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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교사 왕하이첸, 7년 6개월의 억울한 징역형 선고받고 비밀리에 자저우 감옥으로 이송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쓰촨 보도) 2019년 7월 27일, 쓰촨(四川)성 다저우(達州)시 다주(大竹)현 파룬궁 수련생 왕하이첸(王海乾)이 납치됐다. 그는 2020년 12월 29일, 다주현 법원에서 억울하게 7년 6개월 형에 벌금 5만 위안(900만 원)을 선고받고 중급인민법원에 상소했지만, 부당한 1심 판결 유지를 선고받았다. 2021년 7월 11일 전후, 그는 비밀리에 쓰촨성 자저우(嘉州)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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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 다저우시 다주현 주양(竹陽)진의 주임 교사인 왕하이첸(남,59)은 어렸을 때 비염, 표재성 위염, 신경관능증, 위장병, 현기증으로 늘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아파 괴로웠다. 1994년 하반기 당시 32세였던 왕은 B형 간염에 걸렸다. 간염 초기 그는 간신히 버틸 만했다. 그 후 병세가 점점 심각해지고 간이 있는 주변이 더부룩하고 아팠다. 이물감이 뚜렷하게 느껴져 오른쪽으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온몸은 기운이 없고 몹시 피곤했다. 다양한 치료 방법을 사용해 봤지만, 효과가 거의 없었다. 권위 있는 의사가 그에게 “이 질병은 완치가 어려우니 스스로 알아서 몸을 보양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1996년 8월, 치료가 절망적이었을 때 왕의 아내가 왕에게 파룬궁 수련을 권유했다. 파룬궁은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과가 있다며 파룬궁을 연마해 보라고 설득했다. 놀랍게도 왕이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신기하게도 간염 증상이 점점 줄어들었다가 완전히 사라졌다. 또한, 몸에 있던 다른 병의 증상도 전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고, 왕은 여러 차례 납치돼 불법적으로 구금됐으며 오랫동안 중공 사당의 박해를 받았다.

1. 베이징에 가 평화적으로 청원했음에도 불법적으로 노동교양처분 2년을 받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은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하기 시작했다. 같은 날, 왕하이첸은 다주현 공안국 국가보안대대의 경찰 자오젠성(趙建生)과 추타오(邱濤)에게 납치됐다. 왕은 방안으로 침입한 그들에게 납치당해, 불법적으로 2박 2일 동안 구금된 뒤 제2 구치소에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왕은 귀가했지만, 국가보안대대는 그에게 대법 서적을 바치고, 수련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직접 국가보안대대에 보내겠다고 위협했다. 전 향에 있는 수백 명의 파룬궁 수련생을 향 정부의 회의실에 모아 보증서를 쓰지 않고는 떠날 수 없게 했다.

1999년 11월 중순, 왕과 그의 아내는 차례로 베이징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그들은 정부에 평화롭게 파룬궁 진상을 밝히기 위해 평화롭게 청원하려 했다. 하지만 며칠 후 왕은 납치됐다. 그 후 다주현 교육위원회 보위과 류더완, 국가보안대대 리웨쉐(李月學)에게 납치돼 현지로 돌아와 둥촨(川東) 감옥에 불법 구금됐다. 탈옥범을 처벌하는 독방에 갇혀 돌의자에 앉아 ‘반성’했는데, 매일 아침부터 저녁에 잠을 잘 때까지 계속됐다. 그리고 매일 한 끼에 7.5g을 넘지 않는 음식만 줬다.

2000년 1월, 왕은 납치돼 다주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다음날 날이 밝아지자, 무장 경찰들이 파룬궁 수련생들 목에 팻말을 걸고 두 손을 묶어 차에 밀어 올려 제3 중학교로 끌고 가, ‘체포 대회’를 열어 수련생들의 인격을 모독했다. 현 공안국장 허융청(何永成)이 체포영장을 발부한 왕을 포함한 파룬궁 수련생들을 트럭에 태워 도시 전체를 돌며 조리돌림을 했다.

중공의 인격 모욕 고문: 팻말을 걸고 조리돌림질 학대

2000년 4월, 왕은 국가보안대대의 경찰 자오젠성에게 납치돼 쓰촨성 쯔양(資陽)의 다옌(大堰) 노동교양소에서 불법 노동교양처분 2년을 받았다. 다옌 노동교양소에서 왕은 노예 노동을 당했다. 그는 목화 고르기, 밧줄 짜기, 화포 만들기, 전구 꼬기, 채소 심기, 물고기 키우기 무겁고 더러운 모든 일을 했다. 그는 또 반바지 차림으로 허리까지 깊은 수영장에서 죽은 물고기를 건졌다. 2001년 9월, 왕이 풀려나 집으로 왔을 때, 온몸이 부어 마치 눈앞의 모든 것이 먼 세상의 일처럼 보였다.

중공의 고문 설명도: 감옥의 노예 노동 박해

2. 교란, 감시, 불법 심문

왕하이첸은 노동교양소를 나온 후에도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중공 경찰은 그에 대한 불법 감시를 한 번도 완화한 적이 없었다. 그가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온 가족이 잠든 밤, 국가 보안 경찰 천구이샹( 陳貴祥), 자오젠성(趙建生), 원리(文莉), 추타오(邱濤)가 방안에 침입해 들어와 왕과 가족들을 괴롭혔다. 잠자던 온 가족은 옷을 걸치고 앉아 있어야 했고, 경찰들은 집안 곳곳을 한바탕 조사한 후 화를 내며 가버렸다.

한번은 왕이 외지로 일을 보러 나가 바이타(白塔) 공원에서 우연히 수련생을 만나 몇 마디를 나누다 국가보안 경찰 감시에 걸렸다. 다음 날 아침, 왕은 방으로 침입한 국가보안 경찰에게 납치당해 공안국으로 끌려가 불법 심문을 받았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왕은 작은 놀이동산에서 함께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은 여성 수련생을 만나 잠시 몇 마디 말을 했을 뿐인데, 두 사람은 110의 경찰차에 납치돼 공안국으로 이송됐다. 왕은 불법적인 몸수색과 심문을 받았다.

2004년 8월 22일 저녁, 왕은 막 출소한 파룬궁 수련생을 보러 갔는데, 베이청 파출소의 리충정(李從政)이 한 무리의 경찰을 거느리고 방안에 들이닥쳤고 공안국 부국장도 직접 왔다. 두 사람은 납치됐다. 왕은 1달 동안 구금돼 박해받았다. 이 기간 국가보안 경찰 천이룽(陳一龍)이 그에게 불법 심문을 했다.

장기간 왕은 늘 괴롭힘을 당했고, 집에서 그의 일상마저 감시당했다.

3. 3차례 세뇌반으로 납치돼 박해받다

2004년 8월 말, 다주현 ‘610’, 교육국, 향 정부 및 학교 조직이 왕하이첸을 다저우의 한 편벽한 ‘룽텅(龍騰) 산장’ 세뇌반으로 납치해 강제 전향 박해를 진행했다. 2005년 1월 세뇌반이 해산돼서야 그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2007년 2학기 개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왕은 다시 다저우시 다바(達巴) 길목 산비탈 위의 이른바 ‘법제 센터’에 납치돼 세뇌 박해를 당했다. 2008년 새해를 며칠 앞두고 그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2010년 11월 24일, 젊은 경찰 1명이 왕의 머리칼을 잡고, 다른 몇 명이 손과 허리를 잡아당겨 무려 20여 계단의 돌층계를 끌어내려 차 안으로 밀어 넣고, 다저우시 세뇌반으로 왕을 또다시 납치했다. 겨울 방학 때 그는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4. 7년 6개월의 부당한 징역형 선고받고, 비밀리에 자저우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받다

2019년 7월 27일, 다주현 공안국 ‘610’을 포함한 여러 명이 자물쇠 여는 기술자를 불러 개인 주택을 열고 26명의 시골 파룬궁 수련생을 납치했다. 왕하이첸과 덩밍즈(鄧明志)는 다주현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구금됐고 허다추이(何大翠), 정둥펀(鄭東芬), 뤼정민(呂正敏, 뤼청민(呂成敏))은 다저우 구치소에 불법 구금됐다.

2020년 12월 29일, 왕은 다주현 법원에서 7년 6개월 형에 5만 위안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중급 법원에 상소했으나 원심판결 유지를 선고받았다. 2021년 7월 31일 전후, 왕은 쓰촨성 자저우 감옥에 투옥돼 또다시 박해받고 있다.

박해 관련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9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9/12/43071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