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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세 정스이 억울하게 세상 떠나…약물 박해 받은 것으로 의심

[명혜망](쓰촨성 통신원) 쓰촨(四川)성 쑤이닝(遂寧)시 파룬궁수련자 정스이(鄭世義)가 마을 주민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77세 고령에 중공에 의해 불법적으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감옥에서 약물 박해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며, 출소 후에는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결국 2025년 2월 22일, 87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생을 마감했다.

정스이 노인은 1938년생으로 쓰촨성 쑤이닝시 촨산(船山)구 융싱(永興)진 거우차오(苟橋)촌 출신이다. 1997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그는 여러 질병이 사라지며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져 걸을 때도 바람처럼 빨랐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탄압을 시작한 이후, 정스이는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념을 굳건히 지키며 마을 주민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이로 인해 중공에게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하고 세 번이나 납치됐으며, 77세라는 고령에도 중공 법원에 의해 불법 판결을 받았다.

2015년 2월 3일 정오, 당시 77세였던 정스이는 양두(洋渡)촌 파룬궁수련자 황이차오(黃益朝, 이미 억울하게 사망)와 함께 거우차오촌 4사(社) 도로변 전봇대에 진상 스티커를 부착하던 중 진상을 모르는 마을 주민의 악의적 신고를 받았다. 마을 간부 정스진(鄭世金)의 인도로 허둥신구 공안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 10여 명이 그의 집에 침입해 납치하고 불법 가택수색을 실시했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정스이의 아들 정더량(鄭德亮)은 소식을 듣고 즉시 귀가했다가 역시 경찰에 납치됐다.

경찰은 부자를 허둥신구 공안분국으로 데려가 불법 심문을 진행했다. 그들은 정스이에게 진상 스티커의 출처를 캐물었지만, 그는 일절 협조하지 않았다. 담당 경찰은 분노해 탁자를 내리쳤고 한때 그를 폭행하려 했으나, 정스이의 당당한 기개에 눌려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몇 시간의 불법 심문 후에도 경찰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오후에 부자는 융싱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2015년 3월 11일, 허둥분국은 부자를 불법으로 체포한 뒤 누명을 씌워 촨산구 검찰원에 넘겼다. 2015년 11월 20일, 촨산구 법원은 정스이와 아들 정더량, 파룬궁수련자 황이차오에게 불법 형을 선고했다. 정스이는 3년 6개월, 정더량은 3년, 당시 73세였던 황이차오는 3년(감외 집행)의 억울한 형을 받았다. 2016년 5월, 정스이와 정더량 부자는 쓰촨성 러산(樂山)시 자저우(嘉州)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명혜망 자료에 따르면, 정더량은 감옥에서 감옥경찰과 죄수들에게 구타와 ‘끈으로 묶기’ 고문을 당했다.

정 노인이 자저우 감옥에 불법 감금된 기간 동안, 감옥 당국은 그가 고혈압이 있다고 주장하며 매일 약물 복용을 강요했다. 2018년 3월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 그는 몸이 앞으로 굽어 허리를 펴지 못하고 고개를 들지 못했으며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고혈압 증상은 없었지만 기억력이 크게 저하돼 두세 살 아이보다도 못한 지능 상태가 됐고, 결국 생활 자립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경찰에 납치되기 전 정스이는 심신이 건강하고 자세가 바르며, 약 한 알도 복용한 적이 없었다. 그는 파룬궁 진상을 알리기 위해 수십 리 떨어진 산간 마을을 자주 오갔다. 가족들은 그가 감옥에서 약물 박해를 당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출소 후에도 정스이는 계속해서 중공 요원들의 괴롭힘을 받았으며, 강제 채혈과 수차례 강제 사진 촬영을 당했다. 2025년 2월 22일, 87세의 정스이 노인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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