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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교양소의 약물박해 추정되는 구이저우 여성, 10년간 고통에 시달리다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구이저우 보도) 2014년 9월 18일 오후 4시 반, 날씨는 맑았지만 불행하게도 장쥔(張俊)이 병고 속에서 10년간 몸부림친 후 영원히 인간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그녀는 향년 42세였다. 시신의 입술과 귀는 검었고 손가락도 검은 빛을 띠었다.

张俊
장쥔(張俊)

장쥔은 현지 상급 정부에 진상편지를 보내 대법이 박해당한 진상을 알렸다가 2000년 12월 25일 납치돼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구이저우(貴州)성 여자 노동교양소에서 3년간 박해 당했는데, 2004년 노동교양소에서 출소할 때 온몸이 무기력했다. 그녀는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미증상이 나타났고,이때부터 정신과 눈빛이 흐리멍덩해 말을 하지 못하고 손발이 영활하지 못했다. 또 그녀 머릿속에는 이미 소굴에서 당한 지워버릴 수 없는 낙인이 깊이 박혀 있었다.가끔 정신이 들었을 때감옥에서 어떠한 박해를 당했는지 물으면, 그녀는 매우 격동하며 손짓으로 8명이 그녀를 구타하고 잡아끌고폭행하는 동작을 했다. 당시 노동교양소에서 그녀를 박해한 대장은 구싱잉(顧興英)이라고 불렀는데 매우 사악하고 잔인했다.

당시 겨우 30여세였던 장쥔은 노동교양소에서 약물 박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1. 대법의 은혜를 입다

장쥔은 1972년 출생했고 쓰촨성 슈산(秀山)현 사람이며 키는 150cm도 되지 않는다. 기억 속에 그녀는 영리하고 아름다우며 부지런하고 깨끗하며 또 표정이 유쾌해 그녀와 함께 있으면 늘 해맑은 웃음소리, 또 파룬궁 진선인(眞ㆍ善ㆍ忍)에 대한 반석처럼 확고한 바른 믿음과 대법 중에서 이로움을 얻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체질이 약하고 잔병이 많아 선천성 심장병, 간염 등을 앓았는데 몇 차례나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건강 때문에 어릴 때부터 성격이 괴팍해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기어려웠고 마음이 좁았다. 1996년에 그녀는 광저우(廣州)로 일하러 가서 보모 일을 했다. 기쁘게도 이 집 사람이 파룬궁을 수련해 그녀도 파룬궁 속의 한 수련생이 됐다. 이때부터 그녀의 건강과 성격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다. 그녀는 낙관적이고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도와주었으며 명랑하고 대범했으며 몸이 가볍고 건강했는데 시종 그녀는빛나는 소녀처럼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


박해 전의 장쥔


박해 전의 장쥔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대법의 은혜를 입게 하기 위해 늘 대법 서적을 큰 가방에 담아 메고 고향 쓰촨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 번도 고생스러운 줄 몰랐고 또 유쾌하고 행복했을 뿐이다……

1999년, 그녀는 구이저우 카리(凱裏)로 가서 언니와 함께 있으면서 일을 했다. 당시 월급은 겨우 90위안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매일 두 가지 일을 했다. 낮이면 카이리 둥팡(東方) 훙옌즈탕(紅胭脂堂)에서 직원으로 일했고 저녁에는 PC방에서 일했는데 거처로 돌아오면 목욕하고 자신의 환경을 정리한 뒤새벽 3시에야 잠을 잤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연공하고 법공부를 하고는 9시에 또 출근했는데 매일 이러했다.그래도 그녀는 늘 유쾌하고 매우 행복했다.

2. 중국공산당의 박해로 멍해지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이 소인배의 질투심으로 인해 손에 있는 권력을 이용해 파룬궁에 대한 참혹하기 그지없는 박해를 발동하자 장쥔의 평정한 생활도 깨졌다.

临终前的张俊
임종 전의 장쥔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기 위해, 장쩌민 악의 무리가 파룬궁 및 파룬궁 사부님에 대한 모독과 비난을막기위해, 파룬궁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회복하기 위해 그녀는 직업을 그만두고 수공업 일을 집에 가져다가 했다. 한 방면으로는 자신의 생활을 보장하는 동시에 또 더욱 많은 시간으로 파룬궁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그녀는 파룬궁 진상자료를 붙이고 정부 부서에 진상편지를 부친 이유로 시 공안국에 붙잡혀 필적을 조사 받고 지문을 검사 받았다. 이로 인해 불행하게 2000년 12월 25일에 셋집에서 중국공산당일행에 납치됐고 아울러 2001년 5월에 구이저우성 여자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당했다. 2004년 1월 21일에야 카이리시 공안국에 의해 언니 집으로 보내졌다. (언니도 당시 구이저우성 여자노동교양소에서 박해 당하고 있었기에 잠시 형부가 그녀를 맡을 수밖에 없었음)

그녀는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이 확고하고 노동교양소에서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출소 후 카이리시 시먼(西門) 가도(주민센터) 및 량쯔강(樑子巷) 지역 사회에서는 그녀를 이른바 ‘교육 대상’으로 삼아 늘 집으로 찾아가 괴롭히며 세뇌 전향을 진행했다(이른바 ‘전향’은 진선인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일임). 그리고 최저생활보장비로 그녀에게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는다는 보증서를 쓰게 하려 했으나 그녀는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정신적 압박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2개월 후 그녀는 갑자기 감기 증상이 나타났고 이어서 혼미해져 깨어나지 못했다. 이후부터 그녀는 정신이 흐리멍덩해지고 눈빛이 멍해졌으며 말을 하지 못하고 손발이 영활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병이 도지기 전에 온몸에 기운이 없고 뼈들이 해체되는 것 같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장쥔의 이런 증세에 따르면 출소 전 노동교양소에서 약물박해를 당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의 유일한 가족인 언니도 박해를 당해 집에는 연로하고 잔병이 많은 형부만 있어 그녀를 돌봐주지 못했다.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100% 전향’, ‘절대 한 사람도 놓치지 않는다’는 식의 소멸 정책 하에, 뤄간(羅幹)과 저우융캉(周永康)은 전국 정법(政法)계통에 대해 ‘필요시 약물을 개입시켜 의료 방식과 임상실험형식으로 과학적으로 전향시키는 목적을 이룬다’는 지령을 하달했다. 결국 이들은 무고한 파룬궁수련생에 대한 살인권을 직접 각급 ‘610’, 국가보안, 공안, 감옥, 노동교양소, 세뇌반과 정신병원의 악도에게 넘긴 것이다.

3. 10년 동안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다

이후 장쥔은 10년 동안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인생을 시작했다. 언니가 여전히 노동교양소에서 박해 당하고 있고 형부가 그녀를 보살펴 줄 수 없었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쓰촨의 오빠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2005년에 언니가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후에야 언니가 다시 데려갔다.

그녀는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었다. 걸을 때 사지로 지탱했는데 흔들거리고 휘청거렸으며 또 비틀거렸다. 그녀는 정신이 명석하지 못하고 말을 할 수 없었으며 또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때문에 그녀는 매일 신음소리를 내고 끙끙거렸으며 심지어 날카롭게 소리치고 또 놀라서 고함을 쳤다. 어떤 때는 또 크게 소리쳤다. 매일 침대에서 기어 일어났다가는 잠을 잤고 또 화장실에 가는 등 어느 한 시각도 평온하지 못했다. 어떤 때는 또 실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았고 대소변은 늘 옷과 바지에 누었다. 매일 이러했고 밤마다 이러했다.

어떤 때 안정이 됐을 때면 온힘을 다해 매우 격동하며 손짓으로 자신이 여자노동교양소에서 당한 박해를 알려주었다. 그중에서 그녀가 어떤 때 여성 죄수 8명에게 구타당하고 잡아끌리고 걷어 채였음을 알았다. 그녀가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로 그녀는 줄곧 여자노동교양소 신인대 1반 감방 안에 감금됐다. 신인대 1반은 소굴에서 확고한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중점 장소로, 안에는 확고하게 수련하는 파룬궁수련생 8명을 불법 감금하고 있었는데 감방 안에는 2개의 감시기가 있었다. 그녀들은 화장실에 가도 소변 패찰을 가져가야 했다. 처벌 받는 것을 제외하고 그녀들은 그곳에서 한 걸음도 나설 수 없었다. 어떤 파룬궁수련생은 이전에 장쥔이 새벽 2시까지 세워두기 고문을 당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여성 노동교양소를 미화하는 별명으로 ‘작은 소나무 재배(栽小松樹)’라고 불렀는데 낮에는 ‘해바라기’라고 불렀다……

구이저우 여자노동교양소에서는 예전에 확고한 파룬궁수련생의 밥에 약물을 투입한 적이 있었다. 장쥔이 이 같은 박해를 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곳에서 사정을 아는 인사가 내막을 폭로해 장쥔이 억울함을 벗도록 해주기 바란다.

장쥔은 예전에 불행하게 생활했고 병고의 시달림을 크게 당했다. 그러나 운 좋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심신에 큰 변화가 발생했다. 그녀는 매우 강인하고 선량했으며 더욱 아름다운 삶을 위해 고달픔을 참고 힘든 일을 견디면서 추위와 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일 두 가지 근무를 했다. 월급은 적었으나 그녀는 웃으면서 생활했으며 절대 부당하고 탐욕스럽게 재물을 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그녀의 건강을 훼멸했고 누가 그녀의 청춘을 빼앗아갔으며 또 누가 그녀의 행복을 깨뜨렸는가? 바로 중국공산당 장쩌민 사악 집단의 박해로 조성된 것이다!

이번 박해는 얼마나 많은 억울한 영혼을 조성했고 얼마나 많은 인간세상의 비극을 조성했는가. 희망하건대 선량한 사람들이 양심과 이지로 시비를 똑똑히 가려 장쥔을 박해한 죄악의 근원을 찾아내는 동시에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이번 장시간 지속된 박해를 중단하길 바란다.

문장발표: 2014년 10월 2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4/10/26/29944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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