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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슈링이 박해받아 치사하자 옌타이 악경들이 돈으로 죄책을 덮어 감추려 하다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Ms.허슈링(賀秀玲)이 法輪功(파룬궁)을 믿고 “眞善忍(진선인)”의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였기에 2004 년3월 11일 즈푸(芝罘)구 610, 즈푸구 구치소 ,옌타이(煙台) 위황딩(毓璜頂)병원에서 박해받아 치사했다.

3월 10일 저녁에 내가 옌타이 위황딩 병원에 가서 알아보았는데, 허슈링은 지하실에 있는 큰 병동에 있다고 했다. 나는 즉시에 지하실 큰 병동에 가서 찾아보았는데 환자 한 사람이 한 곳을 가리키면서 3월 4일에 허슈링이 그곳에서 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나는 저녁 7시가 되어 뇌신경내과에서 그녀를 찾았는데, 허슈링은 간호해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침대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있었으며 말을 할 수 없었고 바보가 된 상태였다. 반시간 후에 나는 구치소 사람에게 떠밀려 나왔다. 3월 11일 아침에 허슈링은 억울하게 사망했다.

일이 지난 후 구치소의 두목 장푸톈(張福田)이 3월 4일에 허슈링이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서 병원에 가 검사를 했는데 병원에서는 뇌혈전이라고 했으며 구치소에 돌아와서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허슈링은 자기에 대한 불법 박해에 단식으로 항의를 표했다. 그렇다면 그가 어떠한 박해를 받았는지? 그렇다면 그녀는 안에서 어떠한 박해를 받았는가? 단식할 때에 구치소에서는 어떤 약물을 주입당했는가? 병원에서 구치소로 돌아온 후 또 어떤 약물주사를 주사했는가? 3월 5일 허슈링은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3월 13일 저녁 7시 경에 구치소의 두목 장푸톈, 610두목 리원광(李文光)은 허슈링의 시신을 몰래 싣고 가 화장하려고 영안실의 차까지 불러왔다. 후에 우리에게 발각되었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누가 화장하면 누가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다. 이리하여 시신은 그대로 두게 됐다. 나는 구치소와 조인하여 영안실의 냉동실에 가져갔으며 가족의 동의가 없이는 화장하지 못한다고 했다. 후에 나는 옌타이시 공검법(주 : 공안 검찰 사법기관)에 검정할 것을 요구했다. 검정결과에 대해서는 그저 간단하게 말로 알려주었으며 610과 구치소를 대신하여 책임을 밀어버리는 것이었다. 해부 검정 시에 허슈링의 창자에는 자그마한 붉은 반점들이 가득했으며 자궁 안에는 자색으로 된 물체가 있었다.

나는 지방에서부터 최고 검찰원에까지 연속적으로 상소했다. 옌타이 공안국 610은 여러 차례 사람을 파견해서 나와 협상을 요구했는데 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 심지어는 동네사람들 까지 찾아다니면서 10만 위안의 배상을 해 주고 이것이 모자라면 더 줄 수도 있다고 했는데, 조건은 상소를 취소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동네 사람들의 거절을 당했다. 그래 사람을 죽이고 몇 푼 안 되는 돈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법률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즈푸구 610두목 리원광, 류궈야오(劉國堯), 구치소 두목 장푸톈을 검찰기관에 넘길 것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실행되지 않고 있다. 중국 최고검찰기관에서 직권을 남용하여 인권을 침해한 안건을 엄숙히 처리한다고 한 소식이 발표된 지 2개월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파룬궁 안건에 대해서는 하나도 실행하지 않고 있다.

7월 8일 산둥(山東)성 공검법은 옌타이에 와서 오후 3시에 허슈링이 박해받아 치사한 데 대해 다시 검증했는데 오늘까지 나는 아무런 검정결과를 보지 못했다. 더욱 황당하고 가소로운 것은 검증 현장에 10여명이 있었는데 산둥성 공검법, 옌타이시 공검법, 610, 시(市) 공안국, 세뇌반에서 핍박하여 진술하게 한 류궈야오 모두가 있었다. 나는 허슈링의 시신을 사진 찍을 것을 요구했으나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반대를 받았으며 허락하지 않았다.

허슈링은 전에 톈안먼 광장에 갔다가 두 번이나 원덩(文登) 공안에 감금되었으며 원덩에 돌아와 구치 당했다. 이 사건에 리잉린(李英林)이라고 하는 원덩의 한 공안이 참가했다. 한번은 베이징 톈안먼 분국에 감금되어 베이징 미윈(密云)에 일주일간 감금된 후 랴오닝(遼寧) 진저우(錦州) 구치소에 넘어갔으며 아무런 법률적 수속이 없는 상황에서 옌타이에서 불법으로 한 차례 구치 당했다. 2003년 8월말에 Ms.허슈링, 저우수춘(周樹春), 쑤이수메이(隋淑梅) 등 대법제자들이 원덩 공안에 불법으로 체포됐으며 강박적인 전향을 받았고 후에는 불법으로 즈푸구 구치소에 감금됐다. 구치소에서 허슈링은 성명을 무효로 한다고 했다. 2003년 9월 27일 옌타이 즈푸구 검찰원에서는 허슈링 등을 모함했으며 옌타이시 공안국 610에 체포할 것을 비준했다. 2004년 2월 허슈링은 즈푸구 법원에 가서 법정 심의를 받았으며 옌타이 텔레비전 방송국에서는 모든 시에 이것을 방송했다. 사실 허슈링 등은 줄곧 법률을 사용하여 상소했으며 자신의 합법적 권익을 수호했다. 그러나 옌타이 즈푸구 검찰원과 법원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어 불법적인 일을 하고 직권을 남용했기에 마지막에 허슈링이 박해받아 치사하게 됐다.

경찰의 박해를 받아 한 목숨이 죽었으나 4개월이 되도록 공정한 결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인권이 어디에 있는가? 이리하여 나는 박해진상을 철저히 폭로하여 세상에 알린다.

문장완성 : 2004년 7월 18일

문장발표 : 2004년 8월 20일
문장갱신 : 2004년 8월 20일 19:01:57

문장분류 : [박해진상]

원문위치 : http://minghui.ca/mh/articles/2004/8/20/821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