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법회] 수련생과 함께 생사의 고비를 넘다

글/ 중국 랴오닝 대법제자 정정(淨晶)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제 주변의 한 친한 언니 수련생이 한번은 현수막을 걸러 갔다가 스쿠터가 뒤집혀 다쳤고, 또 한번은 세를 얻어 사는 집에서 쓰러져 두 차례나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두 번 모두 저는 열심히 제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사심을 내려놓은 후 사부님의 가지(加持)를 받아 수련생과 함께 곤경에서 벗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얻은 심득 체험을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하려 합니다.

첫 번째 일, 눈앞에 닥친 난제

어느 날 한밤중, 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는데 수련생이 두드리는 소리임을 알았습니다. 서둘러 문을 여니 수련생 세 명이 문 밖에 있었고, 그들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라 얼른 집 안으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중 B 아주머니에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라고 묻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우리 셋이 현수막을 걸러 나갔는데 어쩌다 보니 차가 뒤집혀서 우리 둘(그녀와 언니 수련생을 가리킴)이 다 떨어졌어요. 나는 괜찮아서 혼자 일어났는데, 가서 보니 언니가 저기 누운 채 아무것도 모르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이걸 어떡해요? 만약 언니네 자매들이 알면 어쩌겠어요? 그래서 얼른 사부님께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외쳤죠. 우리 둘이(그녀와 운전하던 남자 수련생) 부축해 일으켜 보니 상태가 이런데, 감히 집으로 데려다줄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그래서 우리 둘이 의논해서 당신 집으로 데려온 거예요.”

언니 수련생은 평소 저와 비교적 가깝고 마음이 잘 통하는 수련생이었습니다. 제가 보니 언니는 이미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제가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얼른 다 같이 언니를 위해 정념을 발합시다”라고 하자, B는 “난 집에 가야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 “여기 안 계시고요?! 혼자 사시는데 집에 가서 뭘 하시려고요? 여기 계세요!”라고 묻자, B는 “난 여기 못 있어요. 이렇게 놀랐는데 어떻게 정념이 나오겠어요? 안 돼, 안 돼, 난 집에 갈래요!”라고 했습니다. 또 운전했던 다른 남자 수련생도 여기 있을 수 없다며, 집에 늦게 가면 가족들이 난리 칠 테니 무조건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을 마친 후 두 사람은 서둘러 떠났습니다.

나이 든 수련생이 이 지경이 됐는데 두 사람이 데려다주기만 하고 나 몰라라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집에 간들 잠이 오겠습니까! 남아서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정념이 좀 더 강해질 테고, 서로 담력도 키울 수 있으며, 무슨 일이 생기면 상의하기도 좋을 텐데 말입니다.

두 사람이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어떤 두려움과 무력감이 즉시 저를 덮쳤습니다. 그날 밤은 저 혼자 우리집에 있는 상황이었는데 어쩌면 좋을까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 법상 앞에서 진심으로 사부님께 언니가 절대 무사하도록 보호해 주시길 간청했습니다. 저는 언니를 작은 온돌방에 눕혀 안정을 취하게 하면서, 얼른 마음을 다잡고 B 아주머니의 기점에 서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수련생은 현수막을 높이, 그리고 잘 걸기 위해 짐칸에 섰는데, 차가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흔들리는 상황에서 70대가 넘은 나이에 이미 매우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녀는 언니와 함께 차에서 떨어졌지만 다치지 않고 혼자 일어날 수 있었으니, 이 결과만으로도 이미 아주 좋은 것인데 제가 그녀에게 또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현수막을 걸어 그녀는 이미 몹시 지쳐 있었고, 또 언니의 상태에 놀란 데다, 언니네 자매들이 알고 물고 늘어질까 봐 걱정까지 했으니 심리적으로 이미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두렵고 무력한 느낌이 그리 강하지 않았고, 오히려 B 아주머니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습니다. 기왕 그녀가 수련생을 제게 맡겼으니 저 혼자서도 해낼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언니를 잘 안정시키고 마음을 정리한 후, 저는 사부님 법상 앞에 앉아 정념을 발하기 시작하며 수련생을 박해하는 모든 사악한 생명 요소를 해체하고, 사부님께 수련생이 얼른 깨어나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가지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정념을 발하다 보니 두려운 마음이 점차 옅어졌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언니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상황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을 뜨고 언니 상태를 살피게 됐으며, 사상업(思想業)이 들끓어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며, 열심히 부정하고 배척해 모든 외래의 교란과 박해를 해체했습니다. 점차 걱정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시로 눈을 떠 언니의 상태를 관찰했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발정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것이 고요해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날이 밝자 언니가 눈을 뜨고는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내가 왜 네 집에서 자고 있지?” 제가 “어떻게 우리집에 왔는지 기억 안 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모르겠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어젯밤에 B 일행이랑 현수막 걸러 나갔던 거 기억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맞아, 내가 그 사람들이랑 현수막 걸러 나갔는데, 그럼 내가 왜 또 네 집에 왔지?”라고 했습니다. 저는 차가 뒤집혀 그녀가 떨어졌던 일을 간단히 말해주었습니다. 언니는 “하나도 기억 안 나. 어떻게 차가 뒤집혔고 어떻게 네 집에 오게 됐는지, 네가 말한 것들을 난 전혀 모르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 몸은 좀 어때요? 머리나 몸에 불편한 곳은 없어요?”라고 묻자, 언니는 평온하게 “아무렇지도 않고 아주 괜찮아”라고 대답했습니다. 제 마음속에 있던 큰 돌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언니를 보호해주신 거예요! 안 그랬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몰라요.” 저는 언니와 몇 가지 생각들을 교류했습니다. 나중에 언니도 깨달았는데, 그날 밤 현수막을 걸 때 마음이 순수하지 못했고 B의 동작이 너무 느리다고 여겨 그로 인해 B를 원망하는 마음(원망심)이 생겼는데, 아마도 이 마음 때문에 구세력에게 틈을 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언니가 깨어난 데다 몸에 어떤 올바르지 않은 상태도 없어서 혼자 걸어서 집에 가는 것을 보자, 저는 갑자기 바람 빠진 공처럼 힘이 빠져 그곳에 가만히 주저앉아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습니다. 어젯밤 사부님께서 감당하신 그 모든 것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어젯밤, 다른 공간에서 대체 어떤 정사(正邪)간의 대결이 있었기에 비로소 언니를 구해낼 수 있었을까요. 여기까지 글을 쓰다 보니 이미 눈물이 얼굴을 적십니다. 제자는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두 번째 일, 뒷바라지를 하다 시련에 빠지다

한번은 언니 수련생이 아이가 다니는 시내 학교 쪽에 가서 뒷바라지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며칠 동안 저는 그녀가 집안의 소소한 일로 마음이 그리 안정되지 않은 것을 보았고, 그녀가 사람의 정(情)과 사람의 생각으로 처리하다가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어지럽힐까 봐 걱정돼서, 서둘러 뒷바라지하러 가겠다는 그녀의 생각에 별로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게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으면 모든 일에 새로운 변화가 생길 테니, 저는 그녀에게 먼저 신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잘 다잡은 뒤 사부님께 안배해 달라고 청하라고 건의했습니다. 이 일로 언니는 제가 뒷바라지하러 가는 것을 반대한다고 오해했고, 제가 그녀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고충을 이해해 주지 않는다며 저에게 아주 큰 원망심을 품게 됐습니다.

그 후로 아이 뒷바라지와 관련된 일에 대해 언니는 저와 전혀 교류하지 않았고 저에게 말하지도 않은 채, 곧바로 시내에 가서 뒷바라지를 하기로 결정해 버렸습니다. 당시 저는 언니가 그렇게 확고하게 결심한 줄 몰랐는데, 나중에 제가 언니네 집에 다시 갔을 때 그녀는 저에게 매우 냉담했고 저 역시 언니의 곤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언니의 힘든 상황을 보았다고 말했고, 남편은 “가서 언니에게 2천 위안을 좀 갖다줘요”라고 했습니다. 남편과 둘이서 돈을 전해주러 갔을 때 기회를 타서 언니와 교류했습니다. 그때 언니가 저를 멀리하는 것을 느꼈는데, 정말로 간격이 생겨 예전과 같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제 건의가 타당하지 않더라도 그녀는 늘 선의로 듣고 생각하며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 같은 교류의 분위기가 사라졌고, 2천 위안도 언니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언니와 저의 첫 번째 불화였습니다. 제 마음속에 언니에 대한 원망은 없었지만, 그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이 지나간 지 한참 됐습니다. 어느 날, 언니가 시내에서 뒷바라지하며 지내던 월셋집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저는 얼른 다른 수련생과 함께 시내 병원으로 언니를 보러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보니, 언니는 병상에 누워 링거를 맞고 있었는데, 두 눈에는 예전의 생기가 사라져 있었고 우리 둘을 보고도 반가워할 줄 몰랐습니다. 그녀와 교류할 때 저는 그녀의 주의식(主意識)이 이미 자신을 주재하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어떤 대법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고, 저는 그녀와 법에서 교류할 수가 없었으며 그녀는 더더욱 정념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언니의 가족이 또 언니를 위해 이른바 대사(大師)라는 사람을 불러왔는데, 사도(邪道)를 행하는 깡마르고 새까만 남자였습니다. 그는 오자마자 언니의 아랫배를 빙빙 돌리며 문지르기 시작했고 배꼽에 무언가를 집어넣기도 했는데, 언니는 대수롭지 않은 듯 누워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 정념을 발해 그것이 언니의 몸을 오염시키는 것을 해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같이 온 수련생과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저희가 언니를 구할 기회를 주십사 간청하며, 다른 공간에서 언니를 통제하는 난귀(爛鬼) 요소를 해체하도록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언니를 퇴원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상의하며 그녀를 병원에 내버려 두고 모른 척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미 법을 기억하지 못하고 주의식도 맑지 않은 상태에서 누워 링거만 맞고 있었는데, 거기에 소도(小道)의 것에 오염되고 교란을 받기까지 했으니 이대로 간다면 수습하기 어려워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우리 둘은 언니를 집에 데려가 법공부를 시키고 정념을 발하게 해야 한다고 의논했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언니를 데려가야 했고, 단 하룻밤만이라도 좋았습니다. 수련생이 “가서 가족들과 상의해 봐요”라고 해서, 저는 “좋아요, 우리 둘이 정념을 쓰면서 다시 사부님께 가지를 청해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언니의 가족을 병실 밖으로 불러내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우선 저는 언니가 입원해 치료받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며 대법에서도 약을 먹지 말라거나 주사를 맞지 말라고 요구한 적이 없고, 입원하고 약을 먹는 것은 모두 자발적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와 언니의 관계는 아시다시피 오랜 세월 동안 친자매처럼 아주 잘 지내왔잖아요. 지금 언니의 정신 상태가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오늘 밤 우리집에 데려가 바람 좀 쐬게 하고 싶어요. 어쩌면 기분이 좀 나아져서 회복도 빠를지 몰라요. 병원이란 곳은 멀쩡한 사람도 며칠 있으면 병이 나는 곳이잖아요.”

가족이 말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가 좋은 건 알지만, 지금 이 상태로 누가 감히 집에 가라고 하겠어요?! 입원 안 하면 절대 안 돼요. 그날 병원에 조금만 늦게 왔어도 목숨이 날아갈 뻔했다고요. 혈압이랑 혈당이 무섭게 높아서 언제든 어지러워 쓰러질 수 있는데, 누가 병원을 떠나게 두겠어요? 그러다 쓰러지면 어쩌려고요?” 제가 말했습니다. “딱 하룻밤만 우리집에 데려가서 환경을 바꿔보면 어떨까 해서요. 가서 사부님의 설법도 좀 보게 하면 언니한테 분명 좋을 것 같아요. 내일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다시 모셔다드릴 테니 내일 링거 맞는 데도 지장 없을 거예요.” 가족은 “안 돼요, 어떻게 감히 그렇게 하겠어요? 만에 하나 또 쓰러지면 끝장이라고요”라며 반대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런 이해관계는 저도 다 알아요. 생각해 보세요, 제가 언니 몸을 두고 장난을 치겠어요? 제가 언니를 집에 데려갔다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가족분들이 제게 책임을 묻지 않겠어요! 심지어 대법을 비방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언니 상태가 저런데, 제가 어떻게 언니가 저렇게 돼가는 걸 보면서 무덤덤하게 수수방관할 수 있겠어요? 만약 저희가 그런 관계가 아니고 제가 대법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오늘 제게 돈을 얼마를 주고 언니를 집에 데려가 하룻밤 묵게 해달라고 해도, 또 사고가 나도 저와 무관하다는 각서를 써준다고 해도 전 안 했을 거예요.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 할 거예요.”

가족은 그 말을 듣고 깊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습니다. “그럼 댁에 모시고 가서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아질까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최소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거라고 생각하고 병원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언니한테도 이게 가장 좋고 빠른 방법이고요. 그래서 저도 용기를 내서 이렇게 상의를 드리는 거예요. 저도 체면을 많이 따지는 편이라 거절당하면 몹시 무안하거든요. 몇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지, 아무렇게나 함부로 말씀드리는 게 아니에요. 제가 언니를 집으로 데려가면 제가 직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지, 어떤 결과가 될지 이 모든 건 상상도 못 하실 거예요. 그러니 제 행동에 책임을 질 것이라는 제 말을 믿어주세요.”

“게다가 언니가 그렇게 오랫동안 법공부를 하고 수련해 왔는데, 법공부로 고난을 넘긴 사례가 있다는 건 가족분도 아시잖아요. 언니가 대법을 배우지 않고 그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오늘까지 올 수 있었겠어요? 그래서 저는 그저 언니를 집에 데려가 사부님의 설법을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지금 입원해 있어도 밤에는 회진도 안 돌잖아요. 오전 링거 맞는 시간만 안 늦으면 될 거예요. 안심하세요, 차도가 없으면 제가 아침 일찍 모셔다드릴 테니까요. 오늘 밤엔 댁에 가서 좀 쉬세요. 며칠 동안 병원에 계시느라 엄청 고생하셨잖아요.” 제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끝에, 마침내 언니를 집으로 데려가도 좋다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냈습니다.

가족의 동의를 얻은 후, 저는 얼른 병실로 가서 언니가 정념으로 자신을 주재하도록 한층 더 일깨워주었습니다.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언니에게 “나 언니 집으로 데려가려고 왔어요. 우리집에 갈 거니까 이따 나랑 같이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언니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제가 “짐 좀 챙겨요, 우리집에 가게”라고 하자, 그녀는 의아해하며 “내가 왜 너랑 가? 난 너랑 안 가, 갈 거면 내가 세 들어 사는 집으로 갈 거야. 너랑 안 가”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이것이 언니의 진정하게 명백한 그 일면이 하는 말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사악한 요소가 그녀를 정체(整體, 수련 공동체)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언니 마음속에 아직 저에 대한 앙금이 풀리지 않았음도 느껴졌습니다.

저는 약간의 상실감이 들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제가 오늘 무엇을 하러 왔는지 매우 명확히 알았습니다. 바로 정념으로 수련생에 대한 박해를 해체하는 것이었으며, 사부님께서 줄곧 곁에서 저를 가지해 주심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절대 사람의 마음을 섞어서는 안 됐습니다. 저와 함께 온 수련생도 계속 설득한 끝에 마침내 언니는 저희와 함께 우리집으로 가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언니의 다른 가족이 운전해서 저희와 언니를 우리집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차에서 내릴 때 저는 일부러 가족에게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만약 내일 진짜 기적이 일어나서 언니 몸이 정상으로 회복되면, 다시 병원으로 가라고 해도 언니 스스로 안 간다고 할 거예요. 언니가 보고 싶으면 우리집으로 보러 오세요.”

언니가 우리집에 온 후, 저는 곧바로 큰 텔레비전을 켰습니다. 서둘러 사부님의 설법 영상을 보여주지 않고, 사부님 모습이 나오는 노래 영상을 언니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은송(師恩頌)’, ‘사부님의 손’, ‘사부님 감사합니다’,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등 영상이었습니다. 영상 속에 자비롭고 상화로우신 사부님의 모습이 반복해서 나오자 방 안은 에너지로 가득 찼고, 순식간에 언니의 진정한 자신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또 수련생 몇 명에게 연락해 와서 언니와 교류하게 했습니다. 언니는 수련생들을 보자 정념이 나왔고, 눈빛도 더 이상 몽롱하지 않았으며 기운을 차렸습니다. 제가 언니와 함께 법공부와 교류를 하다가 밤에 잠자리에 들 무렵이 되자 언니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고, 병원에서의 그런 상태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언니는 제게 “내일 병원 안 갈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괜찮겠어요?”라고 묻자 그녀는 “괜찮아. 내가 가족들한테 전화해서 나 다 나았으니까 안 간다고 할게”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저는 언니에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언니 집처럼 편하게 생각하고 구애받지 마세요. 그냥 마음 푹 놓고 여기서 지내요. 우리 같이 법공부하고 정념을 발합시다.” 언니도 기분 좋게 머물렀습니다.

그 후로 저는 수련생들을 불러 번갈아 가며 언니와 함께 법공부를 하게 했고, 매일 오전, 오후로 우리집에는 늘 수련생들이 있었습니다. 언니의 몸은 점점 더 좋아졌고 저 대신 청소까지 해줄 수 있었습니다. 제가 낮에 출근할 때는 집을 언니에게 맡겼습니다.

이틀 뒤, 어떤 수련생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네 집 문이 잠길 새가 없네요, (그녀의 친척들이) 이 사람 오고 저 사람 가고 하니 말이에요. 솔직히 그녀(언니 지칭)도 그렇지, 애초에 당신 집에 온 건 수련하고 고비를 넘기러 온 건데, 가족들이 이렇게 자꾸 보러 오게 두면 안 되잖아요. 보려거든 자기 집에 돌아간 뒤에 보라고 하든가요. 원래 수련생들이 모이면 법공부도 잘하고 교류도 할 수 있는데, 친척들이 오면 공부를 할 수가 없잖아요. 게다가 당신 집에 매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가면 이웃들이 보기에 뭐가 되겠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친척들이 우리집에 와서 그녀를 보고 간 것이 맞았습니다. 저 역시 수련생이 지적한 현상이 매우 중요하며 모두 주의해야 할 부분이고, 이 어렵게 얻은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 같이 모여 법공부하는 환경은 신성하므로 문병하러 오는 속인에게 교란받아서는 안 됩니다. 어쩌다 한두 번 오는 것은 괜찮고 친척들에게 잘 설명하면 다들 이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들을 언니와 직접 교류하지는 않았는데, 행여나 이곳에서 안심하고 지내는 그녀의 마음가짐에 영향을 줄까 봐 우려됐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병원에서 나올 때 제가 가족들에게 우리집으로 언니를 보러 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또 가족들이 와서 보면 안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언니가 병원에 있을 때보다 여기서 더 좋아진 것을 보는 것 역시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련 환경을 잘 지키기 위해, 저는 스스로 정념을 발하는 횟수를 늘려 우리집 공간장을 청리했습니다. 사실 저는 평소에 안전을 아주 중시하고 자기 보호 의식도 강해서, 문제가 발견되면 늘 온갖 걱정을 하며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언니 일에서만큼은 저는 놀랍도록 사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부적절한 점이 보일 때 곧바로 예방 조치를 취하던 제가 이번에는 부적절한 점을 보고도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저는 이것이 이성적이지 못한 것도 아니고 안전을 모르는 것도 아니며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님을 똑똑히 알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른바 부적절하다는 모든 것이 대법 속에서, 이타적인 마음 속에서, 자비 속에서 모두 사라져 무(無)로 돌아갈 것임을 특별히 믿었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제가 과감히 언니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던 저력일 것입니다.

어느덧 언니가 우리집에서 지낸 지 약 일주일 정도 됐을 때 몸이 완전히 회복됐고, 우리 둘도 속마음을 털어놓는 수련생이 됐습니다. 언니가 집에 돌아가려던 날, 우리 둘 다 마음이 찡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제가 점심을 먹으러 돌아와 보니 언니가 바닥과 주방을 아주 깨끗하게 닦아 놓았습니다. 그녀는 다 나았으니 오후에 수련생과 법공부를 마치고 집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틀만 더 있다 가요”라고 하자, 그녀는 “아무리 오래 있어도 결국엔 가야 하잖아!”라고 했습니다. 제가 출근하러 나설 때 언니는 문 앞까지 저를 배웅하며 아쉬운 듯 말했습니다. “저녁에 퇴근하고 돌아오면 난 네 집에 없을 거야.” 저는 언니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았고, 묵묵히 몸을 돌려 눈물을 머금은 채 문을 닫았습니다. 그 눈물 속에는 우리가 며칠 동안 아침저녁으로 함께하며 법 속에서 승화한 뒤의 아쉬운 이별의 감정도 있었고, 병업(病業) 고비를 함께 성공적으로 넘긴 감개무량함도 있었으며, 아직 다 닦아내지 못한 수련생 간의 정(情)도 있었습니다. 시련을 함께한 수련생의 인연으로, 우리 모두 법 속에서 공성원만(功成圓滿)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맺음말

언니의 이 두 가지 일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비록 약간의 정념이 있긴 했지만 저 스스로 탄탄하게 수련해 낸 그런 정념이 아니라 단지 몇 가지 일에서 사부님의 가지를 받아 좋은 결과를 얻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 정념의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르며, 저 자신이 그런 넓은 아량을 수련해 낼 수 있기를, 그리고 수련생들과 함께 당당하게 공동정진할 수 있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모릅니다. 속이 좁아서 일을 망치고 나중에 다시 바로잡아야 하거나, 심지어 수련생에게 상처를 주고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일찍이 저에게 상처받았던 수련생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합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제자가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1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1/3/51593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1/3/5159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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