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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말함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수련생이 어려움에 처하면 다른 수련생은 사심 없이 도움을 준다. 이것은 수련인의 특유한 순진(純眞)이고 속인의 우정과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는 속인 중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부득이 속인사회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또 천백 년 형성된 관념과 사람 마음이 교란하기에 흔히 이런 ‘도움’이 순진하지 않게 변하며 때로 그 정반대가 된다.

한 수련생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남쪽 해안 도시에 왔다. 현지 수련생은 손을 내밀어 그를 도와줬다. 어떤 사람은 그녀를 위해 거처를 해결해 주고 어떤 사람은 식품과 생활용품을 가져다주고, 어떤 사람은 옷을 가져다주고, 어떤 사람은 돈을 가져다줬다. 처음에 그 수련생은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시간이 길어지자 습관이 됐다. ‘수련’에 영향을 준다며 일자리도 찾지 않고 여러 사람의 공양에만 의지했다. 마지막에 공개적으로 수련생에게 요구하고 주지 않으면 잔소리까지 하게 됐다. 다른 수련생들은 분명히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하기가 곤란했다. 이것은 그녀를 도와주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를 해치는 것인가?

개별 수련생은 어려움에 부딪히면 수련생에게 돈을 빌리고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른 수련생도 누구도 말하기 곤란해 물어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돈을 빌려 아내에게 주식 투자를 하게하며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려 한다. 이런 사람은 극히 적지만 영향은 극히 나쁘며 대법에 먹칠한다.

물질이익은 사람의 욕망과 집착심을 가장 쉽게 불러일으킨다.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면서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지 않고 작은 일을 막지 않으면 물질 유혹에 쉽게 빠져들며 자신을 망쳐버린다. 이런 유혹은 흔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발생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갑은 계란을 먹기 싫어한다. 매번 직장에서 계란을 주면 을에게 준다. 처음에 을은 감사해했지만 오래 지나자 습관이 됐다. 습관이 되면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하루 갑은 계란을 병에게 줬다. 을은 알고 불쾌해했다. 을은 본래 계란은 갑의 것인지를 잊었다. 갑이 누구에게 주든 문제가 없다. 그들은 이 일로 대판 싸웠으며 이후 절교했다.

어떤 수련생은 속인 중의 인정 왕래에 열중하는데 거절되면 상대방에게 인정을 봐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속인 상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도움은 사람의 이기심, 의존심, 안일심을 조장한다.

수련인은 마땅히 물질이익의 도움에 중시하지 말아야 하며 법리와 심성제고에서 교류하고 도와줘야 한다. 이런 도움은 흔히 속인의 관념과 습관과 반대며 심지어 고통스럽다. 만약 마음이 바르지 않고 자신을 연공인으로 보지 못하면 이런 도움에 원망이 생길 수도 있다. 한 수련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A수련생이 교통사고로 집에서 쉬고 있었다. B수련생은 먼 곳에서 차를 타고 그녀를 보러가 법에서 교류했다. 밥을 먹으려 할 때 B수련생은 말했다. “당신 집에서 밥을 먹으려 해요.” A수련생은 “좋아요, 냉장고에 무엇이든 다 있어요.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해요.” B수련생은 웃으며 말했다. “멀리에서 왔는데 제가 하라고요?” 이때 A의 이웃 C수련생이 B에게 좀 불만을 품고 말했다. “멀리에서 온 사람은 손님이지. 내가 할게요.” 이때 A수련생은 크게 깨달으며 “제가 할게요, 제가 할게요!” 오성이 나오자 그녀의 상처는 빨리 나아졌다. B와 C는 모두 A를 도와주었는데 하나는 법에서 도와주고 하나는 인정에서 도움을 준 것이다. 만약 A가 법에서 깨닫지 못하면 B를 인정에 맞지 않다고 원망할 것이다.

사실 수련인이 만나는 모든 관과 난은 모두 우연한 것이 없다. 생활 속에서의 괴로움, 신체상 불편, 정신적 고통, 모두 수련의 길에서 관을 넘기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사람은 자신의 업력은 자기가 갚아야 하며, 누구도 감히 이 이치를 파괴하지 못한다.”[1]라고 하셨다. 사부님은 또 말씀하셨다. “오직 당신이 心性(씬씽)을 제고하기만 하면 곧 넘을 수 있다.”[1] 사람은 모두 안일함, 편안함, 순조로움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관과 마난을 넘을 때 늘 고통을 감소시키려 하고 다른 사람이 도와주기를 바라고 비켜가기를, 혹은 피하기를 바란다. 관을 피해가면 소업하지 못했고 심성이 제고되지 못했는데 어떻게 자신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가? 적지 않는 사람은 평소 고생하기 싫어하고 누리려 하기에 업력이 갈수록 쌓여 구세력에게 빈틈을 보여 생명을 빼앗기지 않았는가?

사부님께서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1]라고 말씀하셨다.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은 끊임없이 고생을 해야 하고 끊임없이 소업해야 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깨끗이 씻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관을 넘을 때 난을 넘을 때 우선 사람의 관념을 바꿔야 하며 법에서 이 일은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심성이 제고되면 관과 난은 모두 넘을 수 있다.

그러므로 수련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자신만이 비로소 진정으로 자신을 도울 수 있다.

주)[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문장발표: 2015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마당>정법수련마당>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22/30982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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