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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에 대해 다시 담론

글/ 일본 대법제자

[밍후이왕] 밍후이왕에 실린 교류문장 ‘사고방식을 바꾸다’를 본 후 나도 많은 감명을 받아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우리는 조사정법의 여러 항목에 참여하거나 자기 수련 중에서 각양각색의 어려움과 모순에 직면하게 된다. 때론 일이 별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우리 자신은 모순과 어려움에 지쳐버린다. 나는 그중 많은 수련생이 노력해서 닦는 것을 보았고, 아울러 각 방면의 누락을 보완하려고 애쓰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매우 좋은 상태에 도달할 수 없었다. 그러면 문제는 어디서 나타났는가? 교란하는 요소는 반드시 많을 것인데, 나는 내가 본 일부 방면을 말해보겠다.

1. 모순은 단순히 용량을 늘리기 위해 나타난 것이 아니다

나는, 한 항목에서 의견이 통일되지 않고 서로 분쟁이 생기고 모순이 나타나면 일부 수련생에게 잘못된 인식이 있는데, 단순하게 ‘나는 마땅히 용량을 늘려야 하고 이것은 나의 참음을 닦으라고 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함께 항목을 진행할 때 서로 조율, 협조, 포용해야 하고 때론 인내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이 참고 용량을 늘린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모순이 또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참음이 한계에 달하면 소극적인 협조가 나타나고 더 엄중하면 참여하지 않거나 따로 나갈 수 있다. 더 심한 자는 속으로 상대방이 잘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이것이 바로 질투심이다.

사실 우리가 하는 항목은 모두 조사정법, 중생 구도(救度)를 위한 것이기에 항목을 잘하는 자체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모순이 나타날 때 흔히 우리 일부 방법이 부적절하거나 생각이 현실을 이탈했거나 중생 구도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지 않았다거나 습관적인 사고로 인해 주관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자아를 강조하는 등등의 요소로 인해 유발된 것이다. 수련자로서 우리는 당연히 참아야 하고 용량을 늘려야 하지만 우리는 이지적으로 모순이 발생한 자체가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기점에 서서 이 일을 고려하고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나는 일을 하거나 문제를 생각할 때, 습관적으로 일하고 습관적으로 사고할 때가 많은 것을 발견했다. 이런 습관적 사고가 법을 이탈했다면 해낸 일도 법을 이탈할 수 있고 알아차리기 어렵다. 모순이 나타나면 또 습관적으로 수련하여 계속 반복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현실 생활 중에서 양성된 관념과 좋지 못한 그러한 것들을 단번에 깨끗하게 제거하기가 어려우며, 습관적인 것들은 여전히 습관을 고쳐야 한다. 사유의 방식은 이미 이렇게 되었는데, 그럼 사유의 방식에서도 그것을 찾아 바르게 해야만, 비로소 더는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1]

나는 우리가 이런 습관적인 사유가 있는지 자신의 사유를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항목에서 협조할 때 나는 적어도 다음 4가지 사항을 주의해야 한다고 여긴다.

1) 우리가 완전히 법에 입각한 것인지, 배후에 숨어있는 집착은 없는지, 예를 들면 자신을 실증하거나 과시하는 마음 등.

2) 우리가 이지적으로 현실에 근거하여 출발했는지, 전체적으로 이 문제를 고려했는지, 우리가 현실을 이탈하여 당연한 것으로 일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에게 이지적이지 않고 비합리적이라는 느낌을 주기 쉽기에 역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한 항목에는 서로 다른 작용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전체를 생각하는 것은 각개 요소를 가능한 한 모두 생각하는 것이다. 전체를 소홀히 하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 것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3) 구체적인 방법을 이미 결정했다면 타당하지 않은 점을 보면 묵묵히 보완하자.

4) 우리가 완전히 법에 서서 법에 위반되는 점을 발견하면 호의적이고 이지적으로 수련생과 교류하고 수련생도 법을 수호하는 기점에 서서 일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정말 잘못하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지금 층차에서 인식한 것이다. 나의 인식도 제한되어 있기에 타당하지 않은 점이 있으면 수련생께서 나에게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나는 우리가 법의 기점에 서서 자신의 일사일념을 검토하는 습관을 키우길 바랄 뿐이다.

2. 자신은 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기면서 개인 수련을 소홀히 했다

대법을 실증하는 항목에서 특히 션윈(神韻), 밍후이, NTDTV, 에포크타임스 등과 같은 많은 중요한 항목을 그 중요성 때문에 우리는 이 항목 자체를 수호하려는 마음이 매우 강하다. 수련생이 서로 협력할 때 일부 모순이 생기는 것은 불가피하다. 모순을 해결할 때 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어떤 수련생은 이 항목을 수호하려는 마음이 너무 강해 모순이 나타나면 비난하고 심지어 투쟁하는 방법으로 해결한다. 아주 강한 방식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데 이 수련생의 눈에는 상대방 수련생의 행위가 법을 파괴하는 것이기에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오로지 당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든지 부닥칠 수 있는 그 어떤 시끄러움과 좋지 않은 일, 나아가 당신들이 대법(大法) 일을 위해 더없이 좋고 더없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일까지도, 나는 모두 당신들의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당신들의 마성을 폭로하여 그것을 제거하는 데 이용할 것이다.”[2]

나는 이 수련생이 법을 수호하려는 마음은 좋으나 동시에 쟁투심과 자아의 심리가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본인이 법을 수호하려는 마음만 중시하고 자신의 수련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이 또한 일종의 습관적 사고일 수 있다.

이런 항목에 참여한 수련생은 모두 법을 수호하려는 마음이 있다. 타당하지 않은 점이 있어 그에게 지적해 주면 모두 협력할 것이다. 정말로 협조하지 않으면 관련한 관리자를 찾아 해결할 수 있다. 강하게 처리하는 이런 방법은 향후 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가 확고하게 법을 수호하는 것은 격렬한 방식을 취하는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화로운 방법과 심리 상태로도 마찬가지로 확고하게 법을 수호할 수 있다.

3. 수련 중에 표현된 각종 정서와 상태

사람은 생활 속에서 많은 관념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런 관념이 아주 강하면 사람을 좌우지하여 심지어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나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관념을 담담히 내려놓고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관념은 스스로 쉽게 의식하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 여기의 한 수련생은 아주 열심히 수련하고 정진하지만 가정 난이 비교적 크다. 그녀는 이런 상태를 배제하기 위해 장시간 발정념했지만 항상 효과가 없는 것 같아 본인의 발정념하는 힘이 약하다는 착각을 조성했다. 그런데 직면한 난은 또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여 소침한 상태에 빠졌다.

밍후이왕에는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 수련생의 발정념하는 위력이 매우 크다고 쓴 이런 교류문장이 많다. 왜 이럴 수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수련하기만 하면 우리에게 매우 큰 능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발휘하지 못한 이유는 많은 관념과 습관적 사유가 우리를 방해하고 있어 우리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위에서 언급한 그 수련생은 발정념이 효과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 효과가 없다는 느낌 자체가 바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선, 효과가 있고 없고는 다른 공간에서 체현되는 것이기에 우리 사람 이쪽에 즉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우리가 효과가 없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가 발정념할 때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으로 효과를 구하는 것이다. 구세력은 당신의 이 마음을 보고 그것을 더 가중해 당신에게 더 효과가 없도록 느끼게 할 것이다. 사실 이때 구세력의 꼬임에 든 것이다. 효과가 없기에 당신은 자신의 발정념의 힘이 약하다고 여길 것이고 그럼 당신의 발정념의 힘은 정말 약해져 무의식중에 이 난을 연장해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며 소침한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것은 고리 고리로 맞물려 있다. 이 수련생도 이런 상태를 돌파하려고 애써 법 공부하여 완화된 것을 느꼈고 이어서 또 발정념했다.

이 수련생이 소침함에 따라 소침해지지 않고 애써 법 공부하여 소침에서 벗어난 이 방법이 매우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수련생이 당시 했으니 결과를 보려는 사유방식과 절망감을 보았다. 소침한 상태 자체가 바로 수련에서 제거해야 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게 된다.”[3]

우리는 법의 요구에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르게 닦고 표준에 도달하면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 속에서 수련하고 사람의 몸, 사람의 느낌이 있고 또 각양각색의 정서와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이 교란 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면 모두 정상이지만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여 이런 정서나 상태에 빠진다면 문제가 있다.

우리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기에 모든 것이 아름다워야 한다. 우리에게 모종의 정서나 상태가 나타났을 때 ‘진선인’으로 가늠하면 이런 상태가 옳은지 그른지를 알 수 있다. 옳지 않으면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내가 이것을 제거할 때 그것이 외부에서 눌려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나 여기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은 나에게 그것이 잡을 수 있는 집착심이나 바르지 않은 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서를 제거하려면 우선 자신의 집착심과 좋지 않은 생각부터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 좋지 않은 정서나 상태는 우리의 집착, 관념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분노, 슬픔, 공포, 혐오, 가책, 소침, 교만, 흥분, 자극 등 정서를 강렬하게 느꼈을 때 마땅히 제거해야 한다. 적어도 담담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면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가 작용을 일으킨 것일 수 있다. 다른 공간의 교란을 제거하고 자신의 집착을 제거한 후 자신을 바로잡아야 조사정법을 더 잘하고 중생 구도를 더 잘할 수 있다.

맺는말

우리가 수련하는 것은 우주 대법이다. 우리에게는 가장 위대한 사부님이 계신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4]

그러므로 우리가 뭘 근심할 것이 있는가? 우리 뒤에는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다. 우리가 우리 사상, 마음을 바로잡으면 누가 우리를 움직일 수 있겠는가? 반대로 우리가 부딪힌 고난에는 우리 자신에게 순수하지 않고 바르지 않은 것이 있지 않을까.

올해 션윈 프로그램 중에는 한 장군이 전쟁이 싫어 도를 닦기로 결심하고 진인(真人)을 사부로 모셨다. 이 진인은 이전에 많은 제자를 받아들였다. 이 장군은 마지막에 입문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에 진인은 그의 제자를 시험 치느라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다른 제자들은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이 장군만 따라서 뛰어내렸다. 이어서 진인이 이 장군을 데리고 승천했다. 모든 제자 중에 마지막에 입문한 이 장군만 수련 성취했다.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는 감개무량했다. 일념에 신선이고 일념에 속인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자기 사유를 검토하지 않으면 중요한 순간에 선택을 잘못하고도 몰라 기연을 잃어버리면 우리에게 끝없는 후회만 남길 수 있다.

이것은 나의 현재 층차에서의 일부 인식이므로 타당하지 않은 점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따지웬(大紀元)회의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재인식(再認識)’
[3]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법을 배우다(學法)’
[4]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8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8/7/4100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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