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우리는 언제 진짜 신으로 변할 수 있나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7월 15일] 7월 12일자 명혜망의 각지소식란 혹은 교류문장에서 “스자좡에서 ‘등록’이 된 동수들은 신속히 모든 물품을 옮기시오(컴퓨터 포함)”라는 단문을 볼 수 있다. 이 단문을 보고 마음은 무거웠다. 아래에서 개인의 관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법에 부합되지 않은 곳이 있다면 동수들께서 지적해주시기 바란다.

수련중에서 문제에 봉착하면 사람의 일면으로 인식하고 사람의 방법으로 해결하겠는가 아니면 신의 일면으로 인식하고 신의 정념으로 해결하겠는가 하는 이것은 사람과 신을 구별하는 관건적인 시각 차이이다. 현재 사악이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동수들은 소식을 접하고 도피를 하며 사람이 사람을 박해한다는 관념으로 보고 있다. 사람의 방법으로 잠시 안전은 구할 수는 있다. 두려운 마음에 부합하여 본인 사람 마음은 법중에서 구실을 찾는다. 그리하여 말하기를, “어디 까지 깨달았으면 어디까지 한다.”라고 한다. 만약 ‘7.20’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법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어디까지 깨달았으면 어디까지 한다”라고 하였다면 그래도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박해 이후 9년이 넘었다. 사부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설법 중에서 명명백백하게 말씀하셨다. “사악 앞에서 금강부동하라. 발정념으로 제거하라.” 사부님은 이렇게 명백히 말씀하셨는데, 아직도 깨닫지 못한 문제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아직 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부님의 말씀에 따라 하지 않고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닌가?

수련은 제고를 위한 것이다. 만약 매개 관건적인 시각에 우리가 두려운 마음에 순종하거나, 아니면 “두려운 마음이 나왔기에 바로 수련하여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라고 인식하거나 아니면 “사악이 움직이면 폭로할 시기이다. 바로 우리가 사악을 제거하는 좋은 시기이다.”라는 이런 인식이라면 우리는 수련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도대체 진수를 했는가?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기회를 자신에게 줄 수 있는가? 모두 정법의 시간이 최후라는 것을 알고 있다. 현재 우리가 잘하지 못한다면 이후에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있겠는가? 우리가 지금 정념을 견정히 하지 않는다면 어느때에 가서 정념을 견정하게 하겠는가? 우리는 현재 신의 사유로 가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까지 가서 철저하게 사람의 이치를 내려놓을 것인가? 사람의 껍질은 언제 벗어버릴 것인가?

어떤 동수들은 두려운 마음에 부합하는 것을 말하기를, “속인상태에 부합해야 한다.”라고 한다. 사실 “속인의 마음에 부합한다”면 그래도 괜찮다. “속인의 상태에 부합해야 한다.”는 이것은 맞지 않다. 왕조균(汪兆均)은 실명으로 세 번이나 후진타오(胡锦涛)와 원자바오(温家宝)에게 공개서한을 보냈다. 공개적으로 인터넷에 파룬궁 박해를 중지하라고 했다. 그것은 속인의 상태가 아닌가? 궁챵(孔强)은 또 실명으로 인터넷에서 공개하여, 장쩌민(江泽民)의 죄행을 폭로하고 즉각 장쩌민(江泽民)을 체포할 것을 요청했다. 그것은 속인상태가 아닌가? 역사상에서 얼마나 많은 인의지사들이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민족의 정의를 위해 선뜻 나섰는가? 웨이정은 두려움을 마다하고 용안에게 직언상소했으며 해루이(海瑞)는 인민을 위해 관직을 버렸다. 그것은 속인상태가 아니란 말인가? 우리 대법제자는 헌법이 부여한 신념 자유의 권리를 고수하여 헌법을 위반한 사악한 정권의 박해를 제지해야 한다. 이것은 속인상태가 아닌가? 설마 사악의 정권 박해하에 가혹한 여생을 보내야 하는가? 허리굽혀 안전을 찾고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숨어서 다니는 것이 속인상태에 부합되는 것인가?

대법은 높은데서 부터 아래로 연관된 것이다. 신은 사악한 마의 압력하에 우주의 대법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세상의 좋은 사람도 사악한 정권의 압력하에서 양심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가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만약 정말 납치되었다고 하자. 공안국 파출소 간수소에 가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수제자로서 발정념을 해야 하지 않는가? 세 가지 일을 더 잘해야 하지 않은가? 집에서나 사악의 소굴에서나 안전하거나 박해를 받거나 우리는 모두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왜 마음을 철저히 내려놓지 못하는가. “박해를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지 않은가? 사악은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 그것은 우리더러 그들의 사악한 안배를 승인하라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기회를 타 실행하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반드시 금강부동해야 한다. 반드시 사부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한가닥 숨이 붙어있는 한 “진, 선, 인은 좋다. 파룬따파는 좋다”를 외쳐야 한다. 진정으로 이런 일념이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많은 고려와 그렇게 오불꼬불한 두려운 마음을 감춰서 무엇을 하겠는가? 철저히 내려 놓자. 대법의 요구대로 하면 얼마나 가벼운가!

사실, 박해가 있거나 말거나 근본적으로 우리가 고려하는 범위내에 있지 않다. 우리가 응당 고려할 것은 어떻게 사악을 청리하는가에 있다. 어떻게 더욱 많은 중생을 구도하는가에 있다. 사악이 우리에게 어떤 장애를 설치했던지 막론하고 어떤 가상을 연화해 내든지 우리는 세 가지 일만 잘하여 더욱 많은 사람을 구도해야 한다. 마음속에 티끝만치의 자신에 대한 근심이 없고 자신의 친인,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근심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무사무아한 정각이(正觉) 아닌가? 사악이 박해를 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그것은 바로 진군령을 들은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정신 차리고 발정념을 많이 하며 대법의 신통으로 사악을 제거해야 한다. 만약 스자좡 천백 명의 대법제자들이 모두 이런 상태라면 사악은 무엇을 감히 할 수 있겠는가? 일찍이 우리에게 청리당했을 것이 아닌가? 가석하게 우리 많은 대법제자들은 마음이 움직였으며, 물품을 숨기고 집을 떠나 도피하였다. 다른 공간에서 볼때 사악이 진을 짜고 우리에게 덮칠때 우리 대법제자의 진영은 동쪽으로 피하고 서쪽으로 숨었는데, 흐트러진 모래가 아니었는가? 창피하지 않은가? 우리는 무슨 면목으로 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대법제자는 그런 “머리가 떨어져도 몸은 여전히 가부좌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정진요지》 )

동수들이여,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도대체 진정으로 사부님의 법을 믿는가? 도대체 진수를 했는가? 우리는 언제 진짜 신으로 변하겠는가?

문장발표 : 2008년 7월 15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원문위치 : http://search.minghui.org/mh/articles/2008/7/15/18208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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