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 수련은 30년이란 세월을 거쳐왔고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설법에서 하신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는 말씀을 깊이 체득했습니다. 제가 겪은 시련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든 모두 사람의 집착심을 없애기 위해 안배된 것입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고난은 이미 담담해졌고 힘들었던 세월도 관념의 딱딱한 껍질을 갈아 내는 것이었던 듯합니다. 수련은 제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마음을 법 속에 두며 법 속에 녹아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수련생을 꼭 만난다’는 정념이 흔들리지 않다
20년 전, 그 시절은 피비린내 나는 나날이었습니다. 수련생이 납치돼 마싼자 여자 노동수용소에 갇혔고 저희 마음은 모두 무거웠습니다. 외지의 수련생 두 명이 저희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수동적이어서는 안 되며 수련생을 응원하고 도와야 합니다. 저희에게는 잘못이 없고 법을 어긴 것은 경찰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저희는 박해받는 수련생의 가족(수련하지 않는 사람)과 교류했고 마침내 함께 박해받는 수련생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이때 수련생은 사악한 검은 소굴 안에서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고 있었고 상황이 긴박했습니다.
이른 아침, 가족 3명과 파룬궁수련생 3명이 승합차를 빌려 곧장 마싼자 노동수용소로 달려갔습니다. 당시 저희는 다소 긴장했지만 모두 묵묵히 정념을 발했고 몇 시간 거리지만 금방 도착한 것 같았습니다. 차를 대문 밖에 세우고 저희 일행은 면회를 맡은 곳으로 갔습니다. 면회 담당 경찰은 만날 수 없다고 했지만 저희는 만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했고 가족들의 태도도 아주 확고했습니다. 박해받는 수련생의 90세 가까운 시아버지도 오셨는데 경찰에게 며느리가 그립다고 호소하며 자신에게 매우 효도하는 며느리를 반드시 만나겠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마음이 담담했고 속으로 정념을 발해 사악한 안배를 해체했으며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저희를 도와주셔서 경찰의 횡포가 많이 줄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행정 업무를 맡은 듯한 경찰이 와서 대신 상부에 보고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와 다른 수련생은 박해받는 수련생의 언니와 함께 이 경찰을 따라 다른 쪽 사무 건물로 갔는데 관련 책임자를 찾으러 가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1층 빈방에 남아 기다렸고 그들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서서 합장하지 않은 채 창밖의 노동수용소 건물을 바라보며 정념을 발해 사악한 요소를 해체했습니다. 순간 강한 에너지가 저를 감싸는 것을 느꼈고 저는 마치 고정된 듯했으며 생각 속에는 어떤 잡념도 없이 오직 다른 공간의 악을 없앴습니다. 이는 사부님의 끝없는 법력이 제자를 도우신 것입니다.
이후 저희는 박해받는 수련생의 언니와 면회 담당 사무실로 돌아갔습니다. 일이 전환점을 맞았고 얼마 뒤 면회실 문이 열리더니 남자 경찰 한 명이 흉악한 눈빛으로 나왔고, 이어 어수선하게 경찰 7~8명이 뛰어나와 면회실 한쪽에 서서 저희를 노려봤는데 무슨 위세를 부리려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수련생을 면회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수련생 두 명은 면회실 밖에 남았고 저희 일행 4명은 안쪽 면회실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면회실은 긴 의자 두 줄이 마주 보고 가운데 작은 탁자가 있는 구조였습니다. 수련생이 다른 쪽 통로에서 천천히 걸어왔는데 조금 허약해 보였습니다. 남편(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수련생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말했습니다. “무서워하지 마. 나도 법률을 알게 됐어. 누가 당신을 괴롭히면 고발할 수 있어.” 이 외침은 아주 우렁찼고 듣기에 힘이 났습니다. 저희는 긴 의자 한쪽에 앉았습니다. 처음에 여경 팀장이 저희 옆에서 살펴보다가 잠시 뒤 떠났습니다. 저희가 수련생을 격려하면서 안의 사정도 어느 정도 알게 됐고 면회 과정은 아주 순조로웠습니다.
사악한 박해가 가득한 그 마굴에서 경찰은 갇힌 수련생을 고립시켜 박해하려 했지만 저희 모두에게는 경찰의 말을 부정하고 오직 수련생을 만나겠다는 생각뿐이어서 결과적으로 정말 이뤄졌습니다. 전 과정에서 마음이 순수했고 내내 사부님께서 저희의 정념을 도와주셔서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경찰은 처음에 허세를 부렸지만 나중에는 모두 흩어졌습니다. 이전에 노동수용소에서 승합 경찰차 두 대를 가져와 면회실 밖에 세워 두었는데 저희를 언제든 태워 가려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 저희가 면회를 마치고 밖으로 나갈 때 차량이 모두 떠나 있었습니다.
이 수련생은 노동수용소 안에서 1년 넘게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며 옥수수죽을 강제로 먹이는 고초를 당했습니다. 굳건한 마음은 줄곧 변하지 않았고 마침내 사악한 박해를 해체해 1년 일찍 집에 돌아왔습니다.
경찰의 ‘노동수용 한 명 보내면 1000위안 받는 장사’가 물거품이 되다
이것도 여러 해 전의 일입니다. 그때 제 수련에 문제가 생겨 현지 경찰이 저를 납치하고 가택수색을 했는데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상부에서 임무를 내려 파룬궁수련생 한 명의 노동수용(강제노동) 할당이 필요했고 저를 골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구류소에서 협조하지 않고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해(당시 수련 상태였습니다) 11일 만에 무사히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경찰이 우리집에서 직접 저를 노동수용소로 보내려고 꾀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경찰이 우리집을 포위하러 왔고 저는 아슬아슬하게 집을 빠져나왔는데 과정이 꽤 위험했습니다. 집을 뛰쳐나오자 마침 삼륜 택시를 모는 이웃이 지나가서 그의 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밖에서 경찰은 건물 동쪽에 있었고 저와 40미터도 안 떨어져 있었지만 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아내가 말하기를 경찰은 오후 2시 넘게까지 포위하다가 집 안을 한 바퀴 뒤졌지만 얻은 것이 없어 흩어졌다고 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속에 저는 무사히 떠났습니다. 얼마 안 돼 또렷한 꿈을 꿨습니다. 제가 사악한 자들에게 갇혀 검은 방에 있었고 분위기가 조금 무서웠습니다. 고개를 들어 창문을 보고 재빨리 기어올라 몸을 날려 뛰어내리자 넓고 부드러운 손이 저를 안정적으로 받쳐 줬습니다. 저는 허공 손 한가운데 서 있었고 손이 저를 받쳐 앞으로 움직이는데 이때 더없이 신성한 느낌이 온몸에 밀려들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의 손임을 알았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한 고비를 해소해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제대로 닦지 않는다면 정말 사부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얼마 뒤 저는 다시 집에 돌아와 야간 근무가 가능한 공장에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꿈에서 사부님께서 쌀 속에 검은 바구미가 있다고 일깨워 주셨습니다. 저는 제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깨달았습니다. 그 사이 이 공장 근처에서 형사 사건이 터졌고 현지 파출소가 공장에 와서 조사하다가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또다시 구류소로 보내졌고 3일째 되는 날 마싼자 노동수용소에 보내졌습니다.
가는 길에 마음속으로 내키지 않았고 저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가야 하며 노동수용소는 제가 머물 곳이 아니라고 느꼈지만 앞에 무엇이 있든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노동수용소의 신체검사 장소로 끌려갔습니다. 심전도 검사를 할 때 저는 옆에 있는 경찰에게 큰 소리로 진상을 알렸고 몸에서 에너지가 쏴아 하고 흐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심장이 기준에 맞지 않아 노동수용소가 받지 않았습니다. 원래 경찰은 노동수용 한 명을 보내면 1000위안을 받는데 이번에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보낼 곳이 없어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제 마음도 만감이 교차했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제자를 구해주신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묵묵히 생각했습니다. ‘더 내려놓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 이번 생은 오직 사부님을 따라 정법하는 이 한 가지 중요한 일을 위해 왔을 뿐인데.’ 현지 경찰은 가족에게 연락해 5000위안을 내고 사람을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아내는 듣지 않았고 한 푼도 주지 않았으며 결국 공안국에 가서 저를 데려왔습니다.
시련이 지난 뒤 제 수련을 돌아보니 자신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하고 남을 생각하지 못하며 선한 마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점은 특히 가정에서 드러났고 깊이 은폐된 색욕심도 있었습니다. 이것들이 모두 제가 바로잡아야 할 부분입니다. 세상의 사악한 박해는 저희가 감당해야 할 것이 아니지만 마음속 집착을 닦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사악한 요소가 박해하는 데 필요한 물질장입니다. 그 바르지 않은 사람 마음을 찾아 없애고 저에게 속하지 않은 이런 것들이 제 공간에 남지 않게 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엄숙한 수련 과정입니다.
인테리어 과정 중 많은 관념과 집착을 발견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한번은 우리집 아파트에서 외벽 단열 공사를 할 때 인부가 우리집 베란다 유리 가장자리를 건드려 작은 금이 갔는데 저희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 금이 유리 전체를 관통할 것처럼 커졌고 이 베란다는 20여 년 전 건물을 지을 때의 알루미늄 합금 단층 유리여서 겨울에 매우 추웠기에 베란다 창을 바꿔야 했습니다. 아내가 이왕이면 방도 인테리어를 하자고 했는데 그동안 사는 곳이 좀 초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지만 거절할 마땅한 이유가 없어 비용을 낮추자고만 했습니다. 저희는 넉넉하지 않았고 시간도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인테리어는 제 안의 아주 많고 완고한 집착과 관념을 발견하게 했고 사부님께서 이 일을 이용해 제가 평소 알아차리기 어려운 자아에 대한 집착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주방에는 걸이 장이 하나 있었는데 비교적 높았습니다. 직접 조립해 벽에 거는 방식이라 돈이 덜 들었습니다. 처음에 저희는 어떻게 둘지 의논했고 저는 강조했습니다. “(걸이 장을) 벽에 달고 나면 위치를 다시 바꿀 수 없어. 안 그러면 벽에 구멍을 다시 뚫어야 해.” 아내는 “이렇게 달아도 돼요”라고 했습니다. 조금 힘들었지만 저희는 순조롭게 걸이 장을 벽에 달았습니다. 이어 걸이 장에 문짝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문짝을 달려고 했는데 아내가 저를 멈추게 했습니다. 문이 있는 걸이 장과 문 없는 개방형 아래 장을 맞바꾸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몹시 난처해 말했습니다. “제조사가 이렇게 설계했잖아. 미리 말하지 그랬어? 이제 바꿀 수 없어.” 그래서 저희 둘은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화를 내며 자리를 떴고 아내는 직접 걸이 장을 내리려 했습니다.
저는 주방을 나와서도 마음속으로 화가 났는데 문득 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라레빠 부처님은 집을 몇 번이나 다 지었다가 허물고 다시 지으셨는데도 원망이 없으셨다.’ 저는 갑자기 제가 틀렸고 자아를 고집하는 것이 집착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몸을 돌려 주방으로 돌아가 걸이 장을 내리고 벽에 구멍을 다시 뚫어 위아래를 맞바꿔 아래 장을 위 장으로 만들었고 저희는 함께 달았습니다.
수련인으로서 저는 제 분노가 후천적 관념을 지키려는 것이며 상대가 이치에 맞지 않고 저 자신이 옳다고 여긴 것임을 압니다. 이것이 가정 안에서 드러날 때는 수련생 사이의 환경보다 거리낌이 더 없었습니다. 저는 관념을 바꿔야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관념은 한 번에 내려놓을 수 없으며 이어진 두 가지 일이 제게 더 큰 체험을 줬습니다.
집 현관 나무문은 바닥에 타일을 깔려고 잠시 떼어 놓았는데 바닥 공사가 끝나고 문을 달려고 하니 문이 사라졌습니다. 아내에게 물으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문이 걸리적거리고 공간이 좁아 보이고 평소에 당신이 닫지도 않아서 남에게 줬어요.” 저는 반박하기 시작했지만 몇 마디 하다가 마음가짐이 변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쟁투심과 불만이 저를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멈추고 한쪽으로 가서 냉정을 찾았습니다.
곧바로 이튿날 저는 아내가 새로 단 창문의 여닫이 부분에 페인트칠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몹시 놀랐습니다! 이 새 창문은 단열 알루미늄 소재로 바깥 색은 갈색이고 안쪽은 흰색이었습니다. 아내는 이 창문이 안쪽으로 열릴 때 바깥쪽 페인트 색이 방 안에 드러나는데 자신은 그게 싫다고 했습니다. 흰색이 좋아서 흰색으로 칠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칠한 페인트는 제조사 원래 도장만 못하고 보기에도 안 좋아.” 아내는 “흰색이면 돼요”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는 집착을 버리고 아내의 취향을 포용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아내가 좋아하면 하게 두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수련생 사이이고 수련생 사이일수록 포용해야 하며 상대의 집착을 보면 더욱 저 자신을 닦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악한 요소가 빈틈을 파고들어 더 많은 문제를 일으켜 저희가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협력에 영향을 줍니다. 이를 통해 저는 생활 속 어떤 일의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저 자신의 사람 마음과 집착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숨은 집착 하나
오랫동안 낮에는 NTD TV 뉴스를 챙겨 봤는데 제가 일하는 가게에서 볼 수 있었고, 저녁에는 동태망(動態網)을 자주 봤으며 명혜망은 그저 지나가며 한 번 보는 정도였습니다. 어느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정세, 중공 악당의 향방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세상의 모든 일에 안배가 있음을 알면서도 보고 싶은 마음을 누르지 못했고 이것이 차츰 새로운 집착이 됐습니다. ‘호기심일까, 아니면 세상에 대한 추구일까?’ 저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문득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은 늘 인간 세상에 희망을 품고 있어 제 사람 마음이 바라는 장면이 있기를 원했는데, 이것이 마음속에 숨은 세상에 대한 근본 집착이었습니다.
대법은 사람이 어떻게 되라고 전해진 것이 아니며 이 세상의 명리정(명예, 이익, 정)은 수련인이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데 세상의 향방에 무엇하러 집착하겠습니까? 오직 자신을 잘 닦고 대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하는 첫째 일을 잘해 사부님의 성스러운 은혜에 부끄럽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집착의 매듭이 마침내 풀렸고 마음이 다시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평소 늘 慈悲(츠뻬이)한 마음과 상화(祥和)한 심태를 유지한다면, 문제와 마주쳐도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충적인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전법륜)
이는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하시는 기본 요구이며 제가 마음이 움직였는지 판단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세상의 명리정욕을 갈수록 담담히 볼 때 후천적 관념도 더 분명해지고 더 가려낼 수 있게 됩니다. 예전에 수련할 때도 사람에 대해 관념을 갖지 말라고 자주 스스로 일깨웠지만 생각이 충격을 받을 때 제 공간장 안에 관념이 여전히 많음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생에게 어떤 좋지 않은 생각이 들 때 저는 그 생각이 제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수련생의 단점을 마주해도 지적해서는 안 되고 제가 상대의 처지에서 이해하고 도와야 합니다. 포용은 열린 가슴이며 공간이 넓고 크다는 뜻도 있습니다. 저는 그 안에 바르지 않은 생각까지도 품어 낸다는 뜻이 있다고 이해하는데 다만 마음이 더 섬세하고 더 부드러워질 뿐입니다. 생각과 행동이 법의 기준에 맞으면 바르지 않은 것을 녹여 무너뜨릴 수 있고 함께 있어도 오염되지 않습니다. 지적받을 때 이것이 저를 해치는 것이라고 느끼지 않는데, 지적받는 것은 제 부족함이고 이 부족함도 제가 닦아 없애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이 사람 마음을 정화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1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3/51597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3/515971.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