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 80대 할머니,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받아

[명혜망](충칭시 통신원) 충칭시 비산(璧山)구의 80여 세 은퇴 여교사 왕진슈(王金修)는 단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만으로 2026년 5월 20일 경찰에게 납치됐고, 다음 날 바로 충칭 쩌우마(走馬) 여자감옥으로 납치돼 갇혀 박해받았다.

일찍이 1999년 10월, 왕진슈는 은퇴 전 재직했던 학교로부터 불법적으로 퇴직금 지급을 중단당했다. 이후 그녀가 관련 부서에 합법적으로 퇴직금 반환을 요구할 때마다 오히려 번번이 모함과 괴롭힘을 당했다. 2024년 5월 말, 한 행인이 그녀가 사는 건물 아래를 지나가다가 사복 경찰들이 장기간 잠복하며 감시하는 것을 발견했다. 같은 해 9월, 비산구 칭강(靑杠)가도 파출소 소장 장수베이(張樹貝)가 왕진슈를 모함하는 대량의 자료를 정리해 그녀를 더욱 가해하려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25년 11월 6일 낮 1시경, 칭강가도 파출소 지도원 스위야오(史禹堯)가 무리를 이끌고 왕진슈 집에 난입해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실시하고 그녀를 강제로 납치했다. 80대가 넘은 노인은 파출소로 납치됐다가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풀려났다. 이후 경찰은 그녀의 집 아래에 장기간 사람을 배치해 감시하고, 건물 밖 통로에 CCTV를 설치했으며, 사람을 보내 미행하며 지속적으로 그녀에게 압박과 위협을 가했다.

2025년 12월 16일, 충칭시 장베이(江北)구 법원은 왕진슈를 상대로 불법적인 재판을 열었고, 이후 그녀에게 1년 6개월형을 부당하게 선고했다. 이른바 ‘증거’라는 것은 그녀가 자료를 배포할 때 CCTV에 찍힌 것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확인이 필요하다.

왕진슈는 1943년 2월에 태어났으며, 충칭시 비산구 칭강진(靑杠鎭) 실험초등학교 교사로 32년 연속 교직 경력을 갖고 있고, 1995년 8월 ‘간부 은퇴증’을 받았다. 은퇴 전 그녀는 줄곧 학부모들 사이에서 좋은 선생님으로 불렸으며, 교육에 책임감이 강해 현(縣) 인민대표를 역임했고 현 우수교사로도 선정됐다. 그녀는 재직 기간 자주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보충 지도했으며, 단 한 푼의 보충수업비도 받지 않았다. 업무에 헌신한 탓에 그녀는 여러 차례 교단에서 쓰러졌고, 병세가 심각해져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되자 학교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병으로 인한 조기 은퇴 처리했다. 그녀가 중병에 걸려 백방으로 치료할 길을 찾지 못할 때, 다행히 대법을 얻어 심신 상태가 빠르게 개선됐고, 마침내 노년에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

그녀는 청춘과 건강을 농촌 교육 사업에 바쳤으나, 노년에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장기간 박해를 받았다. 수년간 그녀는 여러 차례 납치, 강제노동, 노동개조를 당했으며, 누적 6년 넘게 불법적으로 갇혔다. 강제노동과 노동개조 기간, 그녀는 이른바 ‘전향’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심각한 심신상의 고문을 당했다. 2006년 불법적인 노동개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친척과 친구들은 그녀가 박해받아 뼈만 남고 몰골이 말이 아닌 것을 보고 그저 묵묵히 눈물만 흘렸다.

불법적인 강제노동 1년, 11개월 연장

1999년 10월, 왕진슈는 합법적인 청원을 위해 베이징으로 갔다가 천안문 광장에서 경찰에게 강제로 납치됐고, 이후 펑타이(豊臺) 체육장으로 이송돼 불법적으로 갇혔다. 이후 그녀는 다시 충칭 주베이징 사무소로 납치돼 계속 갇혔다. 10월 31일, 그녀는 현지 파출소로 압송돼 불법 감금됐고, 이후 다시 구류소로 옮겨져 족쇄와 수갑이 채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1년형을 선고받았고, 충칭시 여자 노동수용소에 갇혀 박해받은 첫 번째 파룬궁수련자가 됐다.

노동수용소에서 그녀는 낮에는 강제 노역을 해야 했고 밤에도 야간 작업을 해야 했다. 경찰은 그녀에게 장기간 세뇌, 격리 감금, 쪼그려 앉기, 벌서기 등의 고문을 가했다. 한번은 아침 6시 15분부터 밤 11시가 넘을 때까지 강제로 서 있게 돼 양손과 양발이 퉁퉁 부어올랐다. 때로는 여름에 뜨거운 태양 아래 노출됐고, 겨울에는 창가에 수갑이 채워진 채 찬바람을 맞았으며, 밤에는 침대 모서리에 수갑이 채워진 채 잠을 자야 했다.

노동수용소 경찰은 또 악랄한 마약 복용 수감자를 ‘바오자(包夾, 파룬궁수련자를 밀착 감시하는 죄수)’로 이용해 파룬궁수련자에게 구타와 체벌을 가했으며, 화장실 사용 금지, 세면 금지, 말하기 금지 등 가장 기본적인 생활의 자유를 제한했다. 왕진슈가 당한 구타는 극히 잔인했다. 한번은 한 바오자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누르고 주먹으로 왼쪽 갈비뼈를 맹렬히 쳐서 그녀를 바닥에 쓰러뜨렸다. 그녀는 당시 왼쪽 갈비뼈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고 눈앞이 캄캄해졌으며 양손이 새까매지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한참이 지나서야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이후 그녀의 왼쪽 갈비뼈 통증은 한 달 넘게 지속되다 조금 완화됐다.

또 한번은 바오자가 거칠게 그녀를 붙잡고 3층에서 1층까지 끌고 갔다가, 다시 1층에서 3층으로 끌고 가며 그녀의 생사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또 다른 한번은, 노동수용소 경찰이 왕진슈 등 파룬궁수련자들을 사무실 바닥에 앉게 강요하고, 캐비닛에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꺼내 그녀들에게 함께 들고 사진을 찍도록 강요했다. 왕진슈가 협조를 거부하자, 경찰은 사람을 시켜 노란색 테이프로 그녀의 입을 막고 한쪽에 앉아있게 했다.

왕진슈는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견지했기에 노동수용소에 의해 불법적으로 11개월 동안 감금 기간이 연장됐고, 2001년 9월 22일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원래 기관에 연금을 수령하러 다섯 차례나 찾아갔지만 교장은 지급을 거부했다. 그리고 매번 파출소 경찰에게 전화를 걸어 학교로 오게 해 그녀를 위협하고 속였으며, 심지어 그녀를 다시 노동개조를 보내 연금을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했다. 경찰은 또한 여러 차례 한밤중에 그녀 집 문을 두드리며 괴롭혔다.

불법적인 4년형 선고

2002년 1월 18일, 왕진슈가 거리에서 과일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갑자기 사복 경찰에게 납치돼 파출소로 끌려갔다. 그녀가 “무슨 근거로 나를 잡는 겁니까?”라고 따지자, 경찰은 구두를 신은 채 그녀의 가슴을 세게 걷어차며 냉소했다. “이게 바로 근거야.” 이후 그들은 그녀를 ‘대붕전시(大鵬展翅, 큰 새가 날개를 펴는 자세)’ 자세로 화장실 양쪽 벽의 철고리에 수갑을 채워 매달았다.

이틀이 지났지만, 가족들은 그녀의 행방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찾았다. 3일째가 되어서야 그녀가 파출소 화장실에 갇혀 며칠 연속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허약해진 채 매달려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족들이 그녀를 보았을 때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칼로 가슴을 에이는 듯한 고통에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었다.

왕진슈는 이렇게 꼬박 52시간 동안 매달린 후 구치소로 이송됐다. 장시간 수갑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몸은 거의 망가졌고, 구치소 안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치소 경찰은 여전히 그녀에게 족쇄와 수갑을 채웠다. 감방 안의 다른 수감자들은 그녀의 상태를 보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몸 상태가 더욱 악화되면서 그녀는 이미 일어설 수 없었고 생활도 스스로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공안국은 여전히 그녀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몇 달 후, 이미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된 왕진슈는 다른 사람의 등에 업혀 죄수차를 타고 법정으로 압송됐다. 판사가 어떤 요구 사항이 있는지 묻자, 그녀는 증인을 법정에 출석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지만 판사는 이를 무시했다. 어떠한 범죄 사실도 없고 어떠한 피해자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마지막으로 판사가 다시 요구 사항이 있는지 묻자, 그녀는 “무죄 석방하십시오”라고 대답했다. 판사는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왕진슈는 이후 충칭 융촨(永川) 노동개조 농장(감옥)에 갇혔다. 감옥경찰 역시 악랄하고 살인이나 마약 밀매 죄를 저지른 중범죄자들을 ‘바오자’로 이용해 파룬궁수련자를 전문적으로 박해했다. 만약 바오자가 조금이라도 인간성이나 선의를 보이면 즉시 교체됐다.

입소대에서 그녀는 1년 넘게 학대를 받은 후 작업장으로 배정됐다. 처음 얼마 동안 그녀는 낮에는 강제 노역을 강요당했고 밤에는 세뇌를 받아야 했다. 바오자는 그녀가 목욕하는 것, 자는 것, 말하는 것, 빨래하는 것, 설거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금지했다. 한동안 그녀는 감방에서 나가는 것이 금지됐고, 밥도 바오자가 대신 타다 주었다.

어느 날, 그녀는 밥을 먹을 때 이상한 맛을 느끼고 경계심이 생겼다. 다음 날 밥을 탈 때, 그녀는 다른 바오자가 방심한 틈을 타 감방 밖으로 뛰쳐나갔고, 밥을 타는 담당 바오자가 손으로 그녀의 그릇에 정체불명의 알약을 부수어 넣고 있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이 일은 금세 퍼졌고, 경찰은 덮을 수 없게 되자 약을 투여한 바오자를 교체하고 모든 책임을 바오자 한 명에게 떠넘겼다.

지속적인 괴롭힘, 감시 등 박해

2006년 1월, 왕진슈가 출소해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의 유선 전화는 장기간 도청을 당했다. 전화선을 뽑아도 휴대폰으로 유선 전화에 전화를 걸면 여전히 연결됐다. 동시에 그녀의 집 아래에는 전담 인력이 배치돼 감시했고, 공안국, 파출소, 진(鎭) 정부 및 주민센터 직원들도 빈번하게 찾아와 괴롭혔다.

2009년 7월, 공안국은 그녀를 찾지 못하자 진으로 가서 다른 두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했다. 다른 사람에게 연루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왕진슈는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사방을 떠돌았다. 그녀의 가족들은 이로 인해 감시와 심문을 받았고 공포 속에서 생활했다. 왕진슈는 밖에서 노숙하며 온갖 고생을 다 했고, 전적으로 좋은 사람들의 도움에 의지해서야 겨우 유지할 수 있었다.

2011년 6월 13일, 왕진슈는 거리에서 사복 경찰에게 미행당하고 납치됐으며, 거처로 압송돼 가택수색을 당했다. 경찰은 여러 권의 대법서적, 컴퓨터 5대, 프린터 2대(레이저 및 잉크젯 각 1대), MP5 2개, MP3 1개, 하드디스크 1개, 약간의 CD, 복사 용지와 그녀의 개인 현금 6천여 위안을 빼앗았다. 왕진슈가 “영장은 있나요?”라고 묻자, 경찰은 “그런 거 없어”라고 대답했다.

이후 그녀는 구치소로 이송됐으나 몸 상태가 불합격돼 수감이 거부됐다. 경찰은 다시 그녀를 라이펑(來鳳) 병원으로 데려가 강제로 수갑을 채운 채 링거를 맞혔고, 다음 날 다시 구치소로 보냈으나 여전히 몸 상태가 불합격돼 거부당했다. 결국 그녀는 칭산(靑山) 병원으로 이송됐고, 진 정부, 파출소 및 주민센터 직원들이 교대로 당직을 서며 감시했다.

17일 후 다시 신체검사를 했을 때, 왕진슈의 최고 혈압은 200을 넘었지만 의사는 실제 수치대로 적지 말라는 요구를 받았다. 왕진슈가 “왜 사실대로 적지 않습니까?”라고 따지자,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파출소는 이후 다시 그녀를 구치소로 납치했다. 구치소 책임자가 의사에게 검사를 지시했고 그녀의 몸 상태가 여전히 불합격인 것을 발견해 수감을 거부했다. 그러나 책임자가 퇴근한 후, 파출소 경찰은 구치소 의사에게 서명하게 해 강제로 사람을 수감시켰다.

7일 후, 왕진슈는 다시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1년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노동수용소는 검사 후 여전히 몸 상태 불합격을 이유로 수감을 거부했다. 파출소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데려왔고, 다음 날 다시 현 병원으로 보냈다. 의사는 그녀의 최고 혈압이 극히 높고 심장 박동이 불규칙한 것을 발견하고 즉시 응급처치를 요구했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가족에게 1만 위안을 가지고 파출소로 오라고 통지했다. 왕진슈는 파출소의 한 방에 갇혀 가족을 만나지 못했고, 경찰은 가족을 갈취해 1만 위안을 뜯어내고 서명을 강요한 후에야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7일 후, 파출소는 여전히 그녀에게 강제노동 1년형과 외부 집행 결정을 내렸다. 왕진슈가 서명을 거부하자 경찰은 가족에게 대리 서명을 강요했다. 그녀가 집에 돌아왔을 때 몸이 허약해 걸음걸이가 불안정했으며, 가족들의 오랜 정성 어린 보살핌을 받고 나서야 점차 회복됐다.

2012년 상반기 어느 날 오후, 진 정부 직원들은 경찰을 사주해 왕진슈를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로 납치하게 했고, 심문실의 쇠의자에 강제로 수갑을 채우고 족쇄를 채웠으며, 이후 또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했다. 그녀가 공안의 위법 행위에 끊임없이 항의하자 5시간 후에야 풀려났다. 같은 해 9월 25일, 그녀는 친정 오빠 부부 집에 방문했을 때 다시 종합치안판공실과 파출소 직원들에게 납치돼 충칭시 위베이(渝北)구 루산(鹿山)촌 세뇌반으로 압송됐다. 그녀는 혈압이 극히 높고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겨 3일 만에 풀려났다.

2013년 5월 7일, 왕진슈는 주민센터 직원의 모함을 받아 다시 파출소로 납치됐고, 강제로 옷이 벗겨진 채 수색당하며 인격 모욕을 겪었으며 4시간 후에야 집에 돌아왔다.

2014년 5월 12일 오전에 ‘사이비 종교 사무실’ 직원들이 주민센터 직원들을 사주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게 했으나 찾지 못하자, 오후에 그녀의 딸 집으로 가서 딸을 사핑(沙坪)구 거러산(歌樂山) 첸주거우(千竹溝) 휴양촌 세뇌반으로 납치했다.

1999년 7월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이래,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수련자에게 가한 잔혹한 박해는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다. 박해 초기부터 전족을 한 할머니가 노동수용소에 갇혔고, 최근에는 점점 더 많은 7~80대 노인들이 불법적으로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투옥되고 있다. 노인들에 대한 고문은 끊임없이 인륜의 한계를 넘어서며, 더 많은 사람에게 중공의 박해 본질을 똑똑히 보게 했다.

중국 사회 도덕의 급속한 타락은 사람들을 경성하게 한다. 선량한 마음을 품었던 젊은 경찰학교 학생부터 7~80세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자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마변(魔變, 마귀로 변함)’은 사람들을 등골 서늘하게 한다. 오늘날 중국에 ‘거짓, 악, 투쟁(假·惡·鬪)’이 횡행하고 도덕이 무너지며 부패가 만연한 것은 바로 이 박해의 심층적인 반영이다. 사실상 모든 중국인이 이 박해의 피해자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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