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 통신원) 2025년 7월 26일, 헤이룽장성 자무쓰시 파룬궁수련자 제웨이(解威)가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을 떠나며 6년간의 감옥살이로 인한 심신 고문과 약물 박해를 끝냈다. 그러나 그녀는 자유를 얻지 못했다. 그녀의 행적은 여전히 중국공산당(중공)의 감시를 받았고, 일상생활은 괴롭힘을 당했으며, 그녀의 합법적인 퇴직금 약 20여만 위안을 중공에 약탈당했다.
제웨이는 청년 시절 여러 질병을 앓았으나 1996년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해 건강을 회복했다. 그녀는 신앙을 고수하고 시민들에게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이전에 강제노동 한 차례, 징역형 박해 한 차례를 받았고, 이번이 두 번째 부당한 옥살이로 총 10년 가까이 불법적으로 감금돼 ‘상대괘(上大掛, 공중에 매달기)’, ‘대배고(大背銬, 등 뒤로 수갑 채우기)’, 구타, 노예 노동 등 다양한 가혹행위를 겪었다.
2023년 6월 남편이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그녀를 면회하러 왔을 때를 이야기하며 제웨이는 말했다. “저는 남편에게 다시는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서 ‘전향’할 수 없고 감형도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이해하지 못하고 저를 설득하려다 실패하자,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면회실 저편에서) 수화기를 든 손을 심하게 떨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남편은 눈물을 머금고 비틀거리며 떠났습니다. 저는 마음이 칼로 베이는 듯했습니다. 본래 화목하고 행복했던 가정이 중공이 일으킨 이 선량한 수련자에 대한 박해로 인해 가족까지 고난에 빠지게 됐습니다. 저는 남편을 이해합니다. 만약 그의 고난을 저에게 옮길 수 있다면 차라리 저 혼자 이 고통을 견디고 싶습니다!”

제웨이
다음은 제웨이가 2019년부터 2025년까지 겪은 6년의 억울한 감옥 생활을 서술한 것이다.
1. 파룬궁 수련 후 정직하게 장사하다
나는 제웨이이고, 1963년 2월 9일생이며, 자무쓰시 첸진(前進)구에 살고 있다. 원래 자무쓰시 제지공장 직원이었으나, 회사가 적자로 도산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살길을 찾아 상점을 운영했다.
젊은 시절의 나는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심장병, 경추병, 간 질환, 담낭 질환, 신장병, 고혈압, 심한 신경쇠약, 다리 류머티즘, 건선을 앓았다. 1996년에 이르러 옛 병이 낫기도 전에 새로운 병이 생겨, 병원에서 자궁근종으로 진단받고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삶에 대한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고 고통스럽고 막막할 때,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20일 후, 몸이 기적적으로 회복됐고 모든 질병이 치료받지 않고도 나았다.
대법을 수련한 후, 나는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을 따르며 내 상점을 운영했다. 좋은 신용 덕분에 어떤 손님들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우리집에 물건을 사러 왔다. 때로는 내가 물건을 하러 갔을 때, 손님이 두세 번씩 들러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는데, 단지 치약 한 개를 사기 위해서였다.
신앙을 고수했기 때문에 나는 여러 차례 괴롭힘과 납치를 당했고, 한 차례의 강제노동, 두 차례의 징역형을 받아 총 10년 가까이 불법적으로 감금됐다. 가족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는 와중에, 경찰은 돈과 재물을 갈취했다. 이 글에서는 주로 내가 최근 6년간 겪은 부당한 감옥 박해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된 괴롭힘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2. 납치돼 구치소에 2년간 감금되다
2019년 7월 27일 오후, 쑨허(順和) 파출소의 경찰 6~7명이 우리집 전원을 차단하고, 남편이 돌아와 문을 열 때를 틈타 벌떼처럼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제복도 입지 않았고, 수색영장도 없었으며, 바디캠도 지참하지 않은 채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시작했다. 컴퓨터, 휴대폰, 소형 라디오, 모든 대법서적과 사부님 법상 등을 빼앗아 갔다. 그들은 첸진구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을 불렀는데, 류솽(劉爽)이라는 제복을 입은 부소장과 왕(王) 씨 경찰,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이 나를 강제로 침대에서 끌어내려, 부축한 채 위층에서 아파트 단지 밖으로 끌고 가 경찰차 안에 밀어 넣었다.
납치에 직면해 나는 법에 따라 나의 권리를 행사하며 고소를 제기했고, 고소장을 구치소 감옥경찰 리차이팡(李彩芳)에게 전달했다. 자오(趙) 씨 소장과 리차이팡은 법을 알면서도 법을 위반해 나의 고소를 반대하며 고소장을 상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8일, 사건 담당 경찰은 나를 납치한 소위 사건을 자무쓰시 샹양(向陽)구 검찰원에 넘겨 모함했다. 나는 불법적으로 6년형을 선고받았다. 가족이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됐다. 나는 다시 중급법원 원장에게 신소장을 썼지만, 리차이팡은 여전히 상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2021년 6월, 나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가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감옥경찰 리차이팡은 같은 감방 수감자들을 사주해 나를 경찰 사무실로 들고 가게 한 뒤 강제로 핵산(PCR) 검사를 받게 했다. 나는 “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절대 가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리차이팡은 몹시 화를 내며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꼬집고 잡아당겼고, 두 손가락 끝으로 내 얼굴을 찔러 얼굴이 그녀의 손가락 끝에 찔려 상처가 났다.
3.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서 겪은 박해
1) 여름에 겨울옷 입히고 고문을 강요하며 전향 강요
2021년 6월 5일, 나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 집중훈련 구역 7조로 납치됐다. 조장 한리(韓麗, 전 지시시 공안국장)가 잡동사니 창고에서 더럽고 냄새나는 침구 한 세트를 끌어왔는데, 요는 울퉁불퉁하고 녹슨 못 구멍이 반 바퀴나 있는 낡은 문발이었고, 여러 곳에 쥐의 똥과 오줌 자국이 묻어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그들은 나에게 겨울옷 한 벌만 지급하고, 벽을 향해 바닥 타일 한 칸 안에서 마쭤(碼坐, 작은 의자에 고정된 자세로 앉혀두는 고문)를 하도록 강요했다. 너무 더워서 견딜 수가 없었지만, 그들은 소매를 걷거나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지도 못하게 했고,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마쭤를 시켰다. 낮에는 천징(陳晶, 사기범), 신펑웨이(信鳳偉, 살인범) 등 바오자(包夾, 파룬궁수련자를 감시하는 수감자)들이 좌우에서 끼고 끊임없이 대법을 공격하며 나에게 소위 ‘전향’을 강요했고, 전향하지 않으면 6년 동안 이렇게 앉아있어야 한다고 위협했다.

중공 가혹행위 예시도 마쭤
내가 앉지 않자, 한리가 나에게 소리쳤고 천징, 신펑웨이, 샤둥칭(夏冬靑, 마약 밀매, 무기징역), 저우단(周丹, 전 경찰, 공갈 갈취죄)이 나를 잡아 뜯으며 마쭤를 강요했다. 땀에 젖고 의자에 배겨 엉덩이 피부가 찢어졌으며, 1초를 앉아 있어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하루는 이 조의 경찰 리쑹메이(李松梅)가 문 앞에서 천징을 찾아 ‘전향’ 상황을 알아보고 있기에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녀는 “너는 나와 대화할 자격이 없어”라고 말했다. 나는 가오진좡(高金爽)이 양리나(楊麗娜)에게 “바오자가 근무에 투입되기 전 두 달간 교육을 받는데, 파룬궁수련자를 전향시킬 때 외상을 남기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2022년 1월 17일, 7조가 해체되고 나는 5조로 배정됐는데, 그곳 경찰 이름은 왕신(王鑫)이었다. 나는 감형을 거부하고, 4서(四書, 네 가지 수련 포기 각서)를 자발적으로 썼음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노동 개조’에 대해 쓰지 않고 죄를 인정하거나 뉘우치지 않아 박해를 받았다.
2023년 6월 24일, 나는 감형 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감형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감형을 받으려면 청문회에서 4서를 자발적으로 썼음을 인정해야 하고, ‘죄를 인정하고 뉘우쳐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자발적으로 썼음을 인정하지 않고 죄도 인정하지 않았다. 며칠 후 남편이 면회를 오자, 바오자 리구이메이(李桂梅)가 남편에게 “제웨이는 감형 대상인데 감형을 안 받겠대요”라고 말했다. 남편은 매우 이해하기 어려워했고, 나는 그에게 법원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음 주 목요일, 남편은 내 감형 문제로 다시 면회를 와서 나를 설득했다. “감형을 받아요. 8~9개월 일찍 집에 올 수 있는데 얼마나 좋아요.” 만약 내가 감형에 동의한다면, 나는 또다시 양심을 저버리고 소위 ‘전향서’를 써야 했다. 나도 하루빨리 이 마굴에서 벗어나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기를 고대했다. 나는 남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지만, 또다시 신앙을 배반할 수도 없었기에 감형을 거부했다. 남편은 화가 나서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으며, 수화기를 든 손을 심하게 떨며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한 채 계속 나를 설득했다. “당신이 감형을 안 받겠다면, 앞으로 나도 당신 보러 안 올 거고 영치금도 안 넣어줄 거요. 그만 삽시다, 이혼해요. 그냥 안에서 죽으시오!” 남편은 눈물을 머금고 비틀거리며 떠났다.
나는 마음이 칼로 베이는 듯했다. 본래 화목하고 행복했던 가정이 중공이 일으킨 이 선량한 수련자에 대한 박해로 인해 가족까지 모두 고난에 빠지게 됐다. 나는 남편을 이해한다. 만약 그의 고난을 나에게 옮길 수 있다면 차라리 나 혼자 이 고통을 견디고 싶다!
2) 구타, 마쭤, 욕설, 화장실 사용 금지
8월에 감옥 구역에서는 매달 ‘노동 개조’ 서류를 작성하도록 요구했는데, 그중 반드시 ‘죄를 인정하고 뉘우친다’라는 내용을 써야 했다. 내가 쓰지 않자, 경찰 왕신은 나에게 밤 10시까지 마쭤를 하도록 강요했다. 전 조원이 연대 책임을 지게 돼, 그들은 나와 함께 일주일 동안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마쭤를 했다. 바오자 양리나가 파룬궁수련자 쑨타이룽(孫太榮)에게 욕설을 해 다툼이 생기자, 경찰 멍난(孟楠)은 한 달 더 마쭤를 하라고 명령했다. 일부 파룬궁수련자들의 엉덩이가 헐어 통증을 참기 힘들었다. 설날이 다가올 무렵, 내가 수감자에게 사탕 한 개를 주었다는 이유로 3시간 동안 야간 당번을 서는 벌을 받았다. 내가 창가에 살아서 같은 감방 사람들을 위해 창문을 열어주었는데, 수감자 리구이메이는 내가 창문을 일찍 열었다거나 늦게 열었다고 트집을 잡아 내게 욕을 하고, 밤 10시까지 마쭤를 하도록 강요했다. 그녀는 매일 나에게 욕을 하다가, 내가 그녀에게 분유 한 봉지를 사주고 나서야 입을 다물었다.
화장실에 갈 시간인데도 나를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해 배가 아프도록 참아야 했고, 바오자 리구이메이는 끊임없이 욕을 했다. 화장실에 갈 때도 나를 괴롭혔는데, 변기 칸에서 볼일을 보지 못하게 하고 더러운 물통 위에서 웅크리고 볼일을 보게 한 뒤, 직접 버리고 더러운 물통을 씻게 했다. 이 기간에 리구이메이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나를 구석에 몰아넣고 따귀를 때려 내 입꼬리 안쪽 살이 치아에 부딪혀 벗겨졌다.
그 이후로 나는 자주 당번 벌을 받아 1주일, 2주일, 한 달씩, 심지어 설날까지 당번을 서야 했다. 종종 새벽 4시에 일어나 마쭤를 해야 했고, 다른 사람들이 쉴 때도 나는 밤 10시까지 마쭤를 강요당했다. 나에게는 목욕할 따뜻한 물도 주지 않았다. 경찰 왕신은 비인간적으로 말했다. “나쁜 놈들은 이렇게 대해야 해. 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면 단호하게 잘라버려야지.”
3) 약물 박해로 신체 허약해져
이런 지속적인 고압 속에서 내 혈압은 계속 높았고, 심장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이상했으며, 심장이 마치 뛰지 않는 것 같았다. 매일 혈압을 낮추기 위해 혈압약을 먹었다. 2023년 말, 경찰 왕신은 나에게 혈압을 낮춘다며 작고 하얀 당의정 모양의 다른 약으로 바꿔 먹게 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돼 매일 30분, 1시간밖에 자지 못했고, 어쩌다 2시간을 잘 수 있었다. 점심시간에도 여전히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갈수록 야위어 갔고, 말할 힘도 없었으며, 목소리는 모기만 해졌고, 시시각각 머리가 아프고 조이는 듯했다.
2024년 설날 전, 한 번은 샤오(肖) 씨 경찰이 나를 보고 경찰 왕신에게 물었다. “제웨이는 왜 저렇게 야위었어?” 왕신은 거짓말로 둘러댔다. “다이어트 중이에요.” 감옥경찰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했다. 2024년 5월 무렵, 나는 이미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2024년 4, 5월경 어느 날, 경찰 위민(于敏)이 약 먹는 것을 감독했다. 내 차례가 됐을 때, 대략 4x5cm 크기의 투명 비닐봉지에 10알 정도의 작은 흰색 당의정이 들어 있었다. 위민이 물었다. “이게 뭐야? 포장도 없고 설명서도 없잖아.” 리펑쥐안(李鳳娟)이 대답했다. “왕신 경찰관이 한 겁니다.”
2024년 5월 14일 오후, 의사가 감옥 구역으로 순회 진료를 왔을 때, 나는 의사에게 “제가 ×× 약을 먹는데 몸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의사는 다른 약으로 바꿔주기로 동의했다. 오후 4시경, 초소 경비원 딩랑(丁郞)이 들어와 수감자 리펑쥐안에게 말했다. “경찰이 제웨이의 약을 끊으면 안 된대. 그 약은 특별한 작용이 있대.” 그녀는 리펑쥐안에게 귓속말을 몇 마디 했다. 리펑쥐안은 울면서 말했다. “나 약 관리 안 할래. 잘 관리하지도 못하고, 욕먹기도 싫어.” 딩랑이 떠난 후, 나는 그녀에게 작은 소리로 물었다. “그 약에 무슨 특별한 작용이 있다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내가 욕먹을까 봐 겁내는 사람 같아? 묻지 마, 너무 잔인해.” 나는 소위 혈압약이라는 것에 성분을 알 수 없는 물질이 들어있음을 직감했다.
나는 여전히 잠을 거의 자지 못했고, 자다가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어 숨이 막혀 깼다. 말할 때 숨이 차고, 서 있기도 힘들었으며, 손도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이 화장실 청소를 강요했을 때, 나는 제대로 서 있지 못해 한 손은 변기 바닥을 짚고 한 손으로 청소해야 했다. 야간 보초를 설 때면 늘 사람을 잘못 불렀고, 내 발보다 두 사이즈나 작은 신발을 잘못 신었어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느 날 오후, 수감자 우웨롄(吳月蓮)이 “잘난 체하더니 죽게 생겼네”라고 욕을 했다. 수감자 양리나는 소리쳤다. “저 여자를 미치게 만들어. 가족들한테 병보석 신청하라고 해. 미쳐야만 병보석 신청을 할 수 있어.”
경찰 왕신이 나를 불러 면담할 때, 내가 “손이 마음대로 안 움직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내 손을 잡고 힘껏 꽉 쥐며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비아냥거렸다. “어디가 안 움직인다는 거야?” 나는 자주 울다가 웃다가를 통제할 수 없었다.
경찰 왕신은 초소 경비원 딩랑, 5조 바오자 양리나, 조장 우웨롄, 약을 관리하는 리펑쥐안과 공모해 나에게 성분을 알 수 없는 약을 먹였고, 이로 인해 내 건강은 갈수록 악화됐다. 이것은 계획적인 약물 박해였다.
그 후 2025년 1월 4일부터 설날이 지날 때까지, 나는 수감자 리펑쥐안이 약을 나눠줄 때 늘 장부에 없는 약 한 알을 자기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다. 때때로 경찰이 그녀에게 물으면 그녀는 “밥에 섞었다”고 하거나 어떤 파룬궁수련자에게 먹였다고 주장했다.
매주 일요일 아침 식사는 옥수수죽이었다. 죽이 많을 때면 바오자는 모두에게 남겨두라고 했다. 나는 도시락에 옥수수죽을 남겨두었는데, 점심에 도시락을 열어보니 노란 죽 속에 우유 한 숟가락을 부은 것처럼 하얀 것이 있었다. 나는 리펑쥐안을 불러 물었다. “노란 죽에 우유 같은 게 있는데, 나한테 약을 탄 거 아니에요?” 그녀는 평온하게 말했다. “아니야, 봐, 약이 여기 있잖아.” 그녀는 상의 왼쪽 주머니에서 하얀 약 한 알을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감옥 규정상 어느 누구도 개인적으로 약을 소지할 수 없었다.
2025년 설날이 지난 후, 경찰 신위(欣宇)가 약 먹는 것을 감독했다. 왕징웨이(王靜威)가 구타를 당해 입원했다. 약을 먹을 때, 수감자 조장 우웨롄이 왕징웨이의 간질 약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이건 내 약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신위가 그 약병을 집어 들고 “왕”이라고 읽었다. 왕의 약병은 내 약병보다 컸고, 알약도 나에게 먹이던 혈압약보다 컸다. 이건 우웨롄의 실수가 아니라 나에 대한 약물 박해였다.
한번은 아침 식사로 흑미죽이 나왔다. 내가 마지막 두 숟가락 정도를 남기고 먹고 있을 때, 아직 완전히 녹지 않은 흰색 당의정 반 알이 검붉은 죽 속에서 드러났다. 나머지 반 알은 아마도 이미 내가 먹었을 것이다.
한 번은 경찰 왕신이 나를 불러 면담할 때, 나는 그녀에게 따져 물었다. “장부에 없는 약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녀는 놀란 표정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반문했다. “무슨 말 하는 거야?” 내가 다시 따져 물었다. “장부에 없는 약은 어떻게 된 거냐고요?”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너무 네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그게 너한테 먹이려는 건 줄 알아!” 잠시 후, 그녀는 켕기는 마음으로 경고 섞인 말을 했다. “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5조 문이 열려 있어서 모두가 나와 왕신의 대화를 들었고, 양리나가 나를 감방으로 끌고 갔다.
한동안 나는 알 수 없는 약물을 투여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따뜻한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컵이나 밥에 약을 타는 것을 피하려고 컵에 물을 담아두지 않고, 세면용 흰색 플라스틱 통에 담긴 물을 마셨다. 아침을 먹을 때는 죽을 타지 않고, 물통의 물로 콩가루를 타 먹었다. 나중에 우웨롄은 전 조원의 물통을 한 침대 밑에 모아서 관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스무 개가 넘는 통을 세면할 때마다 사람들이 서로 끌어당겨 매우 혼란스러웠다(다른 조들은 각자의 통을 자기 침대 밑에 두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매일 아침 세면할 때 찬물로 콩가루를 타 먹어야 했다.
내 혈압은 이미 120mmHg 안팎으로 안정돼 있었고, 의사는 약을 안 먹어도 된다고 했다. 왕신은 “끊으면 심뇌혈관에 좋지 않으니 암로디핀 반 알을 먹어라”고 했다. 내 최고혈압은 이미 107mmHg로 내려갔고, 최저혈압은 75mmHg로 내려가 정상 기준에 부합했기에 나는 약을 끊겠다고 요구했다. 수감자 조장 우웨롄은 말했다. “조 담당 경찰이 메모를 써서 네 심장 박동이 60회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먹어야 한다고 했어.” 이건 병을 치료해 사람을 살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해치는 것이었다. 내 혈압이 어지러울 정도로 내려갔는데도 혈압약을 먹으라고 강요했다. 나는 이치에 맞게 항변했다. “혈압이 이렇게 낮아서 너무 어지러운데, 더 먹으면 죽을 겁니다.” 내가 항변한 끝에야 비로소 약을 끊을 수 있었다.
2025년 1월 17일 건강검진 때, 나는 서맥 진단을 받았다. 매일 잠이 막 들려 할 때면 갑자기 심장이 떨리면서 깨어나는 바람에 날이 밝을 때까지 뒤척였다. 감옥 안에서 나는 수련 환경을 잃었고, 감옥경찰과 수감자들의 부당한 대우를 견뎌야 했다.
2025년 7월 26일, 내가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을 떠나던 날 오전, 경찰 허린린(何琳琳)은 나를 의무실로 데려가 질 내부를 들쑤시며 물건을 숨겼는지 검사했는데, 이는 나에 대한 인격 모독이었다. 허린린은 ‘형기 만료 출소 증명서’를 자무쓰시 첸진구 정법위와 주민센터 남성 2명에게 넘겨주었다. 나와 가족은 쑨허 파출소로 끌려가 강제로 지장을 찍고 ‘혈액형’ 검사 결과지를 제출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4.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이어진 감시 및 괴롭힘
나는 불법적으로 6년형을 선고받아, 6년 동안 월급을 받지 못했고, 3만 위안의 갈취성 벌금을 냈으며, 가족들은 매번 나를 보러 올 때마다 영치금을 넣어주었다. 중공의 이 부당한 옥살이 박해는 우리집에 20여만 위안의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그 외에도 부당한 옥살이에서 벗어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감시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2025년 8월 31일, 남편과 함께 기차를 타고 아들네 아이를 보러 가려는데, 기차에 타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3~4명의 경찰이 올라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며 휴대폰을 확인하고, 배낭과 여행 가방을 뒤져 검사했다.
올해 들어 관할 경찰은 내 정상적인 생활을 방해하며 수시로 전화를 걸어 내 최근 사진을 요구했고, 이전에는 3개월에 한 번씩 추적했지만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한다고 떠벌렸다.
결론
노동수용소든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이든 중공이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수단은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제웨이가 여기서 서술한 것은 그녀가 10여 년간 불법적으로 감금돼 겪은 박해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1999년 7월 이후 그녀가 겪은 감금, 강제노동, 징역형 박해 사실은 ‘파룬궁 수련으로 심신 정화, 자무쓰 여성 강제노동 박해받아’, ‘자무쓰시 파룬궁수련자 제웨이 6년형을 모함받아 감옥에 갇혀’를 참조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11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6/51617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6/516174.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