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수년간 중국의 많은 성과 시 공안국이 일부 파룬궁수련자를 납치한 후 먼저 강제로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을 적용하고, 일정 기간(심지어 수년)이 지난 뒤 다시 모함해 기소하거나 수감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취보후심’은 형사 강제 조치에 속하며 사건이 종결된 것이 아니다. 이 기간은 형기에 포함되지 않으며 통상적으로 1년을 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많은 ‘취보후심’이 파룬궁수련자가 불법적인 징역형을 받는 최종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또한 어떤 수련자는 공안국 ‘취보후심’이 만료될 때 검찰원에 의해 다시 취보후심을 받거나 불법적인 거주지 감시로 전환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것은 박해를 경감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박해 기간을 늘리고 가중시켰다.
이는 명백히 중공이 계획적으로 파룬궁수련자를 겨냥한 형태를 바꾼 탄압이다. 공안국이나 검찰원이 실시하는 이른바 ‘취보후심’은 종종 선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많은 파룬궁수련자가 강제로 ‘취보후심’을 받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건강 상태 불량, 구치소의 수감 거부, 증거 부족 때문이거나 공안 기관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유죄를 전제로 한 이러한 조치 뒤에는 종종 함정과 음모가 숨겨져 있다. 본문은 구체적인 사례를 결합해 분석하고자 한다.
1. ‘취보후심’ 후 거의 2년 만에 5년형 억울하게 선고받은 웨이슈잉, 억울하게 세상 떠나
랴오닝성 진저우시 파룬궁수련자 웨이슈잉(魏秀英)은 2009년에 불법적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선양 다베이 여자감옥에서 박해받아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됐다. 2021년 5월 25일, 웨이슈잉은 다시 경찰의 미행으로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신체검사 불합격으로 ‘취보후심’을 받고 귀가했다. 2022년 5월 말, ‘취보후심’이 만료될 무렵 낯선 남자 2명이 웨이슈잉의 집에 ‘방문’했다. 며칠 후, 웨이슈잉은 자신의 사건이 링하이시 검찰원으로 넘어갔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웨이슈잉은 끊임없이 괴롭힘과 협박을 당했다.
2022년 7월 19일, 링하이시 법원 판사 쉬빙(許冰)과 주민센터 직원 등 총 5명이 웨이슈잉의 집에 이른바 ‘기소장’을 전달하며, 그녀가 파룬궁 홍보물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링하이시 공안국에 의해 행정 구류 10일에 처해졌다고 거짓말을 했다. 2023년 2월 10일, 링하이시 법원 형사재판부 재판장 황옌춘(黃豔春), 검찰원 공소인 리둥위(李冬雨), 리펑(李峰) 등 10여 명이 웨이슈잉의 집에 와서 불법적인 재판을 열었다. 2월 24일, 웨이슈잉은 링하이시 법원으로부터 불법적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벌금 1만 위안을 갈취당했다. 11월 22일, 7~8명의 경찰이 웨이슈잉의 집에 와서 ‘신체검사’를 이유로 그녀를 강제로 끌고 갔으며 가족의 동행을 거부했다. 경찰은 웨이슈잉 큰딸의 머리채를 잡고 벽에 부딪히게 하며 “고소하고 싶어? 어디 한 번 고소해 봐!”라고 소리쳤다. 웨이슈잉이 당일 밤 집으로 돌려보내졌을 때, 그녀는 맨발에 얇은 셔츠 한 벌만 걸치고 있었다.
2024년 8월과 9월, 검찰원과 법원 인원이 여러 차례 웨이슈잉의 집에 침입하거나 전화를 걸어 신체검사를 받게 하고, 병보석 절차를 다시 밟으라고 요구했다. 웨이슈잉의 막내딸 자오빙(趙冰)은 2009년 어머니와 함께 납치된 후 극도의 공포를 느껴 수년간 정신 이상을 겪었고 2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2024년 11월 27일, 온갖 고문을 겪은 웨이슈잉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76세였다.
2. ‘취보후심’ 1년 반 후 억울한 판결 받아, 86세 셰창슈 장기적인 괴롭힘 끝에 사망
쓰촨성 스팡시 파룬궁수련자 셰창슈(謝長秀)는 2005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중공 인원들은 셰창슈가 외출해 진상 알리는 것을 막기 위해, 2017년에 타지에서 일하던 그녀의 아들을 불러들여 “당신 어머니가 계속 고집을 피우면 후대의 진학과 취업 등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녀 본인의 사회보장금도 지급이 중단될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셰창슈는 토지를 잃은 농민이었는데, 그들은 매달 지급되는 그녀의 실지 연금마저 취소하겠다고 위협했다.
2020년 9월 30일, 셰창슈가 링제창에서 한 중년 남자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주민센터 직원의 모함을 받았다. 뤄수이진 파출소 경찰이 셰창슈 집에 와서 아무런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벌였고, 집안의 모든 대법서적, 명혜망 간행물, 신분증, 1000여 위안의 현금, 3대의 휴대폰, 2대의 오디오 플레이어를 빼앗아 갔으며, 그녀의 아들과 손녀의 집까지 불법 수색하고도 압수 목록을 주지 않았다. 파출소에서 셰창슈가 자료의 출처에 대해 대답을 거부하자 판 씨 성을 가진 경찰이 “말하지 않으면 고춧물을 한 사발 들이붓겠다”라고 협박했다. 오후 3시 반, 경찰은 가족에게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라고 통보했으나, 암암리에 ‘취보후심’ 처분을 내리고도 노인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2021년 4월 16일, 83세의 셰창슈에 대한 불법적인 재판이 열렸는데 스팡시 법원은 셰창슈 가족의 법정 방청을 무리하게 거부했다. 셰창슈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똑똑히 듣지 못했고, 결국 불법적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며 동시에 ‘대리 보관금’ 명목으로 1000위안을 갈취당했다. 법원은 불법 재판 자료에서 그녀의 나이를 80여 세에서 75세로 조작했다. 이후 3년 동안 파출소 경찰은 매달 셰창슈의 집에 와서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셰창슈가 글을 쓸 줄 몰랐기 때문에 경찰은 휴대폰에 미리 글을 써서 셰창슈 손녀의 휴대폰으로 보낸 뒤 손녀에게 대신 베껴 쓰게 했다. 2021년 9월 11일, 셰창슈는 펑저우시의 이른바 ‘법제 관애(觀愛) 센터’(세뇌반)로 납치돼 강제 전향을 당했다. 장기간의 괴롭힘, 협박, 정신적 고문은 셰창슈의 심신에 거대한 손상을 입혔다. 2024년 4월 불법 형기가 끝났을 때 그녀는 이미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고, 같은 해 12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86세였다.
3. 두 차례 ‘취보후심’ 받고 유랑 생활하던 류츠룽, 불법 기소 위기에 처해
산둥성 린이시 멍인현 파룬궁수련자 류츠룽(劉池榮)은 1998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 중병이 모두 사라졌다. 2020년 12월 17일 저녁, 류츠룽이 언니 집에서 쉬고 있을 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상대방이 ‘체온 측정’이라고 해서 문을 열자 6~7명이 몰려들어 왔다. 그들은 류츠룽이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이 여자다”라며 그녀를 끌고 가려 했다. 류츠룽이 “당신들은 누군데 나를 납치하는 건가? 신분증을 보여달라”라고 따졌지만 아무도 어떤 신분증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류츠룽을 강제로 끌고 가며 그녀의 가방을 빼앗았는데, 가방 안에는 2000위안의 현금, 은행 카드와 휴대폰이 들어있었지만 형사소송법 제140조 규정에 따른 압수 목록을 발급하지 않았다. 이 사복 경찰들은 경찰복을 입지 않았고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았으며 수색 영장도 없었다. 더욱 악질적인 것은 아직 입건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색을 벌여 절차가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점이다.
그날 저녁 7시경, 류츠룽은 쓰수이현 공안국으로 납치됐고, 다음 날 오후 4시에 지닝 구치소로 이송됐으나 신체 상태를 이유로 구치소 측이 수감을 거부했다. 쓰수이현 국보 대대는 류츠룽에게 ‘취보후심’ 문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했다. 그녀가 서명을 거부하자 한 경찰이 위선적으로 “서명하세요. 1년 후면 아무 일 없을 겁니다”라고 말했고 그녀는 속아서 서명하고 말았다. 류츠룽이 국보 대장 왕후이(王慧)에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라고 묻자, 왕후이는 헬멧을 써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 흐릿한 사진 두 장만 꺼내 보였다.
2021년 3월, 류츠룽은 지닝시 런청구 검찰원의 통지를 받고 검찰관이 자신을 불법적으로 기소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4월 말에 다시 오라는 요구를 받아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다. 유랑 생활 기간, 그녀는 몸을 둘 곳이 없었고 정신과 육체가 심각하게 망가져 한때 눕지도, 잠을 자지도, 먹지도 못했다. 가족이 그녀를 병원에 데려갔을 때 그녀의 맥박은 분당 200회에 달했고, 심방세동과 심부전 4기 판정을 받아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현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어 성(省) 병원으로 이송됐다. 2025년 8월 20일 전후, 멍인현 둬좡 파출소 경찰이 둬좡진의 젠화 만두가게에서 식사 중이던 류츠룽을 납치했고, 이후 쓰수이 공안국은 다시 그녀의 가족에게 현금 1만 위안을 갈취한 뒤 강제로 ‘취보후심’을 적용했다. 현재 쓰수이현 공안국은 여전히 사건을 지닝시 런청구 검찰원으로 송치해 류츠룽을 계속 불법 기소하려 시도하고 있다.
4. 부부가 ‘취보후심’ 후 3년 억울한 판결 받아…86세 할머니는 공포 속 사망, 94세 노인은 수감 협박받아
헤이룽장성 지시시 파룬궁수련자 쉬수쥔(徐樹君)과 왕촨윈(王傳雲) 부부는 2017년 8월 거리에서 파룬궁 진상 현수막을 걸었다는 이유로 지둥현 공안국의 추적을 받았다. 9월 2일, 경찰은 부부를 지둥현 공안국으로 납치한 후 ‘취보후심’으로 석방했다. 이후 지둥현 공안국 국보 허원칭(何文淸), 검찰원 인사오둬(印少鐸), 법원 가이추하이(蓋秋海) 등은 여러 차례 집을 찾아와 증거를 조작해 수집했다. 2021년 9월, 지둥현 법원은 부부에게 각각 3년형을 불법 선고하고 벌금 1만 위안씩을 갈취했다. 두 노인의 연금도 지시시 사회보장국에 의해 지급 중단됐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유랑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나 지둥현 공안국은 여전히 손을 떼지 않고, 이들을 돌보던 딸을 장기간 미행해 끝내 부부의 임대 거주지를 찾아낸 뒤 빈번하게 잠복, 괴롭힘, 사진 촬영, 유인을 일삼았다. 2025년 9월 16일, 왕촨윈은 놀람과 두려움 속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2025년 10월 중순, 지둥현 검찰원 인원들이 쉬수쥔의 임대 주택에 와서 가택수색을 벌이며 침대를 들추고 장롱을 뒤져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법상, 파룬 도형, 대법서적 2권과 손으로 베껴 쓴 ‘전법륜’ 4권을 빼앗아 갔다. 2025년 10월 20일, 지둥현 검찰원, 지관구 난산 파출소 및 난산 주민센터 직원들은 쉬수쥔을 위해 ‘병보석’을 처리해 주겠다며 가족에게 입원 병력 기록을 요구했다. 어쩔 수 없이 가족은 10월 24일 노인을 지시시 중의원에 13일간 입원시켰다. 90여 세의 쉬수쥔은 시달림 끝에 신체가 급격히 쇠약해졌고 식사량이 크게 줄어 날이 갈수록 야위었다. 12월 19일, 법원 판사 가이추하이가 다시 사람을 데리고 와 쉬수쥔을 지시시 병원으로 압송해 ‘의료 감정’을 받게 했다. 12월 26일, 국보가 다시 집으로 찾아와 괴롭혔을 때 쉬수쥔은 아내의 죽음과 장기간의 공포로 인해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상태였다. 5kg이나 살이 빠졌고 누워만 있어야 했으며 기저귀를 사용해야 했고 청력을 거의 상실했으며 매일 소량의 죽만 마실 수 있었다. 경찰은 깜짝 놀라며 “영감님이 어쩌다 이렇게 야위었지?”라고 말했다. 2026년 1월 12일, 판사 가이추하이는 오히려 가족들에게 노인이 형집행정지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니 하얼빈에 가서 감정을 받아야 하며 가지 않으면 공안국에 넘겨 처리할 것이고 공안국 역시 그를 감옥으로 보낼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때 쉬수쥔은 이미 완전히 스스로 생활할 수 없는 상태여서 장거리 이동의 고초를 전혀 감당할 수 없었다. 1월 24일, 가이추하이는 또다시 “하얼빈에 가서 감정을 받지 않겠다면 내가 하얼빈 사람을 부르겠다. 비용은 당신들이 부담하라. 비록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더라도 밥만 먹을 수 있다면 감옥에 보낼 수 있다”라고 위협했다.
5. ‘취보후심’ 1년 후 다시 납치된 왕룽, 감옥에서 구타당해 신장 파열, 늑골 골절로 억울하게 사망
허베이성 청더시 펑닝현 파룬궁수련자 왕룽(王榮)은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2020년 9월, 왕룽은 산에 진상 현수막을 걸었다가 경찰에 납치된 후 ‘취보후심’으로 귀가했다. 그녀는 아무 일이 없을 줄 알았지만 암암리에 공안 국보는 계속해서 그녀를 모함하고 있었다. 2021년 7월 말, 청더시 롼핑현 검찰원 소속 3~4명이 차를 몰고 왕룽의 집으로 와서 괴롭히며 서명을 강요했다. 2021년 9월 12일, 왕룽은 여러 명의 펑닝현 국보에게 딸의 집에서 납치돼 펑닝현으로 끌려갔고, 다음 날 청더시로 압송돼 신체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불합격 판정이 나오자 경찰은 또 밤새 왕룽을 롼핑현 법원으로 데려갔다. 9월 14일, 롼핑현 법원은 왕룽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었고 재판장은 “괜찮으니 집에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 후 왕룽은 국보 경찰에 의해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2021년 11월, 왕룽은 집에서 다시 납치돼 스자좡 여자감옥으로 보내졌으며 3년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해진다.
스자좡 여자감옥은 2022년에 왕룽의 자녀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이 곧 죽을 것 같으니 데려가라고 했으나, 펑닝현 국보가 관련 수속을 해주지 않아 데려올 수 없었다. 2023년 8월에 이르러서야 박해로 숨이 넘어가게 된 왕룽이 경찰에 의해 펑닝현으로 이송됐고, 곧바로 펑닝현 병원으로 보내졌다. 검사 결과 신장 파열 출혈과 늑골 골절이었다. 의사는 “가망이 없으니 집으로 가세요”라고 말했다. 의사 2명과 사복 경찰 1명이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노인은 기저귀를 차고 있었는데 배어 나온 것은 모두 피였고 피가 다리까지 흘러내렸다. 머리와 관자놀이는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고 등 피부는 손으로 누르면 쑥쑥 들어갔다. 귀가 후 노인은 정신이 맑았다가 흐려지기를 반복했고 일어나 앉지 못한 채 누워만 있어야 했다. 이따금 가족이 그녀 앞으로 다가가면 그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때리지 마세요! 때리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노인은 결국 2023년 11월 15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향년 80세였다.
6. ‘취보후심’ 2년 반 후 감옥에 끌려간 정룬펑, 연속 따귀 맞고 약물 강제 주입당해 치아 두 개 부러져
후난성 융저우시 닝위안현 파룬궁수련자 정룬펑(鄭潤鳳)은 2012년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2021년 1월, 정룬펑은 밖에서 파룬궁 진상 스티커를 붙이다가 CCTV에 찍혔고, 원먀오 파출소 경찰이 그녀가 운영하는 작은 가게에 침입해 ‘전법륜’,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진상 스티커, 휴대폰, 지갑 등을 빼앗아 가고 그녀를 파출소로 납치했다. 국보 지도원 장강(蔣剛)과 부소장 장량(蔣亮)은 정룬펑의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무거운 쇠사슬로 꼬박 하룻밤 동안 묶어두었고, 다음 날 그녀를 융저우시 구치소로 납치했다. 한 달 반 후, 정룬펑은 심각한 빈혈 증세(혈색소 수치가 불과 2g/dl, 성인 여성 정상 범위 11~16g/dl)를 보여 ‘취보후심’ 수속을 밟고 귀가했다.
2021년 3월부터 5월까지, 닝위안현 국보는 정룬펑을 강제로 여러 차례 병원에 데려가 신체검사를 받게 하며 그녀를 다시 융저우시 구치소에 넣으려 했으나, 구치소 측은 세 번이나 수감을 거부했다. 융저우시 중심병원에서 닝위안현 공안국은 10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4교대로 그녀를 감시했다. 2021년 7월, 신톈현 법원이 불법 재판을 열었고 무죄 변호를 맡은 변호사는 법원이 ‘형법 300조’를 남용해 억울한 사건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9월 1일, 정룬펑은 판결문을 받아 불법적인 징역 2년에 벌금 1000위안을 갈취당했다. 그녀가 항소한 후 융저우시 중급법원은 불법적으로 원심을 유지했다.
2023년 9월 25일, 건강상의 이유로 오랫동안 병보석 상태였던 정룬펑은 후난성 여자감옥으로 납치됐다. 투옥 후, 정룬펑은 약물 복용을 강요당했고 점차 약 투여량이 늘어나 오장육부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그녀가 여러 차례 감옥경찰에게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오히려 질책과 욕설을 들었다. 대대장 리쥔(李君)은 감시범 5명을 시켜 그녀를 짓누르고 입을 벌려 약을 주입하게 해 치아 두 개를 부러뜨렸다. 대대장 퉁 모 씨는 그녀의 뺨을 6차례나 미친 듯이 때렸고, 감옥경찰 판 모 씨는 수감자 4명을 시켜 폭력적으로 약을 주입하게 해 두 차례나 거의 쇼크 상태에 빠지게 했다. 2025년 7월 12일 정룬펑이 출소할 당시 그녀는 뼈만 앙상하게 남고 얼굴이 수척해져 60세인 사람이 마치 80세 노인처럼 보였다.
7. ‘취보후심’ 1년째 되던 때 세 아이 엄마 구치소로 납치돼
허베이성 창저우시 창현 파룬궁수련자 진웨(金月)는 2024년 4월 17일 아침, 집에 침입한 창현 공안국 국보 대대장 자오쥔펑(趙俊峰), 리융성(李永聖) 등에게 불법 가택수색을 당해 대법서적, 프린터, 종이 등 개인 물품을 빼앗겼다. 경찰이 진웨의 머리채를 잡고 억지로 경찰차에 끌어올리자 세 명의 어린아이가 목놓아 울었다. 진웨는 창현 구치소로 납치됐다가 4월 25일 이른바 ‘취보후심’으로 귀가했다. 2024년 9월 25일, 창현 공안국 국보 경찰 리융성, 바이젠화(白建華) 등 4명이 진웨의 직장에 찾아와 서류 5장을 들고 진웨에게 그들이 원하는 ‘증거’를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진웨는 그 위에 ‘본 사건과 무관함’이라고 적고 서명을 거부했다. 경찰은 이를 보고 “아이들과 잘 지내보라”라고 말하며 진웨에게 조치를 취할 것임을 암시했다.
사실 중국의 헌법과 모든 법률에는 파룬궁을 사교(邪敎)라고 규정한 내용이 없다. 진웨는 창현 공안국, 기율검사위원회, 창저우시 공안국, 윈허구 법원 등에 연이어 법률 문서를 제출하며 경찰의 위법 행위를 고소했다. 2025년 5월 13일, 진웨가 창현 다관팅향 우체국에 가서 우편물 배송 상황을 문의하다가 창현 국보 대대장 자오쥔펑 등에게 납치됐다. 5월 14일, 자오쥔펑이 한 무리의 경찰을 이끌고 진웨를 창저우시 건강검진센터로 압송해 신체검사를 하려 했다. 진웨가 협조하지 않자 6~7명의 경찰이 그녀를 누르고 심전도 검사, 두 차례의 채혈, 흉부 X선 촬영을 강행했다. 자오쥔펑은 주먹으로 진웨의 머리를 내리쳤고 흉부 X선 촬영이 끝난 후 등 뒤에서 그녀를 또 때렸다. 창저우시 구치소는 진웨의 신체검사 불합격을 이유로 수감을 거절했지만, 자오쥔펑은 단념하지 않고 정법위원회와 구치소에 전화를 걸어 강제로 진웨를 구치소에 가뒀다. 진웨의 남편이 자오쥔펑의 폭행 사실을 웨이보에 올리자 창현 공안국의 보복을 받았고, 다관팅향 파출소에 의해 ‘소란 선동’ 혐의로 14일간 불법 구류됐다. 2025년 8월, 창저우시 윈허구 검찰원은 진웨를 모함해 윈허구 법원에 넘겼다. 2026년 1월 23일, 진웨는 구치소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판결이 나지 않았다.
8. 증거 부족함에도 사건 종결하지 않아, 리춘위안 불법적인 ‘취보후심’ 연장당해
톈진시 빈하이 탕구신구 음악 교사이자 파룬궁수련자인 리춘위안(李春媛)은 2024년 4월 14일 정오, 복도에 잠복해 있던 사복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컴퓨터, 휴대폰, 대법서적, 노래 장비 등 개인 물품을 빼앗겼다. 경찰은 “리춘위안은 집에서 매일 노래를 부르며 해외와 연락을 취해 오랫동안 그녀를 주시해 왔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 리춘위안의 차를 수색했다. 리춘위안의 남편은 차가 아파트 단지 밖에 있는 줄 알았지만, 경찰은 차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다고 우겼다. 가족조차 차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경찰은 아주 잘 알고 있어, 가족은 경찰이 리춘위안의 차에 미행 및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이어 리춘위안을 빈하이신구 탕구 제1 구치소로 납치했다. 변호사와 가족이 강력히 항의한 끝에, 불법 감금 37일째 되던 날 저녁 경찰은 증거 부족으로 가족에게 5000위안의 보증금을 강제로 갈취한 뒤 ‘취보후심’으로 리춘위안을 귀가시켰다.
경찰은 처음에는 2024년 7월에 사건을 종결한다고 했으나 계속 미루었다. 2025년 5월 중순, 경찰은 또 리춘위안에게 5월 21일 전에 사건을 종결하겠다고 알려주었다. 5월 20일 오후가 되자 경찰은 도리어 “검찰원에서 당신에게 전화를 걸었다”라고 했지만, 사실 리춘위안의 휴대폰에는 검찰원에서 걸려 온 전화 기록이 전혀 없었다. 5월 22일 오후, 톈진 빈하이신구 검찰원 직원이 리춘위안에게 통지해 다시 ‘취보후심’ 조치를 내렸다.
9. ‘취보후심’ 만료 후 납치당한 천펑샤, 폭력에 끌려다니다 소변 실금…경찰 “숨만 붙어있으면 수감 가능해”
허베이성 청더시 파룬궁수련자 천펑샤(陳鳳霞)는 2024년 7월 12일, 승강기 안에서 청더시 가오신구 공안국 사복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이 천펑샤를 폭력적으로 끌고 가는 바람에 그녀의 몸 곳곳에 멍이 들었다. 천펑샤는 구급차에 실려 현지 병원에서 하룻밤 관찰을 받은 후 다음 날 귀가했고 집 안에 있던 대법서적, 사부님 법상 및 관련 물품을 빼앗겼다. 가오신구 국보 대대장 마오카이(毛鍇)는 자신이 사람들을 데리고 자문쇠를 부수고 집 안으로 들어가 자물쇠 속통을 교체했다고 말했다. 7월 15일, 마오카이는 취보후심이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을 들고 찾아와 천펑샤에게 서명을 요구했다. 10월 12일, 사건 담당자 허우서우인(侯守銀)은 천펑샤의 딸에게 전화를 걸어 “너희 엄마 사건이 검찰원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2025년 9월 11일, 천펑샤는 버스 안에서 다시 스둥쯔거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그녀의 ‘취보후심’ 기간이 지났다고 했으나 사실 이는 청더현 국보 대대의 지시였다. 당일 오후, 허우서우인은 반혼수 상태인 천펑샤를 강제로 승용차에 태워 병원으로 보내 신체검사를 받게 했다. 4~5명이 그녀를 세게 짓눌렀고 의사는 그녀가 기절한 상태인 것을 보고 CT 촬영을 거부했다. 경찰은 저녁에 그녀를 구치소에 넣으려 했으나 수속 미비로 거절당하자, 허우서우인은 “숨만 붙어있으면 수용할 수 있다”라며 병원에 연락해 도장을 받게 했다. 이어 천펑샤를 266병원으로 이송했는데, 그 과정에서 그녀는 휠체어에서 떨어졌고 의사는 검사를 거부했다. 그날 밤 10시경, 천펑샤는 강제로 구치소에 갇혔다.
2025년 12월 16일, 솽차오구 법원은 천펑샤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었다. 천펑샤는 스스로 변호했다. 자신은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고 어떤 법률의 실시도 파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9월 11일 사건 담당자 허우서우인과 그의 일당에게 납치돼 병원에서 불법 신체검사를 받았으며 발버둥 치는 와중에 여러 사람에게 짓눌려 하마터면 질식할 뻔했고 진정제까지 주사 맞았으며, 허우서우인은 심지어 “산 채로 장기를 적출하겠다”라며 협박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일의 폭력 행위로 인해 천펑샤는 소변 실금 증상이 나타나 12월 16일까지도 기저귀를 찬 채 출두해야 했다. 판사는 휴정을 선고하고 후일 다시 재판을 열기로 했다.
10. 장바오링 ‘취보후심’ 3년 후 5년 반형 억울하게 선고받아
베이징시 펑타이구 파룬궁수련자 장바오링(張寶玲)은 2022년 6월 19일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다훙먼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불법 구금 36시간 만에 ‘취보후심’ 조치를 받았다. 2023년 6월 5일, 펑타이구 검찰원은 전화를 걸어 장바오링에게 6월 7일에 오라고 했으나 장바오링은 가지 않았다. 2024년 2월 23일, 장바오링은 다시 경찰에게 납치됐고 공안은 ‘가출 및 도주’라는 명목으로 ‘체포영장’을 인쇄해 그날 밤 그녀를 펑타이구 구치소로 납치했다. 그러나 장바오링의 혈압이 높아 구치소에서 수용을 거부하자 그녀는 다시 취보후심 조치를 받았다. 2024년 7월, 펑타이 공안분국은 장바오링을 모함해 펑타이구 검찰원으로 넘겼다. 2025년 7월 말, 펑타이구 법원은 장바오링에게 불법적으로 5년 반형을 선고했다. 장바오링은 항소했지만 법원은 원심을 유지했다.
11. 공안국과 검찰원에 연이어 ‘취보후심’ 당해, 유랑 생활하던 왕슈롄 감옥으로 끌려가
지린성 지린시 자오허시 파룬궁수련자 왕슈롄(王秀蓮)은 2023년 10월 27일 자오허시 공안국 허베이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종이 한 뭉치를 둥글게 말아 종이 몽둥이를 만들어 왕슈롄의 머리를 때리며, 진상 자료 50여 권을 배포했음을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다음 날, 왕슈롄은 신체검사 불합격으로 ‘취보후심’을 받고 풀려났다. 1년 후인 2024년 11월, 왕슈롄은 자오허시 공안국 사건 담당자 판취안예(潘全野)의 전화를 받고 공안국으로 한 번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왕슈롄이 간 후, 판취안예는 그녀를 수란시 검찰원으로 데려가 ‘법적 절차’를 밟고 다시 ‘취보후심’ 수속을 하게 했다.
왕슈롄은 자신이 사법적 모함을 받고 있음을 알고 며칠 후 자오허시를 떠나 어쩔 수 없이 유랑 생활을 했다. 2025년 7월, 유랑 생활을 한 지 반년이 넘은 왕슈롄은 광시에서 현지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후 자오허시 경찰에게 압송돼 지린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그 후 왕슈롄은 현지 공안, 검찰, 법원에 의해 계속 모함을 당했는데 자세한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다. 2025년 11월 하순 소식에 따르면, 왕슈롄은 현지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3년 반형을 선고받았다.
12. 10여 년 전의 취보후심 ‘종결’해야 한다며 왕신칭에게 3년형 억울하게 선고해
후베이성 셴닝시 파룬궁수련자 왕신칭(汪信淸)은 76세로, 전 퉁청현 산아제한 서비스 센터 의사였다. 파룬궁을 수련하고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다는 이유로 왕신칭은 구치소, 구류소, 정신병원, 세뇌반, 노동수용소에 연이어 불법 감금됐고 여러 차례 불법 가택수색과 괴롭힘을 당했으며 1만여 위안을 갈취당했다. 2019년 6월 12일, 왕신칭은 집에서 퉁청현 국보 경찰에게 납치됐는데 그 구실은 놀랍게도 10여 년 전의 ‘취보후심’을 이제 와서 종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9년 9월 12일, 왕신칭은 퉁청현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고 2020년 12월 억울하게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21년 5월 3일, 왕신칭은 비밀리에 사양 판자타이 감옥으로 압송됐고 가족은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야 그의 행방을 알게 됐다.
13. 주위링 ‘취보후심’ 후 심각한 병세 나타나, 또 불법 재판받아 네 식구 뿔뿔이 흩어져
광둥성 후이저우시 파룬궁수련자 주위링(朱玉玲)은 2024년 4월 11일 후이저우시에서 발생한 대규모 납치 사건 때 끌려갔다가, 이후 가족이 5000위안을 내고 ‘취보후심’ 수속을 밟아 귀가했다. 이후 주위링은 걷지 못하는 심각한 병세를 보이기 시작해 집에서 자주 넘어졌다. 2025년 12월 중순 어느 날, 주위링은 또 화장실에서 심하게 넘어진 뒤 걸음을 걷지 못하고 비틀거려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그런데도 후이청구 공안분국은 주위링을 박해하는 이른바 사건을 한 단계씩 승급시켜 검찰원과 법원으로 송치해 사법적 박해를 가하려 했다. 현재 법원은 이미 불법 재판을 열었으나 아직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경찰은 “전향하든가, 아니면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아라(감옥에 넣겠다는 의미)”라고 위협했다.
주위링의 며느리는 악당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겁을 먹고 이미 남편과 이혼했으며, 2024년 1살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갔다. 주위링의 아들은 원래 후이저우시 버스 회사에서 멀쩡히 일하고 있었으나, 후이저우시 공안·검찰·법원 인원들이 그에게 집에서 그들과 협조하라고 강요하는 바람에 직장을 잃게 됐다. 원래 단란했던 네 식구가 지금은 중공 악당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14. ‘취보후심’ 2년 후 또다시 납치된 83세 웨이사오민, 3년형 억울하게 선고받아
랴오닝성 푸순시의 83세 파룬궁수련자 웨이사오민(魏少敏)은 2007년 불법적인 강제노동 3년 처분을 받은 적이 있고, 2014년에는 불법적으로 7년 반형을 선고받았다. 2022년 8월 8일, 웨이사오민은 정류장에서 한 노인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사람들의 미행을 받고 신고당해 푸순시 신푸구 잔쳰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그녀는 불법 구류 10일과 벌금 1000위안 처분을 받은 후 ‘취보후심’으로 풀려났다. 이후 경찰은 계속해서 증거를 엮어 웨이사오민을 둥저우구 검찰원에 모함했고, 2024년 7월 중순 다시 그녀를 납치해 푸순시 구치소에 가뒀다. 2025년 2월 말 소식에 따르면, 웨이사오민은 둥저우구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으며 현재 랴오닝 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돼 있다. 웨이사오민의 누적된 억울한 형기는 이미 13년 반에 달한다.
15. ‘취보후심’ 5년 후, 가오멍화 감옥에 끌려가
산둥성 허쩌시 차오현의 75세 파룬궁수련자 가오멍화(郜孟花)는 차오현 식량 관리 시스템의 퇴직 직원으로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심신에 큰 혜택을 받았다. 2020년 3월, 가오멍화는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납치됐다가 ‘취보후심’을 받았다. 2020년 6월 30일, 차오현 공안국 차오청 파출소와 칭허 파출소 소속 경찰 총 4명이 ‘중공 악당 100세 생일 안정 유지’라는 명목으로 가오멍화를 끌고 가 강제로 병원에 억류한 뒤 채혈 등 신체검사를 받게 했다. 신체검사 결과 가오멍화에게 심각한 심장병(맥박 분당 150회 정도)과 고혈압이 발견돼 구치소에서 수감을 거부하자 당일 밤 가오멍화는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경찰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엄포를 놓았다. 2021년 8월, 가오멍화는 차오현 법원으로부터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는데 당시 수감되지는 않았으며 그 원인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전염병 등의 이유로 추정). 2025년 8월 중순, 차오현 법원은 위법적인 판결을 집행해 가오멍화를 산둥성 여자감옥으로 납치했다.
16. 세 차례 납치당해 행방불명된 왕샤오훙, 불법적으로 3년형 선고받아
후베이성 우한시 장샤구 파룬궁수련자 왕샤오훙(王小紅)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2024년 6월 11일 집에 침입한 국보 경찰에게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다. 국보는 어떻게든 왕샤오훙을 구치소에 집어넣으려고, 먼저 그를 장샤구 병원으로 끌고 가 신체검사를 받게 했으나 혈압이 200mmHg 이상으로 나와 구금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국보는 단념하지 않고 그를 장샤구 중의원으로 끌고 가 검사를 받게 했지만 혈압은 여전히 200이 넘었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왕샤오훙을 ‘취보후심’으로 귀가시켰다. 2024년 7월 16일, 경찰이 다시 집에 찾아와 왕샤오훙을 납치했지만 여전히 그의 혈압이 높아 당일 집으로 돌려보내야만 했다. 2024년 8월 말, 왕샤오훙은 경찰에게 세 번째로 납치된 후 소식이 완전히 끊겼다. 친척과 친구들은 그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알지 못했고 장샤 구치소에서도 그의 어떠한 정보도 확인할 수 없었다. 2024년 11월에 전해진 바에 따르면, 왕샤오훙은 이미 불법 체포가 승인됐을 가능성이 있었다. 2025년 12월 소식에 따르면 왕샤오훙은 이미 불법적으로 3년형을 선고받았다.
17. 취보후심 만료 시 ‘거주지 감시’로 변경한 사례
허베이성 탕산시 구예구 파룬궁수련자 겅차이샤(耿彩霞)는 2025년 1월 15일 구예구 난판 파출소에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이후 구예구 시자타오 파출소에 의해 탕산시 구치소로 납치됐다가 7일 만에 ‘취보후심’으로 귀가했다. 올해 1월 ‘취보후심’이 만료될 즈음 도리어 구예구 공안국에 의해 불법적인 거주지 감시로 전환됐다.
지린성 지린시 파룬궁수련자 왕인(王茵)은 2023년 6월 4일 지린시 창이 공안분국 옌안 파출소에 납치됐고 다음 날 ‘취보후심’ 조치를 받았다. 1년 후 취보후심이 만료되었을 때 공안은 사건을 종결하지 않았고 보증금도 돌려주지 않았다. 2024년 7월 11일, 왕인이 사건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야 공안이 그녀를 모함해 검찰원에 넘기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강제로 ‘거주지 감시’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맺음말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이다. 파룬궁수련자가 ‘진선인’을 믿어 좋은 사람이 되고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하며 평화적으로 박해를 반대하는 것은 모두 죄가 아니다. 그들에 대한 이른바 ‘취보후심’ 자체가 불법이며 중공 박해의 불법성을 덮어 감추는 것이다. ‘취보후심’을 이용해 계속 죄명을 만들어 냄으로써 훗날 파룬궁수련자를 모함해 투옥하거나, 혹은 다시 취보후심을 내리고 거주지 감시 등으로 변경해 박해를 연장하고 가중시키는 것은 중공의 사악함을 더욱 잘 보여준다. ‘취보후심’ 이후에도 파룬궁수련자와 그 가족은 파출소의 지속적인 괴롭힘, 감시, 협박에 직면해야 하며 장기간 무거운 정신적 압박을 견뎌야 한다. 선전 파룬궁수련자 천리둥(陳利東)이 바로 ‘취보후심’ 기간에 세상을 떠났다. 본문에 열거된 사례들은 단지 1999년 이래 자행된 이 잔혹한 진압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노동수용소는 일찍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자를 고문하던 사악한 소굴이었으나, 2013년 강제노동 제도가 해체된 후 중공은 파룬궁수련자에 대해 불법적인 강제노동에서 불법 징역형 가중으로 방향을 바꿨다. 2025년에만 751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불법적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각지 경찰이 토비(土匪, 도둑떼)처럼 폭력적으로 납치하고 가택수색을 벌이며 유인하고 법적 절차를 밟지 않는 것은 중공의 조폭 본색을 진실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년 파룬궁수련자에 대한 반복적인 괴롭힘과 위협, 불법 감금과 구타, 나아가 박해로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중공의 무인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정법위원회가 공안·검찰·법원을 조종해 양심과 선념을 없애고 헌법이 보장하는 신앙 자유의 권리를 짓밟으며 수법을 바꿔가며 좋은 사람을 박해하고 있다. 결국 중공의 파룬궁 박해는 ‘탕약은 바꾸고 약재는 안 바꾸는’ 격으로 단 한 번도 늦춘 적이 없으며 온갖 깡패 수단을 다 동원했다.
헤이룽장성 다칭시 파룬궁수련자 장펑샤(張鳳霞)는 2025년 8월 경찰에 납치된 지 7일 만에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박해 가담 기관인 다칭시 공안국 후이잔분국 형사경찰 3대대 대장 쉐원정(薛文政)은 “윗선(순시조)에서 우리에게 사람을 잡으라고 해서 우리는 잡기만 할 뿐 다른 건 신경 쓰지 않는다”라고 말해 무신론을 따르는 중공의 비참한 모습을 한마디로 대변했다. 그러나 사람이 악을 행하면 모두 돌려받아야 하며 선악에 응보가 따르는 것은 하늘의 이치이고 불법(佛法)을 박해하는 죄는 끝이 없음을 어찌 알겠는가. 역사상 사악한 정권은 단 한 번도 좋은 결말을 맺은 적이 없으며, 머지않아 중공이 해체되는 것 역시 사람의 의지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법에 따르면 파룬궁 박해는 ‘집단학살죄’에 속한다.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중공을 따라 파룬궁을 탄압한 모든 자들의 행위는 기록될 것이며, 이들은 가장 어리석은 자들로서 나치 분자와 동일하게 가장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의사 결정자든 집행자든, 파룬궁 박해에 가담해 행한 모든 것은 배로 갚아야 할 것이다. 또한 마비되어 깨닫지 못하고 탈퇴를 거부하는 당원과 단원 역시 필연적으로 중공이 100년 역사 동안 저지른 모든 죄악을 함께 감당하게 될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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