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1999년에 법을 얻었고 그해 17세였다. 사존께서 택하신 대법제자가 되고 뭇 신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생명이 되어 참으로 긍지를 느낀다. 동시에 자신이 잘하지 못해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지만 사실 부끄러워할 시간도 없다. 오로지 시시각각 자신이 대법제자라는 것을 명심하고,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잊지 말고 마지막 길을 잘 걸어야 한다.
수련하면서 청년 대법제자들은 어른을 모셔야 하고 어린이 수련생도 잘 이끌어야 하며 출근해 돈을 벌고 주위 친구들이 대부분 속인이기에 환경의 영향이나 명리의 유혹, 시간의 빠듯함 등 면에서 모두 노년수련생들보다 어려움이 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생활이나 직장 중에서 수동적으로 현대파의 문학, 예술, 의상 등 마성(魔性)이 아주 강한 사회의 부정확한 영향을 받고 있다. 날마다 그 사이를 넘나드는 우리 청년 대법제자에게는 언제 어디서나 모두 시험이다. 게다가 정이 표현되어 나올 때 정말 내려놓기 어렵다.
사실 나에게 있어 세간의 명리(名利)를 내려놓는 건 어렵지 않다. 유우석(劉禹錫)의 ‘누실명(陋室銘)’, 제갈량의 ‘계자서(戒子書)’에는 모두 명리를 담담히 여겨야 고요한 경지에 달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사실 일정한 경지에 도달한 속인도 명리를 담담히 볼 수 있으니 우리 대법 수련자는 더욱이 이러해야 한다. 하지만 정(情)이 표현돼 나올 때의 몽롱함은 일부 청년 수련자에게는 즉시 잘라버리기 어려운 일이다.
아래 이 정을 말해보겠다. 동서고금에 수많은 진실한 정이 인간세상에서 연출됐다. 그래서 대법제자가 정의 고비를 넘을 때 확실히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중국 고대 견우와 직녀의 사랑이야기, 전형적이고 영향력이 큰 양축(梁祝), 진나라 맹강녀(孟姜女)가 울어서 만리장성이 저절로 무너진 사실 등등이 있다. 내가 정의 고비를 넘을 때, 정에 강렬하게 집착할 때, 나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여기면서 왜 진실한 정을 포기해야 하냐고 생각했다. 사실 진실한 정도 역시 정이다. 역사상 진실한 정 역시 사람에게 연출해 보여주는 것으로 정이 있으면 사랑과 미움이 있고, 좋아함과 싫어함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 속에서 나와야 하고 정이라면 반드시 여지없이 잘라버려야 한다! 정을 제거해야 자비가 나오고 누구나 다 선하게 대할 수 있다.
정에 빠져 허덕이고 내려놓기 힘들 때 나는 사부님의 말씀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여전히 가부좌하고 있을 것이다”[1]가 생각났다. 이 수련자의 확고한 의지에서 나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 보아냈다. 이는 근본적인 문제로서 자신이 수련하려 하는지, 수련자의 표준에 따라 해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정을 제거하는 과정은 고통스러운 것으로 다시 말해 고통을 느낄 때는 분명히 닦아버리지 못한 정이 있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 정의 뿌리를 찾아내 제거하고 여기에서 해탈돼 대자재(大自在)를 수련해내야 한다.
물론 다른 공간에서 정은 살아있는 물질이다. 인간세상에서 ‘무정하다’는 말은 폄하의 뜻으로 사람들은 흔히 한 사람의 성품이 나쁜 것을 인정머리 없다고 표현한다. 내가 정을 제거할 때 이 관념도 나를 교란하면서 내가 그걸 잘라버리는 것이 ‘무정’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법속에서 우리는 정을 제거해야만 ‘자비’라는 더욱 아름다운 경지로 승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동안 수련생들이 위챗 대중플랫폼을 이용해 문학창작, 음악창작을 한 것을 보았고 내용에 대부분 ‘정’이 들어있었다. 또한 속인 노래를 듣거나 휴대폰에 노래에 관련된 앱을 다운받기도 했다. 사실 속인이 노래하는 것이 바로 이 ‘정’이다. 속인 노래는 정으로 가득 찼을 뿐만 아니라 안에 업력도 들어있다. 게다가 속인 노래 가사를 쓰고 작곡한 사람들이 대법에 대해 태도가 어떠한지 이런 것들은 엄숙한 문제가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우리 연공인(煉功人)은 신체 정화(淨化)를 중시하지 않는가? 끊임없이 신체를 정화하고 끊임없이 고층차로 발전한다. 그렇지만 당신은 아직도 신체 속으로 집어넣으니, 당신은 우리와 정반대가 아닌가? 그 외에 그것은 역시 강렬한 욕망이다.”[2]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취미가 있는 수련자들은 주의하기 바란다.
최근 생명이 겪은 윤회의 고통, 현세의 책임과 사명감에 대해 느끼는바가 많다. 철이 들어서부터 나는 말 못할 슬픔에 젖어있었다. 보통 어린 시절을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이 없다’고 형용하지만 나는 늘 이유 없이 눈물을 흘렸다. 며칠 전, 한 수련자에게 이런 느낌을 얘기하자 그는 “당신 이 생명은 역사상 파란만장한 삶을 산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참 가슴에 다가왔다. 어찌 나 뿐이고 어찌 대법제자 뿐이겠는가. 세인들 모두가 이러한 파란만장한 세월 속에서, 고생 속에서 윤회 환생하면서 오늘날 대법이 널리 전해져 구도되기를 기다리지 않았는가?!
역사 상 윤회 환생하며 내가 어떠한 일을 겪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유 없이 흐르는 눈물은 나에게 답을 알려주는 것 같다. 금생에 살아온 30여 년의 갖가지 지난 일을 되돌아보면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가? 바로 그 무더운 여름 언니와 함께 매일 나가 진상 전화를 걸고 직접 삼퇴(중국 공산당, 공산주의 청년단, 소년선봉대에서 탈퇴)를 권했던 여름방학 때가 가장 행복했다. 몇 년 전에 아이가 어려 홀로 어린 아이를 업고 광장에 가서 진상전화를 걸 때, 직접 삼퇴를 권할 때가 가장 행복했다! 지금까지 내 눈에 그 광장은 평범하지 않은 스토리를 담고 있고 색다른 생기가 있는 곳이다. 추운 겨울, 나 홀로 뜨거운 물주머니를 안고 차디찬 차 안에서 전화를 걸어 직접 삼퇴를 권하고 중생을 구도할 때, 삼퇴 명단을 볼 때 가장 행복했다. 이러한 행복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복으로서 마치 말라붙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샘물이 졸졸 흘러나와 생명을 적시는 것 같았다. 언제 가장 행복한가? 바로 중생을 구도할 때 나 이 생명이 가장 위대했고, 가장 의의와 행복을 느꼈다.
최근 한 동안 늘 한 마디 말이 귀에 맴돌았다. 그건 1999년 광저우에서 열린 특수 기자회견 동영상에 나온 말이다. “오직 정법과 연결되어야만 생명에 의의가 있습니다.” 나도 늘 자신에게 일깨워준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오직 정법과 연결되어야만 비로소 생명에 의의가 있다.”
제자는 머리를 조아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대폭로’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18년 4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8/4/9/36387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