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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이 널리 전해져 휘황을 펼치고, 부처의 가없는 은혜로 중생을 구도하네(2)

[명혜망 2006년 3월 29일]

3.사부님의 관심

사부님의 제자에 대한 관심과 보살핌에 대해 말하자면 따렌 제자의 할 말은 끝이 없다.

(1) 사부님께서 우리집 상황을 알고 계시다
ㅡ한 수련생의 회상 ㅡ

사부님께서 따렌에 오셔서 제2기 학습반을 열었을 때 나는 사업요원으로 있었다. 하루는 설법하시다가 쉬는 시간에 사부님께서 나에게 친절하게 물으셨다. “어떻습니까, 생활이 곤란합니까 ?” 나는 그때 어정쩡해서 속으로 사부님께서 어떻게 우리집 경제상황을 알고 계실까? 하고 의아해 하였지만 “곤란이 없습니다”하고 말씀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잇따라 “괜찮겠습니까?”하고 물으시자 나는 “괜찮습니다”하고 대답해 드렸다. 그때 이미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사부님은 또 나에게 친절히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됩니다.”

사부님의 말씀은 나에 대한 촉동이 아주 컸는데, 바로 나에 대한 깊은 관심이란 것을 알았고, 또한 나의 수련을 지도하는 중요한 법리라는 것을 알았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알려주시기를 수련인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련을 하여 세간을 벗어나야 하고, 각자가 되고 반본귀진해야 한다. 세간은 다만 며칠 묵는데 불과하기 때문에 세간의 일체를 모두 담담하게 보아야 하지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먹고 살 수만 있으면 된다” 이 말을 나는 줄곧 내 마음속에 아로 새기고 있었기에 곤난 속에서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며 줄곧 낙관적인 심태를 가질 수 있었으며, 동시에 내가 정진실수하고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나를 지도해 주었다. “태어나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 망령된 생각을 탕진하거니 부처로 수련되기 어렵지 않노라”(> 무존) 사부님의 이 중요한 법리는 내가 신의 길을 걷는데 줄곧 지도로 되었다. 사부님과 함께 있었던 나날들을 회상해보면 사부님은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띄시고, 무슨 일을 하든지 제자들을 위해 생각하셨으며, 사부님의 말씀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말씀하시는 어조는 언제나 그렇듯 친절하고 화애로왔으며 사부님의 신변에 있으면 언제나 자비, 상화와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2) 한 수련생은 그녀가 94년 5월 청두반에 참가했던 소감을 말했다.

어느날 사부님께서 우리 따렌수련생들을 보러 오셔서 이야기를 하셨는데, 두 손을 머리 뒤로 넘겼다가 양옆으로 당기며 “무엇을 보았습니까?”라고 물으셨다. 우리는 한가닥 붉은 빛을 보았다고 말씀드렸더니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들은 돌아가서 잘 수련하세요. 당신들의 원영은 모두 이렇게 컸으니 잘 수련해야 합니다.”라고 알려 주셨다. 어느날 우리는 사부님과 함께 차를 타고 외출했고 하늘에서는 작은 비가 내려 길은 질퍽질퍽했으며 차는 아주 더러웠다. 차가 멈췄을 때 사부님께서 먼저 차에서 내리시더니 직접 차창문과 차 몸체의 흙탕물을 닦는 것이 보였다. 학습반이 결속되어 청두를 떠날 때 우리는 사부님과 아쉽게 이별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차를 잡아주셨고, 한 수련생이 차멀미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사부님께서는 차를 향해 파룬을 돌리며 수련생의 신체를 청리해 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에 대해 마치 자신의 아이를 대하듯이 정말로 아주 세심하고 빈틈이 없으셨다! 전부 작은 일이지만 모두 제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사부님의 자비와 중생에 대한 관심을 충분히 체현되었다.
이후 나의 심장병은 더는 재발하지 않았다

(3) 한 수련생은 회억하며 말했다.

“사부님께서 처음으로 따렌에 오셔서 법을 전하실 때 나의 신체정황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저의 온 몸은 전부 병인데 무슨 풍습성 심장병, 경추병….. 등등이 있으며 이미 몇 번 죽다가 살았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씀은 안 하시고 좀 지나서 몸을 일으켜 저의 몸 뒤를 지나시며 저를 향해 공중에서 무엇을 한 번 잡고 나가셨습니다. 돌아오셔서 사부님께서는 저에게 무슨 감각이 없었는가고 물으셨고 저는 아무 감각이 없지만 다리가 좀 뜨겁습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후 저의 심장병은 한 번도 재발하지 않았고 다시는 약 한 알 먹지 않았습니다.”

후에 6월 경 청두반에서 사부님께서는 나를 보시더니 또 친절하게 물으셨다. “좋아졌습니까?” 나는 감격하여 “좋아졌습니다”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그 당시 여전히 나를 격려해 주셨다. “당신의 오성은 그래도 아주 좋습니다.” 청두반에 참석할 때 어느 날 오후 사부님께서는 직접 앞에서 공법을 가르칠 때 마치 어떤 사람이 나의 목부위에서 “팍”하고 한번 치는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돌려 보니 사람이 없었고 나는 즉시 이는 사부님의 법신이 나에게 신체를 조절해 주심을 알았다. 그후 나의 경추병은 더는 재발하지 않았다. 나는 원래 온 몸이 병투성이었는데 병이 없어져 온 몸이 홀가분해진 것은 사부님의 자비하신 구도이며 정화해 주신 결과였다. 나는 직접 부처의 은혜가 나에게 주신 행복을 느꼈으며 진정으로 대법이 나에게 아름다움을 가져다주었음을 체험했다.

(4)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고기를 먹지 않는 집착심을 버리게 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는데 장기간 일종 관념으로 되어있어 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매우 오랫동안 이것 역시 사람의 관념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한 번은 베이징으로 갔었는데 사부님께서 우리를 청하여 구운 오리고기를 먹게 하셨다. 나는 속으로 먹지 않겠다고 중얼거렸다. 사부님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계셨다. 나의 이 사람마음을 없애기 위해서 사부님은 전병에다 오리고기를 말아서 나에게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드셔 보세요” 사부님께서 주셨으니 먹어야겠구나! 결국 먹을 수 있었다. 그 후부터 나도 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집착하지 않았다. 사실 수련인으로서 세간의 일체 물건에 대해 어떠한 고유한 관념도 없어야 하며, 그것을 집착하지도 말아야 한다. 무엇이 있으면 무엇을 먹고 배만 불리면 되는 것으로 사람 마음의 집착만 없으면 아무거나 먹어도 상관 없는 것이다. 이전에 고기를 먹는 것을 집착으로 여기고 고기에 대해 반감을 갖고 근본 먹지를 않았었는데 기실 이것 역시 사람의 한 개 마음이다. 사람의 어떠한 마음도 가지지 않고 자연히 되어 감을 따르는 것만이 수련인의 상태이다.

4. 행운스러운 아이

(1)사부님께서 만리 밖 프랑스 아이의 몸을 조정해 주시다

1994년 7월, 사부님께서 따렌에 오셔 제2기 학습반을 꾸렸을 때 나는 사부님께서 만리 밖의 프랑스 아이의 신체를 조정해 주시는 불가사의한 신기한 일을 목격하였다. 그때 프랑스 아이는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고 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식물인 같았다고 한다. 온 가족 모두가 그의 병치료를 위해 사처로 의사를 찾아 다녔으나 방법이 없었다. 후에 예배당에 가서 기도를 드리면서 주의 도움을 빌었다. 신이 그들에게 알려주기를 이 아이의 병은 그도 방법이 없는데 오직 중국에서 전해지고 있는 파룬궁만이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아이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불원천리하고 베이징에 와서 사처로 파룬궁을 수소문 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들에게 파룬궁 사부님이 지금 따렌에서 법을 전하고 있다고 알려주어 그들은 따렌에 와서 사부님을 찾았다.

먼저 그들은 이 선생님에게 아이의 병세와 증상을 이야기 하였다. 사부님은 그들에게 애 사진이 있냐고 물으셨다.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니 그들에게 애의 형상을 생각하라고 하셨다. 그들이 생각하자 사부님은 즉각 애의 각종 정보를 알아 맞추시고는 책상 곁에서 두 손으로 공중에다 애의 형상을 그려놓은 다음 실을 뽑는 동작을 하시더니 그려놓은 애의 몸 속에서 바깥으로 뽑아내어 두 손으로 비벼서 부셔버리고는 또 뽑아내고 또 비벼서 부셔버리는 것이었다. 이렇게 몇 번을 하시더니 멈추시고는 프랑스에서 온 두 사람에게 알려 주시는 것이었다. “이젠 다 나았습니다.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때는 핸드폰이 없어서 프랑스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숙소에 돌아가서 전화를 했는데 가족들이 “당신들은 왜 이제서야 전화하는 거예요, 오늘 오전 8시 좌우에 한 갈래의 금빛이 바깥에서 애의 몸으로 날아오더니 얼마 안 되어 애가 눈을 뜨더니 “엄마, 왜 그래요?”라고 말한 뒤 아이는 또 움직일 수 있었고 걸을 수도 있었어요.”라고 했다. 애 엄마는 너무도 기뻤다. 아이가 곧바로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은 사부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을 때 그들이 모시는 신이 벽위에 나타났다. 이 사실은 또 다시 나를 사부님의 자비와 사부님은 못해낼 것이 없는 신통을 느끼게 하였다.

(2) 멍청하던 아이가 즉시 정상으로 변하다

한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따렌에 세 번째로 오셔서 법을 전하신 후 떠날 때 발생한 한 가지 일을 말했다. 1994년 12월 30일 사부님께서는 따렌체육관에서 설법보고를 하셨고 12000명이 참가했는데 이는 사부님께서는 국내에서 하신 마지막이자 또한 인원 수가 가장 많았던 설법보고회였다. 이튿날 우리 몇 명의 수련생들은 공항에 나가 사부님을 배웅했다. 그 당시 사부님께서는 한창 탑승수속을 하고 계셨고 한 수련생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총총히 달려왔는데 사부님을 만나려고 했다. 사부님께서는 발견하시고 특별히 다가가셨고 그들과 만났다. 아이의 표면은 보긴에 좀 멍청하고 정신이 온정치 않았는데 마치 정신상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앞이마에는 또 작은 붉은 기미가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아이를 보신 후 그의 머리를 한 번 만지셨다. 결과 아이는 눈빛이 달라졌고 입도 바르게 자리잡았으며 앞 이마의 작은 붉은 기미도 없어졌다. 완전히 정상적인 아이로 변했는데 또 아주 영리해 보였다.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랍고 신기해 했으며 모두 정말로 신기하다고 말했다!

5.대법의 신기함은 사람을 경탄케 한다

이는 한 수련생의 회억이다 ㅡ

(1). 큰 비가 우리 차 뒤에서만 내렸다

사부님께서 따렌에서의 제1기 학습반이 끝나자 1994년 4월 4일 우리는 사부님을 진저우(錦州)로 모셔다 드렸다. 이튿날 8시 좌우에 잉커우(營口)에 도착했는데 큰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음식점을 찾아 아침 식사를 하려 하였다. 이렇게 큰 비가 내리기에 나는 좀 어려운 생각이 들어 비가 그치면 떠나려고 했다. 나의 생각을 사부님이 아셨는지 사부님께서 물으셨다. “왜 그럽니까?” 나는 난처해 하면서 말씀드렸다. “사부님, 이런 날에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진저우에 도착하는 그날로 학습반을 열기로 했는데 비가 온다고 어찌 대법을 전하는 일에 영향을 줄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잠깐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괜찮습니다. 우리 비가 오지 못하게 합시다.” 그때 나는 놀라워 그게 어디 될 일인가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사부님이 누구인지 아직 잘 알지 못했고 그저 일반적인 기공사인줄만 알았다) 사부님께서는 아무 말도 안 하시고 음식점 문어귀에 서서 하늘에 대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다. 사부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내가 물었다. “사부님, 왜 지금도 비가 내립니까? ” 사부님은 “오, 잠시 후면 멎을 겁니다.”고 말씀하셨다. 식사후 비는 적어지기 시작하였고, 점점 보슬비로 되었다. 차에 올라서 나는 또 사부님께 물었다. “사부님, 언제 쯤이면 비가 그칩니까?”사부님은 “2리쯤 간 다음에” 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형편을 봐서는 60리를 가도 비가 멎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사실은 나를 놀라게 하였다. 차가 과연 2리를 달리자 앞쪽 하늘이 맑게 개였다 그러나 차 뒤쪽은 검은 구름이 꽉 뒤덮였고 비가 억수로 퍼붓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정말 탄복하고야 말았다. 나는 사부님께 말씀드렸다.”사부님, 정말로 신기합니다. 사부님께서 비 오지 못하게 하니 정말로 비가 오지 않습니다. ” 사부님은 앞을 가리키면서 나더러 보라고 하셨다. “보십시오, 저것은 무지개가 아닙니까? 흰색은 발해의 용이고, 누른색은 황해의 용인데 이 두 용이 오늘 마침 당직을 서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이 바로 비가 오도록 결정된 날인데 오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 두 용은 돌아가 교대할 방법이 없게 되었고 착오를 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중간을 쪼개어 우리 차 뒷면에서 비가 내리게 한겁니다. “이는 내가 생전 처음으로 겪은 신기한 일이었다. 만약 친히 보지 않았다면 정말 믿지 못할 것이다.

(2) 끓어 번지는 파도 속에 큰 길이 열리다

사부님께서 진저우에서 학습반을 열 때 어느 하루 우리 몇몇 수련생들은 사부님을 모시고 비자산(筆架山)으로 유람을 떠났다. 그 곳 산위에 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피자산은 바다 한 가운데 있어 바다물이 나갔을 때 차를 몰고 갈 수 있지만 바다물이 들어올 때면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었다. 우리가 갈 때는 바로 바다물이 올때였으며 파도가 아주 컸다. 우리는 자그마한 쾌속정을 탔다. 쾌속정은 작고 파도는 컸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난 헤엄칠 줄 아니까 일이 생기면 이 사람들을 구해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작은 배의 변두리에 앉았다. 사부님께서는 나의 이 생각을 알고 계시는듯 나를 보며 기뻐하셨다. 마치 나의 이 일념이 아주 좋다고 긍정하시는 듯 싶었다. 작은 배가 떠나기 시작하자 사부님께서 앞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앞을 보십시오.”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배의 앞머리 정면 앞에 어떻게 되어 골짜기 하나가 나타났는데 배의 양쪽 해면은 파도가 세차게 일고 있어 배높이 보다도 훨씬 더 높았다. 그러나 배의 정면 앞쪽 수면 위로 쭉 뻗은 커다란 길이 나타나 마치도 바람 한 점없는 잔잔한 호수면처럼 조용했다. 바로 이렇게 쾌속정은 평온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했다.

문장제출 :2006년 3월 29일
문장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6/3/29/12387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