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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한 12년형 선고받은 헤이룽장성 수련자 리창안, 박해로 사망

[명혜망](헤이룽장 통신원) 헤이룽장성 팡정(方正)현 출신 파룬궁수련자 리창안(李長安)은 2015년 10월 28일 불법적으로 1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후란(呼蘭) 감옥에 수감되어 감옥의 소위 ‘규정’과 ‘요구’ 등 각종 박해 수단과 방법에 저항했다. 이 때문에 감옥경찰들로부터 종종 체벌과 구타, 구매 제한(감옥에서 지정한 생활용품과 식품 구매) 및 독방 감금 고문으로 학대받아 심신에 손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간경변으로 전신 부종, 복부 체액 축적 등 증상이 나타났다. 그는 의식을 잃은 후 감옥에서 병원으로 이송됐고, 7일 후인 2023년 9월 24일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3세였다.

리창안은 대형차 운전사로 여러 차례 중국공산당(중공) 경찰에 납치돼 박해를 받았다. 2003년 10월 21일, 헤이룽장성 하얼빈 제2구치소, 하얼빈 감옥 집중훈련대, 타이라이(泰來) 감옥에 차례로 불법 감금되어 박해를 당했고, 독방에 갇히고 각종 형구로 박해를 받았다. 2010년 7월 7일, 리창안과 파룬궁수련자 쓰빙링(司炳玲)은 함께 진상 현수막을 걸러 나갔다가 도중에 뒤에서 경찰차가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팡정현 공안국 국보 경찰들이 쓰빙링을 며칠 동안 미행하고 있었음). 리창안은 그 자리에서 벗어났고, 쓰빙링은 납치되어 누명을 쓰고 불법적으로 10년 형을 선고받은 후 박해로 유방암에 걸려 ‘처분보류’로 집에 돌아갔다.

리창안은 박해를 피해 5년 동안 유랑생활을 해야 했고, 팡정현 공안국은 줄곧 리창안의 행방을 추적해 왔다. 한때 리창안의 사진을 들고 교차로와 버스 안에서 검문하고 대조했다. 2015년 5월 21일, 리창안은 탕산(唐山)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후 여관에서 신분증을 등록한 지 30분도 안 되어 납치됐다. 이후 팡정현 국보대대의 바이원제(白文傑)와 왕린춘(王林春)에게 팡정현으로 납치되어 돌아왔고, 2015년 10월 28일 불법적으로 12년형을 선고받아 후란 감옥에 불법 감금되어 박해를 당했다.

2016년 5월 23일 아침 출근 시간, 리창안은 수감복을 입지 않고 2번 문을 지날 때 인원수를 보고하지 않았다. 작업장에 도착한 뒤 감옥경찰 푸위안시(付元璽)가 그에게 사무실로 가라고 했다. 대대 사무실에는 제2감구역 부교도원 뤄마오성(羅茂盛), 감옥경찰 이광빈(易廣斌), 제2중대 감옥경찰 장둥성(張冬生)과 푸위안시, 형사 수감자 장자펑(張嘉峰)과 선보(沈博) 두 사람이 있었다. 뤄마오성이 리창안에게 “왜 수감복을 입지 않고 인원수를 보고하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리창안은 “저는 범죄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뤄 씨는 “법원에서 판결했다!”라고 말했다. 리창안은 “그것은 사리사욕을 위해 법을 어긴 판결로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중국에는 파룬궁을 사이비교로 인정하는 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형사범 장자펑이 수갑 한 벌을 가져왔고, 장둥성과 다른 감옥경찰이 리창안에게 강제로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장둥성과 다른 경찰은 그를 폭행하기 시작했고, 발로 차면서 욕을 하고, 뒤에서 여러 명이 리창안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려 그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다시 심하게 발로 찼다. 리창안이 “주재검찰관(감옥 주재 검찰관)을 만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장둥성이 달려들어 그의 뺨을 때렸다.

이후 제2감구역 대대장 위멍(於猛)이 그와 이야기했고, 리창안은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그럼 정신을 차리게 해주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을 시켜 리창안을 중대 사무실로 데려간 다음, 감옥에 가서 구금표를 비준받아 금고실로 보냈는데, 속칭 ‘독방’이라고 한다. 감옥경찰 장둥성과 푸위안시는 수감자 선보와 장옌(張岩)에게 손수레로 리창안을 금고실에 밀어 넣으라고 시켰다. 제2감구역 작업장에서 금고실까지 리창안은 줄곧 족쇄를 차고 등 뒤로 수갑을 채운 채 이동했다. 금고실에 도착하자 장둥성과 푸위안시는 “옷을 벗고 여기 옷으로 갈아입어라! 이것이 규칙이다!”라고 말했다. 리창안은 “수감복도 입지 않는데 왜 여기 옷을 입어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수감자 선보와 장옌에게 리창안의 옷을 모두 벗기고 팬티 하나만 남게 했다.

리창안은 독방에 갇혀 13일 동안 박해를 받았다. 독방 안은 춥고 습했는데, 형사범 장옌은 리창안에게 이불을 덮게 해주지 않았고, 식사로는 만두 하나만 줬다. 어느 날 제2감구역 감옥경찰 쑹윈펑(宋雲鵬)이 독방에 와서 리창안이 연공하는 것을 보고 다가와 그의 왼쪽 어깨를 발로 차며 “독방에서 감히 연공을 하느냐?”라고 말했다. 형사범 장옌은 또한 리창안을 온갖 방법으로 괴롭혔다.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며 냄새가 난다고 하고, 그가 떠난 다음에 화장실에 가라고 하는 등 온갖 방법으로 그를 곤경에 빠뜨렸다. 6월 14일, 감옥경찰 쑹윈펑은 형사범 선보에게 리창안을 때리게 했는데, 당시 그는 리창안 바로 옆에 있었다. 이후 리창안은 다시 대대 사무실로 끌려가 부대대장 스레이(施磊)에게 구타를 당했다.

2017년 2월, 리창안은 후란 감옥 독방에 갇혀 옷을 모두 벗긴 채 박해를 당했고, 늘리는 침대 고문, 지환(地環) 채우기 고문, 겨울에 창문을 열어 냉동시키는 고문을 당했다.

2018년 7월 어느 날, 리창안이 수감복을 입지 않자 대대장 쉬원룽(許文龍)은 중대장 장둥성 등 여러 명의 경찰에게 리창안을 구타한 후 금고실(독방)로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후 리창안은 단식으로 항의했고, 생명이 위태로워진 후에야 풀려났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1년 넘는 기간 동안 대대장 쉬원룽은 리창안이 수감복을 입지 않고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구실로 다섯 차례에 걸쳐 리창안을 독방으로 보내 박해했다. 한번은 리창안이 제2감구역 중대장 지도원에게 얼굴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대대 및 중대 경찰의 사주 하에 수감자 우두머리도 여러 차례 리창안을 구타했는데, 한번은 리창안의 치아 하나를 때려 부러뜨렸지만 대대장과 중대장은 이를 못 본 척했다. 수감자 우두머리는 이를 보고 더욱 기세등등해져서 더욱 거리낌 없이 여러 차례 그를 구타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2022년 말, 후란 감옥 내부에 직책 조정이 있었다. 리창안이 새로 조정된 소위 ‘폭동진압대’의 요구에 협조하지 않자, 여러 차례 감구역장 장셴펑(張險峰) 등에 의해 규율 위반 등 각종 구실과 핑계로 금고 박해를 당했다. 금고에 갇힌 기간 중 리창안은 단식으로 박해에 반대한다는 뜻을 표했고, 여러 차례 강제로 음식을 주입당해 심신에 손상을 입었으며, 전신 부종, 복부 체액 축적 등 증상(간경변)이 나타났다. 감옥은 리창안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폭동진압대 및 감구 책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가족에게 치료비를 내고 감옥 밖에서 치료받으라고 했다.

리창안은 의식을 잃은 후 감옥에서 병원으로 이송됐고, 7일 후인 2023년 9월 24일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몸에 문제가 발견된 후 사망하기까지 약 10개월이 걸렸다. 그 기간 중 감옥은 가족으로부터 5만 위안을 갈취하며 그에게 병을 치료해준다고 말했다.

후란 감옥은 원래 사형 집행유예 2년, 무기징역, 15년 이상 유기징역을 선고받은 범죄자들을 주로 수감하는 고등급 보안 감옥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이미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마굴이 됐다. 통계에 따르면, 1999년 7월 20일 이후 최소 17명의 파룬궁수련자가 후란 감옥에서 박해를 받아 사망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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