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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파룬궁수련자 쉬진룽, 중공에게 고문당하다 사망

[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전기충격, 수면 박탈 등 잔혹한 고문을 당한 산둥성 파룬궁수련자 쉬진룽(許金榮·70)이 출소 후에도 계속 중국공산당의 괴롭힘을 받다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

쉬진룽은 이전에 지역 파룬궁 보도소장이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 이후, 그녀는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계속 탄압받았다. 직장, 파출소, ‘610’(파룬궁 탄압기구)에 납치돼 불법적으로 감금되고 강제 세뇌를 당했으며, 가택수색을 당하고,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그녀는 산둥 여자 노동수용소에서 전기충격, 독수리 자세로 묶기, 장시간 서 있기 등 다양한 고문을 당하고 구사일생으로 출소했으나, 2024년 2월 25일에 7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파룬궁 수련으로 심신에 이로움 얻어

쉬진룽은 1954년 5월 27일에 태어났으며 린칭 운수회사에서 퇴직했다. 그녀는 1993년 5월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는데, 수련 전 초기 간경화, 비장 종대, 담낭염, 장기간의 불면증, 위장 질환 등 많은 질병을 앓았다. 그녀는 지병을 고치기 위해 태극권을 비롯한 많은 기공을 해보고 신과 부처님께 기도까지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직장에서 늘 아픈 환자로 알려졌다. 그러다 마침내 파룬궁 수련 후 쉬진룽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아주 짧은 기간에 모든 병이 사라지고 처음으로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분을 맛보았다. 건강이 좋아진 덕분에 그녀는 국가와 직장, 가족에게는 의료비 절감을 가져다줬고, 질병으로 우울했던 가족에게 빛과 기쁨을 안겨줬다.

수련 전, 쉬진룽은 경쟁심이 강해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나 파룬궁 수련의 ‘진선인’ 원칙을 실천한 후 명예와 부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직장에서 그녀는 부지런하고 근면하며 양심적이고 책임감 있었으며, 명예나 보상에 집착하지 않았다. 집안에서는 가족에게 관대해졌고 늘 가족을 생각하고 집안일을 불평 없이 했으며,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정신적으로 크게 향상됐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은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 쉬진룽은 중공으로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박해받았다. 쉬진룽은 행정 구금(1일 1회), 형사 감금(5일 1회) 등 두 차례 감금됐으며, 집은 불법적으로 수색당하고 강제로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 다음은 수년간 쉬진룽이 겪은 박해 사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불법적인 감금, 납치, 감시

1999년 7월 19일, 린칭 운수회사는 쉬진룽의 파룬궁 수련을 막기 위해 사적으로 법정을 열어 구금을 결정하고, 그녀를 반년간 호텔에 불법 감금하고 설이 될 때까지 집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 불법 감금 기간 지역 공안은 쉬진룽의 남편을 속여 집 문을 열게 하고 불법적으로 파룬궁 서적을 강탈해갔다.​

2000년 6월, 쉬진룽은 파룬궁에 대한 명예회복을 청원하기 위해 베이징에 갔다가 경찰에게 납치돼 주거지 구치소로 이송됐다. 그녀는 구치소에서 단식으로 항의했고, 경찰은 5일 후 2천 위안을 강탈하고 그녀를 풀어줬다.

2000년 7월, 쉬진룽의 남편이 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녀가 남편을 간호하는 동안에도 직장과 경찰은 병동으로 따라와 감시했다. 쉬진룽의 남편은 이에 매우 화가 났고, 결국 그의 상태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이후 퇴원해 집으로 돌아와서도 쉬진룽은 여전히 ​​주거지 감시를 받았다.

직장 역시 1999년 7월부터 2002년까지 쉬진룽에게 급여를 주지 않으며 중공의 박해에 협조했다.

노동수용소서 받은 잔인한 고문으로 극심한 신체 손상 입어

2000년 9월 10일, 쉬진룽은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3년을 처분받고 산둥성 여자 노동수용소에 감금됐다가 1년 반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쉬진룽은 수용소에서 감금됐을 때 극도로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 그녀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노동수용소 경찰은 오랫동안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해 목과 손목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전향’(파룬궁 수련 포기)을 거부한 그녀를 감옥에 가둬 몹시 추운 겨울 날씨에 고의로 창문을 열어둬 몸이 얼어붙게 했으며, 잠도 재우지 않고 세워뒀다. 그뿐만 아니라 다리, 손, 팔을 침대에 묶고 무자비하게 고문을 가해 그녀의 몸은 심하게 손상됐다. 또한, 그녀는 너무 오랜 시간 수갑이 채워져 손과 팔을 내렸을 때 오랫동안 아무 감각을 느낄 수 없었으며, 하루에 16시간에 달하는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기도 했다.

쉬진룽의 남편은 자기 아내가 노동수용소에서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자, 아내를 위해 여러 차례 항의 전화를 걸었다. 비록 아무런 소용도 없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2006년 쉬진룽의 남편은 장기간의 육체적, 정신적 압박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된 괴롭힘

2017년 5월부터 쉬진룽과 린칭의 파룬궁수련자들은 중공으로부터 자주 괴롭힘과 박해를 받았다. 가담자들은 신화 파출소 경찰, 셴펑 파출소 경찰​, 주민위원회 직원들이다.

2019년 11월 29일, 쉬진룽과 파룬궁수련자 4명이 린칭 공안국에 납치됐는데 공안들은 쉬진룽에게 연금을 지급하지 않고 공직에서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며 서명을 강요했다. 저녁 7시쯤에야 쉬진룽 등은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비인간적인 고문, 잦은 박해와 괴롭힘 속에서 불안한 삶을 살던 쉬진룽은 2024년 정월 14일에 뇌에 심각한 대량의 출혈을 일으켜 혼수상태에 빠졌고, 3일 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4년 3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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