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슈창, 산둥성 감옥에서 3년 가까이 엄격 관리 박해당해

[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린이(臨沂)시 이수이(沂水)현 파룬궁수련자 장슈창(張修强)이 2022년 2월 8일 납치돼 구금된 후 모함을 당했다. 같은 해 6월 21일 이난(沂南)현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으며 2023년 3월 29일 산둥성 감옥으로 이송돼 3년 가까이 엄격 관리 박해를 받다 2026년 2월 8일에서야 출소해 귀가했다.

올해 51세인 장슈창의 원적은 산둥성 쥐(莒)현 궈좡(果莊)향 칭룽위(靑龍峪)촌으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체질이 허약했다. 1996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며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자 건강을 회복하고 활력이 넘쳐 더는 약을 먹지 않게 됐다. 이수이현 중바이(中百) 빌딩 동료들은 그가 ‘딴사람이 된 것 같다’며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를 칭찬했고 그는 쥐현 상업기술상을 받기도 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박해를 시작한 후 장슈창은 수차례 납치와 가택수색을 당했으며 세뇌반, 파출소, 구류소, 노동수용소, 감옥에 불법 구금돼 장기간 상해와 모욕을 겪었다.

1. 입감 초기: 독방 구금, 장시간 작은 의자에 앉기, 음식 제한

2023년 3월 29일 산둥성 감옥 입감대에 수용된 장슈창은 사흘 뒤 11감구로 이송됐다. 신앙을 견지하며 전향을 거부한 그는 반복해서 감방을 옮겨 다니며 장기간 엄격 관리를 받았다.

입감 초기 장슈창은 독방에 구금돼 외출이 금지됐다. 매일 16~17시간 동안 작은 의자에 앉아 꼼짝도 못 하게 하는 체벌을 받았으며 밤 12시가 돼서야 세면 후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수감자 우밍밍(吳明明), 처먀오(車淼), 황짜이첸(黃在前)은 교대로 전향 압박을 가했고 평소에는 직무 범죄자인 왕광진(王廣金, 전 짜오좡시 시장)이 그를 감시했다.

박해에 항의해 장슈창이 5월 19일부터 나흘간 단식을 시작하자 우밍밍은 책으로 그의 손등을 때렸고 황짜이첸은 그의 손을 꼬집어 피를 냈다. 식사는 반 숟가락만 주어졌고 물 섭취도 엄격히 제한됐다. 이런 상태는 두 달 넘게 지속되다 2023년 6월 7일에서야 일반 감방으로 배치됐다.

2. ‘엄정성명’ 작성 후 다시 엄격 관리: 수면 제한, 작은 의자 앉기, 외출 금지

2023년 9월 18일 장슈창이 옥중에서 수련을 견지하겠다는 엄정성명을 쓰자 다시 수면 제한, 외출 금지, 작은 의자 앉기 등의 체벌이 이어졌고 한 달간 엄격 관리를 받았다.

10월 16일 ‘전향 미비’를 이유로 11감구 6층 ‘고도 경계구역’에 투입돼 강제 전향 박해를 받았으며 수감자 류구이산(劉貴山), 샤오페이바오(肖培寶) 등에게 일주일간 고초를 겪었다.

10월 22일 감옥경찰은 그를 5층 남구 가오전양(高振洋) 조로 옮겨 불교 공부를 강요했다. 그가 거부하자 사기범 우진다(吳金大)가 보름간 세뇌 ‘학습반’ 참가를 강제했다. 장슈창이 보지도 듣지도 배우지도 않자 11월 8일 2감구 동구로, 13일에는 2감구 서구로 옮겨져 강제노동에 투입됐다.

3. 2감구 박해: 구타, 벌 세우기, 과중한 노동, 공상에도 휴식 불허

2감구에서 장슈창은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일 벌을 서야 했다. 2024년 1월 29일 솜 충전실에서 그는 마약 사범 저우보(周波)와 마잉원(馬應文) 등에게 가슴과 얼굴을 구타당해 호흡 곤란을 겪고 치아에서 피가 났다. 장슈창이 감옥경찰에게 이를 알렸으나 수감자들은 그가 ‘일을 너무 못한다’며 모함했다. 2월 8일 감옥경찰은 사건을 형식적으로만 처리하고 마무리했다.

전향 거부를 이유로 장슈창은 제설 작업과 구매 물품 운반 등 무거운 노동에 동원됐다. 3월 14일에는 손가락이 기계에 눌려 다쳤음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 일해야 했다.

4. 연공한다는 이유로 다시 전향 박해: 반복된 감방 이동, 강제 세뇌, 수면 박탈

2024년 3월 20일 장슈창은 2감구 동구로 다시 옮겨졌다. 야간 근무 중 연공을 한다는 이유로 4월 18일 다시 11감구로 이송돼 강제 전향을 당했다. 감옥경찰은 쉬차오(徐超), 인쥔(尹軍), 장광웨이(張光衛) 조로 끊임없이 감방을 바꿔가며 그를 박해했다. 이 조장들은 모두 박해를 위해 배치된 ‘극단적 인물’들이었다. 장광웨이 조에서 장슈창은 석 달 넘게 강제 학습을 당했고 장광웨이는 매주 그를 불러 신앙 포기를 요구하며 면담했다. 그러나 그는 “파룬궁에 대한 태도는 결코 변할 수 없다”며 일관되게 거절했다.

8월 26일 자오취안펑(趙傳峰) 조로 옮겨진 그는 ‘무언가를 써내야 잠을 잘 수 있다’는 강요를 받았다. 쓰기를 거부하자 밤 11시에 잠들어 새벽 1시에 깨워졌고 3시에 다시 잠들어 5시에 깨워지는 수면 박탈을 당했다. 낮에는 작은 의자에 앉아 세뇌 영상을 봐야 했으며 이런 생활은 48일간 계속됐다.

10월 10일 사기범 우진다가 다시 전향을 시도했으나 거절당했다. 12일 궁치중(龔其中) 조로 옮겨져 ‘사흘간 생각할 시간’을 받았으나 여전히 굴하지 않았다. 16일에는 ‘전향 총책임자’ 하오청룽(郝成龍) 조로 옮겨졌고 23일 우진다가 다시 압박을 가했으나 역시 거절했다.

5. 지속적인 엄격 관리: 작은 의자 앉기, 수면 박탈, 세뇌 영상 강제 시청

11월 20일 장슈창은 5층 북구에서 5층 남구 샤오페이바오 조로 옮겨져 엄격 관리를 받았다. 자정에 잠들어 새벽 5시에 기상했고 낮잠은 불허됐다. 낮에는 온종일 작은 의자에 앉아 강제로 세뇌 영상을 시청해야 했으며 이는 40일간 지속됐다.

12월 30일에는 6층 북구로 옮겨져 자정까지 눈을 뜨고 감시하는 ‘등안강(瞪眼崗)’ 근무를 섰으며 낮에는 작은 의자에 앉아 있다 밤에는 ‘야간 근무 수감실’ 보초를 서는 생활이 보름간 이어졌다.

6. 2025년: 고도 경계구역에서 69일간의 극단적 박해

2025년 1월 17일 설 명절을 앞두고 장슈창은 6층 남구 ‘고도 경계구역’으로 옮겨져 69일간 강제 전향 압박을 받았다. 이 기간 장슈창은 다음과 같은 심신 유린을 당했다.

• 매일 욕설과 체벌을 당하며 작은 의자에 앉아 있어야 했음
• 장기간 수면을 박탈당함
• 2월 8일부터 10일까지 수감자 샤오페이바오와 류구이산에게 폭력 협박을 당함
• 난징 대학교를 졸업한 변절자 저우(周) 모 씨가 매일 사악한 내용을 주입함
• 수감자 쥐융(鞠勇)이 강제로 세뇌 영상을 보게 하며 번갈아 괴롭힘

3월 3일 장슈창이 다시 수련 견지 성명을 발표하자 수감자들은 속수무책이 돼 욕설만 퍼부었다.

7. 2025년 8월까지 이어진 엄격 관리: 심장병 증상 악화

3월 26일 장슈창은 5층 남구 류구이산 조로 옮겨져 90일간 야간 근무를 하며 엄격 관리를 받았다. 6월 25일에는 5층 북구로 옮겨졌고 야간 근무 시간은 7시간 반으로 늘어났다. 장기 수면 부족으로 장슈창은 심각한 심장병 증상과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8월 24일 감옥경찰에게 상황을 알린 후에야 야간 근무에서 제외돼 낮 보초만 서게 됐다. 하오청룽은 “이제 너를 전향시키지 않겠다. 할당량은 채웠으니 너 하나쯤은 상관없다”라고 말했다.

10월 13일 장슈창이 감방에서 “파룬따파는 좋다”라고 외치자 류구이산, 쑨유다(孫友達), 하오청룽이 달려들어 그를 공격했다. 11월 14일 심장병이 위중한 상황에서 그는 약 복용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신체 문제는 감옥과 무관하다’는 성명 작성을 강요받았고 이후 다시 ‘관리 불응’을 구실로 자정까지 야간 근무를 서야 했다.

8. 구매, 전화, 면회 전면 제한

장슈창은 영치금이 있었으나 전향 거부를 이유로 물품 구매가 금지됐다. 일반 수감자는 매월 360위안을 쓸 수 있었으나 그는 36위안만 허용됐고 그마저도 신청서를 써야 했다. 신청서에 대법에 불리한 내용이 있자 그는 12월 12일 ‘구매 신청 무효’를 선언해 자격을 박탈당했다. 12월 24일 직무 범죄자 왕진펑(王金峰, 전 은행장)이 ‘출소 소감’ 발표를 요구했으나 대법 비방 문구가 있어 거절했다.

2026년 1월 23일 장슈창은 ‘연말 심사 총화’ 작성을 요구받았으나 ‘죄명’ 항목이 있어 거부를 지속했다. 2월 6일 출소 서류 서명 후에도 소감 발표를 요구받았으나 역시 거절했다. 3년간 장슈창의 통화는 연 1회로 제한됐고 도청과 신청서 작성이 강제됐다. 그는 2026년 신정에 ‘전화 신청 무효’를 선언해 통화 자격마저 취소됐다. 가족 면회는 3년 내내 한 번도 허용되지 않았다.

9. 가족이 겪은 커다란 고통: 장모의 한 맺힌 별세

장슈창의 장모는 80여 세 고령으로 병석에 누워 아내의 간병을 받고 있었다. 장슈창이 납치된 후 노인은 큰 충격을 받았고 사위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사위는 언제 돌아오는가?”라고 늘 되뇌었다. 2025년 12월 14일 노인은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장슈창의 출소를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이었으나 끝내 사위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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