 걸었으며 이틀간의 박해로 사망

35살난 창춘시 파룬궁수련생 허우밍카이는 2002년 3월 창춘 TV에서 파룬궁진상 삽입방송에 참여했다. 이에 대해 “610”은 5만위안과 2급의 관직을 승진해준다는 조건으로 대대적으로 참여한 수련생들을 체포하게 했다. 허우밍카이는 2002년 8월 21일 체포되어 2일간의 박해로 사망했으며 2002년 8월 23일 비밀리에 화장했다.

* 6명의 수련생들이 대수색을 당해 사망

창춘시 파룬궁수련생 리룽은 2002년 3월 현지 경찰에 의해 삽입방송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3월 말 4월 초까지 짧은 시간동안의 박해로 사망했다.

2002년 3월 6일 34세의 지린대학 응용수학계 교수 선잰리는 2002년 3월 6일 체포되어 2002년 4월 하순에 현지 공안의 박해로 사망했다. 그녀의 남편 정웨이둥 역시 파룬궁수련생이며 아직도 수감 중이다. 그들의 4살난 딸은 현재 친구가 돌봐주고 있다.

2002년 3월 11일 저녁, 34세의 파룬궁수련생 류하이보는 창춘시 쿠안청구 공안분국에 의해 집에서 납치되어 새벽 1시 넘도록 혹형을 하면서 자백을 강요했다. 경찰은 류하이보의 심장박동이 멈춘 것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손을 멈췄고 120응급센터로 보냈지만 이미 사망했다.

2002년 3월 16일 30세 가량의 남성파룬궁수련생이 창춘진청공안분국 형경대대에서 산채로 맞아 사망했다. 그 파룬궁수련생은 온 몸에 상처를 입었고 내장은 여러 곳이 파열되었으며 신체는 이미 엄중히 변형되어 있었다.

2003년 3월 18일 파룬궁수련생인 34세의 류이는 창춘루위안구 공안분국 형경대에 의해 그 형경대대 사무실에서 구타로 사망했다.

2002년 3월 20일,54세의 여수련생 루수진은 창쥬로파출소에 의해 납치되었고 창춘 제3구치소에서 시달림을 받고 사망했다.

* 류청쥔: 21개월간 감옥에서 시달림을 당한 후 인간세상을 떠나다

2003년 12월 26일 (금요일)새벽 4시, 주요 삽입방송자 류청쥔은 1년 9개월동안 옥중에 잔혹하게 고문을 당하다가 창춘 지린대학 중일련의병원에서 인간세상을 떠났다.

2002년 3월 24일,그 당시 경찰은 납치한 류청쥔에게 족쇄를 채우고는 고의로 그의 다리에 총을 두번 쏴 중상을 입혔다. 2002년 5월 초 류청쥔은 테베이구치소에 이전되어서도 혹형으로 자백을 강요 당했으며 52일간 호랑이의자에 앉혀 있었다. 재판당시에는 들것에 실려 법정에 들어갔다. 2002년 9월 중순, 류청쥔은 불법으로 19년 판결을 받았고 지린감옥에 수감되었다.

2003년 10월 하순, 류청쥔은 박해로 인하여 이미 얼굴이 변형되었으며 말조차 하지 못했다. 지린시중심병원에 보내져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병원은 병세가 위급하다는 통지를 내렸다. 그러나 610사무실은 강제로 지린성공안병원에 보냈다. 공안병원 의사는 류청쥔이 뇨독증이고 병세가 위급하다는 통지를 내렸다. 지린감옥은 핍박에 의해 11월 4일 밖에서 치료하는 절차를 밟게 했다.
그러나 류청쥔 호구소재지인 농안현 더비오파출소에서는 책임을 감당하기 두려워 11월 5일 농안현공안국에 신고했다. 농안현 610사무실은 도장을 찍어주지 않았고 지린감옥은 류청쥔의 밖에서 치료하라는 병원서류를 없애 버렸다.

2003년 12월 26일(금요일)새벽 4시 1년 9개월동안 잔혹하게 시달림을 당하다가 류청쥔은 창춘대학 중일련의병원에서 인간세상을 떠났다. 그날 지린감옥은 많은 경찰을 소집했고 가족의 반대를 마다한채 시체검사도 하지 않은 채 오전 11시 경 강제로 화장했다. 목격자는 류청쥔의 코, 귀, 허벅지 여러 곳에서 피가 흘러나온 것을 발견했다.

* 량전싱:밀실에서 자백을 강요당하면서 갖은 혹형의 시달림을 당하다

대륙에서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삽입방송자 량전싱은 2002년 9월 불법으로 수감되기 전 경찰에 의해 창춘의 테베이구치소에 납치되어 2,3일에 한번씩 심문당했는데, 매번 모두 그의 눈을 가린 후 데려갔다가 돌아오면 온 몸이 상처투성이었다고 했다. 창춘지형을 잘 아는 그의 말에 따르면 끌려간 곳은 대략 창춘의 징웨탄에 위치해 있으며, 그 곳은 혹형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밀실이 있다고 한다. 그 곳에서 그는 갖은 혹형의 시달림을 당했다.

* 삽입방송의 장거, 민중의 알 권리를 수호하다

7년동안 사악한 중공과 망나니 장씨집단은 일체 사악한 수단을 이용하여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고 무수한 주류사회의 민중들을 살해했다. 다른 한 면에서 사악한 중공은 또 전국의 TV방송국과 기타 선전기구를 이용하여 흑백을 전도하고 모함과 날조로 전 중국인들을 해쳤는 바 법률과 공정한 도리를 논할 수 없다. 전 세계도 중공의 사악한 거짓말에 몽폐되어 인류문명의 오늘날 신념이 있는 자에 대해 이런 파쇼식의 박해가 발생하고 있음을 알지도 못하고 있다.

한 화교는 이 일체 사실을 들은 후 분개하여 말했다. “독일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는 것보다 더 잔인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해치고 있는 것은 진선인을 믿는 가장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날 유태인들이 무리하게 살육을 당하는 상황이라고 했을 때, 히틀러가 전 세계인에게 가상으로 독해시켜 놓은 것을 돌파하여,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실의 진상을 각종 매체를 통해 폭로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더 유효적으로 파쇼식 폭행을 제지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그렇게 한 그를 영웅이라고 할 것이다.

오늘날 오로지 마음을 수련하면서 착해지려고만 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은 위대하고 정의로운 비폭력적인 항쟁을 실천하고 있다. 중국의 파룬궁수련생들은 어두운 밤 달과 별을 벗 삼아 거리와 골목을 다니면서 전단지를 뿌리고 표어를 붙이고 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삽입방송을 하여 장씨의 거짓말을 폭로하며, 동시에 대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데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곁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 일체를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사람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 사악한 중공과 장쩌민의 파쇼적 행각을 같이 질책하여 더 많은 민중들이 상처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많은 중국 대륙의 구독자들이 명혜망에 편지를 써서 파룬궁진상을 감히 이야기하는 파룬궁수련생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그중 한 구독자는 이렇게 썼다. ” 매 사람마다 모두 영웅이 될 수 없고 당신들은 나의 비겁함을 용서하라. 그러나 나는 양심이 있다. 당신들이 한 일은 아주 정확한데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깨어날 것이며 당신들이 계속 해나가길 바란다.” “이 철로 만든 방안에 더 많은 햇볕이 필요하다!” “내 생각에 만약 우리 오늘날 사회의 사람들이 파룬궁처럼 사람이 되고 일을 한다면 그렇게 많은 범죄와 위법이 없다고 본다. 사람마다 모두 자율적이고 덕을 중히 여기고 선행하며 좋은 사람이 되며, 고상한 품성을 가진 진정한 좋은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파룬궁수련생은 단호함과 이성으로 고통을 참고 심지어 피의 대가를 내고 있지만 그들의 노력과 감당은 헛되지 않을 것이다. 5천년 문명을 가진 중화민족에게는 선악의 관념이 있는 것으로 사악한 중공이 공포수단으로 말살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 정의를 주장할 것이고 파룬궁수련생은 계속 해나갈 것인 즉 인간세상에 진솔, 선량, 참음, 양보가 충만될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문장완성:2006년 05월 31일

문장발표: 2006년 06월 01일
문장갱신:2006년 06월 01일 03:09:20

원문위치: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6/6/1/12940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