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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칭 대법 수련생 양리판, 2002년 억울하게 사망(사진)

【명혜망 2004년 12월 12일】 다칭(大慶) 대법 수련생 양리판(楊立範)은 “진선인(眞善忍)”을 믿는다는 이유로 1999년부터 현지 파출소 악경의 박해를 당했다. 열악한 환경 하에서 건강했던 그녀는 신체가 점점 악화되어 눕지도 앉지도 못했는데, 고통 중에서 2002년 7월 23일 억울하게 사망하였다.

양리판은 1955년생이다. 생전에 다칭시 랑후루(讓胡路)구 건축회사 토목공장 창고 보안원이었다. 양리판은 법을 얻기 전에 급성 신장염, 쓸개골 골막 타박상 등이 있었고 걷지도 못하였다. 1996년 6월에 법을 얻은 후, 몸에 있던 여러 가지 질병이 완쾌되었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1999년 7.20 장씨 집단이 불법 탄압한 후, 양리판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다가 다칭 역전에서 랑후루 파출소로 납치당했다가 그 이튿날 풀려났다. 2000년 4월 16일에 양리판은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던 도중에 산하이관(山海關) 철도 공안에 불법으로 납치당해 2박 3일이나 수갑에 채워진 채 고문을 당하였다. 랑후루 파출소와 회사는 랑후루 파출소로 그녀를 데려가 불법으로 심문하고 두리툰(獨立屯) 구치소로 보내 15일 구류시킨 후 풀어주었다. 회사 사장 겸 서기인 런징위(任敬玉)가 불법으로 그녀에게 5천 5백 위안 벌금을 물렸다. 그리고 또 불법으로 그녀의 남편의 월급도 매월 500위안을 압류하였는데, 세 식구의 매월 생활비는 겨우 200위안뿐이 안 되었다. 그런 후, 건축회사 서기, 건축회사 보위과 과장, 토목회사 지도자, 랑후루 파출소 악경들은 연속 끊임없이 2년이 넘게 그녀를 교란하였다.

2000년 6월 18일, 양리판은 석유 관리국 광장의 400여 명의 단체 연공에 참석하였다가 랑후루 파출소에 48시간 감금되었으며, 또 사구 구치소로 보내졌다. 싸(薩)구 구치소에서, 시멘트 땅위에 35명이나 앉아 있었는데, 감옥실은 답답하고 바람도 통하지 않으며 시멘트 바닥은 차갑고 습기가 많아서 이불에는 곰팡이가 피었다. 그리고 매일 욕을 얻어먹어야 했다. 양리판은 불법으로 2달 이상 감금되었다가 또 사구 구치소로 보내져 불법으로 1개월 이상 감금당했다. 그 기간에 20여 명의 여 대법제자는 짧은 바지만 입었고, 1자 형으로 줄을 섰다. 여 악경은 하나하나 악독하게 그녀들을 때렸는데, 힘 들자 그만두었다. 2000년 9월 18일, 양리판은 다리로 서있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였으며 머리가 어지러웠고 구토를 멈추지 않았는데, 괴롭힘을 당해 마르자 풀려났다.

2000년 국경절 전에 랑후루 파출소 장광펑(張廣鵬) 등 악인들이 매일 양리판의 집에 와서 괴롭히거나 전화로 괴롭혔다. 그리고 집에 와서 사부님의 법신상과 전화번호부를 빼앗았다.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 때, 그들은 문에 있는 거울마저 가져갔고 세 번이나 문 앞에 있는 퓨즈를 가져가서 전기가 끊겨 밥을 지을 수 없었다. 토목회사의 사장, 부사장, 사무원도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는데,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그녀의 아들의 회사에 가서 아들을 괴롭혔다. 근 2년 동안 무리한 박해와 엄중한 압력으로 정상적인 법공부와 연공을 못하는 열악한 환경 하에서 양리판의 몸이 점점 악화되어 눕지도 앉지도 못했는데, 심신이 극도로 고통을 받아 2002년 7월 23일 억울하게 사망하였다.

문장완성 : 2004년 12월 11일

문장발표 : 2004년 12월 12일
문장갱신 : 2004년 12월 12일 01:03:01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2/12/912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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